이루리 작가가 다섯 번째 그림책으로 찾아왔다. ‘삶은 달걀’이라는 익숙한 농담에서 시작된 이야기는 그 제목부터 『삶은 달걀』이다. 『북극곰 코다 까만 코』, 『북극곰 코다 호』, 『까만 코다』로 이어지는 ‘북극곰 코다 시리즈’와 『천사 안젤라』가 진한 감동과 깊은 울림을 전해줬다면, 이번 책은 유쾌한 웃음을 안겨준다. 밤새도록 삶은 달걀에 대해 생각하는 곰, 그와 달걀 쟁탈전을 벌이는 닭이 등장해 미소를 자아낸다.
웃긴 이야기라고는 하지만 예사로 넘길 수 없는 묵직한 메시지가 담겨있다. 이야기의 주인공인 ‘생각하는 곰’은 삶은 달걀에 대해 이야기하는데, 어찌된 일인지 독자는 자꾸만 인생의 의미를 묻게 된다. 삶은 달걀인 까닭에 “따뜻하게 품으면 새로운 생명이 태어날” 것이고, “껍데기를 깨고 나와야 새로운 세상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잘 삶겨진 달걀과 인생의 공통점이라고 해야 할까. 곰이 말했듯, 삶은 달걀은 “작지만 완전한 우주”다.
이루리 작가의 이름을 세계적으로 알린 ‘북극곰 코다 시리즈’는 프랑스, 스페인, 이탈리아 등 10개 나라로 수출되며 많은 독자들의 사랑을 받았다. 서른 살에 그림책의 매력에 빠져든 작가는 그림책 평론가와 번역가, 기획자로 활발한 활동을 이어왔다. 현재는 그림책을 쓰는 작가로, 출판사 북극곰의 편집장으로, 그림책 서점 ‘프레드릭’의 대표로 책 읽기의 즐거움을 전하고 있다.
‘연소자 관람가’ 그림책
이번 작품은 ‘삶은 달걀’이라는 농담에서 시작됐다고요.
알고 보면 오래 묵은 작품이에요. 한 번씩 SNS에 ‘삶은 달걀’이라는 농담을 올렸거든요. 우리말의 즐거움이잖아요. 우리말에서만 ‘삶은’이라는 말이 ‘life is’도 되고 ‘boiled’라는 뜻도 되니까요. ‘삶은 달걀입니다, 뜨거우니까 조심해서 먹어야겠죠?’ 같은 농담을 SNS에 올렸었는데, 그게 제법 쌓였어요. 모아보니 하나의 작품이 될 것 같더라고요.
전작 ‘북극곰 코다 시리즈’나 『천사 안젤라』에 비해 유머러스한 요소가 많아졌어요. 변신을 시도하신 이유가 있나요?
일상생활에서는 제법 아재 개그를 많이 날리는 편이에요(웃음). 그런데 글만 썼다 하면 심각해지는 거예요. 제가 타고난 에너지와도 상관이 있는 것 같아요. 별자리 공부를 오래 하면서 나중에 알게 됐는데요. 제가 전갈자리인데, 전갈자리 시즌에 영향을 주는 별이 명왕성이에요. 명왕성은 태어나고 죽고 다시 태어나는 일에 관련된 별이고요. 저도 어릴 때 처음 가졌던 꿈이 의사였거든요. 그 생각을 하게 된 자체가 삶과 죽음에 관심이 많다는 거죠. 작가도 ‘영혼의 생명을 구하는 사람’으로서 선택한 거예요. 책을 고를 때도 죽음을 소재로 한 경우가 많은데, 그런 이야기에 끌리는 것 같아요. 그걸 치유하는 데 관심이 많고요. 그런데 한편으로는 남들을 웃기고 싶은 욕망이 늘 있는 거예요. 웃음만큼 탁월한 치료제가 없는 것 같아요. 그래서 웃기는 이야기를 계속 쓰고 싶었는데, 욕심으로 작품이 써지는 건 아니잖아요. 그런데 다행히도 SNS에 올렸던 농담들이 모아져서 이렇게 웃기는 작품이 됐고, 저도 무척 감사하고 있습니다.
우스갯소리로만 넘길 수 없는 문장들이 많아요.
달걀이 메타포가 돼서 삶의 의미를 내포하는 문장들을 쓴 거거든요. 물론 그렇게 읽지 않으셔도 되는데, 제가 농담을 던질 때도 농담 반 진담 반이었어요.
한편으로는 ‘이런 심오한 농담을 아이들이 이해할까?’라는 생각도 들어요.
사실 이 책은 ‘연소자 관람가’ 그림책이죠. 그림책이 원래 어린이책이 아니라는 건 알고 계시죠? 그림책은 랜돌프 칼데콧이 발명한 예술 장르예요. 그런데 한국에서는 어린이책으로 치부되면서 하나의 예술로 존중 받지 못하고 있죠. 저 역시 서른 살에 그림책을 처음 봤을 때 어린이책이라고 생각하고 우습게 봤는데, 그러다가 큰 코 다치는 바람에 더 큰 감동을 받았어요. 그 후로 인생이 바뀌어서 그림책의 길로 걸어왔던 거고요.
『삶은 달걀』은 아이들 눈높이에 맞춰 쓰신 책은 아니군요.
모든 연소자 관람가 그림책이 어른과 아이가 같이 보는 거죠. 어른들이 그림책에서 더 많은 의미를 발견할 수 있거든요. 어린이가 책을 본다는 건 의미를 발견하는 게 아니라 새로운 경험을 하는 거예요. 자신이 직접 경험한 세계를 예술 작품을 통해서 간접 경험하는 거죠. 어른들이 책을 보는 건 전혀 다르죠. 이미 쓰라린 경험, 즐거운 경험, 아픈 경험을 수없이 했고 그 경험에 비추어서 예술가가 만들어 놓은 경험의 세계를 들여다보는 거예요. 두 개의 경험을 비교하면서 의미를 발견하는 독서를 하는 거죠. 어린이는 의미를 발견하기 위해서 독서를 하지 않아요. 어른들도 즐거움의 대상으로써 독서를 했으면 해요. 책이 즐거움의 대상이 아니면 고통이 되잖아요.
작가로서 또는 편집자로서 책을 만드실 때마다 ‘즐거움’을 중요하게 생각하실 것 같아요.
제가 만드는 모든 책은 ‘책의 즐거움’을 전하기 위한 거예요. 읽으면서 웃든지, 짜릿한 쾌감을 느끼든지, 아니면 슬픔을 느끼든지, 그 경험을 통해서 책을 스스로 찾게끔 만드는 게 목표죠. 독자로 하여금 책의 행복을 전하고, 즐거움을 주고, 행복한 삶을 만드는 데 기여하는 것이 책의 본령이잖아요. 독자를 가르치거나 계도하는 건 작가의 순수한 목적이 아니죠. 아마 그건 권력을 가진 사람들의 목적일 거예요. 무엇보다, 인간 스스로가 강요 받는 걸 원하지 않잖아요. 인간은 스스로 배우는 존재죠.
그림책에 대한 고정관념이 있죠. 주요 독자는 어린이이고 ‘어른도’ 같이 볼 수 있는 책이라고 생각하는 거예요.
기본적으로 그림책의 일차 독자는 어린이가 아니라 어른이에요. 그림책 작가는 영화감독의 마음으로 책을 만드는 거죠. 물론 어린이 독자를 염두 해두고 만드는 경우도 있겠지만, 작가 자신이 어린이가 아니기 때문에 어린이 예술이 될 수 없는 거죠. 처음부터 그림책은 어린이책으로 만들어지지 않았어요. 그림책이 어린이책이 된 건 코메니우스라는 교육자 때문이에요. 그 분이 어린이 인권에 주목한 면이 있지만, 동시에 어린이를 독자의 지위에서 교육 받아야 할 열등한 존재로 떨어뜨리는 역할도 같이 한 거거든요.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이런 책을 사줘야 하지 않아?’라고 말하는 건, 어린이를 무시하는 이야기예요. 어린이들이 어른보다 열등한 게 아니거든요. 어린이는 어른보다 순수하고, 어른은 어린이보다 경험이 많을 뿐이죠. 나머지는 서로 배우는 거라고 생각해요. 어린이를 존중하지 않고, 열등하고 부족하고 가르치고 교화시켜야 될 대상으로 보는 건, 어른을 위해서도 좋은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고요.
한 판 놀아보고 싶었다
그림은 나명남 작가님이 그리셨는데요. 두 분의 인연은 어떻게 시작됐나요?
볼로냐국제아동도서전에서 알게 됐어요. 저희 북극곰 출판사는 매년 볼로냐 도서전에 전시를 하는데, 작가님이 더미를 가지고 찾아오셔서 미팅을 했죠. 결국 『달이 좋아요』는 창비에서 출간이 됐는데, 제가 ‘다음에 좋은 기회가 있으면 같이 작업했으면 좋겠다’고 이야기했었어요. 작가님도 흔쾌히 그러자고 하셨고요. 그래서 저희가 그림책을 만들 원고들을 보내드렸는데, 그 중에서 나명남 작가님이 선택하신 게 이 작품이에요.
나명남 작가님의 데뷔작 『달이 좋아요』를 떠올려 보면, 그림체가 상당히 다른 것 같아요.
작가님은 이 작품의 유머보다 철학적인 면을 더 좋아하셨던 것 같아요. 처음에는 굉장히 철학적인 방향으로 콘티가 만들어졌어요. 그래서 조심스럽게 제 의견을 말씀드렸죠. ‘이 작품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는 독자들이 생각할 테고, 우리는 이걸 가지고 한 판 놀아봤으면 좋겠다’, ‘코미디로 만들면 작가님이 콘티를 짜고 그림책을 완성도를 높이는 데도 도움이 될 것 같다’고요. 그리고 곰이 달걀을 먹는 데 어려움을 겪는 개그가 어떻겠냐고 제안 드렸어요. 그랬더니 작가님께서 닭 캐릭터를 발명하신 거예요. 사실 곰과 달걀만 나오면 이렇게 재밌는 그림책이 되기 어려운데, 닭이 곰의 상대역이 되어서 달걀 쟁탈전을 벌이게 된 거죠. 곰은 먹으려고 하고 닭은 뺏으려고 하고요. 자연스러운 대결 구도가 만들어지면서 완성도가 높아진 거예요. 이 책의 완성도에 대한 공은 순전히 나명남 작가님에게 돌리고 싶어요.
『삶은 달걀』은 이야기책 『지구인에게』에 수록된 작품이기도 하죠. 이번 책을 시작으로 『지구인에게』에 수록된 다른 이야기들도 그림책으로 만들어지나요?
네. 『꼬마 석수장이의 꿈』이 작업 중에 있고요. 그 밖에도 『지구인에게』를 제외한 모든 작품이 작가가 정해져서 진행 중이에요.
『지구인에게』는 자전적인 이야기잖아요. 어린 시절 먼저 세상을 떠난 작은형에 대한 기억이 담겨 있는데요. 편집자로서 작업하시면서 힘드신 부분도 있을 것 같아요.
아뇨,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예술가는 삶의 모든 주제를 다루잖아요. 탄생에서부터 죽음까지. 그런데 탄생은 기쁘고 죽음은 슬프고 괴로운 건가요? 저는 아니라고 생각하거든요. 죽음은 새로운 시작일 뿐이에요. 생로병사는 늘 벌어지고 있는 것이고, 생로병사 자체가 중요한 게 아니잖아요. 그것을 어떻게 대하고 경험하고 받아들일 것인가가 중요한 거죠. 만약에 어떤 작가가 탄생은 그릴 수 있는데 죽음은 그리지 못한다고 한다면, 그 작가가 미성숙한 거죠. 비극에 대한 거부감은 삶에 대한 미숙한 태도와도 연관이 있다고 생각해요.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은 『사자왕 형제의 모험』에서 죽음을 정면으로 다뤘잖아요. 작품의 주인공이 형제인데, 이야기가 시작하자마자 주인공이 죽어버리는 동화는 그것밖에 없을 거예요. 얼마나 충격적이에요? 그런데 다음 세상에서 만났잖아요. 윤회라는 세계관을 믿든 안 믿든 삶에 있어서 죽음이 끝이 아니라고 생각할 수 있다면, 아니면 죽음을 받아들일 수 있다면, 삶의 밀도나 깊이나 애정은 더 커지는 거라고 생각해요.
그림책 작가인 동시에 출판사 북극곰의 편집장이신데요. 작가로서 편집부 직원들과 일하실 때는 어떤가요? 수평적으로 소통하시나요?
네. 굉장히 중요한 부분이잖아요. 객관은 내 안에 존재하는 게 아니라 언제나 내 밖에 존재하는 거니까요. 누구나 자기가 쓴 건 좋아 보이죠. 그걸 더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을 때 소통 능력과 전달 능력이 생긴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조언을 받는 게 너무 중요한 거죠. 저는 거절을 거절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더 좋은 작품을 만들기 위한 조언이라고 생각합니다.
웃기든지 찡하든지
편집자로서 외국 도서를 선택하실 때 기준이 있나요? ‘이건 정말 한국에서 출간하고 싶다’고 생각되는 작품들은 어떤 건가요?
국내 창작물도 마찬가지인데, 제 기준은 두 가지예요. 웃기든지 찡하든지. 인간에게 감정이 있다는 건 인간에게 영혼이 있다는 증거잖아요. 책을 영혼의 양식이라고 부르는 것도, 우리 영혼이 먹는 것이기 때문에 그런 거고요. 더 구체적으로 이야기하면 우리 감정을 달래주는 거예요. 그래서 예술 작품은 우리 감정을 달래줘야 되고 건드려야 된다고 생각해요. 그러지 못한다면 예술이 아니라 지식 그 자체인 거죠. 사실 지식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어요. 이미 증명됐듯이 지식으로 하는 일은 기계가 더 잘하고요. 지식 교육에 만 매달려봤자 행복한 인간을 만들지도 못하고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지도 못해요. 우리가 해야 되는 일은 ‘어떻게 더 사랑하고 살 것인가, 어떻게 더 행복해질 것인가, 그러기 위해서 어떤 일을 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거죠. 영혼에 관한 일을 만들어야 하고 해야 돼요.
서른 살에 그림책의 매력에 눈뜨셨는데, 그 전까지는 소설가를 꿈꾸셨다고 알고 있어요. 소설과는 다른, 그림책에만 있는 매력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세요?
저도 그림책은 어린이책이라고 생각하고 봤었어요. 처음 본 작품이 『지각대장 존』이었고 두 번째가 『프레드릭』이었는데요. 두 작품 모두 너무 충격적이었어요. ‘이렇게 예쁘고 쉬운데, 이렇게 심오할 수가’ 싶었던 거죠. 전 세 대가 같이 보고 담론을 나눌 수 있다는 게 놀랍잖아요. 그림책이 시각 예술이라는 것도 놀라웠고요. 대부분의 그림책이 연소자 관람가 책이기 때문에 짧은 분량 안에 더 쉽고 임팩트 있게 이야기를 담아 놓잖아요. 그런데 볼 때마다 다른 메시지를 생각하게 되는 거예요. 어마어마한 위력을 가진 장르라고 생각했죠. 지금 다시 그때로 되돌아가서 소설과 그림책 사이에서 선택을 한다면, 저는 그림책을 택할 것 같아요.
작가 입장에서는 ‘연소자 관람가’ 작품을 만드는 게 어려울 것 같아요. 짧고 쉽게 써야 하잖아요.
어렵죠. 그래서 저와 작업하는 대부분의 작가들이 1~2년에 걸쳐서 한 권의 책을 만드는 거예요. 짧은 이야기인데도 불구하고요. 가장 쉽게 만드는 것이 가장 어려운 거거든요. 어렵게 포장돼 있는데 아무것도 전하지 못하거나 잘못 만들어진 책도 많다고 생각해요. 그 책들을 조금 더 쉽게 만들려면 훨씬 더 많은 시간의 정성과 노력, 많은 사람들의 애정과 수고가 필요했을 거라고 생각하고요. 정말 두꺼운데도 술술 읽히고 재밌는 책들이 많지 않거든요. 그건 시간의 문제와 애정의 문제와 돈의 문제 등 모든 것들이 얽혀 있는 거예요. 그걸 더 압축시켜서 누구나 볼 수 있는 그림책으로 만드는 일은 더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더 공들이고 애쓰면서 만들고 있고요. 이렇게 만든 그림책들이 독자들에 의해서 선택 받고 사랑 받아서 오래도록 인구에 회자될 거라고 믿어요. 세상을 바꾸는 데에도 기여할 거라고 믿고요. 그렇기 때문에 이 일을 하는 게 행복하고 즐거운 거죠.
그림책 서점 ‘프레드릭’의 대표이기도 하시잖아요. 서점의 이름은 동명의 책 제목에서 따오신 거죠?
그렇죠. 레오 리오니의 『프레드릭』은 예술가의 역할에 대해서 가장 쉽고도 분명하게, 아름답게 완성한 작품이라고 생각해요. 어떤 사람들은 그림책이 무슨 예술이냐고 오해할 수도 있겠지만, 저는 제가 하고 있는 그림책 예술이 너무나 자랑스럽고 의미가 있다고 느껴요. 그림책이라는 예술을 상징하는 게 바로 예술가 쥐 프레드릭이 아닌가 생각해서 같은 이름을 짓게 됐고요.
‘프레드릭’에서는 다양한 활동들이 이뤄지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지금 제일 중요한 건 한 달에 한 번씩 열리는 ‘이루리와 함께 그림책 여행’이에요. 그림책이 예술작품이고 행복을 전해준다는 걸 많은 사람들이 알고 즐길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시작하게 됐어요. 이번 달에 다섯 번째 여행을 하고요. 그리고 저는 이 공간을 그림책과 관련된 사람들이 함께 썼으면 좋겠어요. 곧 서점 한 쪽을 갤러리 공간으로 바꾸려고 하는데요. 리모델링이 끝나면 정기적으로 원화 갤러리로써의 역할도 진행하려고 해요. 그림책에 관련된 모든 사람들이 행사도 하고 그림책의 즐거움도 나누는 문화공간으로 활용해 주셨으면 좋겠어요. 누구든 그림책의 행복을 전하기 위한 좋은 아이디어가 있으면 같이 협력하고 기꺼이 공간을 내어드릴 의사가 있습니다.
네 달걀은 완숙이야, 반숙이야?
『아빠와 함께 그림책 여행』에서 “책을 읽어주는 아버지가 이 세상에 더 많아지면 좋겠”다고 하셨어요. 엄마가 읽어주는 그림책과 아빠가 읽어주는 그림책 사이에 다른 점이 있을까요?
아뇨, 저는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 책을 읽어줘야 된다고 생각해요. 엄마 아빠가 다 책을 싫어하면 안 읽어주는 편이 낫다고 생각해요. 책은 즐거움의 대상인데, 엄마 아빠가 책을 너무 싫어하고 읽기 괴로우면 안 읽어주는 편이 나아요. 책을 싫어하는 사람이 읽어주면 책이 고통을 전해주거든요. 모든 행복은 그 행복의 가치를 발견하는 사람이 전해주는 거죠. 너무 재밌고 감동적인 책을 봤다면 내가 사랑하는 사람한테 이야기해주게 되잖아요. ‘이 책 봤어? 너무 좋아, 꼭 봐야 돼’ 하고요『아빠와 함께 그림책 여행』은 제가 좋아하는 그림책을, 제가 견딜 수 없어서, 이 책 너무 좋다고 이야기하면서 쓴 책이에요.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닙니다. 다만, 저한테는 책 읽어주는 아빠가 없었죠. 책을 읽지 못하게 하는 아빠가 있었어요.
아버님께서 책읽기를 막으신 이유가 있었나요?
저희 아버지는 식민지 시대에 태어나셨어요. 획일적이고 권위적인 교육, 학교 공부가 중요한 교육을 받으셨죠. 학교 공부를 하지 못한 데 대한 한을 가지신 분이었고요. 그래서 만화책을 보면 만화책 보지 말라고 하시고, 소설책 보면 소설책 보지 말라고 하셨는데요. 그 가치를 모르시기 때문에 그러셨다고 생각해요. 만화책을 본 적이 없기 때문에, 소설책을 본 적이 없기 때문에, 그런 이야기를 했던 거죠. 그런데 저는 아버지가 보지 말라는 소설책을 보고 아버지를 이해하게 됐어요. 우리 아버지가 저런 시대적인 상처를 가지고 있구나, 그래서 작은 세계를 갖고 있구나, 미워하지는 말아야지, 생각했던 거죠.
그림책을 읽어 주는 아빠는 없으셨지만, 대신 큰 형이 책을 읽어주셨더라고요. 그때의 경험이 작가님에게 많은 영향을 미쳤나요?
제가 초등학교 때 만화방에 갔다가 아버지한테 혼난 적이 있었어요. 그 경험 때문에 책 읽기가 몇 년이 늦어졌는데요. 제가 초등학교 5학년 때 작은 형이 사고로 죽었고, 그 뒤로 큰 형이 많이 심심했던 것 같아요. 작은 형이 가기 전에는 저한테 그렇게 신경을 많이 안 썼던 것 같은데, 둘 있던 동생이 하나가 되니까 그런 부분도 있겠죠. 형이 책을 읽어준 건, 아마 처음에는 자기가 읽어야 되는데 읽기 싫으니까 저한테 읽어준 게 아닌가 싶어요(웃음). 어쨌든 『무기여 잘 있거라』를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줬어요. 그 과정을 통해서 ‘어? 소설책 재밌네?’라는 걸 알게 됐고요. 저한테 책의 즐거움을 알려준 사람이 형인 거죠.
독자들이 『삶은 달걀』을 어떻게 읽으면 좋을까요?
저는 그런 바람이 전혀 없습니다. 이 책은 독자들이 마음대로 보시고 마음대로 상상하셨으면 좋겠어요. 다만 이 책 때문에 더 행복하고 즐거워지기를 바랄 뿐입니다. 저는 이 책을 쓰는 동안 작가로서의 자유를 다 누렸고요. 나명남 작가님은 그림을 그리면서 그림 작가로서의 자유를 충분히 누리셨을 거예요. 이제 독자들이 책 속에서 재미와, 마음껏 해석하는 자유와, 마음대로 발견하는 자유를 누리시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책의 행복이 전해지고 나누어지면 좋겠어요.
책 속에서 곰이 물어요. “근데 네 달걀은 완숙이야, 반숙이야?”라고요. 작가님의 달걀은 어떤 것 같으세요?
저는 반숙도 아닌 것 같은데요? 아직 많이 미숙한 것 같아요(웃음).
아직 삶아지고 있는 과정인가요(웃음)?
네. 완숙되면 죽는 거 아닌가요?
삶의 완성이라는 게 그런 것일 지도 모르겠네요.
완성은 죽음이고, 죽음은 또 새로운 탄생이고, 그렇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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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달걀이루리 글/나명남 그림 | 북극곰
곰은 밤새도록 생각을 하지요. ‘삶은 달걀’에 대해서요. 뜨거우니까 껍데기를 조심해서 까야 하고, 소금에 찍어 먹어야 더 맛있어요.
임나리
그저 우리 사는 이야기면 족합니다.
단뚱
2018.03.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