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 큐레이터가 만난 ‘인간’ 12명 이야기
우리는 지금 오래 익숙했던 시대의 황혼이자, 불투명한 새 시대의 여명에 해당하는 시기를 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글ㆍ사진 출판사 제공
2017.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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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클럽 오리진’을 이끌어가는 지식 큐레이터 전병근이 그동안 만난 지식인들과의 대화를 묶어 책으로 냈다. 제목은 『지식의 표정』. 인문학이라는 말이 흔해진 요즘, 질문과 답으로 이루어진 이 책은 여느 인문학책과 다르게 명쾌한 설명을 던지기보다, 목적지를 조심스레 더듬어 가듯 생각을 요구하며 독자를 곤혹에 빠뜨리는 것 같다. 대만의 문화비평가 탕누어, 『사피엔스』로 세계에 이름을 알린 유발 하라리를 포함해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 데이비드 브룩스, 고인류학자 이상희, 소설가 이기호, 한문학자 강명관 등 지식인 열두 명의 지적 편력과 통찰이 흥미롭다. 페이스북, 트위터, 인스타그램에서 매일같이 쏟아지는 지식과 정보, 주장에 휘둘리지 않고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면면을 담은 『지식의 표정』에 관해 저자 전병근에게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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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 작가 ‘탕누어’를 만난 건, 굉장한 축복

 

오랜 기자 생활 끝에 지식 큐레이터로 자리하기까지의 일들이 궁금합니다.

 

어떻게 살아야 할지 고민하면서부터 앎에 대한 갈증도 시작된 것 같습니다. 대학원을 마치고 유학까지 생각하다가 세상 공부가 하고 싶어졌습니다. 일종의 파계를 택한 거지요. 기자 생활은 18년을 했습니다. 국제부를 자원해서 오래 있었습니다. 세계를 다니며 보고 듣고 공부해서 알게 된 것을 알리는 일이 좋았습니다. 지금도 그런 저널리즘을 사랑합니다. 2008년 미국 연수를 갔다가 디지털 혁명을 일찍 목도했습니다. 미디어 환경을 너머 세상의 변화를 예감했습니다. 귀국해서 문화부에서 일하다가 온라인 매체로 옮겼고 때마침 모바일 플랫폼인 카카오의 제의가 있어서 독립했습니다. 지식문화 확산이라는 일은 늘 관심이 있었고 해오던 일입니다. 환경 변화에 맞춰 나름대로 진화했을 뿐이지요. 그래도 매번 안개 속을 헤쳐온 것 같은데 돌아보면 운명 같습니다. 지금도 세상을 보면 경이롭고, 그 속의 나를 생각하면 놀랍기만 합니다. 지식문화 확산은 내가 속한 공동체에 대한 최소한의 기여이자 맘속에 심어진 사명처럼 생각하고 있습니다.

 

최근 『지식의 표정』이란 책을 내셨습니다. 인문학과 자연과학을 오가며 열두 명의 지식인을 인터뷰한 책인데 어떤 기준으로 고르셨는지 궁금합니다.

 

22개월 전 ‘북클럽 오리진’을 시작할 때 “디지털 시대 사람의 길”이라는 제목으로 오프닝 강연을 한 적이 있습니다. 그 무렵 제 머릿속에 고여 있던 생각일 텐데 그 뒤로 지금까지도 읽기와 쓰기의 큰 맥락으로 자리 잡고 있을 겁니다. 우리는 지금 오래 익숙했던 시대의 황혼이자, 불투명한 새 시대의 여명에 해당하는 시기를 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기록을 보면 인류 역사는 매 순간 그렇게 느껴졌던 것 같기도 합니다.(아니면 그런 과민한 사람이 주로 기록을 남겼거나.) 저는 그런 시기에 보여주었던 인간의 모습에 가슴 벅차오르거나 목이 멜 때가 많습니다. 요즘도 그런 장면에 이를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마다 저의 걸음과 표정, 자세를 생각합니다.

 

『지식의 표정』의 부제가 “인공지능 시대 인간의 길을 탐색하는 열두 걸음”입니다. 책을 보면 인공지능에 대한 우려가 곳곳에서 보이는 것 같아요. 이 시대의 어떤 면이 우려되시는지, 그리고 그것을 극복할 ‘인간다움’이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큰 질문이고 여러 쟁점이 있지요. 다만 인공지능에 대한 우려보다 그것에 대한 인간의 무지나 오해, 어리석은 대응을 걱정합니다. 인간이야말로 단일하게 예측할 수도 없고 늘 불확정적이기 때문입니다. 불안도 희망도 거기서 나옵니다. 근대 과학기술 시대가 열리면서 그것이 초래할 명암에 대한 기대와 불안은 늘 병존했지만 지금은 차원이 달라졌다는 점에서 더 조바심이 나는 것이 사실입니다. 강력한 기술이 산업자본과 결합하면서 형성된 자기 증식의 메커니즘이 그 위력을 키워가고 있는 데 반해, 그것에 대한 견제 내지 제어 장치라고 할 공론장과 민주주의가 점점 건강성을 잃어가는 듯 보입니다. 사회 신경망 역할을 했던 언론마저 당파적이고 근시안적으로 돼가는데 그 자리를 대신한 소셜미디어는 공적인 책임을 다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인류 역사에서 그나마 지금까지 최선이라고 여겨질 수 있는 휴머니티는 읽고 쓰고 생각하는 문화와 깊은 관련이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서양의 ‘휴머니타스’나 한자권의 ‘인문’이라는 말의 어원 모두 글과 얽혀 있습니다. 북클럽 오리진이 지식문화 확산을 표방하는 이유입니다.

 

『지식의 표정』에 실린 인터뷰이들의 말씀이 참 깊습니다. 문화비평가부터 역사학자, 고인류학자, 번역가, 소설가, 한문학자 등 다양한데요. 누구와의 대화가 가장 인상 깊으셨고 또 선생님께 깊게 와닿은 말씀이 무엇인지 듣고 싶습니다.

 

다들 개성이 있고 인상적이지만, 맨 앞에 나와 있는 대만 작가 탕누어입니다. 저는 그를 알게 된 것이 올 한 해 손가락에 꼽을 행운이라고 생각합니다. 저의 몇 마디 말보다 그의 저서를 직접 읽어보실 것을 권합니다. 책 읽기에 대해 그만큼 넓고 깊고 높게 글로 풀어낼 수 있는 사람도 드물다고 생각합니다. 가령 이런 대목입니다.

 

“독서는 먼 곳을 향합니다. 책을 읽는 사람의 자태는 고개를 쳐들고 큰 세계를 바라보는 겁니다. 자신이 아직 모르고 본 적도 없고 생각해본 적도 없는, 갖고 있지도 않은 것을 향하는 거지요. 그 과정에서 겪게 되는 곤혹은 필연적입니다. 독서와 더불어 곤혹은 소멸되지 않습니다. 파도가 밀려오는 것과 같지요. 인간의 뇌가 멈추고 감각기관이 전부 닫히지 않는 한 곤혹은 독서와 함께할 것입니다.”(『지식의 표정』 21-22쪽)

저는 이것이 인공지능 시대를 맞는 인간에게 필요한 자세일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출렁이는 파도를 맞아 늘 곁에 책을 두고 헤쳐가는 거지요. 그래서 저는 책을 “망망대해를 항해하는 일엽편주의 돛이자 닻이자 노”라고 말하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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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는 나오는 지식인들은 오랫동안 한길을 걸으며 내공을 쌓은 분들입니다. 그분들과 대담하기 위해 당연히 많은 준비를 하셨을 텐데요, 질문은 어떻게 뽑으며 책은 얼마나 읽으시는지 그 준비 과정이 듣고 싶습니다.

 

어떤 책이나 글이 먼저 눈에 들어와서 인터뷰를 계획할 때가 많습니다. 확정이 되면 그 사람의 다른 저술이나 관련 자료들도 가능한 한 다 찾아봅니다. 다른 인터뷰도 있으면 참고합니다. 어느 인터뷰에서나 기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저는 가급적 기존의 책이나 글에 나와 있지 않은 이면의 생각, 그 밑에 깔린 전제, 지금에 이르게 된 내력을 물어보는 것을 좋아합니다. 뿌리까지 들어가보는 거지요. 인터뷰 자체가 상대와 함께하는 공동의 탐구이자 모색의 기회가 되는 겁니다. 어디선가 함께 추는 탱고 같다고도 한 적이 있습니다. 그럴 때 예기치 않은 일종의 화학반응이 일어나곤 합니다. 마치고 나면 상대도 특별한 체험이었다며 좋아하곤 합니다.

 

『지식의 표정』은 인터뷰로만 이루어진 책입니다. 인터뷰라는 형식은 사람을 마주 보는 일이라 즉흥적인 면도 있고, 진행 중에 여러 변수가 있을 것 같아요. 인터뷰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라면요?

 

가장 기억에 남는 거라면 인터뷰를 잘 마치고 난 후 녹음기가 꺼져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순간이지요. 그야말로 악몽입니다. 재미있는 것은 그 순간에는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은데, 하는 수 없다는 생각에 돌아앉아 머리를 쥐어짜면 대화 내용이 어지간히 복기된다는 겁니다. 물론 그 정확도는 장담할 수 없겠지만.

 

이미 ‘정보의 홍수’라는 말조차 진부하게 느껴지는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가짜 뉴스’도 나오는 세상이니 정보를 골라 접하는 일이 갈수록 중요해지는 것 같습니다. ‘지식 큐레이터’의 운명을 어떻게 내다보시는지, 그리고 지식 큐레이터는 어떤 자질을 갖춰야 하는지 궁금합니다.

 

그 문제는 계속 생각해오던 주제이고 틈틈이 글을 쓰고 있습니다. 간략히 언급하자면, 지식 큐레이터란 직명은 다소 생소하게 느껴질지 몰라도 그런 역할이나 활동은 오래전부터 있어왔고 도처에서 점점 늘어가고 있습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이제 서로가 서로에게 큐레이팅을 필요로 하는 시대지요. 다만 이 방면에도 최소한의 전문성이랄까 덕목, 소양을 갖춘 사람들의 역할이 필요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콘텐츠에 대한 안목과 더불어 저널리즘과 퍼블리싱 경험을 가진 사람이면 좋겠지요. 직업 이전에 본인이 배우고 나누는 것을 좋아해야 하는 일입니다. 물론 가장 중요한 것은 지식문화 확산에 대한 소명감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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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에서 제공한 자료로 작성한 기사입니다. <채널예스>에만 보내주시는 자료를 토대로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