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듦에 대하여
노신사는 시원섭섭한 표정으로 악수를 하고 돌아섰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자신이 가지고 있던 것들을 잃어가는 과정인 것이고, 그가 잃어버린 것이 시력이나 방광의 기능, 발기 문제 뿐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글ㆍ사진 오승원(서울대병원 강남센터 가정의학과 교수)
2017.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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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스플래쉬

 

늙는 것은 용서할 수 없는 ‘범죄’가 아니다, 라고 나는 말했다.
노인은 ‘기형’이 아니다, 라고 나는 말했다.
따라서 노인의 욕망도 범죄가 아니고 기형도 아니다, 라고 또 나는 말했다.
노인은, 그냥 자연일 뿐이다.
젊은 너희가 가진 아름다움이 자연이듯이.
너희의 젊음이 너희 노력에 의하여 얻어진 것이 아닌 것처럼,
노인의 주름도 노인의 과오에 의해 얻은 것이 아니다.
_ 박범신, 『은교』 중에서

 

김희정 씨는 책을 덮었다. 소설에서 70대의 시인은 늙는다는 것의 추함을 서러워하며 항변하듯 이야기하고 있었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육체의 싱그러움은 사라지지만 내적으로는 지혜로워지는 것, 너그러워지는 것, 삶에 달관할 수 있게 되는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런 건 그저 틀에 박힌 선입견일 뿐일지도 모를 일이었다. 노인이 된다고 해도 욕망까지 박제되는 것은 아니었고, 그런 사실을 으레 무시했던 것은 무관심의 결과일 뿐이었다.

 

앞에 들어갔던 환자의 진료가 오래 걸리는 모양이었다. 밤 열 시가 넘으면 환자가 뜸해지고 진료 시간도 여유로워진다. 대기실에 앉아 있는 환자는 나이 지긋한 노신사 한 명뿐이다. 이 시간엔 근처 공단에서 3교대 저녁 근무를 마치고 돌아가는 노동자나 편의점 야간 근무를 위해 출근하는 아르바이트생, 갑자기 열이 나는 아이를 데리고 오는 엄마, 술기운에 불콰해진 얼굴로 위장약 처방을 받으려는 회사원 정도가 드문드문 들를 뿐이었다.

 

그런 면에서 노신사는 특이한 방문객이었다. 그는 고혈압 환자였고, 두어 달에 한 번씩 늘 비슷한 밤 늦은 시간에 반딧불 의원을 방문했다. 밤 늦은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항상 깔끔한 양복 차림에 중절모를 썼다. 눈썰미가 좋은 김희정 씨는 그가 매번 다른 모자를 쓰고 온다는 걸 알고 있었다. 두꺼운 검은 테의 안경은 적당하게 다듬은 희끗희끗한 턱수염과 잘 어울렸다. 말하자면 그는 70대 가까운 나이에 흔치 않은, 날이 선 패션 감각을 갖고 있었다.

 

옷차림만 반듯한 것은 아니었다. 대기실에서 등을 꼿꼿하게 편 채 책을 읽는 모습에도 품격과 여유가 배어 있었다. 그는 김희정 씨에게 늘 부드러운 태도로 말을 건넸고, 아이를 데려온 엄마에게 진료 차례를 양보하기도 했다.

 

“어르신, 오늘도 멋지신 데요.”
“허허. 고맙소. 김 간호사님을 보면 항상 기분이 좋아집니다.”
“그런데 항상 양복을 입고 다니는 게 불편하지 않으세요?”
“괜찮아요. 늘상 입는 옷이라 습관이 되어서. 언젠가 아들 녀석이 그러더군요. 아버지는 음식물 쓰레기 버리러 나갈 때도 양복을 챙겨 입는 분이라고.”

 

음식물 쓰레기 봉지를 든 양복 차림의 모습이 떠올라 김희정 씨는 그만 웃음을 터뜨렸다. 유쾌하게 농담을 던지고 진료실로 들어가는 그를 보며, 저분처럼 나이 든다면 늙어가는 것도 나쁜 일만은 아닐 것 같다고 김희정 씨는 생각했다.

 

평소와 같이 진료가 끝나갈 무렵 처방을 입력하던 의사가 그에게 말을 건넸다.

 

“향수를 바꾸셨나 봅니다. 향기가 좋은데요.”
“허허. 이 선생 후각이 예민하시네. 맞아요.”
“제가 냄새에 좀 민감한 편이라서요. 그나저나 지난번 백내장 수술은 잘 되셨어요?”
“이전보다는 훨씬 밝아졌어요. 초점이 잘 맞지 않아 안경을 바꿔가며 쓰는 게 불편하긴 하지만 이만하면 괜찮은 거지요. 내가 주민등록 상으로는 50년 생이지만 실제로는 두 살이 많아요. 친구들하고 이야기할 때는 이 나이 되면 몸이 정상인 게 비정상이라고 우스갯소리를 하곤 해요.”

 

잠시 말을 끊고 무언가를 생각하는 듯하던 그가 목소리를 낮췄다.

 

“이 선생님, 오늘은 내가 한 가지 더 물어봐도 되겠어요?”
“네. 말씀하시지요.”
“요즘 소변 보는 게 영 시원치 않아요. 젊어서 같이 시원시원하게 나오지 않은 거야 오래된 일이지요. 한참을 기다려야 나오고 소변 줄기도 약해지구요. 이런 것들이야 나이 먹어 그러려니 하고 넘겨왔는데, 밤에 화장실에 가느라 자주 깨서 잠을 푹 못 자는 게 힘드네요.”
“이전에 진료는 받아보셨어요?”
“병원에 가 보지는 않았지요. 친구들이 전립선 때문에 생기는 문제라고들 해서 거기에 좋다는 건강보조제를 사 먹고 있는 중인데 영 나아지질 않네요.”
“전립선 비대로 인한 증상이 맞을 것 같습니다. 흔히 쏘팔메토라는 성분의 보조제를 드시는데 기대한 만큼 효과가 없는 경우가 많아요. 그것보다는 병원에서 처방하는 약을 드시는 게 좋습니다. 제가 처방해 드릴 수도 있고요.”
“그런데 밤에 자주 깨는 것보다 더 큰 문제가 있어요. 소변을 보고 난 뒤에도 자주 소변이 흘러나와요. 다 나온 것 같아서 옷을 올리면 속옷을 적셔 난처해지는 일도 있구요. 소변을 보고 한참을 기다려 보기도 하는데 다 해결이 안되더군요. 이것도 좋아질까요?”
“다른 증상보다는 약의 효과가 적을 거에요. 소변을 보고 나서 손으로 요도에 남은 소변을 짜내는 방법이 도움이 될 수 있는데, 자료를 찾아 드리겠습니다.”

 

고개를 끄덕이며 의사의 설명을 듣던 그가 다시 차분하게 말을 이었다.

 

“3년 전 사별한 뒤에 아들 녀석 집에서 함께 살아요. 손녀딸이 있는데 얼마 전부터 내 방에 안 들어오려고 하더군요. 그런데 우연히 며늘아기와 이야기하는 걸 들었어요. 할아버지한테 이상한 냄새가 난다는 거야. 지린내가 나는 것 같다고. 충격을 받았지요. 손녀딸에게 가까이 가기 싫은 할애비가 되고 싶진 않거든요. 그때부터 몸 관리에 더 신경을 쓰기 시작했지요. 아침저녁으로 샤워도 하는데도 노인 냄새를 완전히 없애긴 어렵다고 하더군요. 향수를 쓰기 시작한 것도 그때부터요. 오늘 소변 문제를 상의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그는 깊은 숨을 한 번 들이쉬었다.

 

“이 선생.”
“네.”
“나이 든다는 거. 참 애처로운 거에요.”

 

노신사는 말을 끊고 컴컴한 창밖을 바라보았다. 미소를 띠고 있었지만 그의 눈은 서글퍼 보였다. 어쩌면 소변 문제 따위에 대해선 고민할 필요가 없었던 오래전 자신의 모습을 떠올리고 있는 것 같기도 했다.

 

“참. 근데 이 선생님이 처방한 약, 그거에도 도움이 되나요?”
“그거라뇨?”

 

그는 난처한 표정을 지었지만 이내 체념한 듯 대답했다.

 

“그… 밤일 말이요. 오랫동안 그런 건 잊고 지냈는데 내가 요즘 만나는 사람이 있어요.”


“전립선 약이 발기에 도움이 되냐는 말씀이군요. 그렇진 않습니다. 전립선 비대와 발기 문제는 둘 다 나이가 들면서 생기지만 원인은 다르거든요. 그 문제에 대해선 일단 전립선에 대한 약 효과를 확인한 다음에 다시 상의하는 게 좋겠습니다.”

 

노신사는 시원섭섭한 표정으로 악수를 하고 돌아섰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자신이 가지고 있던 것들을 잃어가는 과정인 것이고, 그가 잃어버린 것이 시력이나 방광의 기능, 발기 문제 뿐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진료실을 나가는 그를 보며 수현은 지금은 그에게 없지만 이전엔 가지고 있었을 것들을 생각했다. 그리고 자신이 앞으로 잃어버리게 될 것들에 대해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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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미지투데이

 



전립선 비대와 배뇨 장애 증상


전립선은 정액의 주성분인 전립선액을 만드는 기관이다. 전립선은 방광 아래 요도를 둘러싸고 있는데, 본래 밤톨만한 크기였다가 나이가 들면서 점점 커진다. 커진 전립선이 요도를 압박해 소변 배출이 어렵게 되는 것이 전립선 비대증이다. 전립선의 크기는 직장수지검사나 초음파로 확인할 수 있는데 증상이 꼭 크기와 비례해 심해지는 것은 아니다. 전립선 비대증은 육십 대에서는 절반 이상, 칠십 대에서는 거의 모든 사람에게서 나타날 만큼 흔한 문제다. 노화에 따른 자연스러운 현상이지만 배뇨 장애로 인해 삶의 질이 떨어질 정도가 되면 치료를 받을 필요가 있다. 대개 하루 한 번 약을 복용하는 정도의 치료로 쉽게 증상을 개선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약이 전립선을 비대가 생기기 전 상태로 되돌려주는 것은 아니므로, 증상이 좋아졌다가도 복용을 중단하면 다시 증상이 나빠진다. 그러므로 약 복용의 목적이 증상의 개선이란 점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수술을 받더라도 증상을 완전히 없애긴 어렵고 수술 이후 생기는 부작용 문제도 있으므로 어떤 치료를 선택할 지에 대해 의사와 충분히 상의하는 것이 좋다. 또한 전립선은 성기능과는 무관하므로 전립선 비대에 대한 치료가 성기능에 도움이 되진 않는다.

 

쏘팔메토는 톱야자(Saw palmetto) 열매를 가공해 추출한 성분으로. 전립선 비대증에 효과가 있다고 알려져 있다.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인정하는 건강기능식품 기능성 원료이기도 해 국내에서도 30여 업체가 관련 제품을 판매 중이다. 하지만 효과에 대한 근거는 빈약한 편이다. 최근의 여러 연구에선 전립선 비대증 개선에 도움이 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난 바 있다. 그러므로 증상이 심해 치료를 고려할 정도라면 쏘팔메토 성분의 건강기능식품보다는 의사 처방에 따른 전문의약품을 복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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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승원(서울대병원 강남센터 가정의학과 교수)

가정의학과 의사입니다. 만성 질환 예방과 건강 증진에 대해 관심이 많습니다. 환자를 만나고 그들과 나누었던 이야기를 기록합니다. 에세이 <반딧불 의원>을 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