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박진규는 2005년 『수상한 식모들』로 제11회 문학동네소설상을 수상한 뒤, 2014년 『나는 빼빼로가 두려워』에서 필명인 박생강으로 작품을 발표했다. 그리고 2017년, ‘박생강’이라는 필명으로는 두 번째 장편소설을 내놓았다. 제13회 세계문학상 우수상 수상작인 『우리 사우나는 JTBC 안 봐요』가 그 작품이다. 이 소설은 헬라홀이라는 멤버십 사우나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는다.
멤버십 사우나답게, 이곳을 드나드는 사람은 일반인은 아니다. 연예인, CEO, 고소득 전문직 등등 소위 대한민국 상위 1퍼센트였거나, 지금도 1퍼센트인 사람이 회원이다. 이들을 관찰하는 주인공인 손태권은 과거에는 소설가이자 논술 강사였고 지금은 사우나 매니저다. 태권의 눈에 비친 1퍼센트를 통해 작가는 우리 사회의 소우주를 소설 한 편으로 응축한다. 이렇게만 소개한다면 이번 작품이 꽤나 무겁게 느껴지지만 박생강 특유의 블랙유머가 곳곳에 녹아 들었다. 덕분에 독자들은 꽤나 진지한 소재이나, 부담스럽지 않게 이야기를 즐길 수 있다. 그의 이전 작품과 마찬가지로 『우리 사우나는 JTBC 안 봐요』도 경쾌함과 재미, 재기발랄함이 장점인 소설이다.
지금까지 쓰면서 가장 힘들었던 작품
제13회 세계문학상 우수상 수상작인 『우리 사우나는 JTBC 안 봐요』가 책으로 나왔습니다. 그간 근황을 말씀해주신다면.
상을 받은 지 몇 달 후에 우연히 프리랜서 기자로 취직했어요. 형사들만 볼 수 있는 전문지인데요. 한 달에 살인과 사기 각각 한 건, 그러니까 총 두 건을 취재하기 위해 전국 각지 강력반 형사를 만나 인터뷰를 합니다. 해결된 사건을 형사들이 어떻게 수사했는지를 촘촘히 기록해서 르포형식의 기사를 쓰죠. 이 일 때문에 조금 바쁘네요.
원제가 『살기 좋은 나라?』였는데요. 제목이 바뀐 사연이 궁금해요.
출판사에서 제목이 평이하니 좀 더 눈에 들어오는 제목이면 좋겠다고 하더군요. 글은 밝은데 제목이 다소 어둡다는 평도 있었고요. 농담 삼아 ‘우리 사우나는 JTBC 안 봐요’는 어때요, 했는데 이걸로 정해졌어요. 다소 낚시성 제목인데요. 읽은 사람은 알겠지만, 소설에 딱 한 장면 나올 뿐이고, 이 소설이 정치적 함의가 있는 내용은 아니거든요. 있다고 생각하셔도 뭐 괜찮지만요.
이건 좀 다른 이야기인데, 어쩌다 보니 작년부터 JTBC 시청자 위원을 하고 있어요. 한 달에 한 번, 사장님과 보도국장님 등 제작진들과 만나 방송에 대한 의견을 주고 받는 자리에 나가죠. 막상 책이 출간되니 거기서 “제가 ‘우리 사우나는 JTBC 안 봐요’라는 소설을 썼습니다.”라고 당당하게 말하기가 뭔가 민망하더라고요. 출판사에서 사전에 JTBC 측에 출간 전 제목에 관한 허락을 받아 문제는 없었지만요. 하여튼 JTBC에서 JTBC 안 보는 제목의 소설을 쓴 작가가 저라고 아직 고백은 못했습니다. 그래도 아시는 분은 알겠죠.
전작인 장편소설 『나는 빼빼로가 두려워』, 『보광동 안개소년』, 『내가 없는 세월』, 『수상한 식모들』과 소설집 『교양 없는 밤』에서는 주로 현실과 환상이 섞인 이야기를 썼습니다. 이번 작품은 현실적인 이야기인데요. 박생강이라는 필명을 쓴 뒤로 문학관이 변했다고 이해해도 될까요.
그런 것까진 아니고요. 박생강이라는 필명은 이 소설보다는 『나는 빼빼로가 두려워』와 상관이 있어요. 문체에 관한 고민을 많이 하던 시기였어요. 『수상한 식모들』로 등단하고 나서 일부 비판적인 평을 들었죠. 수상작으로 가벼운 내용, 가벼운 문체 아니냐고. 그 후에 무겁고 진지하게 쓰려고 노력도 했어요. 물론 나와 맞지는 않았어요. 그래서 처음에 내가 썼던 모습으로 돌아가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발랄한 필명도 하나 만들고. 마침 열린책들에서 내는 첫 한국소설이기도 했고, 그 쪽에서도 필명에 대해 긍정적으로 생각하셨어요. 그래서 박생강이라는 필명이 태어났죠. 당시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는데 이번 소설이 상을 받았으니, 이제는 ‘박생강’이란 이름을 기억하시지 않을까요. 문학관이 바뀐 건 아니에요. 솔직히 문학관이랄 게 별로 없는 것 같기도 합니다. 하여간에 독특한 알레고리 설정이 없는 수기같은 소설을 쓴 건 처음이긴 하네요. 그래도 어딘가 등단작인 『수상한 식모들』과 비슷한 부분도 있을 것 같습니다. 소설가라는 사실을 숨긴 수상한 사우나 매니저가 등장하잖아요.
이번 소설은 겪은 일을 옮기면 되니, 전작보다는 상대적으로 쓰기 편했을 듯한데 어땠나요.
쓰면서 가장 힘들었던 작품이 이번 소설이 아닐까 해요. 초고를 쓰면서, 세 가지 방향을 생각했어요. 하나는, 상류층 실생활과 속내를 다루는 미드스타일 스릴러. 또 하나는, 노동하는 자의 고통을 진지하게 다룬 묵직한 리얼리즘. 마지막이, 이곳에서 벌어지는 우스꽝스러운 일을 고백하는 풍자형식인데요. 첫 번째는 답이 안 나왔어요. 상류층의 남자들이 다들 벗고 있지만 벌거벗은 사생활을 파악하기는 힘든 곳이어서. 상류층의 아랫도리 사정은 잘 알지만, 아랫도리가 어떻게 움직이는지는 알 수 없는 곳이었다고나 할까…… 두 번째 방법은 제가 일하면서 노동의 고달픔을 느낀 적이 별로 없었기에 거짓말로 쓰는 것 같았죠. 정말 편하게 일해서 이게 일인가 싶은 날도 있었답니다. 결국 마지막 방향으로 썼는데, 쓰면서 거리 두기가 쉽지 않았어요.. 회원님들의 운동복과 양말을 관리하는 나와 소설을 쓰는 나를 분리하는 작업이 은근 힘들었어요. 다 쓴 다음에 과연 분리를 잘했나, 싶은데 독자도 헷갈릴 거예요. 이게 작가가 겪은 일인지, 허구인지를요. 그럼에도 어쨌든 무겁고 슬픈 이야기를 독자가 재밌게 읽었으면 하는 마음가짐이 있었는데, 의도가 어느 정도는 적중한 듯해요.
박생강이 사우나에 간 이유
소설을 끝낸 뒤에 사우나에 가신 적이 있나요?
상 받고 책 나오기 전 5월에 갔어요. 후임이 사랑니 발치 때문에, 저에게 하루 일해줄 수 없느냐는 연락이 왔죠. 조금은 두렵기도 하고 뭔가 기대도 되었던 듯하네요. 이곳의 이야기를 쓴 거 아니냐고 누군가 말할까 봐요. 허무하게도 아무도 모르시더라고요. (웃음) 그저 여기서 다시 일하는 거냐는 질문에 ‘땜빵’이라는 답변만 수 십 번 했네요. 심지어 조금 친하게 지냈던 젊은 회원님에게 왜 소설은 안 쓰고 다시 돌아왔느냐는 농담 섞인 말도 들었어요.
소설을 보면 헬라홀 사우나가 유지 보수가 잘 안 되는 사우나잖아요. 그럼에도 지금까지 건재한데요. 영업 비결이 있을까요?
비싼 가격의 멤버십이라는 프리미엄이죠. 노인이 당당하게 다닐 수 있는 피트니스가 많지 않아요. 소설 속 인물들도 한때는 1퍼센트였지만 지금은 뒷방 할아버지잖아요. 그래도 이곳에서는 인사 깍듯하게 하고, 대접 해드리니까요.
신변잡기로 인터뷰가 흘러가는 듯하지만, 궁금해서 물어볼게요. 작가님은 목욕탕 가는 걸 좋아하시나요?
이곳에서 일하게 되기까지 얽힌 일화가 있어요. 2014년까지는 책을 내고, 소설 강의를 하며, 대중문화 칼럼을 쓰는 등등의 일로 생계 유지를 했어요. 그 뒤로 강의가 끝나고, 계약한 책도 모두 냈어요. 2005년에 등단해서 10년 정도 썼으니, 저 개인적으로는 할 만큼 했다고 생각해서 좀 쉬자, 혹은 어쩌면 영영 쉴지도 모르지만, 그렇게 생각했죠. 소설을 덮는다고 내 삶이 끝나는 건 아니니까. 내가 낸 책들이 망한 거지, 내가 망한 건 아니외다 이런 생각들이 있었고요. 2015년부터 다른 직장을 찾아보려고 알아보던 중이었어요. 글 쓰지 않는 다른 일, 그리고 이왕이면 시간 여유가 있고 편한 일이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게을러서.
주변 권유로 사주와 타로를 함께 보는 점집에 갔는데요. 그 분이 저의 사주를 보더니, 사주는 좋은데 화가 많다, 이런 사주는 물이 필요하다고 알려줬어요. 특히나 올해부터는 물과 거리가 멀어지는 시기이니, 이럴 때는 매일매일 사우나를 가면 좋은 글도 나오고 잘 풀린다고 권해주더라고요. 그때 운명처럼 구인 사이트에서 사우나 매니저를 구한다는 정보를 봤어요. 이거다, 돈 안 내고 매일 물에 가는 거니 나쁘지 않겠다, 해서 사우나 일을 시작한 면도 없지 않아 있습니다. 그렇게 일 년 내내 목욕탕을 다니다 보니, 습관이 되어서 요즘은 한 달에 두세 번은 가요.
소설가란 계급화된 사회에 속하면서도 속하지 않은 존재
소설 속에 다양한 인물이 등장합니다. 이곳을 소설로 옮기겠다고 마음 먹었을 때 절대 빼놓지 말고 넣어야겠다 생각한 사람이 있나요?
팀장님. 10년 동안 문학인으로 살다가, 그곳에서 처음 공적인 관계로 만난 사람이 팀장님인데요. 정말 열심히 사는 생활인이죠. 양말, 수건을 각 잡고 물기가 있으면 바로 바로 닦는 그런 모습이 인상적이었어요. 소설로 과장해서 그리고 싶은 욕망을 품게 하셨죠. 회원 중에서는 보르헤스로 그린 분. 몸에 반점이 많고, 천천히 걸어 다니는 노인인데요. 그 느린 걸음 때문에 더더욱 눈에 띄었죠. 다른 회원분들은 그 회원님을 싫어했어요. 저희는 안쓰럽게 생각했고. 어떻게 보면 웃기고 억울했죠. 갑을병 중 병인 게 사우나 매니저인데, 사우나 매니저가 상류층 회원님을 안쓰럽게 생각하다니, 이러면서. 또 파편으로 흩어진 ‘말’을 인물로 구체화시키고픈 생각이 있었고요.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는다는 말처럼, 일을 하면서 정말 많은 말을 듣거든요. 쓸모 없는 대화들이 대부분이지만 그 안에는 그들의 고통, 생각, 가치관이 은근히 담겨 있었으니까요. 그걸 엮어서 형상화 하면서 여러 인물이 태어났죠.
사우나 회원이 1퍼센트이거나, 한때 1퍼센트였던 사람이잖아요. 이들이 나머지 99퍼센트와 다르다고 느낀 순간, 그리고 어쩔 수 없이 똑같은 인간이구나를 느낀 순간을 알려주신다면요.
평소에는 다 벗고 있으니 이 사람들이 1퍼센트인지 99퍼센트인지 모르죠. 빈부에 따라 똥배 타입이 어떻게 다른지 이런 건 판단이 안 되더라고요. 그런데 멤버십 사우나라서 그런지, 옷장에 자주 지갑을 놓고 가요. 돌려주기 전에 궁금해서 보면 어떤 때는 100만 원짜리 수표가 열 장씩 들어있어요. 그런 거 보면 돈 많다, 와우, 이런 생각 들고. 그리고 2015년에 기업 CEO가 운전기사를 모욕하고 폭행한 사건이 화제였는데요. 우리는 그 CEO의 갑질을 욕하는데, 나이 많은 할아버지 회원님들은 보면서 다르게 이야기하더라고요. 저 운전사는 모시던 분을 고발했으니 평생 양심의 가책으로 괴로워할 거라고. 아, 저 분들은 다르구나 느꼈죠.
어쩔 수 없는 사람이구나를 생각하게 하는 순간은 많아요. 가장 인상적인 건, 소설에서 구체적으로 그리진 않았는데 이분들도 눈치를 많이 봐요. 상류층이니까 갑질이 심하겠거니 싶지만, 꼭 그런 건 아니었어요. 무식해 보이지 않으려 하고, 있어 보이려 하고. 비슷비슷한 레벨의 사람들이 한 공간에 있으니 더욱 그렇죠. 타인은 지옥이라는 말이 있잖아요. 상위 1퍼센트에 가깝다 해도, 이분들도 계속 눈치를 보는구나, 싶었죠. 물론 타인을 흉볼 때는 직접 당사자에게 말하지는 못하고, 병인 우리에게 와서 은근히 흉을 봅니다. 저런 수준의 교양 없는 회원은 알아서 좀 걸러내라고.
사우나에서 보는 사람이 문단이나 출판계 사람과는 다른 사람이잖아요. 소설가는 어떤 사람인가를 다시 생각해 볼 때도 있을 듯합니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소설가란 어떤 존재인가, 라는 고민을 진지하게 해 본 적은 없습니다. 이런 생각은 들었어요. 사우나 매니저 일을 하면서도, 저는 소설가잖아요. 소설가란 계급화된 사회에 속하면서도 동시에 속하지 않는 존재구나,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의 여러 면을 들여다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요.
2005년 이후로 장편소설 다섯 편, 소설집 한 편을 냈습니다. 이렇게 꾸준히 책을 낸 비결이 있다면 공개해주세요.
계약이 되어 있었으니까요. (웃음) 사실 제 꿈은 제 이름으로 된 소설 한 권이었기에 등단과 함께그 꿈은 이뤘던 셈이고요. 그 추후의 작업은 사실 다 계약에 의해서… 여하튼 책을 내다 보니 10년이 흘렀고요. 그래서 계약을 완수한 뒤에는 소설을 접어야 하나 생각도 했던 거죠.
작가님 팬이라면 슬퍼할 소식이네요.
저를 아는 몇몇 분들을 빼고서 제 팬을 눈으로 확인한 적이 없어서 모르겠어요. (웃음)
그래도 독자 리뷰를 읽어 보면 꽤 있는 듯한데요.
독자 리뷰라고 하니, 아직도 기억에 남는 리뷰 몇 가지 소개할게요. 등단작 『수상한 식모들』은 꽤 많이 팔렸어요. 당연히 리뷰들도 많이 올라왔죠. 인상적인 리뷰가, 박민규 소설인지 알았는데 잘못 샀다는 글. 또 하나는, 초등학생이 쓴 리뷰인데요. 읽어보니 문장이 엉망이고 주제가 확실하지 않아서 앞으로 논술 공부하는 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을 거 같다는 내용이었어요. (웃음)
작가님 작품이 논술 공부용은 아닌 듯해요. 논술은 딱딱 떨어지는 논리를 좋아하는데, 선생님 작품에서는 인물이나 사건이 모호하고 복잡하잖아요. 이런 소재를 즐기시는 이유는요?
어릴 때부터 신화, 전설, 민담을 좋아했어요. 귀신 나오는 이야기에도 관심이 많았고요. 동국대 다니면서 불교나 무교를 접할 기회가 많았고요. 이런 요소가 제 소설 속 DNA에 들어온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네요. 그래서 제 소설이 두 발로 힘차게 걷다가 귀신처럼 다리 없이 흐물흐물해지는 경향이 있나 봐요.
작품에서 섞일 수 없는 존재를 자주 형상화하잖아요. 『보광동 안개소년』의 주인공은 얼굴이 안개로 이루어졌고, 이번 소설 『우리 사우나는 JTBC 안 봐요』의 태권 역시 사우나에서 유령 같은 존재인데요. 이런 존재에 천착하신다는 인상도 받았습니다.
의도한 건 아닌데 그렇게 흘러갔네요. 치밀하게 인물과 사건을 설정하고 쓰는 소설가도 있는 반면, 저는 희미하게만 잡아두고 써가는 편인데요. 그럼에도 이렇게 흘러가는 건 무의식 중에 이런 존재에 천착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어요. 사실은, 이런 존재가 지금 우리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도 않은 것 같네요. 우리 모두 어딘가에 속하려 하지만 속하지 못하잖아요. SNS에 친구가 많아도 실제로는 외롭고요, 수많은 인간관계 속에 있으면서도 늘 공허하고.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모습이죠. 역시나 제 소설 속 인물이 특이한 것 같진 않네요.
박생강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하셨는데요. 어릴 때부터 문학소년이었나요?
문학소년이라기보다 글쓰기 담당, 이랬지 않나 싶어요. 제가 시골에서 고등학교를 나왔는데요. 제가 알기로는 저희 고등학교 역사가 70년이 넘었는데 문예창작학과로 진학했던 사람이 저 포함 딱 두 명인 걸로 알고 있어요. 하여튼 독후감, 글짓기 대회 대표, 친구 연애편지 대필, 친구 반성문 대필 등등 이것저것 많이 썼던 것 같습니다. 돌이켜보니 뭔가 문학소년보다는 ‘문학셔틀’에 가까운 삶이었던 것 같네요. 또 하나 글은 많이 썼는데 그때도 악필이었고 지금도 비슷하다는 사실이 좀 서글픕니다.
영향을 준 작가, 작품이 있다면요?
좋아하는 작가들은 국내외를 통틀어 어마어마하게 많고, 또 누군가를 딱 손꼽기도 애매합니다. 좋은 작가들을, 각기 다른 이유로 좋아하니까요. 저의 등단시기와 맞물려서 생각하면 2005년 그 시기에는 살만 루슈디를 즐겨 읽었어요. 『한밤의 아이들』, 『무어의 마지막 한숨 』처럼 신화와 역사가 섞이고, 텍스트가 살아 있는 미궁처럼 꿈틀거리며 빠져들게 만드는 이런 소설을 언젠가 써봐야겠다 생각했어요.
『나는 빼빼로가 두려워』를 쓸 때는, 미하일 불가코프의 『거장과 마르가리타』를 재밌게 읽었어요. 소비에트의 독재를 이렇게 재밌게 깔 수 있다니! 블랙 유머와 판타지, 역사와 종교에 대한 사유 등 매력적인 디테일이 넘쳤죠. 물론 작가 개인의 삶은 참으로 불행했지만요. 아무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텐데, 저는 『나는 빼빼로가 두려워』를 『거장과 마르가리타』의 귀엽고 미니멀리즘적인 오마주로 쓴 측면이 있어요. 역시나 저 말고는 아무도 눈치 못 챘으리라 생각합니다 (웃음)
블랙 유머라고 하셨는데, 『내가 없는 세월』에서는 다소 약했지만 그 외 대부분 작품에서 작가님의 개그 욕심을 느꼈습니다. 실제로 작가님은 어떤 사람인가요?
내성적인데, 소심하지 않은 것 같아요. 막상 사람을 만나면 두려워하진 않는데, 만남을 귀찮아하는 편이라고 할까요. 그리고 글을 쓰는 사람이다 보니 말장난에 대한 욕망이 있어요. 비틀기에서 오는 재미? 혹은 되게 슬픈 이야기를 우스꽝스럽게 쓰거나 엄청나게 천박한 이야기를 우아하게 쓰고 싶은 욕망이 늘 있죠. 트릭스터라는 신화적 존재가 있잖아요. 경계선에 있는 광대, 장난꾸러기, 도둑의 신이자 사기꾼의 신인 헤르메스 같은 그런 이미지를 개인적으로 좋아해요. 스스로 경계선 상에 있는 인간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고요. 지킬박사와 하이드 아니고 지킬이 하이드로 변하기 전에 나사가 빠지면서 실실 웃기 시작할 때의 정서가 있는, 그런 사람?
지금까지 주로 현대, 수도권을 배경으로 소설을 쓰셨습니다.
학생일 때 파주에서 서울로 가기 위해서는 한 시간에 한 대 있는 기차를 타야 했어요. 그때는 거의 서울 나올 기회가 없었죠. 대도시를 향한 호기심, 욕망이 있었어요. 대학에 와서 서울을 돌아다니며 신기했던 건 고층빌딩, 이런 화려함이 아니었어요. 드라마틱한 양지와 그늘의 대비였죠. 파주는 작은 동네에요. 가난한 사람도 있고 부자도 있지만 삶의 모습은 비슷하거든요. 서울은 어떤 곳은 화려하지만 어떤 동네는 허름해요. 그리고 그 경계가 빌딩 하나를 두고 나뉘기도 하죠. 그 대도시의 시공간을 넘나드는 입체적인 지형도를 문학적으로 탐구해보고 싶다는 욕망은 늘 있어요.
몇 년 동안 1960년대부터 1980년대 초반까지 범죄, 나이트클럽 문화, 관공서 비리 등등의 텍스트와 사진을 많이 모았어요. 나중에는 이걸 기반으로 장편소설을 써 보려 해요. 단순히 옛날을 향한 향수나 독재정권에 대한 비판 같은 것이 아니라 누구도 관심 기울이지 않던 개인사에 초점을 맞춰 그 시대를 보여줄 수 있는 문학적 방법을 모색해 보고 싶어요. 반짝반짝 빛나다가 바람에 훅 날려가는 반짝이 같은 삶에 대해서 말이죠. 언제 이루어질지는 모르겠어요. 아직은 깜냥이 안 되는 듯해서, 자료만 많이 모으고 있어요.
『나는 빼빼로가 두려워』에는 이런 대목이 있습니다. “중요한 건, 그러니까, 삶이에요. 소설을 쓴다는 건, 그러니까 소설의 문장이란, 우리가 빠르게 스쳐 지나가는 일상의 순간들을 문장이라는 틀로 잡아 기록하는 것이지요(62쪽).” 그렇다면 소설가 박생강의 삶이란 무엇일까요?
너무 어려운데요. 저는 항상 그래왔는데, 앞날을 촘촘하게 계획하고 살지는 않았어요. 지금 이 순간에 충실했어요. 움직이고 싶은 대로 움직였고 즉흥적이고 충동적으로 즐겁게 살려는 면이 있죠. 술과 담배와 액티비티에 취미가 없고 도박은 좋아하지만 재능이 없습니다. 그래서 보통 지적 탐구나, 여행, 삶의 방식 바꾸기 뭐 이런 쪽으로 흘러간 것 같고요. 결과적으로 잘됐든 안됐든 안 한 거보단 낫다고 생각해요. 그러다 보니 의외로 생각지도 않은 기회를 얻었던 적들도 있었고요.
구상 중인 다음 작품은요?
처음 등단한 후에 10개 정도 쓰고 싶은 소설의 제목을 뽑아본 적이 있네요. 그런데 그 10개와 상관된 소설은 한 번도 쓴 적이 없어요. 돌이켜 보니 당시 저의 상황이나 제가 꽂혀 있던 이미지나 사건들과 연관된 걸 썼어요. 지금은 형사를 만나며 사기와 살인 사건을 들으니까 이런 이야기가 나올 것 같은데요. 추리소설은 아닐 듯해요. 추리소설을 쓰기에 저는 범부 이하의 논리력을 갖춘 사람이라서요. 사실 범죄에는 피의자와 피해자 말고 참고인 등 사건과 흐릿하게 이어져 있는 사람들이 있는데요. 그들을 소재로 흑백의 스케치 같은 단편을 써 보고 싶어요. 그리고 독자들이 웃으면서 읽을 수 있는 독특하고 컬러풀한 콩트집도 한 번 써보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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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우나는 JTBC 안 봐요박생강 (박진규) 저 | 나무옆의자
대한민국 1퍼센트 남자들이 벌거벗고 있는 사우나, 거기서 사우나 매니저로 일하는 소설가. 상류층 세계의 ‘구멍’을 들여다보는 우리 시대의 속 깊은 풍속도
손민규(인문 PD)
티끌 모아 태산.
kenziner
2017.09.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