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 죽어도 이상할 것이 없다.”
“그렇다면 나는 오늘 뭘 해야 하지?”
인생은 지극히 평범. 가볍게 나부끼는 듯해도 어느 날 문득 일상에 상상하지도 못했던 균열이 찾아온다. 주로 가장 큰 충격은 이별에서 온다. 가까운 사람이든 먼 사람이든…… 그리고 언젠가는 피할 수 없는 이별을 우리는 모두 앞두고 있다. 그것은 누구나 공평하게 맞이하게 되는 죽음이다. 책은 내가 죽음을 걱정하게 하고, 그보다 더 삶을 걱정하게 만들었다.
지난해 『만약은 없다』 이후 거의 1년 만에 같은 작가가 쓴 『지독한 하루』를 또다시 세상으로 내보냈다. 작가인 남궁인은 응급의학과 의사다. 생사가 거짓말처럼 갈리는 곳에서 매일같이 죽음과 삶의 우연성과 필연성을 목격하는 사람이다. 두 책은 그런 극적인 현장의 기록이다.
지난해는 나에게도 쉬운 한 해가 아니었는데 『만약은 없다』는 내 인생의 각도를 '약간' 틀어놓은 사건 중 하나였다. 편집을 마친 날은 일요일이었다. 마지막까지 편집을 마치고 나는 한자리에 가만히 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때 이유도 없이 혼자 춘천까지 운전해서 달려갔다가, 다시 돌아왔다. 응급실의 하루하루, 죽음의 단면을 엿본 후로 뭔가 인생을 다시 보게 됐다고나 할까.
그래서 지금 살아 있는 순간이 더 소중해졌다. 타인을 섣불리 판단하는 일을 좀 관두게 됐고 인생을 더 사랑하게 됐고 살아 있는 동안 할 수 있는 좋은 일이 있다면 지금 당장 힘껏 해야만 한다는 걸 깨닫게 됐고 무엇보다 그걸 실천하게 됐다.
『지독한 하루』도 그 연장선상에 있다. 이 책에서도 글 쓰는 의사 남궁인은 여전히 뛰어다닌다. 화상 환자들, 죽음을 향해 가는 사람들, 그들을 현실세계로 소환하려고 벌이는 온갖 몸부림. 소방관의 희생, 죄 없는 아이들이 당한 학대, 악마 같은 인간들, 그럼에도 천사 같은 사람들과 이들의 경이로운 인생. 여기 나열된 모든 죽음은 너무도 짧지만 감당할 수 없이 놀라운 우리의 인생을 위한 것이라 감히 생각해본다. 죽음에 관한 그의 책은 사실 삶을 위한 처방전이다.
구민정(문학동네 편집자)
지속가능한 합리적 로맨티스트. 존경하는 사람은 수영 잘하는 사람과 가구 조립 잘하는 사람. 좋아하는 것은 한여름의 캐롤, 한겨울의 보사노바. 일요일 해질 무렵엔 요란하고 구색이 안 맞는 감자탕집 간판이 즐비한 해질녘 국도를 덜덜거리는 차로 달리는 것이 취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