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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쁘고 기분 좋은 책을 만들어보십시다

『힘 빼기의 기술』 편집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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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침을 튀기며 소개해주는(실제로는 문장이었지만) 이야기들에는 사람을 느긋하게 풀어놓는 매력이 있었다. 마음을 편안하게 하지만 엉덩이를 들썩거리게 하는 글. 처음부터 끝까지 그녀는 참 맛깔스러운 변사로서 나의 눈과 귀를 붙잡아두었다. (2017.0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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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8월의 어느 날. 김하나 작가와 새 책을 같이 만들어보자는 이야기를 얼추 마무리 지은 날의 일이다. 기억하시는지? 2016년의 여름은 참으로 더웠다. 그해 하상욱 시인의 표현을 빌자면 ‘그래도 추운 것보다는 더운 게 낫지라는 말을 다시는 하지 않겠다’라는 맹세를 할 정도의 더위였다. 그런데 그날은 달랐다. 출구 없는 사우나 같았던 한여름의 폭염이 걷히고 아이스커피에 떠 있는 살얼음처럼 기분 좋은 서늘함이 공기 사이사이에 박혀 있는 듯했다. 점심을 먹고 회사 주위를 한 바퀴 도는데 살짝 건조한 이른 가을의 바람이 펑퍼짐한 여름옷 사이를 드나들었다. 그날 오후, 김하나 작가는 이메일로 앞으로의 일정에 대해 이야기하며 마지막으로 이렇게 덧붙였다.

 

‘모두가 날씨 이야기를 할 만한 날입니다. 멋진 바람 즐기시길.’

 

나만을 위한 그 카피에 빠져 한동안 멍하니 있었다. 그 문장에는 누가 들어도 잠시 숨을 멈출 만한 멋이 있었다. 이런 글이 바로 카피구나. 그리고 메일을 닫자마자 열어본 N 포털사이트에는 ‘날씨’가 실시간 검색어 6위에 올라 있었다. 정말 모두가 날씨 이야기를 할 만한 날이었다. 나는 아직도 그날의 공기를 생생히 기억한다. 그리고 이 책이 나올 때가 되니 당시의 계절이 다시 찾아왔다.

 

우리는 이메일과 메신저를 통해 작업 틈틈이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날의 주제가 무엇이었든, 그녀는 이야기 끝에 늘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예쁘고 기분 좋은 책을 만들어보십시다.”

 

과연 그 말처럼 내 앞에 떨어진 김하나 작가의 글들은 늘 기분이 좋았다. 유쾌한 이야기도, 감동을 주는 글도, 슬픈 이야기도 있었지만 그 글들은 무엇으로도 대체 불가능한 새로운 맛과 멋이 있었다. 온도도 느낌도 제각각이지만 늘 우리를 기분 좋게 하는 포인트가 있는 사계처럼 말이다.

이전 회사에서 작업한 에쿠니 가오리의 에세이 중 이런 글이 있었다.

 

“행복은 충전식이다. 좋은 음악을 듣거나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 행복을 충전할 수 있다.”

 

(주당인 작가처럼 나 역시 맥주로 녹아가는 뇌를 가진 탓에 내가 편집한 책이지만 정확히 뭐라고 적혀 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그동안 나는 힘든 일을 겪을 때마다 에쿠니 가오리의 말을 떠올리며 좋은 음악을 듣고, 맛있는 음식을 먹고, 재미있는 영화를 보며 행복을 충전해왔다. 그리고 충전된 행복을 무기 삼아 코앞에 다가온 두려운 일들을 찬찬히 물리쳐냈다. 하지만 이 책을 작업하면서 나는 행복을 충전하기 위해 애써 무엇인가를 하지 않아도 되었다. 그녀가 써놓은 기분 좋은 문장들을 그저 따라가는 것만으로도 행복은 쉽게 충전되었다.

 

그녀가 본문에서 잭 존슨의 노래가 좋다고 하면 그의 음악을 찾아 듣고, 생텍쥐페리의 책이 재미있다 하면 회사 서가에서 그 책을 꺼내 읽으며 작업했다. 사람들의 맞춤법 오류를 지적하는 ‘나의 국어 경찰 아버지’ 이야기를 읽을 때는 깔깔거리며 웃다가도 내가 이 책에 무슨 실수라도 하면 어쩌나 싶어 식은땀을 흘렸고, 실연의 손익분기점에 대해 들을 때는 실연이 내게 가져다 준 행운에 대해 진지하게 고찰했다. 아르헨티나에서 본 축구 경기에 대해 들을 때는 우와아아아아 축구가 이런 것이었나 싶었고, 이구아수 폭포와 악마의 목구멍에 대해 이야기할 때는 대출을 갚아가고 있는 이 마당에 나도 여행이나 떠나볼까 하는 강한 유혹에 휩싸였다.

 

그녀가 침을 튀기며 소개해주는(실제로는 문장이었지만) 이야기들에는 사람을 느긋하게 풀어놓는 매력이 있었다. 마음을 편안하게 하지만 엉덩이를 들썩거리게 하는 글. 처음부터 끝까지 그녀는 참 맛깔스러운 변사로서 나의 눈과 귀를 붙잡아두었다. 그 언어의 마법에 빠져 허우적대다가 최종교에 와서야 오타를 잡아낸 것은 지금 생각해도 식은땀 흐르는 기억이다. (오류를 찾아내려 눈에 불을 켜고 있는 에디터를 교란시킨 글발이라니, 정말 놀라웠다.) 여튼, 『힘 빼기의 기술』을 만들며 담당 에디터의 행복은 자연스레 충전되었다.

 

이 책을 마무리하고 보니 다시 한여름이 찾아왔다. 그녀를 처음 만난 계절이다. 하상욱 시인의 말처럼 ‘그래도 추운 것보다는 더운 게 낫지라는 말을 다시는 하지 않겠다’라고 말할 순간이 또 오겠지. 나도 작년에 저렇게 맹세했으니. 하지만 지금 당장은, 여름은 내게 참 좋은 계절이다. 멋진 사람을 만나고 멋진 책을 만들어낸 계절이므로.

 

이제 이 책을 마무리했으니 나는 또 다른 이야기를 만들어가야 한다. 길었던 한 계절이 저무는 느낌이다. 다음 책은 어떤 느낌일지 모르겠다. 하지만 나를 기다리고 있는 다음 작가님에게 이렇게 제안할 수 있을 테지. 예쁘고 기분 좋은 책을 만들어보십시다. 아, 언제 들어도 좋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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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김은경(시공사 편집자)

시공사 비소설팀 중 에세이파트에서 일하고 있다. 모 작가님에게서 “은경 씨는 다 좋은데 졸 쪼아서 문제”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고 말하자 함께 낮술을 마시던 김하나 작가님이 이에 영감을 받아 ‘졸쪼’라는 별명을 지어주었다. 이니셜은 무려 J.Z. 책을 만드는 작업 그 자체보다는 저자들과 만나서 수다 떠는 것을 더 좋아한다. 발랄한 염세주의자였으나 유쾌하고 멋진 저자들 덕에 보들보들해지고 있는 중.

힘 빼기의 기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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