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_ELENA SEIBERT
<월간 채널예스> 8월호에 공개한 ‘하루키스트의 커밍아웃’. 모델 김진경, 가수 알리, 셰프 겸 작가 박준우, 가수 재주소년, 소설가 윤이형, 밤의서점 김미정 대표, 작가 김하나, 북칼럼니스트 이다혜 등 8인이 ‘내가 사랑하는 하루키의 책’을 공개했다.
알리(가수)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무라카미 하루키 저 / 임홍빈 역 | 문학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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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하루키가 쓴 재즈 관련 에세이를 읽으며 ‘하루키식 무드’에 빠지는 것도 사랑하지만 이건 여유가 있을 때에나 가능한 일이기도 하다. 복잡한 마음을 부여잡고 한참을 달리다 지친 사람에게 필요한 이야긴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속에 담겨있다. 실패를 반복하더라도 달려야 하는 이유, 부지런히 끈임없이 틈틈히 단련해야 하는 이유가. 내게 이 책은 언제나 도움닫기 뛰기와 같다.
윤이형(소설가)
『노르웨이의 숲』(무라카미 하루키 저 / 양억관 역 | 민음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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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때 열여덟 살이었고, 이 책을 읽고 나서 곧바로 감염되어버렸다. 하루키는 우리에게 밈(meme)이었고 제일 멋진 티셔츠였고 들어가 나오고 싶지 않은 아지트였다. 우리는 나오코처럼 무거워질 수도, 미도리처럼 가벼워질 수도 없었다. 나가사와 선배가 얼마나 몹쓸 놈인지, 와타나베가 세상 고뇌를 다 짊어진 것처럼 얼마나 쓸데없이 고독한 척하는 녀석인지도 다 알고 있었지만 기꺼이 그 공기에 우리 자신을 내맡겼다. 누군가가 그리울 때면 그냥 누가 ‘생각난다’고 하지 않고 꼭 ‘연결되어 있어’라고 말했다. 그 진지했던 열광은 아마 내가 싸울 대상을 가져보지 못한 세대였기 때문이 아닐까. 우린 독재와도 싸워보지 못했고, 민주화운동이 무엇인지도 알지 못했다. 자본주의는 적이 아니라 보드라운 둥지였고, 절대적 가난도 혐오와의 싸움도 아직 닥쳐오기 전이었다. 싸울 대상이 우리 자신밖에 없다는 걸 창피해서 어디에도 말할 수가 없던, 울고 싶을 정도로 마냥 사소하기만 했던 우리를 하루키는 소외시키지 않았다. ‘너는 견디고 있어. 그것도 잘 견디고 있어. 그것만으로도 너는 대단한 거야’라고 말해주는 유일한 친구가 그였다. 그때의 고마움을, 나는 잊을 수가 없다.
재주소년(가수)
『해변의 카프카』(무라카미 하루키 저 / 김춘미 역 | 문학사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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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실의 시대』라면 스무살 무렵, 나역시 먼 곳에서의 대학생활을 시작하며 내 생활과 소설의 싱크로율에 신기해하며 단숨에 읽어나간 기억이 있다. 그런 '상실의 시대' 이후로 두 번째 손에 쥐었던 하루키 소설이 『해변의 카프카』였는데 처음엔 갈수록 무슨 내용인가 싶어서 읽는데 진도가 잘 빠지지 않은게 사실이다. 그런데 책으로부터 멀어진 지금, 하루키의 책들 중 한 권을 고르라니 이상하게도 『해변의 카프카』가 떠오르는 이유는 무엇일까? 어디론가 사라지고 싶어하는 주인공, 책 속 에서만 만날 수 있는 그 독특한 세계에 다시 한번 가보고 싶기 때문인 것 같다. 그리고 또 하나, 나이가 들면서 자꾸 생각나는 장면이 있는데 후반부 아주 묘한 분위기 속에 이루어진 장엄한 마사지, 그걸 꼭 한번 받아보고 싶다.
박준우(셰프 겸 작가)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무라카미 하루키 저 / 윤성원 역 | 문학사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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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키는 직업으로서의 소설가에서 “나는 삼십오 년 동안 계속해서 소설을 써왔지만 소설이 써지지 않는 슬럼프 기간을 한 번도 경험하지 않았습니다. 실은 매우 단순한 얘기인데, 내 경우에는 소설을 쓰고 싶지 않을 때, 혹은 쓰고 싶은 마음이 퐁퐁 샘솟지 않을 때는 전혀 글을 쓰지 않기 때문입니다. “고 이야기했다. 자랑이 아니라는 식으로 문장을 마치기는 하였지만, 작가의 꿈을 꾸는 사람들이라면 이런 모습을 엄청나게 부러워할 것이다. 나 또한 글로 먹고 사는 삶을 꿈꿔왔으나, 현실은 꿈꾸는 것만큼 쉽지 않다. 먹고 사는 일에 급급하다 보니 깊은 글을 쓰는 것을 힘겹게 느끼기도 한다. 글이 힘들어질 때, 나는 그의 첫 소설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를 다시 읽는다. 그의 첫 소설인 이 책이 출판되고, “그게 소설이라면 나도 그 정도는 쓸 수 있다”라는 주변 사람들의 말에, “그런 말을 한 사람 어느 누구도 소설을 쓰지 않았다. 아마 써야 할 필연성이 없었던 것이리”라 이야기했다고 한다. ‘써야 할 필연성’의 부재에 머리가 지끈거리는 사람들이라면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를 다시 읽어 보는 것도 좋을 듯 하다.
김미정(밤의서점 대표)
『노르웨이의 숲』(무라카미 하루키 저 / 양억관 역 | 민음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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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타나베는 내가 책으로 만난 첫 개인주의자였다. 혼자 음악을 듣고 밥을 먹고 책을 읽으며 ‘조용하고 평화롭고 고독한 일요일’을 반복하는 주인공. 시종일관 페이스를 유지하며 자기 앞에 닥친 사건을 담담하게 마주하되, 고여 있지 않고 조금씩 틀을 깨나가는 인물. 그저 날마다 생생하게 살아 있음을 실감하는 게 목표였던 시절, 와타나베와 미도리가 세계를 만나는 방식을 모방하며 커왔음을 고백해야겠다. 미도리의 아버지 병실에서 오이를 베어 먹는 장면은 지금도 선명하게 떠오른다. 오이의 청량한 아삭거림만으로 죽음이 삶과 맞닿아 있음을 그려낼 수 있는 작가는 흔치 않을 것이다. 그때 일본어로 오이가 ‘큐리’인 걸 배웠다.
김하나(작가)
『오자와 세이지씨와 음악을 이야기 하다』 (무라카미 하루키, 오자와 세이지 공저 / 권영주 역 | 비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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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상적인 말을 곧잘 하는 내 친구이자 다독가 이계언이 어느 날 이렇게 말했다. “여름날 저녁 무렵이면 책장 저 위쪽에 꽂힌 하루키 책들 중에서 아무거나 꺼내서 중간부터 펼쳐 몇 문장을 읽어 나가곤 해. 그러면 꽤나 기분이 좋지. 음악을 듣는 것처럼.” 나는 하루키의 글이 지닌 비밀에 대해 이보다 정확히 말한 문장을 접한 적이 없다. 여러 권짜리 소설이든, <앙앙>에 연재한 시시껄렁한 에세이든 하루키의 글을 읽는 데에는 독특한 즐거움이, 어쨌거나 확실하게 있다. 이는 어느 번역가를 거치더라도 독자에게 전해오는 하루키 특유의 리듬에 기인한다. “전 글 쓰는 법을 음악에서 배웠습니다. 거기서 뭐가 제일 중요하냐 하면 리듬이죠. 글에 리듬이 없으면 그런 거 아무도 안 읽습니다. 읽는 이를 앞으로, 앞으로 보내는 내재적 율동감이랄지…… 기계 설명서는 비교적 읽기 괴롭잖습니까? 그게 리듬이 없는 글의 한 전형입니다.” 『오자와 세이지씨와 음악을 이야기 하다』 에 나오는 말이다. ‘음악’을 주제로 소설가와 지휘자가 주고받는 ‘언어’를 읽어 나가는 것도 꽤나 기분이 좋다.
김진경(모델)
『노르웨의 숲』(무라카미 하루키 저 / 양억관 역 | 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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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키의 노르웨이 숲은 나에게 문학을 알려준 고마운 입문서다. 전에는 소설, 문학작품 보다는 에세이나 여행서적을 좋아했는데 이 책은 첫 페이지부터 어렵지 않게 술술 읽히더니 뭐에 홀린 것처럼 그 두꺼운 책을 아주 빠르게 다 읽어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그 후, 하루키의 작품이라면 빠지지 않고 다 찾아 읽는 하루키의 팬이 되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글에는 그만의 섬세한 감성이 녹아 있어 매력에서 헤어나오기 어렵다.
이다혜(북칼럼니스트)
『해변의 카프카』(무라카미 하루키 저 / 김춘미 역 | 문학사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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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변의 카프카 놀이’라는 게 있었다. 2008년 여름의 일이었는데, 술자리에 모인 예닐곱의 사람 중 넷이 『해변의 카프카』를 막 읽기를 마친 참이었다. 그리고 모두 『해변의 카프카』에 등장하는 사람에 빙의해서 대화를 시작했다. 드물게도 다 같은 책을 완독한 데다가, 영화도 아니고 글로 읽은 문장들과 단어, 말투를 다들 자기 것처럼 구사할 수 있었다. 모두가 지나온 15살의 시간을, 가장 간지럽고 은밀한 허영을, 『해변의 카프카』에서 ‘다시’ 만끽할 수 있었다. 1년에 책 한 권 읽는 사람도 백 권 읽는 사람도 하루키를 읽는구나, 그날 새삼 감탄했다. 좋아하든 안 좋아하든, 어느 정도의 하루키는 다들 읽고 있다.
강윤희
조영주
2017.08.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