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0월 1일, 저자들에게 편지를 썼다. 책에 대한 회의를 가까스로 이겨낸 편집자의 소회로 시작하는 글이었다.
“책을 만드는 ‘업業’을 ‘명命’으로 받들던 시절이 있었어요. 책을 만드는 것이나 소개하는 것에 필사적이던 시절, 그러나 언제부턴가 '책이 과연 사람을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인가'란 회의에 직면하였고, 그리하여 언제부턴가 책이란 ‘명’이 하나의 ‘업’으로 전락하기 시작했던 것 같아요.”
흔히 책 속에 길이 있다고 말한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 책 좀 읽는다는 이들, 특히 책을 쓰고 만들고 소개하던 이들의 민낯을 제대로 목격한 적이 있는가. ‘책을 만드는 업’에 과도한 의미를 부여했던 편집자가, 어느샌가 책으로부터 배신당하고 있던 것을 발견했다. 그 발견은 곧 자책과 각성으로 이어졌다. 책이 나를 배신한 게 아니라, 우리가, 내가 책을 배신하고 있다는 것.
“그런데 여기에서 일종의 비약이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밥벌이로 전락한 책은, 그제서야 유의미한 물질의 가치로 발화한다는 것. 하나의 책에 그로 인해 희생당한 나무들의 생명값을 정확히 계산하여 묻게 되고, 하나의 책이 내가 가장 사랑하는 이들과의 삶에 대한 재화의 근원으로서 합당한지를 고민하게 하고, 하나의 책이 굳센 확신이 아니라 숱한 회의懷疑에서 비롯되어야 한다는 것을 배우는 거지요. 그제서야 책은 누군가의 사연이 되고, 누군가의 인생으로 비약할 수 있을 거라 신앙하게 됩니다.”
책의 의미를 묻는 후배들에겐 밥벌이로서의 각성을 요청한다. 책을 쓰고 싶다는 이들을 만나면 그것이 꼭 책이어야 하는지 물어야 한다. ‘묻는다’가 아니라 ‘물어야 한다’라고 쓴 것은 차마 그 얘길 전하지 못할 때가 많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편집자 스스로에게도 물어야 한다. 그 책을 만들어낸 만큼, 버리지 않고 다 팔 수 있는가. 그걸로 나는 월급 값을 할 수 있는가.
그것은 단순히 책을 팔아 돈을 벌겠다는 심산으로 그치지 않는다. 지금도 숱하게 명멸하는 수많은 책들의 세상에서, 이 책은 어떤 지점에서 재화의 가치를 획득할 수 있는가를 묻는 것이다. 사람의 생존에 필요한 것은 두 가지다. 밥벌이와 생의 의미. 책의 생존도 마찬가지다. 나는 감히, 이 질문을 저자들에게 던졌다.
“당신들의 삶이 하나의 책이 될지 생각해보았어요. 이런 경우, 비관과 회의와 통념의 소견으로 시작하곤 하죠. 최초의 희망이 그 비관과 회의와 통념을 이겨낼 수 있는지를 거듭 묻고 숙고하는 겁니다. 한 달간 고민했고 10월이 시작하는 오늘, 당신들께 편지를 써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우리, 함께 책을 만들면 어떨까요? 당신들의 책. 저의 비관과 회의는 이겨냈는데, 당신들의 생각은 어떤지 궁금합니다.”
비관과 회의와 통념을 이겨낼 수 있겠다는 편집자의 판단을 확증하는 것은 이제 저자들의 몫이다. 편집자는 고작 한 달을 숙고했지만, 이 책의 저자들은 1년 5개월을 비관과 회의와 통념에 맞서 분투해야 했다. 마지막 한 달 동안 저자들은 편집자 옆자리에서 글을 쓰기도 하고 출판사 인근에 숙소를 잡아 밤을 새워 글을 완성했다. 독한 자들이었다. 이들이라면 패배하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을 들었다.
“하지만 사무엘 베케트의 말을 따라 그저 다시 시도하고 다시 실패하기를 거듭할 뿐이다. 다시 더 낫게 실패하는 한, 비록 승리하지는 못할지언정 패배하지 않을 것이다.”(본문 306쪽)
정식 출간을 앞두고 특별판을 만들어 소수의 독자들을 먼저 모셨다. 그들은 열심히 읽고 여러 의견을 주었다. 최초의 독자들 중 한 명은 이런 소감을 남겼다.
“이 책을 읽고서야 비로소 ‘책은 모름지기 누군가의 사연이 되어야 한다’는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2015년 10월 1일 저자들에 덧대어 편집자가 소망했던 바가, 2017년 3월에 정확히 성취되었다. 편집자는 책의 그림을 그리고, 저자는 책을 쓰고, 독자는 책을 읽는다. 책의 운명은 독자들의 몫이다. 부디 이 책이 “누군가의 사연이 되고, 누군가의 인생으로 비약할 수 있기를”, 그리하여 우리 모두 패배하지 않기를.
김진형(편집자)
편집자.
jijiopop
2017.0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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