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1월, 한 여고생이 세계적인 가수 아델의 노래 ‘Hello’를 커버한 영상이 화제가 됐다. 풋풋한 소녀가 교복을 입고 열창을 하는 이 영상은 당시 SNS 채널 ‘일반인의 소름 돋는 라이브(이하 일소라)’ 유튜브에 공개된 지 일주일 만에 1,000만 뷰를 돌파하는 폭발적인 조회 수를 기록했다. 해외에서도 이목을 끈 이 영상의 주인공 이예진 양은 급기야 미국 NBC의 유명 토크쇼 <엘렌 드제너러스 쇼>의 초대를 받았다. 제2의 싸이에 목말랐던 한국 언론은 이 상황을 앞다퉈 보도하기 시작했다. 이예진 양은 ‘여고생 아델’이란 수식어로 졸지에 유명인이 됐다.
이는 ‘뉴미디어의 폭발’을 상징적으로 보여준 사건이었다. 과거에는 가수가 음악을 알리기 위해 방송과 언론의 힘을 빌리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하지만 뉴미디어의 등장으로 판도가 바뀌기 시작해서, 이제 사람들은 TV보다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는 데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 덕분에 뮤지션들은 홍보를 위해 공중파 방송의 높은 문턱을 넘으려 애쓰지 않아도 됐다. 짤막한 모바일용 콘텐츠를 만들어서 페이스북에 띄우는 것만으로 홍보가 가능한 시대가 왔기 때문이다. 먹방, 쿡방 등의 스낵 콘텐츠가 강세를 보였던 SNS 채널은 2016년 들어 점차 음악을 홍보하는 플랫폼으로 정착해갔다.
아델 ‘hello' 커버 영상으로 미국 NBC의 유명 토크쇼 <엘렌 드제너러스 쇼>에 초대를 받은 여고생 이예진 양.
모바일 콘텐츠 기반의 뉴미디어의 폭발
2015년은 국내에 모바일 콘텐츠 기반의 뉴미디어가 폭발한 원년이었고, 2016년은 그 영향력이 공고해진 한 해였다. 기존에도 아프리카TV 등의 뉴미디어는 존재해왔다. 2015년의 변화라면, 스마트폰 세대를 겨냥한 모바일 콘텐츠가 뉴미디어의 중심에 서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피키캐스트, 딩고뮤직, 네이버 V앱 등 모바일을 타깃으로 한 플랫폼들은 대중의 인기를 얻으며 이러한 트렌드에 불을 지폈다. 이들은 아이돌가수부터 인디뮤지션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아티스트의 콘텐츠를 자체 제작하면서 음악을 선보이는 새로운 플랫폼으로 각광받았다. 가요 기획사들은 이 플랫폼들을 자신들의 홍보 수단으로 삼기 위해 부지런히 뛰기 시작했다.
이러한 뉴미디어들은 2016년의 가요 트렌드가 바뀌는 데 적잖은 영향을 끼쳤다. 그 영향력에 대해 살펴보려면 앞에서 언급한 세 개의 모바일 친화적인 뉴미디어 ‘피키캐스트’ ‘딩고뮤직’ ‘네이버 V앱’에 대해 인지할 필요가 있다. 피키캐스트는 자체 플랫폼을 통해 다양한 영상, 움짤, 카드 뉴스 등을 선보이며 뉴미디어 콘텐츠의 트렌드를 선도하고 있다. 앱 다운로드 1,600만 건, 일간 사용자 수 120만 명 등 콘텐츠 앱으로는 최대 수요를 지닌 피키캐스트는 뮤지션의 라이브를 자체 제작하는 ‘피키라이브’, 음악 큐레이션 ‘꿀DJ’ 및 영상 인터뷰 등의 콘텐츠를 통해 음악을 소개했다.
딩고뮤직은 종합 모바일 방송국 ‘메이크어스’의 음악 채널 브랜드 명칭이다. 메이크어스는 자체 플랫폼이 아닌 다양한 페이스북 페이지 및 유튜브를 통해 자체 제작한 영상 콘텐츠를 전파한다. 메이크어스가 가진 페이스북 페이지의 월 평균 조회 수는 3억 건 정도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딩고뮤직에서는 ‘세로라이브’ ‘이슬라이브’ ‘노래방어택’ 등의 음악을 활용한 영상 콘텐츠들을 자체 제작하고 있다.
강력한 자체 플랫폼을 가진 피키캐스트와 페이스북 페이지에서 강세를 보인 메이크어스가 뉴미디어의 강자로 떠오르자, 여기에 위기감을 느낀 네이버는 2015년 9월 모바일을 타깃으로 한 생방송 플랫폼 V앱을 론칭했다. V앱은 네이버가 가지고 있는 네트워크를 이용해 급성장하게 된다. 이후 이 세 개의 뉴미디어가 서로 경쟁하듯 다양한 음악 콘텐츠를 생산하면서 모바일에서 뮤지션을 만나는 기회 역시 빠른 속도로 늘어났다.
뉴미디어의 수혜층은 비아이돌 계열의 가수들
가수들은 자신들의 홍보에 이 뉴미디어들을 활용하기 시작했다. 컴백 시기에 맞춰 피키캐스트, 딩고뮤직, V앱 등을 통해 자신들의 콘텐츠를 순차적으로 공개한 것이다. 이것이 음원차트 및 네이버 실시간검색(이하 실검) 등에 영향을 주면서 뉴미디어의 영향력이 점차 확대되었고, 이로써 방송 출연이 여의치 않은 뮤지션들은 뉴미디어로 발길을 돌리게 된다. 동방신기 출신이자 JYJ의 멤버인 김준수는 음악방송 출연이 막혀 있는 대표적인 가수로 잘 알려져 있다. 김준수는 EP <꼭 어제>의 타이틀곡 ‘꼭 어제’의 라이브를 피키캐스트의 라이브 채널 ‘피키라이브’를 통해 최초로 공개하는 파격적인 프로모션을 감행했다. 이것은 김준수의 라이브 영상에 목말라 있던 팬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얻었고, 라이브 공개 당시 피키캐스트는 네이버 실검 1위에 오르기도 했다.
피키캐스트의 라이브 채널 ‘피키라이브’를 통해 최초로 공개한 파격적인 프로모션을 감행한 김준수의 EP <꼭 어제>
2016년 첫 멜론 차트 1위의 주인공은 무명에 가까웠던 가수 김나영이었다. 김나영의 노래 ‘어땠을까’는 2015년 12월 30일 정오에 음원이 공개돼 차트에 30위권으로 진입한 뒤, 이후 순위가 점점 상승해 31일 새벽 1시에는 1위에 올랐다. 유명하지 않은 가수의 깜짝 1위는 가요계를 혼란에 빠트렸다. <슈퍼스타K5> 출신인 김나영은 버스킹을 중심으로 활동해왔는데, 앨범도 발매하지 않은 신인에 가까운 인물이 멜론 차트 1위에 오르자 일각에서는 음원 사재기에 대한 의혹을 내비치기도 했다. 하지만 1위의 비결은 딩고뮤직의 ‘세로라이브’ 덕분인 것으로 알려졌다. 30일 오후 7시에 페이스북 페이지에 공개된 ‘어땠을까’ 세로라이브는 31일에 100만 뷰, 3만 5,000건의 ‘좋아요’, 2만 건의 공유를 기록하면서 노래가 알려지는 데 크게 일조했다.
멜론 차트 1위로 가요계를 발칵 뒤집어 놓은 김나영의 ‘어땠을까’
뉴미디어의 수혜를 특히 많이 받은 층은 그동안 방송에서 소외돼왔던 ‘비아이돌’ 계열의 가수들이었다. 2016년에 깜짝 1위를 했던 십센치, 어반자카파, 볼빨간 사춘기, 한동근 등은 모두 뉴미디어를 적절하게 활용한 뮤지션들이다. ‘널 사랑하지 않아’로 1위에 오른 어반자카파는 딩고뮤직을 통해 대대적인 프로모션을 진행했다. 역시 ‘우주를 줄게’로 1위에 오른 볼빨간 사춘기는 피키캐스트를 통해 라이브 콘텐츠를 내보냈다. 역주행의 아이콘이 된 한동근의 ‘이 소설의 끝을 다시 써보려해’는 ‘일소라’를 통해 멜론 차트 90위권에 처음 진입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외에도 피키캐스트, 딩고뮤직에 소개된 인디뮤지션이 멜론 실검 1위에 오르는 일이 빈번히 일어났다. 이러한 움직임은 막강한 팬덤을 지닌 아이돌가수가 아닌 인디 계열의 가수들도 노래만 좋다면 음원차트 1위에 오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유의미한 사건이라 할 수 있다.
권석정
<참여와 혁신> <유니온프레스> <텐아시아> 등에서 기자 생활을 했으며, 피키캐스트 뮤직팀장을 거쳐 현재 로엔엔터테인먼트 콘텐츠제작팀에서 근무 중이다. 월간 <재즈피플>, 대중음악 웹진<100BEAT> 등에 글을 썼고, 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 K-루키즈 등의 오디션 심사위원으로 활동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