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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웃긴 똥 이야기도 있다

『북경 똥장수』 독서감상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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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경 똥장수』라는 책의 존재를 알았을 때 망설이지 않고 샀다. 부제가 ‘어느 중국인 노동자의 일상과 혁명’인 이 책은 두 단어로 요약하면 똥 이야기다. 똥 이야기라니, 안 봐도 재밌을 책인 게 분명했다. ‘똥장수’라는 단어에서 유추할 수 있듯, 똥을 둘러싼 돈이 어떻게 오가고 똥을 짊어진 노동자가 어떻게 살았는지를 분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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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한 형에게 해가 바뀌고 처음 한다는 게 똥 이야기 

똥에 관한 3대 법칙을 이야기하던 상황,
이 글을 쓰기 위해서 부러 심야에 메시지를 건넨 건 아님

 

저 사람이 나와 친한 사이냐 아니냐는 그 사람과 똥 이야기를 진지하게 할 수 있느냐 없느냐로 갈린다. 똥 이야기를 진지하게 할 수 있는 사람이 나와 친한 사람이다. 물론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으며 사람은 다양하니, 절대로 그 누구와 똥 이야기를 나누지 않으려는 사람도 있을 테다. 그 누구와도 변기를 나눠 쓸 수 없겠다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뭐 그런 사람은 논외로 하고, 대체로 우리는 친한 친구나 가족 연인에게 똥 이야기를 부담 없이 건넨다. 반대로 공적인 자리에서는 가능하면 똥 이야기를 피한다. 예로써, 소개팅 자리에서 당신이 싼 오늘의 똥은 검푸른 색인가요 아니면 누르티티한 색인가요라는 질문은 했다고 하자. 당신은 물론, 소개팅을 주선한 당신의 지인 모두 미친 자로 소문 날 것이다.

 

이상하지 않나. 똥이 무슨 죄인가. 우리 모두는 똥을 싼다. 어린 시절에 똥 이야기도 좋아했다. 『누가 내 머리에 똥쌌어?』 『책으로 똥을 닦는 돼지』, 『똥벼락』 등 똥을 소재로 한 그림책은 단골 베스트셀러다. 오죽하면 똥을 검색어로 쳤을 때 예스24에서 검색되는 상품이 620건에 비해 실존주의는 22건에 불과할까. 이는 실존은 존재에 앞서고, 똥은 실존보다 중요하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똥 이야기를 좋아하는 존재는 어린이만이 아니다. 나를 포함한 몇몇 어른들도 그렇다. 똥 이야기를 좋아하는 것인지, 똥 이야기를 기탄없이 나눌 수 있는 관계를 사랑하는 것인지는 때때로 헷갈리기는 하지만, 나 역시 종종 똥 이야기를 즐긴다. 작년 크리스마스를 똥 이야기로 보냈다. 존경하는 스승님과 차디찬 강바람을 맞으면서 우리는 똥 이야기를 나눴다. 유럽에서 말이죠, 제가 똥이 마려운데 여성 친구도 똥이 마려운 겁니다, 그런데 유럽에서는 문을 빨리 닫잖아요, 막 셔터 문이 내려오는 거예요, 화장실은 한 칸이고, 허허… 뭐 대략 이런 이야기를 즐겁게 나눴다. 정작 이야기 결말은 기억나지 않지만 매우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는 인상은 잊혀지지 않는다.

 

‘솔직히 말해서’가 나름대로 책을 이야기하는 코너이니, 책과 억지로 연관시켜 이야기하자면 나는 똥 때문에 책을 더 많이 읽었다. 제목은 자세히 기억나지 않는데, 인도 여행기였다. 지금이야 사람들이 자아를 찾아 아이슬란드로 간다고 하는데, 불과 20년 정도 전만 해도 자아를 찾으려면 인도지, 하는 흐름이 있었다. 저자가 버스에서 갑자기 똥이 마려운데, 똥 쌀 곳을 찾아 뛰다가 엄호물을 미처 발견하지 못하고 버스 승객들 앞에서 똥을 싼 에피소드가 실려 있었다. 그 이야기의 요점은 ‘이성과 위생으로 제단되기 이전 똥 때림은 자연스러운 인간의 활동이었다, 근대인은 얼마나 많은 억압 속에서 그것이 억압인지 모르고 살아가는가, 똥은 자유다!’였던 듯하다. 오, 그렇지, 화폐와 플라스틱 그리고 수세식 변기나 비데는 인간 해방을 도울 수 없어, 똥 만세, 하면서 나는 라즈니쉬와 크리슈나무르티 책을 보이는 대로 읽었다.

 

맥락은 없지만 그래서 『북경 똥장수』라는 책의 존재를 알았을 때 망설이지 않고 샀다. 부제가 ‘어느 중국인 노동자의 일상과 혁명’인 이 책은 두 단어로 요약하면 똥 이야기다. 똥 이야기라니, 안 봐도 재밌을 책인 게 분명했다. ‘똥장수’라는 단어에서 유추할 수 있듯, 똥을 둘러싼 돈이 어떻게 오가고 똥을 짊어진 노동자가 어떻게 살았는지를 분석한다.

 

이 책이 다루는 시대적 배경은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전반까지다. 공간은 중국 베이징이다. 아시아의 대도시가 대부분 그러하듯, 베이징 역시 근대화 과정에서 인구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다만 베이징은 근대 이전에도 이미 많은 인구 때문에 상수 공급과 하수, 분변 처리에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베이징의 인구는 명 중ㆍ후기 이래로 민국 초기까지 대체로 완만한 증가 추세였다. 인구 증가에 의한 베이징의 도시 문제는 20세기 이후에 새롭게 등장했다기보다 명대 중ㆍ후기 이래로 만성적인 문제였다.


인구 100만 명 내외의 대도시에서 상수 공급과 하수 및 분변처리는 도시환경과 도시위생을 위한 핵심적인 도시 인프라였다. 베이징 시민들은 일상생활 가운데 시민들을 괴롭히는 특정 집단을 삼벌三閥 혹은 삼패三覇라고 불렀는데, 분벌糞閥, 수벌水閥, 상벌喪閥 등이 그것이다. 이것은 똥장수, 물장수, 장례업자 등을 경멸하는 표현이었다. (88쪽)

 

구체적으로 삼벌은 어떻게 시민을 괴롭혔을까. 간단하다. 똥이나 주검은 수거하지 않으면 되고, 물은 안 주면 된다. 똥장수는 눈이 오거나 비가 올 때 수고비 명목의 웃돈을 요구하는 일이 비일비재했고, 시민들은 똥이 무서워서 피하나 더러워서 피하지 하는 심정으로 웃돈을 줬다. 아니, 똥 치우는데 돈 주는 건 당연하지 않나 싶지만 당시 상황을 이해한다면 시민들이 억울해 할 만하다.

 

똥이 어떻게 돈으로 만들어지는지를 보자. 예나 지금이나 똥은 훌륭한 비료다. 20세기 전반, 여전히 농경사회였던 베이징에서 똥은 중요한 자원이었다. 똥 산업은 크게 두 가지 축이 지탱했다. 먼저 분창(糞廠), 그러니까 똥 공장이다. 여기서는 똥을 말려서 비료로 만드는 작업이 이루어진다. 똥을 퍼오는 곳은 분도(糞道)다. 처음에는 똥장수들이 임의로 구획을 나누었는데, 점차 소유권 개념이 발전하면서 나중에는 매매가 되기도 했다. 특정 구역의 똥 채취는 누군가의 허락을 받아야만 가능하다는 의미다. 분도를 소유한 사람이 직접 똥장수로 나서는 경우도 있고, 이 구역을 임대하는 경우도 있었는데, 임대 똥장수의 꿈은 돈을 벌어서 자가 소유의 분도를 소유하는 것이었다.

 

똥장수는 똥을 퍼서 분창에 가져다 주고, 분창으로부터 돈을 받았다. 그러니까 시민들 입장에서는 이미 분창으로부터 돈을 받으면서 또 받는다고 하니 분통이 터질 수밖에 없는 노릇. 게다가 일부 똥장수는 돈을 많이 벌었다. 책에서 자주 등장하는 인물인 대분벌 위더순은 베이징 시내 40개 가옥을 소유했고, 토지도 40만 4천 평 가량을 소유할 만큼 부자였다. 돈은 돈대로 벌고, 똥은 똥대로 안 치우는 똥장수들의 존재가 시민들에게는 밉게 보일 수밖에.  

 

실제로는 위더순 같이 돈 잘 버는 사람은 일부였다. 대개는 그렇지 못했다. 수입은 형편 없었고 똥과 함께 일해야 하는 작업 환경 때문에 늘 전염병에 걸릴 위험에 노출될 수밖에 없었다.

 

마오란성의 분창에 소속된 똥장수 장닝이와 류덴즈의 분창에 소속된 똥장수 장홍순 등은 각각 30년, 21년 동안 한 푼의 월급도 받지 못했다. 이런 식으로 똥장수들의 생활은 처참했고, 목숨을 연명하기 위해 똥장수들은 시민들에게 수수료(月錢)나 명절떡값(節錢)을 요구할 수밖에 없었다. 똥장수는 정월 초하루만 쉴 수 있었다. 위더순 등 대분벌은 똥장수들의 등록증을 압수해 두었다가 만약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이 생기면, 헌병이나 경찰 등과 연계해 똥장수들을 둥베이 지역까지 파견을 보내 일을 시켰다. 분벌 류춘장의 분창에 소속된 똥장수들은 그에게 맞지 않아 본 사람이 없을 정도였고, 마오란성은 똥장수 장롄방이 똥차를 몰다가 발목 골절을 당하자 치료를 받게 하기는커녕 꾀병을 부린다며 생매장하기도 했다. 똥장수 쑨쳰은 분벌 취과푸에게서 한 푼의 월급도 받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흠씬 두들겨 맞고서 취과푸의 집에서 사망했다. (263쪽)

 

똥장수의 질병상태를 검토할 수 있는 직접적인 자료가 없기 때문에, 1930~1940년대 베이징의 질병통계 등을 통해 추론해 보면, 일본점령기의 똥장수들은 이질이나 콜레라 등 급성전염병과 결핵, 호흡기질환, 위장병 등 만성질환으로 사망에 이르렀을 가능성이 컸다. 성병이나 결막염 등도 그들을 괴롭히는 주요한 질병이었다. 특히 똥장수들의 대표적인 직업병으로는 기생충병과 하지정맥류 등이 있었다. (229쪽)

 

이렇게 열악한 일이었지만 그들에게는 지켜야 할 일자리였다. 시골에서 도시로 몰려오는 떠돌이 똥장수가 기존 분도를 무시하고 똥을 퍼 갔을 때, 분도주나 분도의 하청 노동자는 목숨을 걸고 싸웠다. 때로는 패싸움으로 번지기도 했다.

 

이러한 이야기는 당시 베이징을 살아보지 못했던 나에게는 생소한 내용이었다. 그밖에도 『북경 똥장수』를 읽으며 새롭게 안 사실은 상당히 많다. 그중에서 가장 인상적인 점 하나만 꼽으라면 똥 이야기 중에서도 안 웃긴 내용도 있다는 사실이다. 전반적으로 똥 이야기는 웃긴데, 똥 때문에 치고 받고 싸우고 때로는 생매장까지 당하는 이야기는 전혀 웃기지 않았다. 그냥 슬펐다. 그리고 노동 현장에서의 부조리한 처우는 여전히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는 점도 마음에 걸렸다. 맥락이 이어지진 않지만, 그래서 앞으로 똥 이야기를 할 때 나는 조금은 숙연한 태도로 똥 이야기를 해야겠다. 땡보(필자의 첫째 아이) 기저귀에 똥 쌌어, 라고 말할 때도 진지한 자세로 기저귀를 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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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ㆍ사진 | 손민규(인문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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