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은 두 가지 상반된 이슈로 시작된 한 해였다. 2023년 공연의 총매출이 처음으로 영화를 뛰어넘으며 뮤지컬은 콘서트와 더불어 공연시장의 양대 산맥으로 확고하게 자리매김을 했으나, 동시에 티켓 가격과 배우 겹치기 출연 이슈로 어느 해보다 시장 내 긴장감은 매우 높았다. 2022년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를 계기로 VIP 티켓 15만 원 선이 무너진 이후 2023년 <오페라의 유령>에서 VIP 기준 19만 원까지 치솟은 티켓 가격은 뮤지컬 관객에게 지속적으로 심리적 저항감을 불러일으켰다. 하지만 이러한 티켓 가격 상향 조정은 2024년 뮤지컬 마케팅과 홍보 방식 변화를 불러온 가장 중요한 이유이기도 했다.
일반 대중에게 더 가까이
뮤지컬은 여타 문화산업 장르에 비해 접근성이 비교적 낮은 장르로 인식 되어왔다. 극장 접근성은 물론이고, 정보 접근성 역시 관객 저변 확대를 가로막는 요소였다. 그러나 올해 한국 뮤지컬은 유튜브 플랫폼을 적극 활용하며 정보 접근성을 높이는 계기를 갖게 되었다. 그 첫 번째는 ‘쇼츠(shorts)’였다. 2015년 최재림이 출연한 오페라 <리타>의 묵찌빠 장면이 우연히 유튜브 쇼츠로 소위 역주행을 하며, 2021년 <시카고>의 최재림 복화술 장면 쇼츠까지 다시 연이어 대중의 큰 관심을 받게 되었다. 최재림 알고리즘으로 연관된 이 쇼츠들은 2024년 <시카고>의 엄청난 흥행으로 이어져 유·무료를 포함한 객석점유율 99%를 기록하는 기폭제가 되었다. 2024년 <웨스턴 스토리> 재연이 쇼츠로 역시 성공한 것처럼, 그동안 쇼츠는 주로 중소극장 뮤지컬의 홍보 방식으로 활용되었으나 이로써 대극장 뮤지컬의 홍보까지 포괄하게 되었다. 처음부터 전략적이지 않았던 점이 오히려 ‘파생되는 흐름’에 대한 구체적인 감각을 익힐 수 있도록 도왔다.
두 번째는 기존 유튜브 채널을 활용하여 홍보의 틀을 깨는 방식이 주목된다. 올해 <킹키부츠> 10주년 기념공연은 유튜브 채널 빵송국의 ‘뮤지컬 스타’를 통해 ‘쥐롤라’를 탄생시키며 작품의 매력을 크게 확산시켰다. 개그맨 곽범과 이창호가 운영하는 개그 채널 빵송국은 롤라를 코미디적으로 과장되게 표현했지만, 그 ‘B급스러움’이 오히려 공연을 부담 없이 수용할 수 있도록 견인했다. 쥐롤라의 인기가 더해질수록 뮤지컬 팬들 사이에서는 ‘정품 롤라’에 대한 논란이 가열되기도 했지만, 결과적으로 <킹키부츠>는 가족 단위 관객까지 포괄하며 유료 객석 점유율 96%, 한 시즌 최다 관객인 14만 명을 돌파하는 기록을 세웠다. 객석과 무대가 하나로 어우러지는 커튼콜을 부활시켜 축제처럼 공연을 마무리 짓는 방식 역시 흥행의 중요한 원인이었다.
이 외에 뮤지컬 팝업스토어의 확산도 빼놓을 수 없다. K-pop을 필두로 콘텐츠 프로모션에 활용되고 있는 팝업스토어는 2024년 뮤지컬 홍보로 점차 확산되며 팬들을 성수동으로 불러 모았다. 체험형으로 꾸려진 <마리 퀴리>, 10주년 기념공연이라는 콘셉트를 차용하여 생일 카페형으로 응용된 <킹키부츠> 그리고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와 <틱틱붐>까지 젊은 관객들의 취향을 공략했다. 또한 뮤지컬로는 최초로 더현대 서울에서 운영된 <알라딘>과 중소극장 대학로 뮤지컬로서 처음으로 시도했던 <랭보>(인터파크 서경스퀘어 스콘 갤러리)까지 프로덕션별로 특징을 보여주었다. 팝업스토어 홍보는 팬들의 자발적인 SNS 포스팅을 통해 일반 관객층의 저변을 넓히려는 궁극적 목적을 내재한 것으로 향후 더 많은 프로덕션에서 활용될 전망이다. 한편, 뮤지컬 팬들을 더욱 결집시키는 프로모션도 있었다. <어쩌면 해피엔딩>의 CJ ENM은 팬덤 플랫폼인 비스테이지에 ‘서울 메트로폴리탄 헬퍼봇 아파트’ 페이지를 개설하여 팬 커뮤니티를 공식적으로 활성화시켰다. 공연의 이미지와 잘 어울리는 아기자기한 팬 서비스를 제공하여 작품의 세계관을 알리고 고정 팬들의 니즈를 선제적으로 공략하는 맞춤식 홍보를 선보였다.
뮤지컬이 일반 대중에게 더 가까이 다가갈수록 뮤지컬 인플루언서의 활동과 관련 콘텐츠 채널이 다각화되며 홍보 라인이 세분화된 것도 2024년의 중요한 특징이었다. 인스타그램과 유튜브 플랫폼에서 주로 활동하는 뮤지컬천재 황조교, 뮤지컬연구소 뮤랩, 뮤지컬랜드 뮤랜, 분더비니 외에도 공연제작사 랑에서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 혜화로운 공연생활과 홍악가 등의 활약이 두드러졌으며 더불어 최초 연극‧뮤지컬 전문 웹예능인 M버거의 ‘회전문’ 런칭과 MMTG 문명특급의 ‘MMTG SHOW’ 뮤지컬 콘텐츠 제작이 눈에 띄었다. 인터넷 기반의 이러한 채널들은 특정 프로덕션과 결합하여 작품을 소개하고 홍보함으로써 자신의 콘텐츠를 발전시키는 방향으로 흐르고 있는데, 이는 또한 대안 언론의 기능을 일부 겸함으로써 친근하고 어렵지 않게 뮤지컬을 전달하는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이와 관련하여 ‘뮤지컬 평론’의 역할은 더욱 약화되고 있으며 한편으로는 ‘뮤지컬에 평론이 필요한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여러 측면에서 생성하고 있다.
한국 뮤지컬의 국제적 확산, K-뮤지컬의 개념
로컬 시장이 이처럼 마케팅과 홍보 면에서 변화와 확장의 계기를 맞이한 2024년은 또한 한국 뮤지컬이 글로벌한 흐름으로 분화되는 시기이기도 했다. 브로드웨이에서 공연되고 있는 오디컴퍼니의 <위대한 개츠비(The Great Gatsby)>와 박천휴&윌 애런슨의 <어쩌면 해피엔딩(Maybe Happy Ending)>, 그리고 웨스트앤드에서 공연된 라이브의 <마리 퀴리>가 올해 큰 관심을 받았다. 또한 토호에서 제작한 <팬레터>, 첫 중국 라이선스 뮤지컬 <접변>의 흥행, 올해 앙코르 공연까지 성공한 <오즈>는 한중일 3국이 하나의 뮤지컬 블록으로 움직일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을 낳았다, 호리프로의 제작으로 2025년 일본 도쿄에서 초연될 <미생>이 2024년 현재 박해림(극작), 최종윤(작곡), 오루피나(연출)의 참여로 진행되고 있는 상황 역시 이러한 전망을 한층 구체화했다.
이와 같은 한국 뮤지컬의 국제적 확산 현상은 ‘K-뮤지컬’의 개념을 재고하게 만든다. 이는 올해의 매우 주목할 만한 현상으로, 향후 ‘K-뮤지컬’에는 각자 파트를 책임지는 주체만 있을 뿐 뮤지컬의 ‘K’가 언제나 국가의 문화와 정체성을 온전히 반영하는 기표로 상정될 수는 없을 것이라는 전망을 낳는다. 가령, <위대한 개츠비>의 ‘K’적 요소는 오디컴퍼니 신춘수 대표의 오랜 기획과 비즈니스 방향성 그리고 끝없는 열정이 아닐까? 이미 한국 시장 내에서도 해외 창작진과의 협업은 쉽게 발견할 수 있는 현상이다. 올해 공연으로만 범위를 좁혀도 <마타하리>의 잭 머피, 프랭크 와일드혼을 포함하여 <일 테노레>의 안무가 코너 갤러거, <맥베스>의 편곡자 주드 오버뮬러, <스윙 데이즈_암호명 A>의 제이슨 하울랜드가 창작에 참여했다. <어쩌면 해피엔딩>을 비롯하여 2024년 신작 <고스트 베이커리>의 작곡가 윌 애런슨 역시 영어와 한국어를 구사하는 미국인이다. 이들이 참여는 각 프로덕션의 핵심 방향과 작품의 특징을 결정지었다. 이렇듯 2024년은 뮤지컬의 초국적화 물결을 가늠할 수 있었던 한 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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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승연 (뮤지컬 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