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뮤지컬] <원스> 기타와 피아노가 만나, 음악의 힘을 말하다
김소정 평론가가 뮤지컬 <원스>의 음악적 매력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글 : 김소정(뮤지컬 평론가) 사진 : 신시컴퍼니
2025.0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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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개 뮤지컬의 플롯 진행은 사건 발생의 연속이다. 그러나 뮤지컬 <원스>는 한 남자와 한 여자가 만나면서 벌이지는 일련의 과정을 담으며, 사건의 전개보다는 인물의 심리 변화에 주목한다. 동명의 원작 영화도 마치 한 편의 다큐멘터리 영상처럼 인물의 감정에 초점을 맞추는데, 이때 가이(Guy)와 걸(Girl) 중심으로만 진행된다. 뮤지컬에서도 가이와 걸의 만남으로 촉발되는 감정의 변화에 주목하는 한편, 이를 확장하여 주변인들의 심리 상태를 함께 조망한다. 이 모든 것은 단순히 기호로서의 언어가 아닌 ‘음악 언어’를 통해 표현된다. 여기서 음악 언어는 말 그대로 문자와 소리와 같은 기호로 발화되는 언어가 아닌, 특정 악기의 소리로 전개되는 음악으로서의 언어이다. 가이의 언어는 기타이고, 걸의 언어는 피아노이다. 그리고 주변 인물은 기타, 아코디언, 바이올린, 우쿨렐레, 벤조 등 아일랜드 포크 음악을 담당하는 악기 또는 체코와 같은 다른 지역의 악기를 가지고 이야기한다. 화려한 무대 장치나 퍼포먼스는 없다. 온전히 음악의 힘으로 각기 다른 사람들이 서로를 진정으로 느끼고, 소통해 나가는 모습에 초점을 맞춘다.



기타와 피아노, 가이와 걸의 만남

가이는 음악뿐 아니라 삶 자체를 포기하려던 순간, 우연히 걸을 만난다. 음악은 가이의 삶 그 자체였지만, 음악인으로서의 삶이 아닌 후버(진공청소기) 수리공으로서 살 수밖에 없었던 가이는 자신의 삶에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그리고 갑작스럽게 들어온 걸에게 당황스러움, 더 나아가 불편함까지 느낀다. 그러나 가이가 기타를 연주하고, 걸이 피아노 건반을 누르는 순간 두 사람 간의 낯섦은 한순간에 사라지고 유대감이 자리 잡게 된다. 지금의 삶에서 벗어나고 싶은 두 사람의 은밀했던 욕망이 넘버 ‘Falling Slowly’를 통해 직접적으로 드러난다. 앙상블과 함께 시작했지만, 결국 혼자만의 기타 멜로디에 노래 부르게 되는 가이의 첫 넘버 ‘Leave’는 걸을 만나면서 그녀와 함께 ‘Falling Slowly’를 연주하게 된다. 그 후 가이는 멜로디만 존재하던 자신의 음악에, 걸의 가사를 덧붙여 노래를 완성해 넘버 ‘If You Want Me’를 부를 수 있게 된다. 음원 발매에 필요한 비용을 충당하기 위해 대출을 받고자 찾아간 은행에서 가이는 걸의 응원으로 은행원 앞에서 자신의 자작곡 ‘Say It to Me Now’를 부르며 대출이 힘들다는 은행원을 음악으로 설득한다. 결국 쓸쓸하게 혼자 시작했던 가이의 음악은 걸이라는 매개를 통해 1막의 마지막 넘버 ‘Gold’를 향해 간다. 혼자 시작된 가이의 넘버에 앙상블이 점차 들어오게 되면서, 기타로 구성된 단선율의 음악은 각기 다른 음악의 멜로디와 합쳐서 다성음악이 된다. 혼자만의 절망적인 음악 세계에 빠져 있던 가이가, 아일랜드 포크 음악과 상충하는 피아노라는 악기, 걸을 만나게 되면서 다른 사람들과 함께 자신의 음악 세계를 확장해 나가기 시작한 것이다. 


음악을 포기하려 했던 가이는 걸을 만나 다시 음악을 할 용기를 얻고, 모든 게 낯설었던 이방인 걸 역시 가이를 통해 불안했던 마음을 치유한다. 이들은 서로의 구원자가 된다. 걸의 언어가 되어주는 피아노는 타현악기로 알려졌지만, 사실 그 근원은 현악기였다. 물론, 바이올린이나 첼로같이 활을 사용하는 현악기와는 방식이 다르지만, 기본적으로 현의 진동을 이용해 소리를 낸다. 이런 점에서 문화적 정체성이나 언어와 같이 표면적으로 보이는 것은 달랐던 가이와 걸이지만, 실상 이들의 내면성은 크게 다르지 않았음이 음악을 통해 다시 한번 은밀하게 드러나게 된다. 그렇지만 최종적으로 구현된 형태는 다르기에, 우연히 만난 가이와 걸은 유대감을 쌓을 수 있었지만, 동시에 다른 삶의 형태를 원하는 만큼 서로에게 감정이 생겼음에도 그 감정을 전달할 수 없었고, 각자 다시 헤어져 다른 길을 갈 수밖에 없게 된다. 넘버 ‘Falling Slowly’를 통해 더 나은 미래를 꿈꿨던 두 사람은, 이제 이전과는 다른 삶을 살기 위해 헤어지게 되고, 넘버 ‘Gold’의 리프라이즈를 거쳐 ‘Falling Slowly’에 다시 다다른다. 서로에게 구원자였던 그들의 삶이 구원받는 순간, 구원을 바라며 불렀던 넘버가 다시 나오며 극은 마무리된다. 

 

존재의 가벼움과 무거움

쓸데없이 많은 생각에 휩싸여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하는 가이에게 걸은 장난스럽게 들릴 만큼 가볍게 넌지시 말을 던진다. 어색한 억양, 무심하게 들리는 걸의 말에 가이는 즉각적으로 부정적인 반응을 보인다. 가이에게 걸은 참을 수 없는, 혹은 너무나도 낯선 존재의 가벼움이었다. 그러나 이때부터 가이의 인생은 달라진다. 마치 피아노 안의 해머가 현을 타격하는 것처럼 말이다. 걸은 가이의 머리를 때려 가이를 더 나은 세상으로 나가게 하는 동기로서의 역할을 한다. 인생을 무겁고 진지하게만 생각했던 가이는 무슨 일이라도 가볍게 생각하려는 걸에 의해 바뀌게 된다. 어렵게 생각하지 않고, 그저 마음이 가는 대로 행동하는 걸의 가벼움 속에 가이는 모르는 새 점차 동화되어 가고 결국 가이는 오랜 꿈이었던 음악가로서의 살아가기 위해 뉴욕으로 가게 된다. 그리고 그 순간 잊지 못했던, 가이의 전 연인에게서 그가 보고 싶다는 연락을 받게 된다. 가이가 인생에서 무거움을 버리고 가벼움을 선택하자 그의 인생은 그가 원하는 방향으로 흘러가게 된다. 이 과정에서 걸은 가이에게 사랑 고백을 하지만, 혼자서만 그 마음을 간직하기 위해 그가 알아들을 수 없는 체코어로 한다. 걸의 가벼워 보였던 모든 말과 행동은 싱글맘이자 이방인으로 살아야 했던 그녀의 아픔이었고, 절망을 딛고 일어선 그녀의 용기이자 단단함이었다. 가벼워 보이던 걸의 모습 어디에도 가벼움이 없었다. 오직 진중함만이 있었다. 오히려 진중해 보이던 가이의 모습에, 욕망은 있지만 행동하지 않은 채 한숨만 쉬는 가벼움이 있었다. 이렇게 인생을 대하는 서로 다른 가이와 걸의 태도는 그들이 사용하는 악기와 모순적이면서 상통한다. 


아일랜드의 포크 음악을 대변하는 어쿠스틱 기타는 방랑의 정서를 가지고 있고, 단순하고 직관적인 연주 방식을 보이며, 어디서나 연주할 수 있다는 점에서 표면적으로 보이는 가이의 진중한 모습과 대립적이다. 그러나 실질적으로는 불만만 품고, 아무것도 하려고 하지 않은 채 현실에 굴복하려는, 그의 가벼운 태도와 유사하다. 걸의 모국인 체코는 유럽 클래식 전통에 속하는 나라로, 피아노는 체코의 대중적인 악기 중 하나이다. 구조적으로 복잡한 피아노는 화성적 사고에 기반을 두고 있으며, 물리적 이동이 어려워 한 장소에 깊에 뿌리 내리는 악기이다. 이런 피아노의 특징은 가볍게만 보이는 걸의 겉모습과는 대조적이나, 실제로는 누구보다 삶을 진지하게 대하며 시련을 극복하려고 하는 그녀의 모습과 비슷하다. 진지해 보이지만, 사실은 자신이 원하는 인생을 위해 나아갈 용기조차 없어 길거리에서 방랑하던 삶을 살던 가이에게는 기타의 선율이, 가벼워 보이지만 누구보다 단단하며, 낯선 땅에서 뿌리를 내리고 자신의 삶을 꿋꿋하게 살아가고자 했던 걸에게는 피아노 선율이 부여되는 것은 단순히 우연이 아니다.

 

 

액터 뮤지션, 입체적인 코러스

뮤지컬 <원스>의 모든 배우는 ‘액터 뮤지션(actor-musician)’이다. 주인공 걸과 가이도 예외는 없다. 말 그대로 배우인 동시에 연주자이며, 극 구조상 주인공과 조연으로 나뉘어 등장인물이 존재하지만, 이들은 사실상 동등한 구조와 관계를 분유한다. 무대 위에서 노래, 연기, 춤 이외에 ‘연주’라는 새로운 미션이 생기는 만큼 액터 뮤지션은 연주에도 능통해야 한다. 이 작품의 음악은 아일랜드 포크 음악, 즉 우리의 음악이 아닌 만큼 배우들이 정통적인 아일랜드 포크 음악을 완벽하게 구현해 내기는 힘들다. 전문 연주자가 아닌 만큼 액터 뮤지션의 연주도 수준급이라 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이들의 음악에는 음악을 사랑하는 그들의 소중한 마음이 꾹꾹 담겨있는 만큼 최상의 연주가 선사하는 감동과는 또 다른 미감이 전해진다. 더불어 앙상블의 위치가 입체적으로 바뀐다. 한국 창작뮤지컬의 경우 대개 앙상블은 주·조연을 위해 존재하는 부가적인 익명의 인물로 그려진다. 한 명의 인물로서 그려지는 것이 아닌, 배경으로 서 있다. 그런데 이 작품에서는 그렇지 않다. 주·조연과 앙상블 모두가 액터뮤지션인 만큼, 자신이 등장하지 않는 장면에서는 무대 양옆에 자리한다. 하지만 그들은 여전히 극의 일부로 존재하며, 중간중간 극에 개입하고, 자연스럽게 극 안으로 들어와 이름을 가진 한 명의 인물이 된다. 이러한 형태는 고대 그리스 비극에서 나타났던 코러스의 형태를 연상시킨다. 비극에서 코러스가 배우와 함께 극에 개입하고 노래, 춤 연주를 활용해 극적인 효과를 증대시킨 것처럼, 액터 뮤지션 또한 단순한 연주자이거나 배경 인물이 아니라 극 속에서 음악을 통해 의미를 창출한다. 아코디언, 벤조, 베이스, 카혼, 캐스터네츠, 첼로, 콘서티나, 드럼, 기타, 하모니카, 만돌린, 멜로디카, 피아노, 탬버린, 우쿨렐레, 바이올린 등 16개의 악기가 무대 안과 밖을 자유로이 넘나든다. 특히, 액터 뮤지션이 다(Da), 빌리(Billy), 바루스카(Baruska), 스베츠(Svec), 에이먼(Eamon), 엠씨(Emcee), 레자(Reza), 은행 직원과 같은 각 인물로 무대 위에 서는 경우 이들은 모두 자신을 대표하는 악기를 갖는다. 인물은 음악 연주를 통해 극의 진행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며, 음악을 통해 그 속에서 다른 인물과 소통하고 관계를 발전시켜 나간다. 


이러한 맥락에서 음악을 중심으로 한 원작 영화를 뮤지컬로 각색한 의미가 분명히 드러난다. 영화에서부터 이미 음악은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인물의 감정을 전달하는 주요 언어이다. 뮤지컬에서 ‘음악’은 언어(대사)로 설명할 수 없는, 혹은 설명되지 않는 것을 은밀하게 드러내는 역할을 하는 하나의 또 다른 언어이다. 뮤지컬 <원스>는 모든 인물을 액터 뮤지션으로 상정함으로써, 음악의 언어성을 강조하며, 영화에서는 주변부 인물에 머물렀던 인물들을 가이와 걸의 관계를 중심으로 연결하고, 이들에게도 악기와 선율을 부여함으로써 이야기를 단순히 가이와 걸에게만 한정하지 않는다. 등장인물의 이름이 익명성에 기반한 것처럼, 이들의 이야기는 그들에게만 해당하는 특수한 이야기가 아니라,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음을 뮤지컬에서 액터뮤지션 구조를 통해 강조한다. 즉, 뮤지컬 <원스>는 영화에서 인물의 감정을 전달하는 주요 언어로서의 음악의 흐름을 따르면서, 이를 더욱 확장하고 뮤지컬의 어법에 맞춰 음악을 다시 사용함으로써 ‘뮤지컬’이라는 장르의 매력을 다시 한번 관객에게 강조함과 동시에, 음악이 우리의 삶을 어떻게 더욱 풍요롭게 할 수 있는지 말해준다.

 


무대가 시작하기 전, 무대 위에 배우들의 프리쇼(pre-show)가 진행된다. 관객은 자유롭게 무대 위에 올라가 그들의 곁에 서서 자유롭게 음악을 즐기며 이 작품의 주된 장소가 되는 아일랜드 더블린 펍에서 음료를 사서 마신다. 프리쇼가 끝나고 관객은 다시 객석으로 내려오지만, 무대는 암전 없이, 프리쇼와 본 무대의 큰 경계 없이 그대로 진행된다. 어디서부터 공연의 시작인지 명확히 인지되지 않는 본 공연, 그리고 물리적인 경계를 넘어 무대 위에 올라갔다 온 관객은 이들의 이야기에 이미 심리적 거리를 좁힌 상태이다. 이 상태에서 이름 없는 두 명의 주인공, 가이와 걸. 이들의 익명성을 기반으로 이들이 음악을 통해 보여주는 서로를 위한 구원이라는 서사는 무대에 크고 넓게, 그리고 기울어져 매달려 위치한 거울을 통해 관객으로 확장된다. 이 거울은 배우들이 무대 쪽을 바라보고 있을 때, 그들의 얼굴을 관객에게 보여주고, 배우 자신에게는 자신을 마주할 기회를 제공하는 데서 더 나아가 관객을 비춤으로써 관객을 극 중 인물들 사이에 집어넣는다. 제4의 벽은 무너지지 않았지만, 시각적으로 관객과 배우의 경계가 사라지고 어느새 관객이 무대 위에 서 있게 된다. 


한국에서 흥행에 성공한 작품의 넘버에는 대개 빅 멜로디가 들어가 있다. 웅장하고 거대한 스케일로 된 일명 ‘킬링 넘버(killing number)’는 관객의 귀를 한순간에 매료시키며, 이성적 사고를 마비시킨다. 아일랜드 포크 음악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뮤지컬 <원스>의 넘버들은 폭발하지 않는다. 단순히 잔잔하게 흘러갈 뿐이다. 그러나 그 속에서 음악이 언어로서 만들어내는 아름다운 것들과 마주하게 된다.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던 존재자 간 소통의 시작, 상충하던 문화권이 음악이라는 공통 언어를 매개로 하나 됨, 음악을 통한 구원이 이루어진다. 라이트모티프와 리프라이즈를 중심으로 음악의 힘이 강조되던 다른 뮤지컬 작품과 달리, 뮤지컬 <원스>는 ‘음악 그 자체의 힘’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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