셰익스피어의 희곡 『로미오와 줄리엣』은 애틋하고 절절한 사랑에 대해 이야기 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작품이다. 첫눈에 서로에게 빠진 어린 연인, 이루어 질 수 없는 원수의 집안, 죽음까지 불사르는 사랑. 수 세기 동안 두 사람의 로맨스는 다양하게 변형되며 많은 이들의 가슴을 울렸다. 뮤지컬 <로미오와 줄리엣> 역시 셰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이 원작이다. 허나 뮤지컬 <로미오와 줄리엣>은 그 불멸의 고전을 완전히 새롭게, 완전히 색다르게 펼쳐낸다. 작품의 배경부터 인물 설정까지 많은 부분을 그들만의 색깔로 채워 넣었다.
붉은 조명이 깔린 3층짜리 무대는 어딘가 음산한 느낌을 주고, 관객들은 곧 그 알 수 없는 불안한 분위기에 동화된다. 두려움 가득한 눈으로 무대를 두리번거리던 순간, 강렬한 음악과 함께 끔찍한 모습의 한 무리가 등장한다. 회색 빛의 창백한 얼굴과 머리, 온 몸에 난 잔인한 상처, 살기가 느껴지는 눈빛을 가진 그들은 핵 전쟁 이후 생겨난 돌연변이, 좀비들이다. 몽타궤역에 모여 사는 이 돌연변이들은 카풀렛역에 살고 있는 최후의 인류와 치열한 싸움을 지속한다. 자신이 살기 위해 서로가 서로를 죽이지 않으면 안 되는 잔혹한 전쟁이 매일 벌어지고, 서로를 향한 증오는 커져만 간다.
그 치열한 싸움이 일어지는 와중, 몽타궤역에 사는 돌연변이 로미오와 카풀렛역에 사는 호기심 많은 인간 줄리엣은 우연처럼 운명적으로 만나게 되고 자연스레 사랑에 빠진다. 사랑에 빠진 남녀에겐 그 어떤 얘기도 들리지 않고, 그 어떤 것도 중요하지 않다. 그저 서로가 서로의 옆에 있을 수 있다는 그 사실만 중요할 뿐. 두 사람의 사랑이 깊어질 수록 두 집단의 증오와 갈등 역시 극으로 치닫는다.
이처럼 뮤지컬 <로미오와 줄리엣>은 원작의 큰 줄거리는 유지하되, 좀비와 인간의 사랑에 SF장르를 버무린 독특한 작품을 탄생시켰다. 사실 그 좀비물과 SF물이 어디선가 본 듯한 줄거리라는 느낌을 지울 수는 없지만, 고전의 신선한 재해석이라는 새로운 시도 그 자체는 의미가 있는 듯 하다. 독특한 무대 구조부터 강렬한 음악, 리얼함을 살린 특수 분장 등 다양한 부분에서 디테일을 신경 쓴 흔적이 보인다. 처음에는 기존에 알던 『로미오와 줄리엣』의 모습을 찾을 수 없음에 어색하고 당황스럽지만, 이내 뮤지컬 <로미오와 줄리엣>만의 묘한 매력을 느낄 수 있다.
다만 로미오를 돌연변이로 설정하고, 핵 전쟁 이후 인류가 멸망했다는 설정에 대한 당위성이 부족해 보인다. 두 사람의 사랑을 더욱 극적으로 표현하기 위한 장치라 보기도, 작품만의 특별한 메시지를 주기 위함이라 보기도 애매하다. 양쪽 그 어디도 촘촘히 채워주지 못하고 어설프게 맴돈다. 그러한 설정에 대한 갈증을 채워줄 이야기의 부재가 아쉽게 느껴진다.
뮤지컬 <로미오와 줄리엣>은 기존에 알고 있던 『로미오와 줄리엣』이 아닌, 새로운 이야기를 만나고 싶어하는 사람에게 신선한 충격을 줄 뮤지컬이 아닐까 싶다.
임수빈
현실과 몽상 그 중간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