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은행의 영업 방식
사회에서 차별과 박해를 받은 유대인이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았기에 일찍부터 금융업에 종사하게 된 측면도 있습니다.
글ㆍ사진 육민혁
2016.1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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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의 식민지였던 이스라엘은 서기 70년경에 로마 정부에 반대하는 독립전쟁을 일으켰지만 결국 패배하여 예루살렘 성은 파괴되고, 일명 ‘통곡의 벽’이라고 부르는 서쪽 벽(West wall)만 남게 됩니다. 하지만 이스라엘의 과격 독립 운동가였던 열심당(Zealot당)의 당원들은 패배에 불복하고(게임 ‘스타크래프트’의 Zealot은 바로 Zealot당에서 이름을 따온 것입니다) 1,000명 vs 15,000명의 엄청난 열세 속에서도 난공불락 천혜의 요새 마사다(Masada) 성에서 끝까지 항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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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1년여의 세월이 흐를수록 전세는 점점 불리해져 결국 함락되고 마는데요. 죽어도 로마에 굴복하지 못하겠다면서 놀랍게도 함락 직전에 전원이 자살해 버립니다. 유대교에서는 자살을 금하기에 먼저 부인과 자녀를 남편이 살해하고, 제비를 뽑아 10명만 남기고 모든 남자를 다 죽이고 난 다음 남은 10명이 제비를 뽑아 한 명이 9명을 죽이고, 마지막에 한 사람만 자살하는 방식이었지요. 그 와중에 숨어 있다 살아남은 여자 5명과 노파 2명이 로마군에게 성에서 벌어진 상황을 전했고, 이 이야기를 듣고 로마군은 승리했지만 오히려 겁을 먹었다고 합니다.
  
이렇게 처절한 마사다 성의 결사항전 정신을 되새기기 위해 지금도 이스라엘의 군인은 훈련소에서 퇴소할 때 마사다 요새에 가서 ‘다시는 마사다가 함락되게 하지 않을 것이다’를 외치지요. 마사다 요새 함락 이후 유대인은 전 세계로 뿔뿔이 흩어졌는데요. 이후 2천 년 동안 나라 없이 이 나라 저 나라를 전전하는 신세가 되는 유대인의 디아스포라(Diaspora, 흩뿌리거나 퍼트리는 것을 뜻하는 그리스어)가 시작되었습니다.
  
하지만 기독교 문명이었던 유럽 사회에서 유대인은 예수님을 죽인 민족이라고 해서 많은 박해를 받았고 어디서도 환영받지 못했는데요. 심지어 이들 덕분에 풍요로워진 나라들조차도 갑작스럽게 유대인을 추방한 경우가 많았습니다.
  
가장 유명한 것은 1492년의 알람브라 칙령으로 이슬람 세력을 800년 만에 스페인 밖으로 쫓아낸 스페인의 이사벨라 여왕과 페르난도 왕이 유대인에게 4개월 안에 모든 재산을 정리하고 떠나라며 추방한 사건이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유대인을 추방하면서 재산 반출을 금지했는데요. 이는 이슬람 세력을 물리친 자신의 부하들에게 줄 돈을 유대인에게 빼앗아서 주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큰 피해를 본 이후로 유대인은 처분하는 데 시간이 걸리는 부동산에 투자하지 않고 생선과 같이 쉽게 썩기에 바로 팔아서 재고를 쌓지 않는 상품, 혹은 언제든지 몸에 지니고 피신할 수 있는 다이아몬드와 같은 귀금속을 선호했습니다. 그래서 전 세계 다이아몬드 시장은 유대인의 주된 활동 무대가 되었고, 지금도 이스라엘의 대표적인 산업이지요.
 
또한, 중세 기독교에서는 돈을 빌려주고 이자를 받는 것을 죄라고 여겼는데요. (레위기 ‘너는 그에게 이자를 위하여 돈을 꾸어주지 말고 이익을 위하여 네 양식을 꾸어주지 말라’를 그 근거로 삼았습니다) 사회에서 차별과 박해를 받은 유대인이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았기에 일찍부터 금융업에 종사하게 된 측면도 있습니다. (유대인은 신명기의 ‘타인에게 이자를 받을지라도 형제들에게는 이자를 받지 말라’의 구절을 통해 유대인은 기독교도와 형제가 아니기에 이자를 받는 것은 문제가 안 된다고 해석한 것이었습니다)
  
한편 이스라엘 은행의 영업 방식은 인상적이었습니다. 보통 해외의 은행에서 환전할 때는 달러화, 유로화, 엔화, 위안화, 스위스프랑화, 싱가포르달러화 등의 주요 통화만 환전해주곤 하는데요. 이스라엘 은행에서는 놀랍게도 한국 원화도 이스라엘 세켈화로 환전해주었습니다. 심지어는 타이, 필리핀, 브라질, 짐바브웨의 화폐까지도 환전해주었는데요.
  
대신 그만큼 환전율은 좋지 않았지요. 원화의 경우 사자와 팔자 가격이 꽤 멀리 떨어져 있는, 촘촘하지 못한 모습이었는데요. 1,000원을 주면 3.08세켈로 바꾸어주고, 반대로 다시 1,000원을 환전받으려면 3.53세켈을 내야 했습니다. 0.45(3.53-3.08)세켈만큼의 차이인데요. 환전액의 거의 7분의 1만큼의 수수료를 요구하는 셈이죠. 반면에 1달러를 주면 3.69세켈로 바꾸어주고, 다시 1달러로 돌려받으려면 3.87세켈을 달라고 했는데요. 사자와 팔자 사이의 호가 차이 0.18세켈(3.87-3.69)만 보더라도 국제시장에서 원화와 달러화의 위상 차이를 느낄 수 있지요.

 

물론 그만큼 전 세계적으로 봤을 때 한국 원화에 대한 유동성이 떨어진다는 것을 의미하겠지만, 이스라엘 은행은 이렇게 원화를 모은 뒤 한국의 은행에 연락해서 원화와 달러화를 바꾸자고 하면 엄청난 수익을 낼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은행에서 환전할 때 외환시장에서 거래되는 환율대로 환전할 수는 없습니다. 은행에 일정 부분 수수료를 주어야 하기 때문이지요. 예를 들어 외환시장에서 거래되는 환율이 1달러에 1,000원이라고 하면 우리가 은행에서 달러를 살 때는 1,000원을 내면 0.98달러를 주고, 반대로 1,000원을 받으려면 1.02달러를 주어야 하지요. 1,000원을 사이에 두고 달러를 살 때와 팔 때 0.02달러씩 떼는 것이 은행의 수수료 수입이죠. (이스라엘에서는 1달러를 주면 3.69세켈로 바꾸어주고 다시 1달러로 돌려받으려면 3.87세켈을 내야 했기에 은행에서 살 때와 팔 때 각각 0.09세켈씩을 수수료로 뗀 것이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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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한 번 저를 놀라게 한 것은 환전 수수료인데요. 100달러를 내면 369세켈을 받는 줄 알았는데, 건네받은 것은 349세켈로 20세켈을 수수료로 뗀 것이었습니다. 환전할 때 은행이 받는 수수료는 외환시장에서 거래되는 환율에서 사자 가격과 팔자 가격을 조금씩 벌려놓은 것이 수수료라고 말씀드렸는데요. 이스라엘 은행은 그 이후에 20세켈을 수수료 명목으로 또 한 번 뗀, 즉 2번의 수수료를 받은 것이었습니다.
  
저는 왜 두 번이나 수수료를 떼느냐고 물었지만, 은행 직원은 이스라엘에서는 원래 그렇다는 답변만 들을 수 있었지요. 게다가 20세켈이면 6천 원 정도인데요. 10만 원을 내고 추가 환전 수수료로 6%를 낸 셈이죠. 0.01%를 1bp라고 하는데요. 채권시장에서는 단 1bp의 이익을 얻으려고 그렇게 고심하면서 노력하는데, 이스라엘 은행은 환전으로 아무렇지도 않게 600bp나 수익을 취하다니 정말 입이 벌어졌습니다.
  
하지만 이스라엘 은행 직원은 제가 특별한 요청도 안 했는데 눈치 있게 349세켈을 100세켈 두 장, 50세켈 두 장, 그리고 각각 20세켈과 10세켈로 사용하기 편하게 알아서 바꾸어주니 미워할 수도 없었고요. 이쯤 되니 유대 상인이 살짝 무서워지기도 했는데요. 왜 유대인 상인이 세상을 놀라게 하는지 몸소 느낄 수 있었습니다.


 

 

글로벌 금융 탐방기육민혁 저/오석태 감수 | 에이지21
이 책은 새로운 투자 상품을 개발하기 위해 전 세계를 다닌 지은이가 각 나라에서 보고 들은 이야기와 각각의 금융 현상을 이자율(금리)로 알기 쉽게 설명한다. 옆집에 사는 고교생이, 음악을 전공하는 대학생 사촌이, 금융에 문외한인 친구나 형, 누나가 물었을 때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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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유대인 #금융 #은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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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민혁

호기심이 많아 연구하고 직접 찾아보는 것을 좋아하며 모르는 것에 대해 질문하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습니다. 아직 지식이 얕고 경험도 일천하기에 좌충우돌하고 있지만 실행력으로 이를 보완해 나가고 있습니다. 옆집 형이나 오빠처럼 편안하고 부담없이, 직접 보고 듣고 경험한 넓은 세계에 대해 함께 나누고, 더 나아가 평소에 경제와 금융에 관심이 있지만 왠지 무언가 어려운 것 같다고 느끼셨던 분들께 금융에 대해 쉽고 재미있게 설명해드리고 싶었습니다. 한국은 여전히 희망과 가능성이 많은 나라라고 믿고 있으며, 연세대 경영학과 졸업 후 Societe Generale 증권과 HMC 투자증권을 거쳐 지금은 메리츠 종금증권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