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 전체가 미술관인 빌바오 구겐하임 뮤지엄
스페인 북부지역의 소도시 빌바오는 주요 관광지와 떨어져 있어 쉽게 찾아갈 수 있는 곳은 아니지만, 그 곳에 위치한 미술관을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가치가 있는 여행지입니다. 스페인의 수도인 마드리드에서 버스로 4시간 걸쳐 도착한 빌바오는 지나가는 모든 길이 공원처럼 잘 정비되어 있으며 대도시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잔잔한 일상풍경으로 심적인 안정감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거리를 천천히 걷다 보면 저 멀리서 주변 풍경과는 그림체가 달라진 은색 물체가 햇살에 반짝이는데, 지구에 떨어진 어떤 행성 같기도 한 거대한 건축물이 바로 구겐하임 빌바오 미술관 (Guggenheim Bilbao Museo)입니다. 실제로 비평가인 캘빈 톰킨스(Calvin Tomkins)는 “뉴욕의 티타늄 망토를 입은 물결모양의 환상적인 꿈의 우주선”이라고 묘사한 바 있습니다.
웅장한 건축물 덕분에 네르비온 강을 끼고 쭈욱 따라가는 모든 길에 미술관이 보이는 신기한 경험을 할 수 있는데요, 티타늄 건축물과 그것을 둘러싼 자연 앞에서 압도되는 기분을 느낄 수 있습니다. 특히 아니쉬 카푸어의 (Anish Kapoor) 조각 ‘큰 나무와 눈 Tall Tree & The eye’을 품고 이어진 강물에 반사되는 건축물과 조형물은 시시각각 변하는 풍경의 색이 낮에는 아름답고 밤에는 더 눈부신 절경을 이룹니다.
문화 예술이 하나의 도시를 통째로 탈바꿈…
주요 산업이던 철강산업이 쇠퇴하고 홍수까지 덮친 1970년대 후반부터 쇠락하기 시작한 빌바오는 바스크 분리주의자들의 테러가 빈번해졌고 도시 실업률이 심각해졌습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스페인 정부와 빌바오시, 구겐하임 재단이 이런 문제의 해결은 문화사업이라 판단하여 진행한 프로젝트에 미국의 프랑크 개리 (Frank Gehry)가 설계를 맡아 지금의 빌바오가 탄생했습니다. 쓰러져 가던 도시였던 빌바오는 이 미술관이 개관하면서 해마다 100만여 명이 찾는 명소로 변모하였으며, 문화 예술이 하나의 도시를 통째로 탈바꿈시킨 도시 재생 산업의 성공사례로 손꼽히고 있습니다.
해체주의(Deconstructivism) 건축의 사례로 언급되는 구겐하임 미술관은 (1991년에 설계하여 1993년에 개관) 티타늄, 석회암, 유리로 이루어져 있으며 철강산업의 도시였던 빌바오의 특성을 살려, 빌바오의 하늘을 그대로 담아내는 티타늄으로 헤엄치는 물고기를 연상시키는 독창적인 형태의 건축물을 만들어냅니다. 1989년 건축계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프리츠커상을 수상한 게리의 명성을 재확인시킨 걸작 중의 걸작으로 건물 자체가 위대한 예술품으로 칭송받고 있습니다.
구겐하임 컬렉션
건축물뿐만 아니라 빌바오의 구겐하임 미술관은 세계적인 현대미술 컬렉션을 자랑합니다. 20세기와 21세기의 대표적인 현대미술작품, 팝아트부터 미니멀리즘 추상 등 다양한 장르의 작품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구겐하임 뮤지엄 반대편에는 프랑스 출신의 조각가 루이스 부르주아(Louise Bourgeois)의 초대형 거미 마망 (Maman)이 도시를 삼킬 것처럼 도사리고 있으며 현대미술계에서 영향력 있는 제프 쿤스 (Jeff Koons)의 세상에서 가장 큰 38,000개의 생화로 이루어진 개 (Puppy)는 미술관의 입구에 자리하고 있는데, 크기만으로도 압도적이면서 크기와는 상반되는 개념의 강아지와 꽃이 결합되어 친근함과 경외감이 동시에 듭니다.
미술관 외부의 조각에 감탄하는 것만 해도 종일 걸릴듯한데 내부로 들어서자마자 제니 홀저 (Jenny Holzer)의 미디어 작품 빌바오를 위한 설치작품 (Installation for Bilbao) 이 보이는데 천장이 높은 홀 파란색 벽에 수많은 텍스트들이 흘러내리는 것을 보다 보면 한동안 시선을 거두기가 쉽지 않습니다. 리처드 세라의 방에서 거대한 크기의 강철판의 작품 시간의 문제(The Matter of Time)를 따라 걸어보면 압도감과 불안함이 느껴지는 동시에 아늑한 기분을 주는 기묘한 시공간을 통과하게 됩니다. 이처럼 미술관의 내부는 직선보다는 곡선, 비정형 공간으로 설계되어 있어 감각을 극대화시킵니다. 대형 채광창을 통해 건물의 내부와 내부를 연결하는 곡선볼륨이 있는 개방형 공간의 3개의 층에는 총 20 개의 전시공간이 있습니다.
미술관을 설립한 솔로몬 R. 구겐하임재단은 1937년에 현대 미술을 수집, 보존, 전시, 연구, 교육하기 위해 설립된 기관으로 세계적으로 가장 영향력 있는 현대 미술 기관 중 하나로 자리매김했습니다. 이 재단은 뉴욕, 베를린 여러 도시에서 미술관을 운영하며 글로벌 예술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있으며, 미술관 컬렉션 이외에도 기획전시를 통해 국제적인 예술가들의 작품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필자가 방문했을 당시에는 일본현대미술의 대표작가인 나라 요시토모 (Nara Yoshitomo)의 대규모 회고전과 팝아트의 거장 로이 리히텐슈타인 (Roy Lichtenstein), 제프쿤스(Jeff Koons) 앤디워홀 (Andy Warhol)등의 작품을 포함한 구겐하임 팝아트 컬렉션, 오스트리아 추상화의 선구자 마르타 융비르트(Martha Jungwirth)의 전시도 함께 열리고 있었습니다.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에서의 경험은 예술이 가진 힘을 깨닫게 해주는 순간들의 연속이었으며, 예술계에 몸담고 있는 직업이 자랑스러워질 정도였습니다. 미술관 컬렉션부터 기획전까지 꼼꼼히 관람하다 보면 많은 시간이 소요되기 때문에 중간에 식사도 하며 휴식을 취해가면서 체력을 잘 분배해야 합니다. 미술관 내에도 핀초스를 파는 카페테리아와 두 개의 파인다이닝 레스토랑이 있으며, 굿즈샵도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을 즐기고 나오면 어느새 하늘의 색채가 서서히 바뀌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술가들이 만들어내는 세계를 경험하다 보면 현실감각에서 점점 멀어지는 법이죠. 해 질 녘의 시간 아주 잠깐 하늘이 분홍빛이었던 순간을 지나 어둠이 햇볕에 강하게 빛나던 구겐하임 미술관을 덮기 시작하자 장대하고 곧게 자신의 자태를 뽐내던 건축물도 온순해집니다. 이 멋진 밤의 풍경까지 감상해야 비로소 미술관 관람이 끝난 것입니다.
TIP: 빌바오에는 구겐하임 이외에도 좋은 미술관이 있습니다. 구겐하임에 비해 알려져 있진 않지만 빌바오미술관은 벨라스케스, 고야, 피카소 등 미술사에 주요 인물들인 바스크 지역 예술가들의 작품을 관람할 수 있는 숨겨진 보석 같은 곳이니 빌바오 미술여행 플랜에 꼭 넣으시기를 바랍니다.
임규향
임규향은 회화과 학부를 졸업하자마자 20대에 미술시장에 뛰어들어 삼청동에서 러브컨템포러리아트 갤러리를 운영하고있는 10년차 갤러리스트다. 다수의 국내외 동시대 작가를 소개하고 있으며 미술시장에서는 이례적으로 온라인 플랫폼을 활용하여 최초로 유튜브 온라인 미술시장을 개척했으며, 저서로는 미술시장에 생생한 이야기를 담은 『Sold Out』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