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새는 짹짹
참새는 코모레비 사이로 종종종 날아갔겠지. 그 얘길 해주는 K를 보고 있자니 나는 ‘카푸네’를 해주고 싶다. ‘사랑하는 이의 머리카락을 부드럽게 손가락으로 쓰다듬어 주는 것’을 일컫는 포르투갈어 낱말이다.
글ㆍ사진 김서령(소설가)
2016.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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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임에도 일이 많아 회사에 나왔던 나는 오후 세 시가 넘자 몸이 근질근질, 더 견딜 수가 없었다. 그래서 웹디자이너 K에게 다가갔다. 그녀는 몹시 바빴다. 나는 건들건들 말을 건넸다. 

 

“이런 날엔 치맥이지.”

 

K가 안경 너머로 눈을 치켜 떴다.

 

“저 덜했는데요.”
“월요일에 해.”
“책임지실 건가요?”
“디자인 업무를 내가 어떻게 책임져?”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을 하면서도 K는 낼름 일어섰다.


한낮의 테헤란로는 끔찍하게 더웠다. 아무렇게나 주차해둔 차들 사이를 헤집으며 걷다가 하마터면 무언가를 밟을 뻔했다. 갈색 실뭉치 같은 뭔가를 내려다보니 참새였다. K가 놀라 반짝 안아들었다. 화단에 옮겨놓았지만 다리를 다친 모양이었다. 전혀 걷질 못했다. K는 비장한 얼굴로 말했다.

 

“병원에 데려가야겠어요! 여기다 뒀다간 금방 굶어죽을 거예요!”

 

K나 나나 오지랖대마왕들이었다. 반드시 참새를 살려내고야 말겠다는 듯 호들갑을 떨며 우리는 참새를 안은 채 테헤란로를 빠르게 걸었다. 하지만 그리 오래 가지는 못했다. 날이 몹시 더웠고 차가운 맥주를 딱 한 잔만이라도 마시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테헤란로에는 치킨집들이 너무 많았다.

 

“딱 한 잔만 마시고 갈까?”
“그러면 치킨이 남을 텐데…… 두 잔까지는 얘도 이해하지 않을까요?”

 

그래서 우리는 치킨집 테이블에 냅킨을 깔고 참새를 뉘였다. 그리고 후라이드치킨 한 마리와 생맥주를 시켰다. 서빙을 하던 종업원이 참새를 보고 너무 놀라 소리를 지르긴 했지만 곧 진정했고 우리는 치킨 접시를 말끔히 비우고서야 자리에서 일어났다. 동물병원에는 K가 가기로 했으므로 나는 택시를 타고 집으로 돌아갔다.

 

월요일, 사무실 문을 열었을 때 짹짹짹짹, 비현실적인 새소리가 들렸다. 참새는 K의 책상 가장 아랫서랍에 누워 있었다. 모이접시와 물통도 두고 수건으로 폭신한 침대를 만들어둔 서랍이었다.

 

“동물병원을 두 곳이나 갔었는데요, 새는 못 본대요.”

 

우리는 별 수 없이 참새를 사무실에서 돌보기 시작했다. 모이도 잘 먹었고 조금씩 움직이기도 했다. 사장이 올 때만 조심하면 되었다. 온다는 귀띔이 오면 서랍을 닫아야만 했다. 행여 새소리를 들킬까봐 음악도 틀고 일부러 산만하게 직원들이 사무실을 뱅뱅 돌았다. 정신이 사나워진 사장은 몇 마디 일상적인 잔소리만 한 후 자리를 떴다. 참새는 점점 나아졌고 점심을 먹고 들어온 어느 날엔 홀랑 사라지기도 했다. 우리는 온 힘을 다해 사무실을 뒤졌고 결국 탕비실 냉장고 뒤에서 참새를 발견했다. 녀석이 나오지 않으려고 해서 몇몇이 달라붙어 냉장고를 끌어내야 했다.

 

얼마가 더 지난 후 K는 출근길에 참새를 데려오지 않았다. 정말 다 나은 것 같았고, 그래서 참새와 오래 인사를 나눈 후 양재동 시민의 숲에다 풀어주었단다. 나는 참새와 인사를 나누었을 K의 얼굴을 떠올리며 혼자 웃었다. 어떤 표정이었을지 알 것 같았다.

 

‘티암’이라는 페르시아어 낱말이 있다. ‘누군가를 처음 만난 순간 반짝이는 눈빛’이라는 뜻이다. 참새를 처음 만났을 때 K의 눈빛이 티암, 바로 그것이었을 것이다. ‘코모레비’라는 일본어 낱말도 있다. ‘나뭇잎 사이로 스며 내리는 햇살’이라는 뜻이다. 참새는 코모레비 사이로 종종종 날아갔겠지. 그 얘길 해주는 K를 보고 있자니 나는 ‘카푸네’를 해주고 싶다. ‘사랑하는 이의 머리카락을 부드럽게 손가락으로 쓰다듬어 주는 것’을 일컫는 포르투갈어 낱말이다.


모두 엘라 프랜시스 샌더스의 책 『마음도 번역이 되나요』에 나오는 낱말들이다. 일러스트레이터이기도 한 작가는 낯설고 아름다운 52가지의 낱말을 아름다운 그림으로 풀어냈다. 하도 예쁜 낱말들이 많아 애인에게 한 번쯤은 꼭 써먹고 싶은 것들로 가득하다. 루시드 폴이 우리말로 번역을 했다.


 

 

마음도 번역이 되나요엘라 프랜시스 샌더스 저/루시드폴 역 | 시공사
우리는 언어를 통해 생각을 표현하고 마음을 전하지만, 안타깝게도 전하려는 마음과 전해지는 마음이 언제나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게다가 우리는 마음을 표현할 적당한 단어를 찾지 못해 자주 헤매기도 한다. 『마음도 번역이 되나요』는 이런 순간들을 세상에 하나뿐인 낱말과 아름다운 일러스트로 그려낸 책이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엘라 프랜시스 샌더스 #마음도 번역이 되나요 #낱말 #그림
2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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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rri

2016.12.07

이 책 읽고 한동안, 나뭇잎 사이 햇빛을 보고 코모레비, 코모레비, 하면서 다녔었어요^^ 소장가치 100%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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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ijiopop

2016.12.07

책 제목이... 궁금하네여.. 번역. 번역. 아아아아 서로의 마음의 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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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서령(소설가)

1974년생. 2003년 『현대문학』으로 등단. 소설집 『작은 토끼야 들어와 편히 쉬어라』, 『어디로 갈까요』와 장편소설 『티타티타』, 그리고 산문집 『우리에겐 일요일이 필요해』를 출간했으며 번역한 책으로 『빨강 머리 앤』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