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슬픈 노래가 아닌 기쁨을 나누는 가수가 되고 싶다.”
박효신은 그의 공연에서 이런 말을 남겼다. 실제로 그와 '슬픔의 정서'는 데뷔때부터 함께 해왔다. <해줄수 없는 일>에서 미어지듯 애절한 톤이 인기를 얻으면서, 그는 줄곧 '아픈 사랑'을 '애원조'로 불러왔다. 게다가 사적으로도 고단했던 사건들을 거치며 평탄치 않은 길을 걸어 오기도 했다. 7집 에서는 무척이나 홀가분하게 '사랑' 노래 대신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놓는다. 돌이켜보면 그를 거쳐간 시련과 풍파는 혹독했지만, 그의 정체성과 보이스를 한결 날렵하게 다듬었다.
오랜 인고를 겪었던 뮤지션은 훈장처럼 빛나는 결과물을 세상에 내놓았다. 가장 큰 변화는 깨끗하고 시원하게 뻗어나가는 '보컬'이다. 초기 작품들의 한스럽고 음울한 톤, 그리고 안으로 먹는 보이스와 과한 기교는 이제는 찾아보기 힘들다. '소몰이'의 풀체스트 기법은 그의 트레이드 마크면서도 그를 가두는 울타리였다. 「눈의 꽃」부터 시작된 창법의 진화는 불안해 보이던 5, 6집을 지나 완전히 정착했다. 두텁고 허스키한 톤을 분쇄하자 다채롭고 고운 입자가 그 자리에 남았다. 뮤지컬을 하면서 정확한 발음과 발성을 익혀 목소리는 더욱 세밀하고 정교하게 손질되기도 했다. 물론, 새로운 스타일은 호불호가 나뉜다. 예전의 모습을 기대한 이에게는 필히 낯선 모습일 것이다. 하지만 성공적인 도전은 더 넓은 활로를 개척한다. 부르는 이가 편해져서 듣는 이의 이물감이 사라진 것도 반갑다.
4년 8개월만에 발매된 신보는 음악적으로나 커리어적으로나 높게 '비상'하는 앨범이다. 「The Dreamer」, 「Beautiful tomorrow」, 「Li-La(리라)」, 「숨」, 「꿈」 등 어느 앨범보다 자신의 삶과 태도에 대해 많이 썼다. 직접 프로듀싱, 작사, 작곡에 참여하면서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자유롭게 활강한다. 이토록 진보적인 발전은 「야생화」의 힘이기도 하다. '싱글'의 성공은 뮤지션으로서 자신감과 확신을 주기에 충분했다.
작곡과 편곡으로 참여한 음악동료 정재일도 그의 날개를 더욱 튼튼하게 만들었다. 정재일은 <바리 abandoned>에서도 엿볼수 있듯이 하나의 스토리를 탄탄하고 체계적으로 구성하는 능력을 가졌다. 또한 음악에서 영적인 경험을 하게 되는 '승화'의 순간을 포착해내는 천부적인 감각도 지녔다. 박효신의 앨범에서도 미니멀한 악기편성에 지루할 사이 없는 촘촘한 코드 워크, 극적인 전개를 이어 나간다. 마치 무대 위의 작품처럼 보컬에 스포트라이트를 주고, 웅장한 스케일을 구현한다. 이는 규격화된 발라드 작법과는 깊이가 다른 개성을 만들어냈다. 더불어 「Shine your light」와 「Wonderland」에서 작곡과 편곡을 맡은 마마스 건의 리더 앤디 플랫츠(Andy Platts)와의 작업도 인상적이다. 몽환적이고 신비로운 사운드 위로 관능적인 보컬을 연출하며 정재일과는 완전히 다른 매력을 발산한다.
7집 작업은 자신을 넘어서는 힘든 싸움이었을 것이다. 그는 데뷔 18년만에 '꿈'과 '내일'에 대해 자유롭게 노래하기 시작했다. '한 번 듣고 잊혀질 그런 노랜 부르지 않아. 대충 갈 거 였으면 인생을 걸지 않아(「Li-La」 중)'라는 굳은 의지가 눈부시다. 아티스트의 '숨'을 틔어준 앨범, 그리고 여기에 담긴 소신 덕분에 그는 더이상 누군가와 비교되거나 분류되지 않고 오롯이 독보적인 존재, '박효신'으로 남게 되었다.
10 김반야(10_ban@naver.com)
이즘
이즘(www.izm.co.kr)은 음악 평론가 임진모를 주축으로 운영되는 대중음악 웹진이다. 2001년 8월에 오픈한 이래로 매주 가요, 팝, 영화음악에 대한 리뷰를 게재해 오고 있다. 초기에는 한국의 ‘올뮤직가이드’를 목표로 데이터베이스 구축에 힘썼으나 지금은 인터뷰와 리뷰 중심의 웹진에 비중을 두고 있다. 풍부한 자료가 구비된 음악 라이브러리와 필자 개개인의 관점이 살아 있는 비평 사이트를 동시에 추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