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매일 말하고 듣는 언어는 마음을 반영하고 세상의 변화를 나타낸다. 직설적인 단어, 된소리와 센 소리가 많아지면 사회가 각박해진 상황임을 드러내고, 한국어 같이 존대어가 발달한 나라에서는 권위에 대한 복종과 위계질서에 대한 민감성이 상대적으로 두드러진다는 연구도 많다. KAL기 추락사고의 원인 중 하나가 기장과 부기장 사이의 위계질서 때문에 기장의 실수를 바로잡지 못해 일어난 사건으로 보았고, 히딩크 감독이 2002년 월드컵 국가대표 감독을 하면서 지시한 것 중 하나가 선수들끼리 이름을 부르도록 한 것이었다는 것은 유명한 일화다.
매일 보고 먹고 있는 음식 또한 그것을 향유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반영하고 있다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동료를 뜻하는 영어 ‘companion’은 빵(pan)을 나누는(com) 사이에서 유래한 말이다. 영어의 어원 중에서 음식에서 유래한 것이 꽤 많듯이, 한국어에서 음식과 관련한 말의 어원과 사용법을 찬찬히 살펴보면 한국인의 문화적 심리 특성을 잘 반영한 것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궁금해지지 않나?
최근 나온 한성우의 『우리 음식의 언어』가 딱 이런 궁금증을 풀어주는 책이었다. 저자는 국문학자로 그 중에서도 음운론과 방언학을 전공했다. 그는 우리 음식의 핵심은 ‘밥’부터 풀기 시작했다. 영어로 ‘rice' 한 단어 뿐이지만 이 단어를 우리는 ‘벼’, ‘쌀’, ‘밥’과 같이 벼가 밥이 되는 상황까지 세분화해서 말한다. 물론 밥은 ‘steamed rice’로 죽은 ‘porridge’로 쓸 수 있다. 이때 밥을 요리한다라고 하지 않고, ‘밥을 짓는다’라는 말을 흔히 쓰는데, 이는 ‘집, 옷, 배, 농사, 이름, 죄’와 같은 목적어로 삼아서 ‘만들다‘보다 훨씬 좁은 의미로 구체적인 행동을 할 때 사용하므로 밥을 짓는 것을 매우 중요한 행위로 본다고 설명한다. 더욱이 밥을 짓고 난 다음에는 ‘뜸을 들이는’ 행위를 해야 하는데, 이 부분을 특정화했다는 것은 밥짓기를 매우 중요하게 보며 세분화한 것이다. 더욱이 ‘뜸들이다’는 말을 밥지을 때 말고도 “왜 이렇게 뜸을 들여.... 답답하게”라고 말하듯이, 뭔가를 기다리고, 지연시키면서 애타하는 것을 묘사할 때 일상적으로 사용한다고 설명하였다. 밥 먹는 행위와 관련한 세세한 것들이 일상생활을 표현하는데 요긴하게 쓰인다.
밥이란 단어는 삶도 정의한다. “밥값을 했다”는 말은 쓸모 있는 행위를 했다는 의미로, “밥심으로 일을 한다”, “그런 짓을 하고도 밥이 넘어가냐”는 말은 밥이 결국 우리 삶의 원동력임을 설명하고 있다. 더욱이 “밥맛 떨어지는 놈”이란 묘사는 같이 있기도 싫은 사람이라 생각만해도 밥맛이 뚝 떨어질 정도로 식욕저하를 불러일으키니 더욱이 함께 밥을 먹기 위해 식탁에 앉기 싫은 감정적 비호감을 가장 분명히 드러내는 말이다. “다음에 밥 한 번 같이 먹자”, “식사 하셨나요?”와 같은 말을 일상적 인사말로 사용하는 민족이니, 더욱이 ‘밥맛이 떨어진다’는 표현은 사실은 가까이 하고 싶지 않다는 극혐의 표현이라 할만하다.
“얘는 우리 식구야”라고 말을 하게 되면 ‘우리’가 된다. 나와 다른 남이 아닌, ‘우리’라는 단어에 대해서 한국인은 각별하다. 집단 안에 속해있을 때 더욱 안심이 되고, 내가 속한 집단과 속하지 않은 집단 사이의 거리를 서양인에 비해 머릴 인식하기 때문에 ‘우리’가 되기 위해 무던 애를 쓰고, 우리에서 배척되지 않기 위해 노력한다. 이때 ‘한 식구’가 되었다는 것은 ‘식구(食口)’란 단어가 ‘밥을 먹는 입’을 뜻하듯 함께 밥 먹는 가족을 뜻한다.
진짜 가족은 바빠서 같이 밥을 먹는 일이 주말에나 가능한 일이지만 이런 현상은 뉴스에도 지금까지 반영이 되어있어서 모 연예인이 새로운 소속사로 옮기게 되면 “000 이번에 A기획사와 계약 XXX와 한솥밥 식구가 되다”는 천편일률적 헤드라인을 보곤 한다. 한 솥으로 한 밥을 나누는 사람을 우리는 같은 식구로 보는 것이다. 이때부터 ‘우리가 남이가’가 된다. 그래서 영업을 하는 사람들은 기를 쓰고 식사자리를 만들려고 하고, 정치나 경제비리 사건 뒤에는 ‘남이 아닌 우리’가 되어버린 사람들의 은밀한 커넥션이 숨어있다. 우리 사회가 투명한 사회가 되지 못하고 있는 아쉬운 점은 사실 이렇게 밥을 함께 먹는 우리 식구를 중요하게 여기는 집단적 심리가 아주 뿌리깊게 박혀있기 때문이다.
이런 심리적 면뿐 아니라, 저자의 전공인 어원과 언어학적 측면도 흥미로운 부분이 많다. ‘비빔밥’이 ‘비빈밥’이 아닌 이유, ‘덮밥’이란 단어가 ‘덮은밥’이나 ‘덧밥’이 더 올바르다는 주장, 빵이면 빵이지 왜 하얀 기본빵을 ‘식(食)빵’이라고 하는지, 소면은 원래 소면(素麵)인데, 그 ‘소’가 하얀 면이 아니라 ‘소’(小)로 인식되었다. 덕분에 거기서 파생되어 중면이란 조금 두꺼운 면이 등장하게 되었는지 아이러니한 유래에 대한 설명도 있다. 또 역사적으로 우리가 아무 생각 없이 사용하고 있는 수많은 음식단어의 유래에 대해서 자세하고 재미있게 설명을 해주고 있는데, 분량만으로 본다면 인류학적이고 언어학적 설명이 훨씬 많은 부분이기는 하다. 예를 들어 1614경 처음 우리 기록에 토마토에 대해 나오는데, 이때에는 남만시(南蠻枾), ‘남쪽 땅에서 온 감’ 이란 뜻으로 감 같아 보이는데 감은 아닌 작물로 묘사했다. 사람들은 ‘일년감’, 혹은 ‘땅감’으로도 불렀다. 그러던 것이 일제 강점기에 일본어 철자인 토마토를 그대로 가져다 쓰면서 서서히 토마토로 불리게 되었다. 토마토가 한국땅을 밟아 처음에는 새로운 한국식 이름을 받았다가 일제 시대에 다시 본래 이름으로 돌아간 역사가 있었다는 재미있는 사연도 알 수 있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 대충 우리가 흔히 쓰는 음식과 관련한 단어들, 그리고 그 쓰임새가 인간의 심리와 연관이 있을 것이라고 짐작은 하고 있었다. 각각의 단어의 유래를 알게 되고, 시간이 지나면서 어떻게 용래가 바뀌고, 단어의 뜻이 바뀌고, 발음과 표기가 조금씩 바뀌었는지를 알 수 있었다. 결국 언어는 쓰는 사람들의 필요에 의해서 규정되는 것이고 이는 국립국어원이나 국정교과서가 지시한다고 거기에 무작정 따르게 되는 것만은 아니었다. 세상이 바뀌고 사람들의 마음이 바뀌는 것을 언어가 따라가고 민감하게 반영을 한다. 특히나 매일 먹는 음식의 언어는 특정한 연령, 특정한 계급이나 사회계층이 아닌 대중 전체를 포괄한다는 측면에서 이 시대를 사는 사람들의 보편적 심리에서 나온 것이라 하겠다.
언어학자 소쉬르의 영향을 받아 라깡의 정신분석이 발전했다는 이론적인 이야기를 굳이 끄집어 내지 않더라도 우리 한국말에 숨어있는 음식에 얽힌 단어의 뜻과 유래, 그리고 쓰임새의 변화만 보더라도 충분히 알 수 있는 일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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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음식의 언어한성우 저 | 어크로스
『음식의 언어』가 서양 음식의 코스를 따라 메뉴를 살폈다면, 이 책은 밥에서부터 국과 반찬을 거쳐 술과 음료에 이르기까지 우리네 밥상 차림을 따랐다. 밥상에 오른 음식의 이름에 담긴 우리의 역사, 한중일 3국의 역학, 삼시세끼를 둘러싼 말의 다양한 용법이 보여주는 오늘날 가장 솔직한 풍경이 펼쳐진다.
하지현(정신과 전문의)
어릴 때부터 무엇이든 읽는 것을 좋아했다. 덕분에 지금은 독서가인지 애장가인지 정체성이 모호해져버린 정신과 의사. 건국대 의대에서 치료하고, 가르치고, 글을 쓰며 지내고 있다. 쓴 책으로는 '심야치유식당', '도시심리학', '소통과 공감'등이 있다.
kenziner
2016.10.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