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의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스페인의 바르셀로나까지, 177일 동안 이어진 여행이었다. 유일한 동반자인 모터사이클과 함께 낯선 공기를 몸으로 느끼며 약 26,000km를 이동했다. 길 위에 머물렀던 6개월 동안 수많은 사람들과 사건들을 지나왔다. 그 기억들이 모여 『모터사이클로 유라시아』 위에 깊은 흔적을 남겼다.
불안하기 때문에 나는 기록한다. 이 글은 <모터사이클>보다는 <불안>에 관한 이야기가 될 것이다. 체력과 운이 되는 한 반짝하고 찬란하게 빛날 이 모터사이클 여행을 기록함으로써 불안을 받아들이려 한다. 물론 이것이 내 욕심이고, 그 욕심조차 언젠가 사라질 것을 알고 있지만. (『모터사이클로 유라시아』 프롤로그 중)
여행은 2015년 6월, 동해항에서 시작됐다. 목적지는 노르웨이의 국립 관광도로. 3년 전 건축 전시에서 봤던 그곳의 풍경을 잊을 수 없어서 떠남을 결심했다.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선택한 모험이었고, 여행이 끝난 후에 무엇을 해야 할지 정해진 바도 없었다. ‘불확실성이 안겨주는 불안’ 속에서 첫 걸음을 뗀 것과 다름없었다. 그러나 홀로 남겨진 시간과 생경한 경험 속에서 많은 것들이 명료해졌다. 오랜 시간 붙들고 있었던 화두들-일과 한계, 이동과 독립, 시민, 글쓰기에 대한 생각들이 차츰 제 자리를 찾아갔다.
『모터사이클로 유라시아』라는 이름의 묵직한 기록을 남긴 주인공 손현은 대학에서 건축학을 공부했다. 졸업 후 플랜트 엔지니어로 회사 생활을 했고, 매거진 의 객원 에디터로 참여하기도 했다. 현재는 미디어 콘텐츠 스타트업 ‘퍼블리(PUBLY)’에서 에디터로 활동하고 있다.
모터사이클 여행의 맛, 활자로 표현하기는 어려워요
회사를 그만두고 여행을 떠나게 된 계기가 있었나요? 책을 읽어 보면, 특별히 회사 생활을 힘들어 하지는 않으셨던 것 같아요.
사실 회사는 그럭저럭 다닐 만 했어요. 제때 월급도 나오고 업무 강도도 세지 않고요. 그런데 1년 정도 회사 생활을 하다 보니까 저한테 맞지 않는 직업이라는 게 느껴졌어요. 그때부터 이직 준비를 했었고요. 그러다가 개인적인 포트폴리오를 ‘소년의 시간은 똑바로 간다’라는 잡지로 만들어서 매거진 측에 보냈는데, 운 좋게 인터뷰 기회를 얻고 객원 에디터로 합류하게 됐어요. 이직을 준비하던 중에 본의 아니게 겸업을 한 셈이 됐죠. 그렇게 일을 하다 보니까 두 가지 일을 병행하는 게 상당히 어렵더라고요.
여행의 직접적인 계기가 된 건 ‘노르웨이 국립 관광도로’에 관한 전시였다고요.
2012년에 보게 된 전시였는데, 제가 생각하던 전환점을 구체적으로 구현하는 방식에 대해서 영감을 줬어요. 그때 광활한 노르웨이 대자연에서 어떤 바이커가 도로를 지나가는 영상을 얼핏 본 것 같은데요. ‘저 사람은 진짜 좋겠다‘, ‘나도 바이크 면허를 따서 노르웨이에 가야겠다’는 생각을 했었어요. 그 즈음에 ‘싱글일 때 마지막으로 누릴 수 있는 취미로 모터사이클을 타자’는 생각도 들었고요.
이전에는 모터사이클을 타본 적이 없으셨어요?
네, 생각해본 적도 별로 없었어요. 그래서 2013년에 면허를 따고 1년 동안 국내에서 연습을 한 후에 2016년 5월에 출발했죠. 노르웨이 국립 관광 도로가 2016년 5월에 완공된다고 해서 그때쯤 출발하려고 생각하고 있었거든요.
책에서 『선과 모터사이클 관리술-가치에 대한 탐구』에 대해 이야기하기도 하셨는데, 그 책을 보시고 영감을 얻으신 줄 알았어요.
책을 읽은 건 전시를 본 이후였어요. 제가 모터사이클을 전혀 모르던 사람이다 보니까 배워야 될 게 정말 많았거든요. 그래서 국내에 출간된 서적을 찾아봤는데 『선과 모터사이클 관리술-가치에 대한 탐구』에 대한 평이 굉장히 좋았어요. 단순히 모터사이클의 기계적인 성능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그걸 통해서 철학적인 의문을 제시하고 명상을 하는 것에 대한 내용들이 있더라고요. 그래서 굉장히 좋았어요.
직접 인용하신 부분만 보고도 ‘모터사이클 여행만의 맛이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맞아요. 그런데 그걸 활자로 표현하기는 조금 더 어려워요. 바람을 맞고 그런 느낌을 구체적으로 쓰면 글이 너무 감성적이 되기도 하고요. 실제로 느끼는 기분은 글로 표현한 것보다 훨씬 좋거든요.
“나는 감상적인 글쓰기를 지양하는 편”이라고 적기도 하셨어요. 이유가 있나요?
그냥 저의 글 쓰는 방식인데요. 사실 저도 감성적인 글을 쓰는 걸 좋아하고, 20대 때는 소위 말하는 감성 에세이 류를 많이 읽었어요. 그런데 (감성적으로 쓴 글이) 당시에는 좋은데 시간이 지나면 부끄러운 글이 된다는 생각을 했어요. 나이가 들수록 남의 눈치를 보게 되는 건지, 아니면 자기 검열을 하는 건지 모르겠어요. 그래서 가급적 팩트 위주로 담되 제 감정을 담아야 될 때는 담는 식으로 쓰게 됐죠. 나중에 할아버지가 되어서도 손주한테 제 이야기를 들려줄 때 부끄럽지 않은, 그런 글로 남기고 싶은 마음이 있는데요. 어떻게 보면 제 욕심이죠.
두 명의 헤드헌터에게 여행 계획을 들려주셨었고, 전혀 다른 반응을 보셨다고요.
여행을 떠나기 1년 전이었어요. 그때는 제가 여행을 갈지 안 갈지 확실하지도 않았고, 구체적으로 이직 준비를 해야겠다고 생각했었어요. 원래는 회사를 옮기는 과정에서 공백기가 있으면 그때 여행을 가려고 했었거든요. 그러던 중에 헤드헌터와 접촉했고 제 계획에 대해서 이야기했어요. 한 분은 남성 컨설턴트였고 다른 한 분은 여성 컨설턴트였는데, 남자 분은 알고 보니 제 고등학교 선배더라고요. 그 분은 훨씬 직설적으로 말씀해주셨어요. ‘그런 여행은 대학생 때 다 누렸어야지 지금 와서 하기에는 너무 늦다, 차라리 회사를 그만두고 지금부터 MBA를 준비해야 된다’고 하시더라고요.
다른 한 분은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시던가요?
제가 지금까지 해왔던 활동들에 대해서 충분히 들으시고 나서 ‘손현 씨는 본인의 브랜드가 있는 것 같으니까 지금 여행을 바로 가도 될 것 같다, 오히려 여행을 다녀온 후에 자신의 뭔가를 만드는 게 나을 수 있다’고 말씀하시더라고요. 너무 입장이 상반돼서 좀 혼란스러운 것도 있었지만, 한편으로는 한 명이라도 저를 지지해 주는 분이 있는 거니까 잊지 않고 기록해 뒀었어요. 나중에 여행하다가 그 생각이 났을 때는 ‘내가 이 여행을 진짜 떠나고 있네’ 싶더라고요.
불안은 결코 사라질 수 없다
여정을 정리해 주실 수 있을까요?
서울에서 동해항으로 가서 블라보스토크로 가는 배를 탔어요. 바이칼 호수까지 육로를 통해서 이동했고요. 동쪽에서 서쪽 방향으로 이동해서 모스크바에 도착했어요. 일단 주요 목적지는 노르웨이였기 때문에, 우선은 노르웨이까지 가겠다는 생각만 있었어요. 그 이후의 구체적인 노선은 생각할 여유가 없었죠. 사실 거기까지 갈지도 불투명했거든요. 세계지도를 보시면 아시겠지만, 노르웨이까지 갈 수 있는 제일 심플한 방법이 러시아를 횡단하는 거였어요. 중국을 거쳐 가는 방법도 있지만 중국은 국제 운전면허가 통용이 안 되거든요. 그래서 많은 여행자들이 러시아를 횡단해서 가죠.
노르웨이에 도착하신 후에도 여행을 계속 하셨죠?
네, 노르웨이까지 간 다음에는 2~3주 간격으로 그 다음 일정을 잡았어요. 만날 수 있는 사람이 있으면 미리 메일을 보내서 약속을 정하고요. 그래서 유럽에서는 왔다 갔다 하면서 친구들 만나고, 그 일정에 맞춰서 이동하는 식으로 노선을 짰어요.
3년 전부터 꿈꿨던 ‘노르웨이 국립 관광 도로’를 직접 달리게 되셨을 때, 느낌이 어떠셨어요? 굉장히 벅찬 감정이 들면서도 동시에 뭔가가 식는 듯한 느낌도 들었을 것 같아요.
네, 그런 것도 있었어요. 러시아를 지나는 데 한 달 반 정도 걸렸고 그 다음에 바로 북유럽을 통과했으니까, 두 달 반 정도 지났을 때 이미 여행의 클라이막스를 한 번 맛 본 셈이었죠. 제가 생각했던 건 일단 노르웨이까지 가는 거였으니까요. 그때까지는 굉장히 좋았어요. 마침 친한 친구도 함께 있었고 경치도 좋았어요. 그런데 노르웨이 여정까지 마치고 나서 친구가 다시 한국으로 돌아갔거든요. 그러면서 다시 혼자 남겨지고 날도 추워지니까, 스웨덴 예테보리에서 심한 슬럼프가 왔었어요. 더 이상 어디를 가야 할지, 뭘 봐야 할지, 별로 생각이 없더라고요. 그래서 하루 정도 쉬면서 서서히 마음을 다잡았죠.
노르웨이를 기점으로 여행의 색깔이 조금 바뀌었겠네요.
그 이후의 범위는 제가 전혀 생각하지 않았던 거였거든요. 그래서 ‘여기에서는 운에 한 번 맡겨보자’라는 생각도 있었고요. 그냥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듯이 가기로 했어요.
책의 시작부터 불안에 대한 이야기가 나와요. 여행을 하는 중간에도 불안을 느낀 순간들이 있으셨나요?
중간 중간 불안한 게 없어지지 않더라고요. 좋았던 순간도 있었고 다시 마음이 불안할 때도 있었어요. 초반에는 앞날이 불투명한 것에 대한 불안이었고요. 그 다음에는 ‘내가 이 여행을 제대로 하고 있는 게 맞는 것인가’라는 스스로에 대한 의구심도 들었어요. 뭔가 답을 찾으러 떠난 여행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내심 실마리를 찾지 않을까 생각했거든요. 조금 평온해진다든지, 퇴사 이후의 커리어를 어떻게 하면 좋을지 생각이 정리된다든지, 그런 기대가 있었죠. 그런데 여행 중에 벌어지는 일들이 많다 보니까 거기에 대해서 깊이 고민할 겨를은 없더라고요.
여행이 끝날 즈음에는 ‘이제 돌아가면 또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하셨을 것 같아요.
다시 현실로 돌아오게 됐을 때는 ‘어떻게 하지?’라는 불안이 당연히 있을 수밖에 없었죠. 그런데 굉장히 심각한 건 아니었어요. 그때의 불안은 제가 인지를 하고 있는 거였거든요. ‘이건 불안한 게 당연해, 그럴 수밖에 없어’라고 생각했고, 불안은 어떤 상태일 뿐이니까 너무 초조해하거나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어요.
“무언가 깨달은 것이 있다면 불안은 결코 사라질 수 없다는 점이다”라고 말씀하신 게 생각나네요. 여행에서 돌아오신 후에도 불안한 요소들은 계속 남아있죠?
네, 불안한 요소들은 늘 있죠.
지금은 어떠세요?
그래도 요즘은 딱히 없고요. 업에 대한 고민은 늘 있을 수밖에 없죠. 책에서 제가 제시한 몇 가지 화두들이 있잖아요. 진짜 성숙된 시민으로서 잘 살 수 있을지, 함께 살 수 있는 사람을 잘 찾을 수 있을지, 그런 것들에 대한 궁금증은 있죠. 그렇지만 불안의 형태는 아니에요. 그럼에도 불안은 늘 있지만 무덤덤해지려고 노력해요.
여행이 남긴 또 다른 수확으로 ‘한계를 알게 된 것, 그러면서 겸손해진 것’이라고 하셨어요. 그 대목에서 이본 쉬나드의 『파도가 칠 때는 서핑을』를 인용하셨고요. 이본 쉬나드는 “절대로 자신의 한계를 넘지 말라”고 이야기했는데, 동의하시나요(웃음)?
네, 전 동의합니다(웃음). 역설적으로, 이본 쉬나드는 누구 못지않게 자신의 한계에 도전하는 기업인이자 등산가잖아요. 저는 한계는 변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한계점은 유동적인 거죠. 한계를 안다는 건 본인이 그 극한까지 노력해봤다는 걸 입증하는 거거든요. 노력도 안 해본 사람은 자신의 한계가 어디인지 모르니까요. 그런데 한편으로는, 사람은 굉장히 연약하기 때문에 모든 걸 잘할 수 있는 건 아니에요. 신체적인 한계도 있고 직업에 대한 한계도 있죠. 다만 그거에 대해서 인정을 하고 자신의 분수를 받아들이는 거죠. 그 단계까지 가려면 어쨌든 부단히 노력해야 된다고 생각해요. 한계를 넘지 말라는 게 현상을 유지하라는 의미가 아닌 것 같아요. 본인의 한계가 어디까지인지 알기 위해서는 어쨌든 노력을 해야 된다는 거죠. 저는 그렇게 생각해요.
여행이 남긴 것은 ‘모르겠다’라는 네 글자
고독에 대한 이야기들도 눈에 띕니다. 서울에서, 시베리아에서, 유럽에서, 장소를 달리하면서 서로 다른 고독을 경험하신 것 같아요.
사실 서울에서는 고독을 느낄 새 없이 개인 약속이 많았던 것 같아요. 예전에 스케줄러를 본 적이 있는데, 한 해에 400~500번 정도 약속을 잡기도 했더라고요. 그렇게 혼자 있는 시간이 없으니까 조금 피로해진 부분도 있었어요. 시베리아를 지날 때는 말 그대로 고독할 수밖에 없었죠. 주변에 아무것도 없을 때가 많았거든요. 여행 초반에는 동행들이 있었지만 나중에는 혼자 다녔는데, 그럴 때 그런 종류의 고독을 느꼈어요. 반대로 유럽은 어딜 가나 사람이 많잖아요. 일주일 정도 헬싱키에 머물게 됐었는데, 그때 공항에서 비행기 기다리면서 고독하다는 느낌이 들더라고요. 주변에는 다 가족이나 연인, 친구와 함께 있는 사람들이니까 ‘여기에서 아는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모두가 이 여행을 멋지다고, 응원한다고 하니 한편으로는 괴롭고 힘든 순간을 아무에게도 내보이지 못했다”고 말씀하셨잖아요. 굉장히 솔직한 고백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속된 말로 표현하면 찌질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제일 저 다운 순간이 아니었나 싶어요. 제가 여행을 하면서 SNS나 블로그에 사진과 글을 올리면 사람들이 좋아요를 누르거나 응원한다는 말을 남겨줬거든요. 물론 고마운 반응이지만, 초반에는 ‘응원해서 어떻게 할 건데?’라는 꼬인 심정도 있었어요. 왜냐하면 저도 힘든 순간이 있었는데 그걸 누구한테 표현해야 할지 몰랐거든요. 가족한테 이야기하면 걱정하실 것 같고, 친구들은 ‘마음 편히 퇴사하고 하고 싶은 일 하면서 뭐가 힘들어?’라는 식으로 말할 수도 있을 것 같았어요. 어떻게 보면 제 덫에 제가 빠져있었던 걸 수도 있죠.
체력적으로만 힘드셨던 건 아닐 것 같아요.
체력적으로는 크게 힘들지 않았어요. 심리적으로 힘든 부분이 있었고, (나의) 나약함에 대해서 인정을 하면 되는데 억지로 센 척 강한 척을 했던 거죠. 제가 스스로를 놓아주지 못했던 것 같아요.
여행은 우리로 하여금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들죠. 이유가 뭘까요?
김연수 소설가가 이런 말을 했던 것 같은데요. 여행지에서는 자신의 사회적인 배경이라든지 지위, 신분을 다 떼고서 지내게 되잖아요. 그러다 보니까 겉으로 보여지는 모습에 대해서 전혀 신경 쓸 필요가 없는 거죠. 오로지 스스로의 내면에만 집중할 수 있게 되고요. 그리고 전혀 다른 새로운 것들과 충돌하면서 그런 자극에 대해서 조금 더 촉수가 민감해지지 않을까요? 저도 여행을 하면서, 서울에 있을 때와는 달리, 마음이 엄청 널뛰고 희로애락의 곡선을 선명해지는 걸 느꼈어요. 그래서 ‘이걸 잘 담아둬야겠다’는 생각을 했었고요.
여행의 마지막 순간에는 “결국 ‘모르겠다’란 네 글자만 남았다”고 적으셨는데요. ‘무엇을 위해 떠났던 거지?’라는 생각은 들지 않으셨어요?
그 상태를 그냥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자는 생각이 더 컸어요. 그리고 저는 스스로 일을 벌이는 경향도 있기 때문에, 당장 돌아가서 할 일들은 많다고 생각했죠. 처음에는 이 이야기를 독립 출판 형식으로 낼 생각이었기 때문에, 책으로 엮어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것만 하기에도 빠듯할 것 같았고요. 여전히 미래는 알 수 없는 거니까 ‘일단 이걸 하고 나면 그 다음에는 또 어떻게 되겠지’라는 생각만 가지고 있었죠. 여행을 떠날 때도 ‘모르겠다’는 생각은 했어요.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알 수 없었으니까요. 그런데 반 년 사이에 꽤 많은 일들이 벌어졌고 그게 저한테 좋은 영향을 주었듯이, 이후에 벌어지는 일들도 뭔가 즐겁고 신나는 것들이 아닐까 라는 기대감을 가질 수 있었어요. 지난 6개월의 경험으로 인한 확신이었죠.
이 여행이 어떤 의미를 가진다고 생각하세요?
여행에 거창한 의미를 부여하는 건 아니고요. 저는 원래 글을 쓰는 걸 좋아했던 사람이고, 여행하는 동안 덕분에 많은 글을 쓸 수 있었어요. 그 전에 일을 할 때나 객원 에디터로 참여하는 동안에는 제 글을 쓰지는 않았거든요. 늘 누군가를 위한 글을 써주고 의뢰 받은 글을 썼죠. 가끔은 ‘내가 글을 쓰기 위해서 이 여행을 떠났던 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 정도로 글을 쓰는 시간이 굉장히 즐거웠고요. 그걸 완결된 형태로 남길 수 있어서 기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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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터사이클로 유라시아손현 저 | 미메시스
30세를 갓 넘긴 한 청년이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6개월 간 모터사이클 여행을 시작한다. 이 책은 여정 중에 기록한 길고 짧은 글들과 사진을 담은 여행기이다. 동해에서 출발해 블라디보스토크를 거쳐 러시아 대륙의 끝없는 지평선과 길 위의 사람들을 만나고, 유럽 곳곳의 나라로 유랑하던 날들의 기록이 꾸밈없이 담겨 있다.
임나리
그저 우리 사는 이야기면 족합니다.
도레미
2016.10.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