값 비싼 마사지라도 받고 나온 듯한 매끈한 피부, 피하 지방은 찾아볼 수 없는 단단한 근육, 그 위로 드러난 팽팽하고 가는 힘줄. 그 남자의 상체도 이랬다면…
빨래 집착남
연애할 때 남자에게는 ‘비누 냄새’가 났다. 잘생겨 보였던 건 아니니 눈은 아니고 코에 콩깍지가 끼었던 것일까? 아기 냄새가 난다고 광고하는 유명 향수라도 뿌리고 온 건 아닌지 남자의 몸에 코를 묻고 그 향긋함의 진원지를 찾아다닌 적도 있다. 순수하고 맑은 이 냄새가 남자가 본래 지니고 있는 체취가 아님을 확신한 곳은 브라질 사우바도르에서였다.
브라질 북동쪽에 위치한 사우바도르는 일 년 내내 뜨거운 열기를 품고 있는 도시이다. 하루에도 몇 차례씩 소나기가 쏟아지고 덥고 습한 구름 덩어리를 늘 간직한 사우바도르의 축축한 기운은 공항에 도착한 순간부터 전해졌다. 우리가 살던 집은 일명 ‘핑크하우스’로 이 동네에서 유일하게 핑크색 페인트가 칠해져 있다. 2층 베란다에서 멀리뛰기 선수가 도약하면 물에 빠질 확률이 99.9% 정도로 바다가 코앞에 있다.
날씨가 의복 생활에 미치는 영향은 사우바도르에서도 어김없이 드러났다. 대부분의 남자는 상의를 벗어 던진 체 골반까지 내려오는 수영복 바지를 입고 브라질 태생의 하바이나스 쪼리(ぞうり, 草履)를 신고 있다. 종잡을 수 없는 거친 비바람을 피하고자 스코틀랜드 사람들이 후드티(hoody)를 입는 것처럼 이 땅에 살려면 날씨에 맞는 복장을 따라야 한다. 하지만 남자는 상의 탈의만은 할 수 없다며 하루에 세 차례씩 땀에 찌든 옷을 갈아입는다.
남자가 체취에 집착하는 사람인 걸 결혼하고 나서야 알았다. 가방에 예비로 티셔츠 한두 장을 넣어 다니며 조금이라도 땀 냄새가 배면 지하철 화장실에 들어가서 갈아입고 나왔다. 유난스러운 그 행동은 상대방에게 미안해서가 아니라 자신이 그 냄새를 견디지 못해서였다. 빨래에 집착한 이유도 그 때문이다. 세제와 섬유유연제를 한꺼번에 넣어버리는 나와 달리 세탁할 때 한 번, 헹굴 때 또 한 번 섬유유연제를 붓는다. 그리고 말린 낙엽처럼 태양볕에 옷이 바스락거릴 때까지 건조해야 성이 찬다. 손안에 쥔 옷이 사각사각 소리를 내며 부서지고 태양의 열기에 지친 옷이 백기를 든 것 마냥 하얗게 바래져 있어야 그의 기준에서 잘 말린 빨래다. 남자의 부모님도 그런 번거로운 과정을 거쳐 빨래를 하고 있었으니 그의 총각 때 나던 냄새의 근원지가 어디였는지 짐작이 간다.
내가 탐했던 그 남자의 체취는 결혼 후 점점 옅어지더니 사우바도르에 도착한 뒤에는 온데간데 없어졌다. 비릿하고 쾨쾨한 냄새가 바다에서 불어오는 습한 바람에 그대로 노출되어 더욱 강력하고 자극적인 내음으로 코의 감각을 마비시킨다. 남자는 그동안 자신의 냄새를 잘도 감추고 살아왔다.
여자 : “사람의 체취가 어떻게 같이 사는 사람으로 인해서 바뀔 수 있어?”
대충 말랐다 싶으면 빨래를 걷는 내게 남자는 자신의 몸에서 냄새가 나는 이유를 ‘같이 사는 여자’ 때문이라고 말했다. 체취란 고작 섬유유연제를 언제 넣고, 빨래를 얼마나 바짝 말리는지에 따라 결정되는 게 아니다. 그렇다면 나 역시 같은 냄새가 풍겨야 하는데 한국에서도 지구 반대편 사우바도르에서도 나의 체취는 그게 아니었으니 말이다. 이 난관을 떨칠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은 비교적 간단하다. 상의탈의!
바닷가에서 빨래 말리기가 얼마나 힘든지 나도 안다. 하지만 내가 바라는 건 좀 더 긴 건조 시간.
정리벽도 심하면 정신질환
브라질 최초의 수도이자 흑인 노예의 슬픔이 담긴 도시 그리고 그들 영혼의 안식처 사우바도르. 이 도시를 생각하면 ‘군살 하나 없이 탄력 넘치는 검은색 피부’를 한껏 드러낸 ‘남성들의 반나체’가 먼저 떠오른다. 아, 부끄럽다. 복숭아마냥 달아오른 내 볼이 민망하여 외면하고 싶어도 이 도시의 풍경을 완성하기 위해서는 그들의 영혼의 음료, 까이삐리냐(사탕수수를 증류한 술 까샤사를 베이스로 한 칵테일)를 손에 든 반나체의 구릿빛 피부가 함께 있어야 하니 계속 부끄럽기로 한다.
아침에 입은 옷은 점심을 먹기도 전에 흠뻑 젖는다. 땀구멍에서는 어제 마신 까이삐린야의 비릿한 맛이 피부 위로 몽글몽글 피어올랐는지 빨래를 해도 쾨쾨한 냄새가 가시질 않는다. 지구와 태양 사이를 좀 더 끌어당겨 놓은 듯한 남국의 햇살과 검은 대서양의 기운을 가득 품은 습한 공기 안에서 살려면 그들처럼 벗는 편이 상쾌하다. 뜨거운 태양 아래 내 몸을 빨래처럼 널어서 정체를 알 수 없는 그 냄새를 말려버리고 싶지만 그러기엔 고도비만인 내 몸이 부끄러워 이내 포기하고 만다.
하루 세 번씩 젖은 옷을 갈아입다 보니 빨래에 치여 쓰러질 판이다. 좁은 화장실에 주저앉아 손빨래를 할 때마다 XY 염색체가 갖는 냄새의 원천에 대해 고민했는데 내 악취의 이유는 다른 곳에 있었다.
믿기 힘들겠지만 믿어주길 바란다. 내 체취는 그 여자와 함께 살면서 변했다. 부모와 함께 살 때는 소년의 고운 향기가 나던 몸인데 한 가정을 이루면서 향수를 써야만 가려지는 총각 냄새가 나기 시작한 것이다. 아이러니다. 총각 때는 나지 않던 그 냄새가 유부남이 돼서야 나기 시작했으니 그 여자 탓을 할 수밖에.
정리벽이 심한 그 여자는 눈앞의 어수선함을 참지 못한다. 그리고 빨래가 바짝 마르기도 전에 개어 버린다는 사실을 그날에서야 알았다. 빨래를 개고 있는 그녀 옆에 앉아 옷을 만지는 순간 반건조 오징어에서나 느껴질 법한 축축함이 손에 묻어났다. ‘너 지금껏 빨래를 이런 식으로 거뒀던 거야?’라는 나의 질문에 그 여자는 ‘더 널어 봐야 마르지도 않는데 이 정도면 되지 않았나. 내가 정한 건조 시간은 이미 지났으니 빨래 상태가 어찌 되었건 정리하는 게 더 중요한 목표다.’라고 답한다. 빌어먹을.
나는 유독 땀을 많이 흘린다. 그리고 바짝 마른 옷이 아니면 내가 흘린 땀과 옷에 남은 젖은 냄새가 만나 묘한 쉰내를 만들어 낸다. 비릿한 체취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섬유유연제를 넣고 잘 빨아야 하는 내 빨래법은 ‘여행 중에는 그런 건 필요 없다’며 그 여자에게 묵살당했다. 아쉬운 대로 잘 말리면 되겠지 생각했는데 아뿔싸! 그 여자는 빨래의 건조 상태가 아니라 자신이 정한 건조 시간에 맞춰 빨래를 걷어야 하는 사람임을 깜빡했다. 한시라도 빨리 정리하는 것과 마를 때까지 기다다렸다 개는 것 중 뭣이 중한가. 정신질환 수준의 지독한 정리벽 때문에 나의 체취가 변한 것이니 나는 또다시 그 여자 탓을 할 수밖에.
백종민/김은덕
두 사람은 늘 함께 하는 부부작가이다. 파리, 뉴욕, 런던, 도쿄, 타이베이 등 누구나 한 번쯤 꿈꾸는 도시를 찾아다니며 한 달씩 머무는 삶을 살고 있고 여행자인 듯, 생활자인 듯한 이야기를 담아 『한 달에 한 도시』 시리즈를 썼다. 끊임없이 글을 쓰면서 일상을 여행하듯이 산다.
상댕
2016.08.25
iuiu22
2016.08.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