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가 왜 이토록 어려울까
전반적으로 현재는 인류 역사상 가장 풍요롭고 가장 안전한 시대입니다. 그런데 엄마들은 아이 키우기를 어려워합니다. 가난했던 옛날, 너 냇 명씩 자식을 낳아 기르던 때보다 더 어려워합니다. 물론 갈수록 심해져 가는 양극화의 문제가 있고, 계층 이동의 길이 봉쇄된 정의롭지 못한 사회의 문제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문제가 해결된다고 해도 여전히 육아는 부담스러울 것입니다. 저는 서민 교수와 함께 쓴 『서민과 닥터 강이 똑똑한 처방전을 드립니다』라는 책의 에필로그에서 육아가 그토록 어려운 일이 된 이유를 세 가지로 정리해 보았습니다.
첫째, 우리는 미래를 예측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당장 칼슘제를 먹이면 아이 키가 더 자랄 수 있고, 임신 몇 개월에 모차르트의 음악을 들으면 IQ가 향상되고, 뭘 먹이면, 몇 시에 재우면, 뭘 보여주면 더 건강해지고, 더 잘 자라고, 더 똑똑해진다고 생각합니다. 모든 것을 예측할 수 있다는 생각의 주범은 두말할 것도 없이 인터넷을 통한 정보의 범람입니다. 이러한 정보의 99%는 근거가 부족하거나, 뭔가 딴 뜻이 있거나, 심지어 해롭습니다. 그런데 그 피해는 심각합니다. 마치 내가 뭔가를 잘못하면 아이의 미래를 망치기라도 할 것처럼 생각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육아가 부담스러울 수 밖에 없습니다.
둘째, 우리는 아이를 최고로 키워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다 보니 육아가 일등주의에 물든 경쟁판이 되어버렸습니다. 아이가 키도 제일 크고, 머리도 제일 좋고, 소변도 제일 빨리 가리고, 달리기도 제일 잘해야 합니다. 뭐라도 조금 처지면 부모 탓이라고 생각합니다. 경쟁은 그렇지 않아도 불쾌하고 피곤한 것입니다. 느긋하고 행복해야 할 육아와 절대로 양립할 수 없는 것이 있다면 비교와 경쟁입니다.
셋째, 우리는 뭔가를 하는 것이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 낫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사고방식을 Do-Somethingism이라고 합니다. 우리 인간은 수만 년 동안 진화를 거듭한 결과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수백 세대를 거치며 환경에 가장 잘 적응한 존재가 우리 아이들입니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사실상 완벽에 가까운 존재입니다. 아무 것도 하지 않는 편이 공연히 불안에 사로잡혀 섣불리 뭔가를 시도하는 것보다 더 나은 경우가 많습니다. 특히 아이가 아프기라도 하면 당장 뭔가를 해야 할 것 같은 심리에 사로잡히게 되는데 바로 이때 의사를 만나야 합니다. 믿을 만한 의사가 기다리자고 하면 기다릴 줄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왜 이런 사고방식을 갖게 됐을까?
그런데, 이렇게 정리해 놓고 보니 아이를 키우는 부모의 내부적인 요인만 언급한 것처럼 느껴집니다. 왜 우리는 이런 사고방식을 갖게 되었나, 외부적인 요인은 없을까 둘러보았습니다. 두 가지가 문제입니다.
첫째는 미신입니다. 점을 치고 굿을 하는 것만 미신이 아닙니다. 비과학적이면서 끈질긴 믿음은 모두 미신입니다. 미신은 인간의 원형적인 심리를 건드리기 때문에 때로는 상식처럼 느껴집니다. 얼마 전 아이를 키우는 부모님들과 대화하면서 아직도 주사를 주는 병원이 있다는 말을 듣고 깜짝 놀랐습니다. 우리는 왜 주사를 맞으려는 것일까요? ‘뿌린 만큼 거둔다’, 또는 ‘고생 끝에 낙이 온다’는 믿음 때문입니다. 아이가 엉덩이가 뻐근할 정도로 아픈 주사를 맞으면 엄청 웁니다. 고통을 겪은 거죠. 부모는 아이가 나름 큰 대가를 치렀으니 그만큼 좋은 결과가 오지 않겠나 생각합니다. 미신이죠. 흔한 병으로 소아과를 찾는 어린이에게 주사를 주는 것은 아무런 효과도 없습니다(어른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무런 효과도 없는데 아이를 아프게 한다면 아동학대입니다.
둘째는 상업주의입니다. 미신과 달리 이놈은 매우 조직적이고 교묘합니다. 트렌드를 만들고(피자 집에서 청량음료를 무제한으로 마시면서 생일파티를 해야 세련된 거고, 새로 나온 핸드폰 정도는 들고 다녀야 쿨한 거고), 경쟁을 부추기고(아직도 아이 키 때문에 걱정이세요? 옆집 아이들은 다 이걸 먹는데…), 유명인과 캐릭터를 동원하고(어린이용 건강식품을 보세요), 스스럼 없이 과학의 탈을 쓰기도 합니다(때로는 저도 여태 이런 걸 모르고 있었나 하고 찾아 보고는 역시나 하고 씁쓸하게 고개를 젓는 일이 있습니다).
요즘은 누구나 바쁘지요. 여성들도 모두 직업을 갖고 밖에서 일합니다. 집에 들어오면 살림도 하지요. 밤에 아이가 깨서 보채도 아빠보다는 엄마가 일어납니다. 직장에 가도, 집에 들어와도 ‘노오력’을 강요당합니다. 몸과 마음이 지쳐있는데 아이는 정말 잘 키우고 싶습니다. 자신이 너무 바빠서 아이에게 충분히 신경을 써주지 못하는 게 아닌가 하는 미안함도 있습니다. 간절하게 바라는 것이 있는데 정작 엄마 아빠는 전문지식도 없고 여기저기 찾아 다니며 그런 지식을 습득할 여유도, 시간도 없습니다. 세상에 제일 속이기 쉬운 사람이 누군지 아세요? 뭔가를 간절히 바라는 사람이랍니다. 원하는 것을 주겠다는 약속만 해주면 바로 속아 넘어갑니다. 그러니 미신과 상업주의를 이길 수 없습니다.
자연요법, 듣기는 참 좋습니다만
<채널예스>에 육아 칼럼을 쓰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제 목표는 단순합니다. 엄마들, 아빠들이 바쁜 와중에도 미신과 상업주의에 속아 넘어가지 않도록 올바른 정보를 제공하는 것입니다. 앞서 말씀 드린 세 가지 함정에 빠지지 않도록 정신교육(?)도 시켜드리겠습니다. 사실 아이를 키우는 일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습니다. 많은 지식이 필요한 것도 아닙니다. 관심과 정성을 갖고 몇 가지 원칙과 기본만 지키면 됩니다. 자기 자식에게 관심과 정성을 기울이지 않는 사람이 얼마나 있겠습니까? 관심과 정성은 이미 갖고 계시고, 기본과 원칙은 제가 알려드리겠습니다.
지면이 한정되어 있으니 긴 이야기는 못하고 최근 들은 이야기 한 가지만 들려드리고자 합니다. 요즘 약을 쓰지 않고 아기를 키운다는, 소위 ‘자연주의 육아’라는 콘셉트가 유행하는 모양입니다. 두 말할 것도 없이 항생제 남용 때문에 나온 이야기겠지요. 그래서 열이 나도 약을 쓰지 않고 버티는 엄마들이 있다고 합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매우 어리석은 행동입니다. 혹시 감기나 다른 병으로 열이 나보신 적이 있나요? 조금만 열이 올라도 몹시 춥고 기분이 나쁘지 않던가요? 의욕이 생기지 않고 눕고 싶기만 하죠. 고열이 되면 온몸이 떨리고 심하면 혼돈 상태에 빠집니다. 어린이들은 토하거나 열성 경련을 일으키기도 하죠.
해열제는 항생제와는 다릅니다. 항생제는 남용하면 내성균이 생기고 사회적으로 문제가 될 수 있지만(내성균이 몸 속에 남아있다가 다른 병을 일으키는 것이 아닙니다), 해열제는 그런 일이 없지요. 해열제는 진통제로도 쓰이는데 고령이라 관절이 아프거나 기타 만성 통증이 있어 계속 써야 하는 경우라면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어린이가 열이 나서 하루 이틀 쓰는 건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어떤 약을 언제, 어떻게 쓰는 것이 나쁘다’고 해야지 무조건 ‘약을 쓰는 것은 나쁘다’는 단순한 생각은 흑백논리에 불과합니다. 하나 물어 보겠습니다. 칼은 나쁜가요, 좋은가요? 강도가 쓰면 나쁘고 의사가 쓰면 좋겠지요. 칼 자체는 나쁜 것도 좋은 것도 아닙니다. 약도 마찬가지입니다. 맞는 증상에 맞게 쓰면 좋은 것이고, 써서는 안 되는 곳에 함부로 쓰면 나쁜 것이지요.
어린이가 아파서 열이 펄펄 끓는데 약을 쓰면 나쁘다고 해열제를 주지 않는 것은 차라리 아동학대에 가까운 일입니다. 그런다고 면역력이 좋아지거나, 병에 덜 걸리거나, 어떤 식으로든 병에 대처하는 능력이 좋아진다는 증거는 전혀 없습니다. 열성 경련이라도 일으킨다면 문제가 아주 복잡해집니다. 혹시 땀을 흘리면 빨리 좋아진다고 이불로 꽁꽁 싸놓기까지 한다면 열 때문에 못 먹어 탈수된 아이들은 자칫 뇌 손상을 입을 수도 있습니다.
열이 나면 이렇게 하세요. 1) 해열제를 먹이세요. 2) 잘 떨어지지 않으면 다른 종류의 해열제로 바꾸어 봅니다. 3) 그래도 안 떨어지면 옷을 벗기고 따뜻한 물(찬 물이나 알코올을 써서는 안 됩니다)로 몸을 닦아 줍니다. 4) 아이가 많이 힘들어 보이거나 다른 증상(심한 기침, 구토, 설사 등)을 보인다면 가까운 소아청소년과를 찾으세요.
하나 더, 어린이용 해열제는 대개 맛이 좋습니다. 아이들 손에 들어가면 몽땅 마셔버리는 일이 있습니다. 그렇게 한꺼번에 과량을 복용하면 위험합니다. 하지만 정해진 용법에 맞게, 정해진 용량을 복용하면 아주 안전한 약입니다. 아이가 열이 나면 해열제를 주세요. 불쌍하지도 않습니까? 자연요법, 듣기는 참 좋습니다만 자칫 애 잡을까 겁이 납니다.
강병철(소아청소년과 전문의, 꿈꿀자유 서울의학서적 대표)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같은 대학에서 소아과 전문의가 되었다. 2005년 영국 왕립소아과학회의 ‘베이직 스페셜리스트Basic Specialist’ 자격을 취득했다. 현재 캐나다 밴쿠버에 거주하며 번역가이자 출판인으로 살고 있다. 도서출판 꿈꿀자유 서울의학서적의 대표이기도 하다. 옮긴 책으로 《원전, 죽음의 유혹》《살인단백질 이야기》《사랑하는 사람이 정신질환을 앓고 있을 때》《존스 홉킨스도 위험한 병원이었다》《제약회사들은 어떻게 우리 주머니를 털었나?》 등이 있다.
joeah82
2016.07.13
여러다단계에서 애들아프다고 해열제 항생제 쓰지말고 자사영양제로 면역력을키우라고 한다고들었네요ㅎ
jijiopop
2016.07.11
spacemom
2016.07.07
더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