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쓴이가 지금 읽고 있는, 혹은 덮어두고 있는 문학 작품들.
2016년 5월 17일. 여느 날과 다름없는 아침이었다. 회사에서 도어 투 도어 기준으로 1시 30분이나 멀리 떨어져 있는 곳에서 살고 있는 나의 기상시간은 새벽 5시 40분이었다. 내가 일어나자마자 하는 일은 한 포털사이트에 ‘예스24’를 검색하는 것. 옆에 있는 휴대폰을 부여잡고 눈을 비비며, 검색창에 ‘예스’까지 쳐놓고, ‘혹시나?’하는 마음이 들었다. 나는 ‘예스’를 지우고, 다른 단어를 검색했다. ‘한강 맨부커 인터내셔널’.
시간을 되돌려보자. 나는 2016년 5월 초순에 만난 편집자와 모 일간지 기자에게 물었다. “이번엔 옌롄커가 타겠죠?”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가장 유력하지 않나? 카프카도 받았잖아요.” 그렇다. 우리는 애타게 맨부커 인터내셔널을 옌롄커의 『사서』가 타길 바라고 있었다. 그를 좋아하는 모임이기도 했고, 『사서』의 작품성도 워낙 좋았다. 그러나 못내 우리 모두에게 말 못할 사정이 있었을 테다. 어쨌거나 옌롄커를 좋아하는 만큼, 아니 그보다 더 한강 작품도 좋아했다. 그 이야기를 끝내자마자 서로 좋아하는 한강 소설가의 작품을 두서너 개씩 읊어대기 시작했으니까. 나는 『내 여자의 열매』를, 편집자는 『희랍어 시간』을, 기자는 『소년이 온다』를 가장 좋아하는 작품으로 꼽으며 훈훈하게 점심을 끝냈다. 그리고 2016년 5월 16일 밤 11시 40분까지 까마득하게 이 대화들을 잊고 있었다.
다시 돌아오자. 새벽 5시 40분. ‘한강 맨부커 인터내셔널’ 검색창에는 아직 아무것도 뜨지 않았다. 어쩐지 아쉬우면서도 초조했다. 빨리 씻고 돌아왔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다시 검색했다. 그리고 올라온 연합 1보. 시각은 새벽 5시 45분이었다. “한강, 한국인 최초 맨부커상 수상(1보)”. 당장 빨리 출근이라는 경고창이 눈앞에 떴다.
평소보다 일찍 출근했으나 마음이 다급했다. 종일 컴퓨터 앞을 떠날 수가 없었다. 실시간으로 업데이트되는 체크가 나의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날 모든 문의에 대한 답변을 마치니 저녁 7시가 다 되어 가고 있었다. 하지만 당분간은 계속 일찍 출근해야 한다는 무거운 짐을 안고, 적진을 함부로 건드렸다가 후퇴하는 장군처럼 퇴근했다. 그리고 약 1주일 내내 나의 예스24 PC 창에는 『채식주의자』가 계속 메인으로 떠 있었다.
『채식주의자』가 많이 팔리기 시작하면서 흥미로웠던 부분은 한국소설 전체의 판매량이 눈에 보일 정도로 올라갔다는 점이었다. 아무래도 2016년 상반기에 정유정 작가, 이기호 작가 등이 신작들로 독자들의 눈길을 끈 덕분도 있겠지만, 맨부커 인터내셔널상 수상 이후인 5월 17일부터 팔리기 시작한 한국소설 부수를 보니 괄목할 만했다. 바야흐로 한국소설이 이렇게 잘 팔리는 순간의 중심에서 내가 마침 서점에 있다니. 신기하고 행복했다.
서점에 다니는 대부분의 사람이 그렇듯 내가 회사에 입사하게 된 가장 큰 계기는 책이었다. 좀 더 자세히 말하자면 내 입사 최대의 동기는 문학이었다. 소설과 시가 가르쳐준 세계는 심심하기 그지 없는 시골에서 나고 자란 나에겐 그 무엇도 바꿀 수 없는 직간접 경험이었다. 그 경험을 더 키우고 싶고, 내 이야기와 내 주변부의 세계를 전달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이런 마음에서 시작된 문학 읽기는 부족하지만, 지금도 여전히 진행 중에 있다.
사람을 만나는 업무를 하는 나는 가끔씩 질문을 듣는다. 질문의 형태는 다양하다. “어떤 소설 좋아하세요?”, “어떤 작가 좋아하세요?”, “한 달에 책 몇 권 읽으세요?” 여기까지는 무난하고 으레 국문학과를 졸업해 서점에서 일하고 있는 나에게 물을만한 인사치레 같은 질문이다. 하지만 더 나아간 질문이 있다. “거참, 요즘 한국 문학을 누가 읽어요?” 술자리였는데도 취기가 확 달아나는 말이었다. 그때 나는 상당히 수줍지만, 속에 원망을 품으며 대답했다. “저요.”
한국 문학을 읽지 않는 사람들은 많다. 당연히 누구나 문학을 좋아하는 건 아니다. 더구나 한국문학을 읽는 사람들은 더욱 적다. 이건 넓게 ‘책’으로 봐도 통용되는 말이다. 누군가에겐 대작이 또 다른 누군가에겐 그저 그런 작품일수도 있고, 누군가는 한 번 읽고 덮은 책이 나에겐 두고두고 가지고 갈 언어들이 되기도 한다. 일례로 5년 전, 어학연수를 마칠 즈음 좋아하는 소설가의 신작이 발간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공항에서 내리자마자 허겁지겁 서점으로 달려갔었다. 허겁지겁 그 장편소설을 다 읽고 눈물을 뚝뚝 흘리며 울었다. 한 지인은 그 소설을 두고 혹평했지만, 아직도 내게는 최고다. 신기하게도 문학은 이런 일이 비일비재하다. 누군가에게는 기억조차 나지 않는 소설이 내 인생의 소설이 되곤 한다.
그래서 나는 소설과 시를 계속 읽는다. 중간이 채 되기도 전에 지칠 수도 있지만, - 사실 그런적 많다.- 괜찮다. 영업비밀 하나를 살짝 알려주자면, 책은 덮어두고 다시 읽으면 더 좋을 때가 많다. “문학은 바로 읽을 게 아니다 보니 언제 시간이 날지 몰라서 안사요.”라는 말을 하는 사람에겐 무조건 사라곤 말해준다. 책을 읽을 시간은 갑자기 찾아오니까. 그리고 그 언어들이 가져다 줄, 작가가 써내려간 세계를 만나는 경험을 한다는 건 정말이지 멋진 일이니까.
『채식주의자』가 많이 팔리고, 더불어 한강 선생님의 다른 작품들인 『소년이 온다』, 『흰』도 많이 팔렸다. 거기에 더 나아가 많은 독자들이 잊고 있었던 한국소설이나 한국 시를 두어 편씩 더 사고 있다. 다행이었다. 많은 독자들에게서 한국문학이 영영 잊혀진 것 같다는 생각을 가끔 하곤 했으니 더욱 기뻤다. 아직 한국문학을 읽으려는 독자들이 존재하고 있다는 징후 같았다. 『채식주의자』의 수상 덕분이어도 좋고, 다른 2016년 기대작 덕분이어도 좋다. 심지어 영화 원작소설 때문이어도 좋다. 많은 사람들이 화제작을 사면서 기왕에 한 권 더 사면서 우연치 않게 좋은 소설들을, 시들을 발견했으면 좋겠다. 많은 작품들이 오랫동안 기다리고 있었다. 지금 그 책을 고른 한 명의 인생을, 혹은 어떤 주변부를 조용히, 찬찬히, 그러나 지치지 않고 오래 밝히기 위해.
김유리(문학 MD)
드물고 어려운 고귀한 것 때문에 이렇게 살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