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미야코 블루를 찾아서
PHOTOGRAPH : AKIHIRO SHIBATA/FOTOLIA
“모래가 부드러워서 맨발로 걷는 게 편할 수도 있어요.” 가이드 다케우치(竹內)의 말대로다. 한걸음 내디딜 때마다 푹푹 가라앉는 느낌이라 차라리 신발을 벗는 편이 나을 듯싶다. 양옆으로 열대식물이 마구 자란 사구를 오르는 동안 이 길이 해변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확신은 전혀 들지 않는다. 그러다 어느 순간 문득, 좁은 언덕길 너머로 찰랑거리는 바다가 눈에 들어온다. 처음에는 잔에 담긴 물처럼 일부만 보이다가 내리막이 끝나갈 무렵 수평선이 넓어지더니 탁 트인 바다가 품을 내준다. 이곳을 ‘모래 산’이라는 뜻의 스나야마 비치라고 부르는 이유다.
산호초가 서식하는 에메랄드빛 바다는 오키나와에서 단연 가장 큰 자랑거리. 그중에서도 미야코지마는 아름다운 해변에 대한 자부심이 유별나다. 오죽하면 자기네 바다색을 가리켜 ‘미야코 블루’라고 할까. 트립어드바이저가 선정한 2016년 트래블러스 초이스 어워드(Travelers’ Choice Award)에서 ‘일본 최고의 해변 10곳’에 미야코지마의 해변 3곳이 이름을 올렸으니(몇 년째 변함없이) 터무니없는 자신감은 아니다. 3위를 차지한 스나야마 비치는 청색과 옥색이 뒤섞인 물빛도 아름답고, 하얀 거품이 밀려드는 고운 백사장, 프라이빗 비치라고 해도 좋을 아담한 규모에 한쪽에 자리 잡은 아치 모양의 바위가 어우러져 그림 같은 풍경을 선사한다. 해수욕 시즌은 3월 말부터 10월 말까지.
2. 현지인이 사랑하는 동네 밥집 투어
PHOTOGRAPH : PYO YOUNG-SO
세월의 흔적이 역력한 길모퉁이 단층 건물. 일본어를 모른다면 여간해선 이곳이 식당이라는 사실을 알아채기 어렵다. 흰색 페인트 칠은 여기저기 때가 묻었고, 비 막이용으로 처마처럼 튀어나온 건물 윗부분에 역시 흰색 페인트로 쓴 ‘스무바리(すむばり)’라는 이름이 가게 간판이다. 물론, 안쪽은 전혀 다른 느낌이다. 인근 주민이 언제든 미닫이문을 드르륵 열고 들어와 “소바 1그릇!”을 외쳐도 전혀 어색하지 않은, 수수하고 정갈한 동네 식당. 특이점이라면 주인아저씨가 직접 잡은 문어가 이곳의 주요 식자재라는 사실 정도다. 삶은 문어와 갖은 채소를 얹은 덮밥 타코동, 문어 볶음을 얹은 타코이타 메소바(タコ炒めそば)가 인기 메뉴다. 미야코소바도 맛볼 수 있다. 미야코 주민은 오키나와소바와 엄연히 다르다고 주장하지만, 납작 면이냐 동그란 면이냐, 국수 위에 고명이냐 고명 위에 국수냐의 차이일 뿐 거의 비슷하다(고 솔직한 현지인은 말한다).
또 다른 식당 미나아이야(皆愛屋)는 아는 사람만 아는 맛집. 오키나와의 주식 중 하나인 두부 요리가 전문이다. 겉보기엔 우리나라에서 먹는 순두부와 다를 바 없지만, 간이 기막히게 밴 진한 국물과 부들부들한 순두부를 한 숟가락 떠 넘기면 눈이 번쩍 떠진다. 요령 부리지 않고 정면 승부하는 맛이랄까. 일반 순두부와 순두부 국수 중 선택할 수 있고, 양이 부족하다 싶을 땐 두부로 만든 주먹밥을 곁들이면 된다.
*스무바리 타코동 정식 860엔, 10am~7pm, 부정기 휴무, 81 980 72 5813, sumbari.com
*미나아이야 요시 두부 정식 500엔부터, 11am~, 부정기 휴무, 81 980 76 6778, 宮古島市下地字與那覇1450-62.
3. 물 좋은 고장의 술맛
PHOTOGRAPH : OKINAWA CONVENTION & VISITORS BUREAU
오키나와의 양조 기술은 본토가 아니라 타이에서 전래됐다. 일본의 보통 소주와 달리 안남미로 만든 아와모리(泡盛)가 탄생한 것도 그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일본 소주는 황누룩균을 사용해 추운 겨울에 주조하지만, 아와모리는 수분이 적은 안남미 발효에 효과적이고 고온에 강한 흑누룩균을 사용한다. 새로 담근 사케를 ‘신슈(新酒)’라 하여 특별하게 여기는 것과 달리, 아와모리는 무조건 ‘구슈(古酒, 3년 이상 숙성시킨 소주)’를 최고로 치는 것도 다른 점. 숙성 기간과 희석 비율에 따라 종류가 나뉘는데, 원액은 44도, 가장 흔한 것이 30도다.
“아와모리는 일반 소주보다 단맛이 풍부해요. 숙성 기간이 길어질수록 단 향이 진해져 가치가 높아지죠.” 다라가와(多良川) 양조장의 안내를 맡은 쓰다(津田)가 시음을 권하며 설명한다. 미야코지마 남쪽, 물이 좋기로 유명한 마을 구스쿠베에 위치한 다라가와 양조장은 섬 내 6곳의 아와모리 양조장 중 하나로, 유일하게 일반인에게 개방하는 곳이기도 하다. 풍부한 지하수, 숲과 바다로 둘러싸인 자연환경, 천연 동굴 저장고가 술맛의 비결. 양조장 견학을 신청하면 양조 공장과 동굴 저장고를 둘러본 뒤 30년 동안 꾸준히 생산해온 대표 상품 ‘류큐왕조(琉球王朝)’부터 몽드 셀렉션(Monde Selection, 1961년 벨기에에서 설립한 국제 식음료 품평회)에서 수상한 ‘구온(久遠)’까지 다양한 아와모리를 시음하고 구입할 수 있다. 마시는 방법은? 얼음, 찬물, 더운물 중 어떤 것을 넣어 마시느냐에 달렸다.
*다라가와 양조장 관람료 무료, 류큐왕조 1병 1,898엔부터, 10am~4pm, 일요일 휴무, 81 980 77 4108, 宮古島市城邊字砂川85, taragawa.co
4. 베틀을 돌려라
PHOTOGRAPH : PYO YOUNG-SO
10여 대의 베틀이 나란히 놓여 있고, 한쪽 벽에는 색색의 천 조각이 걸려 있는 공방 안. 자그마한 체구의 다케토미(竹富)가 베틀에 앉아 시범을 보인다. “씨실을 담은 북을 날실 사이로 밀어 넣고, 날실과 연결된 바디를 몸 쪽으로 세게 당기세요” ‘탁!’ 하는 소리와 함께 씨실이 날실과 팽팽하게 맞물리면서 조금씩 천의 형태를 띤다. 이곳은 미야코지마 체험공예촌 내에 있는 직물 공방. 미야코조후(宮古上布)의 직조 기술을 체험해볼 수 있는 곳이다. 저마(苧麻)로 만드는 미야코조후는 일본 문화재로 지정돼 있는 최고급 마직물로, 우리나라에 안동포가 있다면 일본에는 미야코조후가 있다. 얇고 통기성이 좋은 모시의 특성에 뛰어난 직조 기술이 더해져 섬세한 무늬와 기품 있는 빛깔을 뽐내는 직물이다. 미야코조후로 만든 옷은 내구성 또한 훌륭해 흔히 ‘3대가 입는다’고 표현할 정도.
설명을 들을 땐 꽤 어렵게 느껴졌는데, 막상 베틀에 앉으니 동작 하나하나에 온 신경이 집중된다. 양손의 반복적인 움직임이 서서히 리듬을 타기 시작하고, 이내 고요한 공방 안은 규칙적인 바디 소리로 가득 찬다. 탁탁탁. 진짜 미야코조후를 짜는 것은 상당히 어렵기 때문에 체험용 씨실은 면실을 사용하고, 각자 원하는 색을 골라 원하는 무늬로 천을 짠다. 1시간 만에 완성한 것은 고작 사방 20센티미터 길이의 천 조각에 지나지 않지만, 특별한 기념품임에는 분명하다.
*미야코지마 공예촌 직물 공방 60분 체험 2,000엔부터, 10am~8pm, 화요일 휴무, 81 90 7165 9862, miyakotaiken.com
5. 섬 사람처럼 술 마시기
PHOTOGRAPH : PYO YOUNG-SO
노랫가락에 맞춰 율동을 선보이던 종업원이 손짓을 하자 이자카야의 모든 손님이 우르르 자리에서 일어난다. 앞뒤 순서나 박자를 따질 새도 없이 당연하다는 듯 원을 그리며 테이블 사이사이를 돌기 시작한다. 멀쩡하게 술을 주고받다가 갑자기 이게 무슨 난리란 말인가! 하지만 당황할 필요는 없다. 정신을 차려보면 당신도 이미 그 무리에 합류해 빙글빙글 돌고 있을 테니까. 생전 처음 접한 음악에 맞춰 위아래로 휘휘 젓는 동작은 생각보다 따라 하기 쉽고, 중간중간 ‘으랏차차’ 같은 느낌의 후렴구를 외치다 보면 은근히 흥이 오른다.
미야코지마 시내의 번화가에 위치한 우사기야(うさぎや)는 오키나와의 전통 민요와 술자리 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곳이다. 붉은 기와 장식과 돌기둥, 각종 소품 등 전통 양식으로 꾸민 실내는 좌식과 입식 테이블이 다닥다닥 붙어 있어 아늑하고 친밀한 분위기다. 아와모리 소주와 통삼겹살 조림 라후테, 토종 흑돼지 찜, 파파야 볶음 등 지역 별미를 즐기는 동안 한구석에 마련된 간이 무대에선 라이브 공연이 열린다. 오늘의 초대 가수는 미야코의 인기 싱어 송라이터 시게짱(重ちゃん). 미야코 민요나 류큐(15~19세기 오키나와 현 일대를 통치하던 왕국) 민요를 주로 부르는데, 이름처럼 육중한 몸집 때문에 노란색 꽃무늬 셔츠 가슴팍에 안은 산신(三線, 오키나와 전통악기)이 앙증맞아 보인다.
미야코지마 사람은 일본에서도 주당 중의 주당으로 손꼽힌다. 정 많고 술 좋아하는 섬 사람 특유의 기질에, 우리나라 뺨치는 과격한 음주 문화도 이에 한몫한다. 여럿이 모인 자리에서 한마디씩 하고 술잔을 돌리는 오토오리(お通り)가 그것. 이런 식으로 모두 빠짐없이 1바퀴 돌 때까지 반복하기 때문에 술에 취하지 않고선 자리를 벗어나기 힘들다. 이때 주종은 당연히 아와모리, 잔은 무조건 한 번에 비우는 것이 원칙. 우사기야에 앉아 있다 보면 한번쯤은 이 흥겨운 광경을 목격할 수 있을 것이다.
*우사가야 5pm~12am(라이브 공연 7pm, 9pm), 81 980 79 0881, usagiya-ishigaki.com/tenpo.html
6. 유혈 낭자한 어부 체험
PHOTOGRAPH : PYO YOUNG-SO
“사라하마(佐良浜) 항은 이라부 대교(伊良部大橋)가 생기기 전까지 섬으로 들어오는 유일한 관문이었습니다.” 이라부지마(伊良部島)의 오래된 어촌에서 만난 나카무라(中村)가 거센 바닷바람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잇는다. 참고로, 이라부 대교는 미야코지마와 주변 섬을 연결하는 3개의 다리 중 가장 길고 가장 최근에 건설했다(2016년 1월 31일, 개통 1주년을 맞았다). 다리가 놓이자 작은 섬의 더 작은 어촌에선 변화를 꿈꾸기 시작했다. 이라부지마 어업협회와 손잡고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을 선보인 것이다. 바로 지금 앞두고 있는 일일 어부 체험도 그 중 하나다. 항구 한쪽에 마련된 작업장으로 이동하니 싱싱한 참치 2마리가 눈을 동그랗게 뜬 채 스티로폼 상자 안에서 대기 중이다. 곧이어 파란 티셔츠에 두툼한 방수 앞치마를 입은 남자가 나타나 참치를 꺼내 든다. 까무잡잡한 피부에 짙은 눈썹, 짧게 기른 턱수염까지, 어부보다는 해적에 어울릴 법한 외모지만 손놀림은 자로 잰 듯 정확하고 깔끔하다. 그의 동작을 하나하나 따라가며 참치 1마리를 먹기 좋게 분해하는 것이 체험 참가자의 과제. 그리고 결과물은 잠시 후 회와 튀김, 국으로 탈바꿈해 점심 식탁 위에 놓인다. 생물 참치라 체험 내내 붉은 핏물이 도마 위로 흘러 넘치지만, 직접 손질한 식자재로 만든 음식을 막상 입에 넣고 나면 그 장면은 더 이상 생각나지 않을 테니 안심해도 좋다.
*어부 체험 2,500엔(참치 해체 체험과 점심 식사 포함), 12:30pm~1pm(전날 5pm까지 예약 필수),
plannet4.co.jp/hitotokisampo
7. 눈꽃 소금으로 만든 아이스크림
PHOTOGRAPH : PYO YOUNG-SO
섬 북쪽 끝자락에는 미야코지마와 이케마지마(池間島)를 잇는 육로가 놓여 있다. 총 길이 1,425킬로미터의 이케마 대교(池間大橋)다. 이케마지마는 철새가 날아드는 습지를 제외하면 딱히 볼거리가 없는 작은 섬이지만, 다리를 사이에 두고 양쪽 섬에서 바라본 풍광이 아름다워 섬을 방문한 이라면 한 번쯤 북쪽으로 방향을 틀곤 한다. 그 김에 유키시오 제염소에도 들러보자. ‘눈꽃소금’이라는 뜻의 유키시오는 미야코지마의 바닷물과 석회암 지형을 활용해 탄생한 지역 특산품. 지하 22미터 깊이에서 끌어 올린 해수를 사용하는데, 이때 석회암은 해수의 불순물을 여과시키는 천연 장치 역할을 한다.
“유키시오는 나트륨 함량은 적은 대신 칼슘과 미네랄이 풍부해요. 한마디로 바다를 그대로 먹는 거죠.” 제염소 가이드가 자랑스럽게 말한다. 소금을 직접 만져보면 이름의 의미를 알 수 있다. 입자가 하도 곱고 부드러워 손가락 사이로 스르륵 빠져나간다. 성분 좋은 제품이 그렇듯 유키시오도 활용법이 다양하다. 일반 소금 대용은 물론 직접 바르면 피부염에도 효과가 있다고. 가이드를 따라 물 묻힌 손등에 소금을 문질렀더니 조금 부들부들해진 것도 같다. 앙증맞은 유리병에 담긴 사이다나 소프트 아이스크림은 유시키오를 맛보는 가장 쉽고도 맛있는 방법. 미야코지마의 바닷물 맛이 궁금할 땐 유키시오를 사서 물
에 녹이면 된다. 제염소와 나란히 있는 상점에 가면 유시키오로 만든 각종 제품을 구입할 수 있다.
*유키시오 제염소 견학 무료, 4~9월 9am~6:30pm, 10월~3월 9am~5pm, 81 980 72 5667, yukisio.com
8. 비가 내리면 농원으로 가요
PHOTOGRAPH : PYO YOUNG-SO
제아무리 남쪽의 휴양 섬이라고 해도, 365일 눈부신 태양만 볼 수는 없는 법이다. 혹여 흐린 하늘 아래 미야코 블루가 자취를 감추고 비바람이라도 몰아치는 궂은 날이라면, 유토피아를 찾아가자. 아니, 유토피아 팜 미야코지마를. 약 1.8헥타르 대지에 들어선 이곳은 남국의 식물 50여 종을 만날 수 있는 관광 농원이다. 비닐하우스에서는 파파야, 애플망고, 아테모야, 드래곤프루트 등 쉽게 보기 힘든 열대 과일이 자라고, 부겐빌레아 온실에 들어서면 흰색과 진홍색이 꽃잎이 수북이 쌓인 꽃길이 펼쳐진다. 열대의 꽃 히비스커스 정원도 매혹적이다. 오키나와를 상징하는 새빨간 히비스커스를 포함해 같은 듯 다른 200여 종의 꽃이 형형색색의 빛깔을 품어내 한 걸음 뗄 때마다 카메라 셔터를 누르지 않고는 못 배긴다. 나중에 확인해보면 히비스커스꽃 사진만 수십장이지만 누구를 탓하랴. 마지막 코스는 바삭바삭한 와플 콘에 얹어주는 소프트 아이스크림. 농장에서 수확한 망고와 파파야, 드래곤프루트로 만들어 진하고 신선하다.
*유토피아 팜 미야코지마 입장료 280엔, 4~9월 9:30am~6pm, 10월~3월 9:30am~5pm, 81 980 76 2949, utopia-farm.net
*취재협조 오키나와 관광 컨벤션 뷰로(kr.visitokinawa.j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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