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흐, 이렇게 화창한 날씨에 회의실이 뭐니?” 기자가 홍보 담당자에게 살짝 언급했던 말을 확성기로 내지르듯 소리치며 인터뷰 장소에 들어선 그는 눈에 띄는 의상과 액세서리, 기발한 소품과 광채 나는 피부로 다시 한 번 그 딱딱한 회의실에 모인 모두를 놀라게 했습니다. 뮤지컬배우 김호영. 아는 사람은 다 아는 얘기지만, 김호영 씨는 배우로서는 물론이고 소문난 패셔니스타에 사업가, 토크쇼 MC, 뮤지컬배우로는 드문 라디오 고정 게스트까지 참 다양한 활동을 선보이고 있는데요. 무대에서도 무척이나 화려한 모습을 보여줬던 그가 상당히 음전한 인물을 지난해에 이어 또 다시 맡는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바로 뮤지컬 <마마 돈 크라이>의 드라큘라 백작이 아니라 프로페서V 역인데요. 어찌된 영문인지 <마마 돈 크라이> 연습이 한창인 곳에서 김호영 씨를 직접 만나봤습니다.
“심지어 평상시보다 덜 꾸민 상태로 무대에 오르죠(웃음). 그런데 작년에 <마돈크>를 했더니 제 공연을 많아 봤던 분들조차 ‘왜 이렇게 연기를 잘 하느냐’는 거예요. ‘나는 원래 연기를 잘 하는데 무슨 소릴까? 연기, 노래, 춤 중에 연기를 제일 잘하는구만(웃음)!’ 왜 그럴까 생각해봤는데, 간단하게 얘기하면 제가 여장을 안 했기 때문이에요. 화려하지 않았기 때문이죠. 항상 화려한 무대의상과 조명을 갖춘 곳에서 연기하다 그렇지 않은 곳에서 마치 민낯을 드러내듯 연기했더니 제 탤런트 자체를 좋게 봐주신 것 같아요.”
그동안 화려한 장치에 본래의 연기력이 오히려 가려졌단 말이겠네요. 지난해 <마돈크>가 김호영 씨에게는 첫 2인극이었잖아요. 대극장 공연보다 심리적인 부담은 훨씬 컸을 것 같습니다.
“그렇죠, 2인극은 처음인 데다 그 많은 대사와 노래를 무대에서 전혀 도움 받는 것 없이 혼자 끌고 가야 하니까요. 소극장 무대, 관객들의 즉각적인 반응 속에서 연기하는 것에 대한 걱정도 있었고요. 그리고 그동안 대학로만의 리그가 결성됐고, 대학로만의 스타가 탄생하면서 대극장 뮤지컬과는 다른 시스템이 있는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걱정이 됐죠. ‘내가 대학로에 왔을 때 어느 정도 티켓 파워가 있을까?’ 사실 제가 티켓 파워 있는 배우는 아니거든요. 대극장 공연은 캐스트의 조합을 보고 오니까 그런 부분을 신경 쓸 필요가 없었는데, <마돈크>는 남자 두 명만 나오는, 팬심이 더 필요한 작품이라서 내가 살아남을 수 있을까 생각했었죠. 다행히 평도 굉장히 좋았고, 기대 이상으로 티켓도 팔았어요(웃음).”
2인극도 잘 치러냈고, 프로페서V라는 기존과는 다른 캐릭터로도 좋은 평가를 받았으니, 이번에는 드라큘라 백작을 욕심낼 만도 한데요. 사실 드라큘라 백작은 멋있을 수밖에 없는 인물이잖아요. 예전처럼 화려한 역할로도 연기력을 입증 받을 수 있는 좋은 기회였을 텐데요.
“제작진도 그런 얘기를 했어요, 뱀파이어와도 어울린다고. 사실 이 작품에서 박수를 더 받는 건 드라큘라 백작이고요. 그런데 제가 갖고 있는 것들, 신체적인 조건이나 목소리의 느낌, 다양한 표정과 호흡 등이 이 작품에서 어떤 인물에 더 쓰임이 좋을까... 프로페서V더라고요. 그리고 제가 생각해도 뱀파이어들은 키가 180cm는 돼야 보면서도 흐뭇하고, 프로페서 입장에서도 닮고 싶죠(웃음).”
<마돈크>는 마니아 관객이 많긴 하지만 작품 자체는 대중적이거나 일반적이지 않은 편입니다. 소극장 무대에도 배우로서 매력을 느끼신 것 같은데, 1년에 참여할 수 있는 작품이 제한적인 만큼 다른 작품에 욕심을 낼 만도 한데요.
“사실 <마돈크>는 작품이 갖고 있는 키치성과 B급 코드를 살리려다 보니까 처음에는 배우 입장에서 받아들이기 힘들었어요. 대학로에서 공연을 무척 많이 보는 관객들, 대학로의 어떤 트렌드에 너무 맞춰진 게 아닌가라는 의심도 들고. 그런데 무대는 환상, 실현 가능성은 없지만 벌어졌으면 좋겠는 걸 보여주는 공간이기 때문에 배우가 먼저 작품에 마음을 열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작년에는 많이 힘들었어요. 텍스트 작업을 오래했고, 배우나 제작진, 우리들끼리도 이 작품을 이해하는 과정이 많이 필요했거든요. 그렇게 작품이 무대에 오르니까 하면서 저도 재밌더라고요. 기대 이상의 호평도 많이 받았고요. 제 측근이나 같은 업계에 있는 관계자들도 저의 다른 모습을 봤다고, ‘말이 안 되는 것도 말이 되도록 설득할 수 있는 배우라는 걸 입증해준 작품’이라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또 하고 싶고, 새로 생긴 저의 측근들에게도 ‘쟤 저런 얘구나!’ 보여주고 싶어요(웃음).”
프로페서V 역에 김호영 씨 외에도 송용진, 허규, 최재웅, 박영수, 강영석 씨, 드라큘라 백작 역에는 고영빈, 김재범, 임병근, 이충주, 이창엽 씨 등 남자배우만 11명이라서 칙칙할 것 같은데, 생각해보니 개성 뚜렷하고 재밌는 분들이 많군요. 연습은 어떻게 하나요?
“2인극은 서로 주고받는 부분이 있지만, <마돈크>는 작품 특성상 프로페서V 혼자 끌고 가는 면이 많아요. 초반 30분은 모노극에 가깝고요. 지난해 만든 탄탄한 구조가 있다 보니 올해는 안무 등을 많이 보강하고 있거든요. 저희가 안무 연습을 하더라도 한 배우와만 하지 않고 돌아가면서 해요. 마치 포크댄스 추는 것처럼. 그런데 배우마다 갖고 있는 색깔이 워낙 다르다 보니까 같은 동작의 춤을 추는데도 느낌이 다 달라요. 정말 재미있어요. 예를 들어 최재웅 형은 그만의 코미디가 있는데, 그 옆에 비슷하면서도 또 다른 느낌의 김재범 형이 있고. 둘은 남철, 남성남 이후 최고의 콤비예요. 저는 외모지상주의라서 이번에 오디션을 통해 새로 뽑힌 비주얼이 훌륭한 이창엽 군과만 공연을 하겠다고 했어요(웃음).”
그런데 공연 외에 활동하는 분야가 다양하잖아요. 작품에 집중하는 데는 문제가 없나요?
“반대로 생각하시면 돼요. 작품에 너무 집중해서 분산할 필요가 있다고. 사실 기질 문제라고 생각해요. 저는 공연 안에서도 의상이나 소품, 분장 등에 관심이 많고, 연기도 뮤지컬은 물론이고 연극, 영화, 드라마, 또 예능 MC나 DJ, 뷰티, 패션까지 굉장히 많은 분야에 관심이 있기 때문에 개인적인 생활에서는 여러 형태로 표현이 되는 거죠. 그래서 어느 것 한 가지를 똑 부러지게 못할 수도 있는데, 이런 모습, 그 다양성이 김호영이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제가 하는 모든 것들을 종합적으로 보여 주는 곳이 바로 무대잖아요.”
그럼 김호영이라는 이름 앞에 어떤 수식어, 어떤 타이틀이 붙길 바라나요?
“스스로 ‘독보적’이란 말을 항상 쓰거든요. 그런데 배우로서만 성공하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아요. 그건 제가 갖고 있는 탤런트이고, 대학교 1학년 때부터 친구들이 불러줬던 ‘호이’라는 별명을 브랜드로 만들고 싶어요. ‘호이스럽다’는 신조어가 생겼으면 좋겠어요(웃음). 사실 지난해 저를 객관적으로 볼 수 있었던 시기였어요. 호이라는 브랜드의 카페, 양말도 만들었고, 도시락도 런칭했고, 제 이름을 걸고 토크쇼도 했고. 더 유명해지기 위해서, 더 대중적인 사람이 되기 위해서 만들었는데, 주가 되는 김호영이 대중적이지 않으니까 잘 안 되더라고요. 다 접고 있는 상황이에요. 제가 뮤지컬을 14년 했는데, 이제는 이 배우가 얼마나 노래를 잘 부르고 연기를 잘 하느냐보다는 얼마나 티켓을 많이 파느냐가 중요한 시대가 됐어요. 하지만 티켓 판매와 그 배우의 탤런트가 꼭 비례하지는 않아요. 그래서 유명해져야 한다는 생각을 했죠.”
그럼 2016년에 김호영 씨가 가장 집중하는 건 뭔가요?
“제가 유명해지는 거요. 사실 연말이면 항상 작년보다 더 유명해지고 싶다는 생각을 하는데, 정말 그렇게 돼 왔어요. 제 성에 안 찰 뿐이지(웃음). 요즘은 ‘수면론’과 ‘아기론’을 자주 얘기해요. 저는 냉정한 편이에요. 물에 빠진 사람도 수면 위로 얼굴을 내밀어야 구해주는 것이고, 아이도 울어야 젖을 주는 거잖아요. 내가 유명해지고 싶다고 말하고, 그에 걸맞게 실력이든 뭐든 밑 작업을 해야죠. 하지만 내가 잘 한다고 당장 기회가 오는 건 아니고, 맞는 시기가 생긴다는 걸 깨달았어요. 그래서 조급하게 생각하지 않기로 했어요. 지금 잘 해가고 있는 만큼 어느 것 하나만 터지면 다른 것들은 저절로 엮여서 갈 거예요(웃음).”
김호영 씨와 두 시간 가까이 대화를 나눴더니 살짝 어지럼증이 느껴졌습니다. 정말 에너지가 넘치는 사람, 배우라는 직업을 통해 무대 위에서 그 많은 에너지를 발산하며 살 수 있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노래, 춤, 연기 중에 연기를 가장 잘 하는 사람, 유명해지고 싶은 사람, 겸손 따위 없는 사람, 그리고 냉정하게 판단하는 사람. 모두 김호영 씨가 스스로를 지칭한 말인데요. 배우는 자신을 드러내는 직업이지만, 겸손을 미덕으로 생각하는 우리 문화권에서는 좀처럼 만나기 힘든 캐릭터가 아닐까 합니다. 하지만 자신에 대해서도 냉정하게 판단했기 때문에 이토록 자신감 넘치는 게 아닐까요. 다른 건 모르겠지만 그가 배우로서 연기를 얼마나 잘하는지는 뮤지컬 <마마 돈 크라이>를 통해 확인해 보시죠. 화려함을 걷어낸 민낯 그대로의 배우 김호영으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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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하정
"공연 보느라 영화 볼 시간이 없다.."는 공연 칼럼니스트, 문화전문기자. 저서로는 <지금 당신의 무대는 어디입니까?>, 공연 소개하는 여자 윤하정의 <공연을 보러 떠나는 유럽> , 공연 소개하는 여자 윤하정의 <축제를 즐기러 떠나는 유럽>, 공연 소개하는 여자 윤하정의 <예술이 좋아 떠나는 유럽> 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