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25일 저녁, 합정에서 책 『정신의학의 탄생』 출간을 기념해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하지현 교수와 함께하는 북토크가 열렸다. 이번에 출간된 책 『정신의학의 탄생』은 하지현 교수가 네이버캐스트를 통해 ‘정신의학의 결정적 순간’이라는 제목으로 연재했던 글들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과거에 비해서는 정신질환적 증상들이 대중들에게 빈번하게 노출되면서 정신과 치료의 필요성에 공감하는 사람들이 많아졌지만, 현재까지도 정신의학을 둘러싸고 있는 오해와 편견들이 꽤 많이 있다. 하지현 교수는 “지금의 현대 정신의학이 어떻게 정립된 것인지 역사적으로 중요한 장면들을 한번 풀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공부하면서 찾아보니 꽤 뒷얘기도 많고 논쟁도 많아서 나 역시 새롭게 알게 된 것들이 많았다”라며 이번 책을 출간하기까지의 과정에 대해 설명했다. 그는 이 책이 자신에게 굉장히 뜻깊은 의미가 있는 책이라며 이야기를 이어갔다.
“많은 분들이 저에게 갖는 인식 중 하나가 ‘가벼운 에세이를 쓰는 사람’일 텐데요. ‘그 정도는 나도 쓰겠다’는 이야기가 저에게 가장 가슴 아픈 이야기 중 하나거든요. 그래서 이번에는 좀 두꺼운 책을 써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있어 보이는 책을 내면 사람들이 나를 업신여기지 않겠구나 하고 말이죠(웃음). 평소에 저는 ‘누가 언제부터 미쳤다는 말을 썼지?’ 하고 궁금할 때가 많았거든요. ‘루나틱(lunatic)’이라는 말도 있듯이 서양 사람들은 달을 보면 왜 늑대인간 혹은 미친 사람을 떠올릴까, 우리나라 사람들은 달을 보면 토끼를 떠올리는데 말이죠. 그렇게 해서 40개 정도의 장면들을 추려서 우선 역사적인 사건 설명을 먼저 하고, 이것이 어떻게 전개됐으며, 현재 우리에게 미치는 의미가 무엇인지 하나의 포맷을 만들게 됐습니다.”
『정신의학의 탄생』은 의학 이야기뿐만 아니라 사회 이야기, 그리고 우리의 현실과 앞으로 당면할 미래까지 담고 있는 책이라고 그는 전했다. 책 속에는 의학이 어떻게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과 만나며, 어떻게 체계화되는지에 대한 내용이 다양한 역사적 사실과 함께 설명돼 있다. 하지현 교수는 “인간의 환경에서 적응의 문제를 보는 관점에 대한 큰 흐름을 알면 많은 도움이 되는 것 같다”고 말하며 치매에 대한 이야기를 예로 들며 설명했다.
“노인 의료비 증가에 대한 뉴스를 보면 65세 이상 노인들의 입원비 1위가 치매입니다. 암이 아니라요. 그 이유는 우리가 오래 살게 됐기 때문이죠. 이것은 역사 이야기가 아니라 현대사회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과거에는 우리가 일찍 죽었기 때문에 치매 유전자가 발현되지 않고 있었는데, 지금은 오래 사는 사람이 많다 보니 치매가 굉장히 많아진 것이죠. 기술이 발전해서 이제는 암도 치료하는데, 뇌가 망가져버리니 속수무책인 상황에 빠지는 아이러니가 생기는 것입니다.”
이처럼 역사를 알면 우리는 일상에서 쓰는 개념들을 조금 더 수월하게 이해할 수 있다. 하지현 교수가 네이버캐스트에 글을 연재하면서, 댓글로 사람들 사이에서 가장 활발한 토론이 벌어졌던 내용은 바로 지능에 관한 글이었다.
“사람들은 자신이 흥미로워하는 분야를 좋아하기 마련이죠. 우리는 IQ에 대해 할 말이 많잖아요. 그런데 지능 검사가 사실 머리 좋은 사람을 찾아내려고 한 것이 아니거든요. 실제로 지능 검사란 것을 처음 개발한 목적은 부적격자를 걸러내기 위함이었어요. 대개 모든 의학, 과학의 역사는 전쟁과 연관돼 있어요. 군인을 징집할 때, 예전에는 아무나 뽑았는데 어느 순간 보병들도 작전을 이해해야 하고 폭탄도 던져야 하니 너무 무식한 사람들을 뽑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든 것이죠. 그래서 가장 쉽게 지능이 너무 떨어지는 사람을 골라내기 위해 만든 것이 지능 테스트예요. 이것이 나중에 학교에 도입된 것이죠. 인도적으로 특수한 교육이 필요한 아이들을 찾아내려고요. 그러니까 이 검사를 통해 지능이 떨어지는 사람을 찾는 것은 변별력이 좋아요. 그런데 그 반대의 경우에는 변별력이 떨어져요. 다시 말해, IQ가 120인 사람이나 130인 사람은 비슷한데 50인 사람과 60인 사람은 차이가 많이 나요. 그런데 우리는 거꾸로 알고 있는 것이죠. 90에서 110 사이는 아주 지극히 정상 범위예요. 우리가 착각하고 있는 것일 뿐이죠. 이렇게 우리가 잘못 이해하고 있는 것들이 굉장히 많습니다. 역사를 알면 그런 것들에 대해 조금 더 공정한 시선을 가질 수 있겠죠.”
독자들이 묻고, 하지현이 답하다
Q. 정신의학은 마음의 병을 고치는 학문이라고 표현하셨는데 그 이유는 무엇이고, 심리학과 어떻게 다른 것인지 궁금합니다.
A. 심리학과 정신의학의 차이는 냉정하게 말하자면 문과와 이과의 차이죠. 그런데 이것은 너무 한국적인 이야기일 테니까 다시 설명하자면, 심리학은 조금 더 정상성에 관심을 많이 갖는 학문입니다. 인간 심리에 대한 정상성이죠. 심리학에서 공부하는 것들이 열 개라고 친다면 그 중의 한 개가 병리학이에요. 이상심리학, 임상심리학, 상담심리학 같은 것들이죠. 상담심리는 정상에 가까운 분들이 가지고 있는 일상적인 부분들, 살면서 생길 수 있는 부분들과 같은 영역을 다룹니다. 반면 정신과는 기본적으로 치료하는 학문입니다. 병이 무엇이고 그것을 고치기 위해 어떻게 할 것인지 연구합니다. 우리가 ‘마음의 병’이라고 말할 때, 여기서 과연 ‘마음’이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요? 바로 뇌와 정신, 이 둘을 합친 것이 마음입니다. 뇌는 멀쩡한데 마음이 힘든 사람도 있고, 뇌가 망가져서 아픈 사람도 있습니다. 저는 그것을 비유적으로 밭이 좋다, 나쁘다라고 표현합니다. 분명 좋은 밭인데 가뭄이나 태풍이 불면 안 좋아질 수도 있겠죠. 이처럼 어떤 사람은 기본적으로 태어난 게 자갈밭일 수 있어요. 그렇게 약하게 타고난 분들은 뇌의 내성이 약한 것이죠. 이런 분들은 비가 조금만 와도 흙이 확 씻겨나갈 수 있고, 가뭄이 들면 물을 아무리 줘도 제대로 자라지 않을 수 있어요. 살다 보면 화학 비료나 농약을 쓰지 않을 수 없을 때가 있죠. 물론 제일 좋은 원칙은 농약을 쓰지 않는 것이겠지만, 그러면 돈 받고 팔 수 없는 상품들만 나오겠죠. 정신과 의사가 하는 일은 경우에 따라서 농약도 좀 치고, 음식으로 비유하자면 MSG도 쓰고 그러는 것이죠.
Q. 정상과 비정상을 어떻게 구분할 수 있을까요?
A. ‘주관적 불편함을 질환의 범주에 놓는다’라는 것은 이런 말입니다. 예를 들어, 공손한 한국 사람이 미국에 가면 전부 다 사회공포증이라는 이야기를 들을지도 모릅니다. 반대로 우리가 미국 동부 쪽에서 자란 교포를 보면 저 사람 조증 아닌가 싶을 거예요. 개인의 힘이 중요하고, 개인이 중요해지면서 분명히 소심함을 타고난 사람들이 있을 수 있는데, 그 사람들을 어느 순간부터 사회부적격자로 보기 시작한 것이죠. 이에 대해 한쪽에서는 자기 계발을 통해 문제를 풀고자 하고, 한쪽에서는 이것을 병이라고 보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우울증 약을 통해 그 병을 극복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마케팅이 만들어집니다. 분명히 어떤 사람들에게는 있을 수 있는 긴장임에도 불구하고 나에게 병이 있다는 식으로 이를 방어적으로 사용하는 사람도 생기게 됐죠. 일상에서 생기는 불편, 괴로움이 주요 질환으로 인식되는 것은 현대사회에서 우려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미국 사회의 개인주의, 신자유주의, 자기 계발 열풍이 의학에도 영향을 미친 것이죠. 그것이 그 후 우리나라에도 등장한 것입니다. 그런 개념이 머리에 들어가면서, 내가 괴로운 이유는 질환이 있어서 그렇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생겨나게 됐죠. 이것은 한국적인 현상이라기보다는 자본주의가 흘러가면서 나타날 수 있는 어둠이라고 생각합니다.
Q. 애착을 형성하지 못한 사람은 평생 정서적인 문제를 안고 살아야 하나요?
A. 루마니아에서 다음과 같은 일이 벌어졌습니다. 루마니아의 독재자가 우리가 약한 이유는 사람 수가 적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서, 국민들에게 아이를 계속 낳게 했어요. 안 낳으면 벌금까지 물면서요. 사람들은 아이를 낳았고, 키울 수가 없으니 아이를 전부 갖다 버렸어요. 고아원에서는 그런 아이들을 수천 명 눕혀 놓고 기계적으로 우유만 줬죠. 그렇게 20년이 지나고, 엄청난 일이 벌어지고 있었어요. 그렇게 자란 아이들은 어떠한 애착도, 동정심도 없는 상태로 자라난 것이죠. 그런데 반대의 경우도 있어요. 어린 나이부터 사람들을 학살하는 나이지리아 소년병들 중 일부가 집으로 돌아오거나 도망쳐서 치료할 수 있는 캠프에 운 좋게 갔어요. 그곳에서 적절한 환경을 제공했더니 그들이 굉장히 빨리 정상화됐다는 것이죠. 물론 애착은 굉장히 중요하지만, 결정적으로 간과하면 안 되는 것이 있습니다. 하나하나의 개체가 가지고 있는 밭이 무엇인가가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밭이 중간 이하이면 물리적으로 타격을 받았을 때 나중에 아무리 노력해도 좋아지지 않을 수 있고, 밭이 중간 이상이라서 나중에는 정상적으로 잘 자랄 수도 있습니다.
Q. DSM(정신질환 진단 및 통계 편람)에 대해 더 자세히 설명해 주세요.
A. 예전에는 정신의학에서 진단 기준이 나라마다 다 달랐습니다. 그러니까 커뮤니케이션이 되지 않았죠. 진단이 중요한 이유는 의료진들이 서로 커뮤니케이션을 하기 위해서입니다. 이 사람이 어떤 병이 있는지 누가 보더라도 바로 알 수 있어야 안전하기 때문이죠. DSM-3부터 객관적인 기준을 만들기 시작했어요. DSM은 진단과 통계를 위한 매뉴얼이라는 뜻입니다. 이를 통해, 우울증에 걸린 사람이 전체 국민 중에서 몇 퍼센트 정도 되는지 말할 수 있는 근거가 만들어졌어요. 그러면서 법 체계에서도 사용할 수 있는 기준점이 됐죠. 물론 여러 한계도 있지만 아직까지 사용하고 있다는 것은 이것이 굉장히 혁명적인 개발이라는 뜻입니다. 이를 통해 처음으로 전세계 사람들이 같은 것으로 공부했고, 이것이 근거라고 남에게 보여줄 수 있는 것도 생겼고, 정신의학 밖에 있는 사람도 이것을 인정하게 됐죠. 이전까지는 사람들이 정신의학은 뜬구름 잡고 비과학적인 학문이라고 생각했는데, 객관성과 신뢰성을 갖게 된 것입니다. 이것은 굉장한 진보라고 할 수 있습니다.
Q. LGBT와 관련된 이슈는 항상 논란이 됩니다. 인간의 성을 결정짓는 세 가지 요소에 대해 조금 더 자세히 설명해 주세요.
A. 먼저 첫 번째는 생물학적 성입니다. 두 번째는 성 정체성이죠. 생물학적 성은 이미 결정돼 있는데 내가 생각하는 내가 남자인지 여자인지, 이 두 가지가 맞는지가 중요하죠. 세 번째는 성 지향성입니다. 나와 같은 성을 사랑하는지, 아니면 다른 성을 사랑하는지에 대한 것입니다. 자기가 갖고 있는 생물학적 성과, 자기가 생각하는 성 정체성이 맞지 않는 분들이 세칭 트랜스젠더가 되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남자의 몸을 갖고 태어났는데 자신은 남자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이죠. 이 부분이 80년대 전까지는 고칠 수 있는 질환이라고 생각됐습니다. 그 후에는 정신과 진단에서는 빠지게 됐죠. 하지만 치료의 개념으로 보는 것 중에 젠더 디스포리아라는 것이 있습니다. 내가 갖고 있는 내 몸이 싫은 거예요. 그런 경우는 치료할 필요가 있겠죠.
Q. 전기치료는 어떤 방식으로 진행되나요?
A. 정신과에서 병을 치료하는 큰 흐름 중에서, 이것은 뇌의 병이니까 생물학적 치료를 해야 한다는 쪽이 있고요. 다른 한쪽에는 이것은 마음의 병이니까 마사지 받고, 맛있는 것 먹고, 상담하면 된다는 쪽이 있어요. 생물학적 치료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쪽에서 쓰는 방법 중 하나가 전기충격이었어요. 이 방법이 왜 좋은지는 아직도 몰라요. 그런데 전기치료를 했을 때 우울증은 확실히 좋아집니다. 난치성 우울증은 전기충격이 최고예요. 임신한 경우에도 전기치료가 약보다 훨씬 안전하다고 알려져 있어요. 뇌가 워낙 복잡해서 도대체 이 방법을 쓰면 왜 좋아지는지 정확히 알 수가 없어요. 그래도 이유를 생각해보자면, 컴퓨터로 치면 리셋과 같은 것이겠죠. 뇌를 재시동하는 거예요. 아마 인간이 가지고 있는 회복력을 이용한 것 같아요. 큰 충격을 줘서 엉킨 것들이 다시 자리잡을 수 있게요. 사실 이 방법은 정신병이 있는 사람이 간질을 일으키고 나면 좋아진다는 것에서 착안한 것입니다. 그래서 의도적으로 간질을 유발하는 것이죠. 그래서 일반적으로 전기충격이 잘 되나 안 되나 확인할 때 20초에서 30초 이상 간질이 일어나야 성공했다고 판단합니다.
Q. ADHD는 치료가 어렵다고 알려져 있는데, 임의로 집중력을 향상시킬 수 있는 방법이 있나요?
A. 이것은 집중력을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대한 문제입니다. 정말 ADHD라고 할 정도의 증상은 예를 들면 이런 것입니다. 평생 신촌에만 살던 사람이 처음으로 건국대에 다니게 됐어요. 그랬더니 한 달 사이에 가방을 세 번이나 잃어버리고, 우산을 열 개 정도 잃어버리고, 핸드폰은 두 개째 잃어버리고 이 정도는 돼야 병이라고 하는 거예요. 단순히 집중력을 향상하고 싶다고 말하는 것은 병으로서의 집중력이 아닌 것이죠. 예를 들어 쉽게 설명하자면, 근육이 이미 많은데 스테로이드를 복용해서 근육을 더 늘리려는 사람이 아니라 불쌍할 정도로 근육이 없는 사람들이 제 관심사인 것입니다. 아이들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지난 50년 사이에 우리 뇌가 좋아지면 얼마나 좋아졌겠어요. 뇌는 만 년, 이만 년 동안 서서히 좋아지고 있는데 우리 사회에서 요구하는 연령별 집중 요구량은 지난 50년 사이에 아마 3배 이상 올라갔을 것입니다. 다시 말해, 예전에는 95등에서 100등 사이만 병이라고 했는데 요구가 높아지다 보니 어느 순간 80등도 문제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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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의학의 탄생하지현 저 | 해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하지현 교수가 200년 정신의학의 역사적 사실과 과학적 진실을 쉽게 풀어낸 『정신의학의 탄생』을 펴냈다. 네이버캐스트에 ‘정신의학의 결정적 순간’이라는 제목으로 2014년 1월부터 2015년 11월까지 총 42회 연재된 이 원고는 누적 조회수 440만 회, 댓글 4천 건을 돌파하는 등 독자들의 열광적인 호응을 받은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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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예원
재미있는 인생을 살고 싶습니다. 책과 함께 있을 때 가장 행복합니다.
지지
2017.03.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