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체육관광부가 1월 22일 발표한 국민 독서실태조사에 따르면 성인의 연평균 독서량은 9.1권으로 2년 전보다 0.1권 줄었다. 반면 독서자를 대상으로 한 연평균 독서량은 1.1권 증가한 14권으로 조사됐다. 독서 인구는 줄었는데 책을 읽는 사람들은 전보다 더 읽고 있다. 다들 어디에서 몰래 좋은 책들을 보고 있는 걸까. 혹시 몰래 끼리끼리 모여서 알짜 독서를 하고 있는 건 아닐까? 하여 책을 읽는 사람들의 모임을 찾아보았다.
독서 모임을 검색해보면 연관 검색어로 주부독서모임, 직장인 독서모임, 가정독서모임, 경영자독서모임, 지역 이름 독서 모임 등이 나온다. 모임은 예상외로 많다. 주제와 지역도 다양해 골라 갈 수도 있다. 그러나 모임에 나가 볼까 기웃거리다가도 성향이 안 맞을까 봐, 주말에 나가기 귀찮아서, 정해진 책을 다 읽지 못할까 봐 스트레스받아서 등 독서 모임 검색 결과만큼 많은 이유로 주저한다.
독서 모임은 많다. 그저 마음이 내키지 않을 뿐이다.
많은 모임 중에 두 개를 골라 같이 책을 읽는 이유와 방법을 물어보았다. 위의 이유가 무색하게 잘 돌아가는 모임들이다. 모이는 사람과 읽는 책은 다 다르지만, 책을 읽는 즐거움으로 눈을 빛내는 사람들을 만났다.
따로 읽는데 같이 읽어요
플라이북 묵독파티
참여 문의 https://www.facebook.com/flybook.inc/
미국 뉴욕, 시애틀, 보스턴 등지에서는 종종 사일런트 리딩 파티(silent reading party)가 열린다. 파티 방법과 형식은 조금씩 다르지만, 대개 카페 등에서 시간을 정해 만나 조용히 책을 읽는 게 주된 활동이다. 낭독회를 열거나 자신이 읽은 책을 설명하는 시간을 가지기도 한다. 서울에서도 유사한 모임을 연다고 하여 플라이북 이사 박상문 씨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 보았다.
묵독파티는 어떻게 하나요?
매주 토요일 10시부터 12시까지, 서울 논현 북카페 북티크와 상수 아지트 아이슬란드 두 곳에서 진행합니다. 방법은 간단합니다. 읽고 싶은 책을 가지고 오셔서 읽으시면 됩니다. 최근에는 12시 이후에 묵독이 끝나고 참가한 분들끼리 모여서 간단하게 북 토크도 진행하고 있습니다.
처음 묵독파티를 시작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처음에는 플라이북(도서 추천 서비스 업체) 고객분들이 독서 모임은 부담스러운데 책은 읽고 싶다는 의견이 많았습니다. 대부분 책을 좋아하시기는 하지만 기존의 독서 모임은 나가면 자기소개를 하고 의무로 읽어야 하는 등 힘들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독서 모임을 하되 부담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운영을 했는데 어떤 분이 미국에서 이미 비슷한 형태로 운영을 하는 모임이 있다고 제보를 주셨어요. 하지만 사일런트 리딩 파티에 영감을 받아서 시작한 건 아니고, 어쩌다 보니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형태로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외국 사례에서는 핸드폰 사용을 안 한다는 전제가 있는 경우도 있는데요, 북플라이 묵독 파티의 경우 휴대폰 사용을 제한한다든지, 말을 하면 안 된다든지 하는 제재 사항이 있나요?
되도록 핸드폰 사용을 안 하도록 안내는 드리고 있는데 강제는 아닙니다. 급한 연락이 올 수도 있고 필요하신 분도 있으니까요. 하지만 대부분 큰 소리로 전화하신다거나 그런 분은 없습니다. 가끔 커플이 오면 책 읽다가 셀카도 찍고 그러세요. 우리 책 읽는 커플이다, 인증하면서요.
보통 누가 참여하시고, 몇 명이나 오시나요?
페이스북이나 블로그, 기사를 보시고 그냥 찾아오시는 경우가 많습니다. 앞에 안내판을 세워서 안내해드리고 있어요. 앉아 있다가 일이 있으면 중간에 나가고 들어가시기도 합니다.
연휴 기간에는 참석이 줄어드는 편입니다. 평균 열 다섯 명 정도 입니다. 계절로 따지면 봄이나 가을에 특히 많은 편이에요. 한 번 오셨던 분은 재참석하는 비율이 높습니다. 기존에 참여하셨던 분과 새로 오신 분이 칠 대 삼 정도 됩니다. 외부에 소개가 나가고 나면 새로운 분이 많이 올 때도 있습니다.
주로 근처 사시는 분이 오시나요?
은평구에서 상수까지 오신다든지, 논현역에서 열리는 묵독 파티에는 분당에서 오신다든지 멀리서 오시는 분들이 많아요. 토요일 오전에 하다 보니 그 뒤에 약속 장소에 따라서 동선에 맞춰 오시는 것 같아요. 아무래도 상수는 홍대 쪽이다 보니 젊은 분들이 오시는 경우가 많죠. 논현역은 직장인분들이 주중에 못 읽었던 책을 읽으러 주말에 부지런히 오시는 경우가 많고요.
토요일 오전 10시라는 시간은 어떻게 정했나요?
처음에 시간을 정할 때 오후에는 안 나올 것 같다고 해서 차라리 일찍 모이는 게 나을 것 같다는 의견이 많았습니다. 힘들 거로 생각했지만 이 시간이 책을 읽는 시간으로 정해지니 오히려 수월해지더라고요.
주말 이른 시간에 밖으로 나와 책을 읽는 이유는 뭘까요?
책은 읽고 싶은데, 그저 꽂아놓고 계속 시도하지 못하는 분이 많습니다. 모임에 나온 이유를 물어보면 자신에게 강제력을 부여하고 싶다는 분이 대부분이었어요. “지금이 아니면 못 읽을 것 같다.”라고 말씀하신 분도 있었고요. 오히려 피곤함보다는 책을 읽으면서 오는 만족이 더 큰 것 같아요. 오시기 전에는 집중이 안 되지 않을까 싶어도 읽다 보니까 두 시간이 훌쩍 넘어간다고 하십니다. 다들 읽고 있어서 자신도 읽게 된다고요. 책 읽기에 편안한 음악으로 선곡해서 트는 등 책 읽는 분위기를 만들려고 노력하기도 합니다.
모여서 읽으면 자동으로 큐레이션이 됩니다. 누군가 저번 주에 이 책이 재밌었다고 소개를 하면 그 책을 이번 주에 들고 와서 읽는 경우도 있고, 취직 준비 중이라고 하면 상황에 맞는 책을 추천해 주는 경우도 있습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책을 추천하는 계기가 되는 거죠.
인터뷰를 진행했던 날은 『자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피천득의 『인연』, 『아트인문학 여행』, 『단테의 모자이트 살인』, 『홍길동전』, 『드라큘라』, 『데미안』, 『새벽 세 시, 바람이 부나요?』 등이 북토크 테이블에 올랐다. 참가자들은 묵독 시간이 끝나고 서로 자신이 읽은 책을 보여주며 왜 이 책을 읽게 되었는지, 좋았던 구절은 무엇이었는지 나누었다. 자신이 모르는 책과 작가에 대한 비하인드 스토리를 듣기도 했다. 중간중간 웃음이 까르르 터졌다.
감당 못할 정도의 즐거움
선의관악종합복지관 책읽기 모임 ‘북톡’
참여 문의 02-886-9941
관악구의 독서 모임 ‘북톡’은 2012년 만들어져 지금까지 1주에 한 번씩 30~50대 지역 주민 여성 위주로 꾸준히 모이는 모임이다. 별다를 거 없어 보이는 주민 모임이지만 참가자들은 입을 모아 이 모임이 얼마나 소중한지 인터뷰 내내 하나라도 더 말하려고 바빴다.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를 읽던 날 ‘북톡’에 대한 질의응답이 있었다.
‘북톡’은 어떻게 만들어졌나요?
2012년도에 복지관에서 사회복지 목적으로 지역사회 발전을 위해 만들기도 했지만, 가장 큰 이유는 그냥 지역에 사는 여성분들, 주부들과 같이 활동을 하고 싶었어요. (처음 만든 분은 현재 선의관악복지관에서 근무하는 지역사회분과 팀장이다.) 그 당시 둘째 낳고 얼마 지나지 않아 복지관에 입사했었는데, 결혼 전에는 경험해 보지 못했던 사건 사고들이 막 터지면서 책을 읽을 엄두를 못 냈어요. 당장 애들 씻기고 먹이고 재운 다음 읽어야 하는데 재우면 저도 같이 자는 거죠. 그래서 같은 주부들끼리 모여서 책을 읽는 모임을 했으면 좋겠다, 집에 있으면 남편과 아이를 챙기느라 못 읽으니 정해진 시간을 비워서 같이 읽자는 마음가짐으로 처음 시작했어요. 결론적으로는 한참 시댁, 육아 등등 모든 게 다 생과 사를 넘나들 정도로 스트레스였는데 책을 읽는 게 굉장히 도움이 됐어요. 시댁 스트레스를 독서로 해결한 셈이죠.
모임원 모집은 마을 도서관마다 전단을 놓았어요. 전단을 보고 하나 둘씩 오시다가, 일 년 정도 지나고 나서는 이사나 다른 문제로 빠져도 기존 회원분들의 소개로 채워졌어요.
지금 일곱 분 정도 모여 계시는데요, 각자 어떤 계기로 독서 모임에 참여하셨는지 궁금합니다.
“퇴직하고 집에서 계속 육아를 하는데 온종일 사람의 말이라고는 옹알이밖에 못 들었어요. 이렇게 사는 게 너무 힘들어서 전단지 나눠주는데 붙잡고 가입하고 싶다고 했죠.”
“학창 시절에는 하도 독후감 쓰라고 하는 일에 스트레스를 받았었고, 회사에서도 필독서를 가지고 리포트를 써야 했는데 그것 때문에 책이라면 염증이 났어요. 회사에서 읽으라는 책은 두껍고 전혀 현실하고 맞지도 않는 경영 도서만 읽으라고 하고. 하지만 모임 와서 인문학책을 읽다 보니까 어렸을 때 책 읽으면서 느꼈던 그런 순수한 기쁨 같은 게 다시 생겼어요.”
“저는 기존에 모임원이었던 분이 집에 와서 서재를 쓱 보더니 모임에 오지 않겠느냐고 제안했어요. 간을 본 거죠(웃음) 애가 셋인데 애 키우고 집안일 하면 소소하게 문학 정도만 읽었는데, 읽고 싶었지만 혼자서는 못 보던 책들을 모임에서 읽으니 좋아요.”
다른 독서 모임도 많은데, 굳이 ‘북톡’이었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가장 큰 이유는 끝나고 밥을 먹기 때문인 것 같아요. 매일 빵이랑 스콘을 구워 오시는 분도 있고, 커피도 드립 커피로 내려서 마시기도 해요. 각자 하나씩 재료를 가져와서 월남 쌈도 먹고 아예 철판을 들고 와서 순대볶음을 먹기도 하고요. 몸과 마음을 다 채우고 가는 거죠. 다이어트의 적이에요.”
“여기서는 책을 읽어 와서 토론하는 게 아니라 안 읽은 상태에서 다 같이 모여 돌려 읽어요. 그리고 인문학 서적만 읽죠. 처음 왔을 때는 그 두 가지에 충격을 받았어요. 과연 될까 싶었는데 앎의 즐거움이란 게 감당하지 못할 정도로 너무 좋은 거예요. 이제야 고백하는 거지만 읽어오지 말라고 하는데 너무 읽고 싶어서 몰래 읽고 모임에서는 안 읽은 척 한 적도 있어요.”
“책 읽는 기쁨 때문이라도 이 모임에 꼭 오게 돼요. 혼자 읽고 재밌어 한 다음 안 올 수도 있고, 또 못 읽을 때는 찝찝해서 모임에 안 나올 수도 있고요. 그걸 막기 위해서 모여서 같이 읽고 있어요.”
“같이 읽은 모든 책에서 약속이나 한 듯이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사는 공통의 윤리와 감각에 대해 중요하게 말하고 있어요. 희한하게 어떤 책을 읽더라도 같이 살아가는 것에 관해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그런 책들을 읽으면서 공동체에 대한 감수성이 만들어지고 나니까 여기에서 책을 읽는 일이 내 개인의 삶에 국한된 게 아니라 이웃의 삶에 눈을 뜨게 만드는 줄기로 뻗어 나가는 거죠.”
줄기라고 하셨는데, 어떤 식으로 뻗어나가는 건가요?
“공동체 모임이 늘어났어요. 미술을 전공하셨던 회원 분은 포스터를 직접 만들어서 지역 주민들을 대상으로 수채화 강좌를 개설하기도 했고, 열다섯 명 넘게 모여서 나중에는 결과물을 가지고 전시회까지 열었어요. 명화를 주제로 강의도 하고요.”
“책 모임도 1개에서 요일별로 2,3개씩 나눠서 진행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아이를 데리고 안은 채로 돌려 읽는 책 모임이 만들어지기도 했고요. 최근 만들어진 모임은 저희가 읽었던 책 중에 엄선해서 다시 읽는 식으로 운영하기도 해요”
“책을 읽으면서 외국어에 대한 관심도 생겨서 중국어 읽기 모임이나 영어책 읽기 모임도 만들었어요. 지역 문화 사회에 씨앗을 뿌리고 있습니다.”
그간 인상 깊게 읽었던 책을 소개해 주세요.
작년에는 ‘사서 읽은 여자들’이라고 자랑하고 싶어서 고전 위주로 읽었어요. 『맹자』를 읽었을 때는 고전이지만 너무 재밌다고 다들 감탄을 했죠. 오늘날의 현실 정치나 사회에도 그대로 적용이 돼요. 영화 <변호인>에서 책모임하다 붙들려가는 장면처럼 나중에 ‘북톡’이 잡혀갈 수도 있겠다 농담하고 그랬어요. 혼자 읽었으면 안 읽었을 텐데 고전을 접할 수 있었던 귀한 기회였습니다.
다양한 책을 읽었습니다. 과학서적 중에는 『인간 본성에 대하여』 랑 『지구의 정복자』를 읽은 적도 있어요. 잘 읽지는 못하고 그저 시도하는 데 의의를 뒀죠(웃음). 고전으로는 동의보감을 읽기도 했고요, 특히 한 권을 추천하자면 『호모 쿵푸스』를 추천하고 싶습니다. 막 독서 모임을 시작하면서 읽으면 좋을 것 같아요. 같이 모여서 공부하고 같이 식사를 나누는 것의 중요성을 콕 집어 말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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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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