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 ‘히말라야’라는 말 많이 들어 보셨지요? 최근에 저와 박무택 대원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 <히말라야>가 개봉하기도 했는데요, 히말라야는 산스크리트어로 눈이라는 뜻의 ‘히마hima’와 거처를 뜻하는 ‘알라야alaya’가 결합한 말입니다. 눈이 있는 곳이라는 뜻이지요.
히말라야는 흔히 신들의 영역이라고 불립니다. 그만큼 인간이 접근하기 어려운 곳이라는 뜻이지요. 히말라야는 동과 서로 나누어서 2,500킬로미터의 산맥이 형성되어 있는데, 이 안에 8천 미터 이상의 주봉이 14개 있습니다. 그래서 ‘8천 미터 14좌’라고 표현하는 것이지요.
불모의 성지로 인식되어 있지만,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이 히말라야로 향합니다. 네팔의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 이상 지역을 오르려는 사람만 한 해 천여 명에 달한다고 합니다. 네팔의 산악 지역에서는 험준한 산세 때문에 자동차나 오토바이 등이 무용지물입니다. 차량으로 이동할 수 있는 데까지는 이동하지만, 히말라야에 오르고자 하는 이들은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모두 걸어야 합니다.
이국의 여행자들은 맨몸으로 산에 오르고, 가난한 네팔 사람들은 여행자들의 짐을 대신 지고 갑니다. 그것으로 돈을 벌어들이지요. 이런 일을 하는 네팔 사람을 포터라고 부릅니다. 야크나 당나귀를 이용해 짐을 나르기도 하지만, 깨지기 쉬운 사진기나 당장의 기후 변화를 감당하기 위한 옷가지, 물통, 등산에 필요한 음식들은 모두 산을 오르는 사람의 몫입니다.
히말라야 8천 미터의 베이스캠프는 고도가 평균 4~5천 미터입니다. 포터들은 한 사람당 30킬로그램의 짐을 지고 히말라야 산길을 오릅니다. 해가 뜨기 시작하면 산행을 시작해 오후 4시 정도면 다음 롯지(산장)에 도착해야 합니다. 해가 지기 시작하는 오후부터는 기온이 급격히 떨어지기 때문에 부지런히 걸어야 하지요.
포터들 중에는 슬리퍼를 신고 산에 오르는 사람도 많습니다. 운동화값이 워낙 비싸기 때문이지요. 성인이 될 때까지 신발이라는 걸 못 신어 보는 사람도 있습니다. 발바닥이 쩍쩍 다 갈라지고 굳은살이 배겨서 곰 발바닥보다 더합니다.
여행자들은 더우면 겉옷을 벗어 말리고, 추우면 여러 겹의 옷을 껴입지만 그들은 얇은 점퍼 하나만 걸치고 고산을 오릅니다. 밤이 되면 롯지에 마련된 창고에서 잠을 자는데, 나무 바닥에서 얇은 면 이불 하나만 덮고 잡니다.
공식적으로 아이들은 포터로 고용할 수 없게 되어 있지만, 가난 때문에 돈 한 푼이 아쉬워 열두세 살 나이에 포터로 나서는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남자 포터만 있는 것도 아닙니다. 여자 포터도 부지기수입니다. 남자들도 못 지는 60킬로그램 이상 되는 짐을 여자 포터가 지고 가는 것도 보았습니다. 얼마나 대단한지 모릅니다.
포터들이 하루 종일 짐을 지고 히말라야 산길을 오르락내리락하면서 받는 일당이 얼만지 아십니까? 우리 돈으로 1만5천~2만 원입니다. 그들은 그런 자그마한 돈을 받고서 히말라야 험준한 산길을 오르내리며, 척박한 환경에 적응하며 행복하게 살아갑니다.
무엇이 그들을 산으로 향하게 하는 것일까요? 포터들과 함께 간간히 숨을 돌리며, 나는 그들의 가쁜 숨 속에서 삶의 의지와 희망을 봅니다. 하루 종일 짐을 지고 받는 돈은 우리에게는 크지 않은 돈이지만, 가난한 네팔 사람들에게는 적지 않은 살림 밑천이 됩니다. 한 가족의 희망이 되는 것이지요.
사진 제공_ 엄홍길휴먼재단
그들을 보며 생각한 것이 있습니다. 인생은 산과 같은 면모가 있어서 누구나 결국 자신의 두 발로 걸어야 한다는 것을, 그들은 이미 깨달은 것이 아닐까요? 인생은 케이블카를 타고 산에 오르는 것이 아닙니다. 두 발로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는 것입니다. 힘이 들어 숨이 차고 아프고 고통스럽기까지 한 것들을 이기고 밟아 가며 오르는 것이지요.
저 또한 이 두 다리로 히말라야 8천 미터 16좌를 올랐습니다. 50년이 넘는 세월을 저를 지탱하며 기쁨과 영광의 순간, 고통과 좌절의 순간을 함께했고,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저를 지켜 주고 힘을 주었습니다. 두 다리가 있었기에 지금 이 자리까지 올 수 있었습니다.
제 왼발은 쭉 펴집니다. 발목을 구부리면 수직이 되지요. 그런데 오른발은 그게 안 돼요. 안 펴집니다. 발끝을 위로 당기면 자연스럽게 구부러져야 하는데, 당겨지지도 않아요. 오른발 뼈가 여기저기 부러져 큰 수술을 했지만 발목이 굳어 버렸어요.
오른쪽 엄지발가락도 발가락 한 마디가 없습니다. 동상에 두 번이나 걸려서 발가락이 썩어들어가는 바람에 한 마디를 잘라 내고 허벅지 안쪽 살을 떼서 피부 이식을 했습니다.
산을 잘 타는 저만의 비법도 없습니다. 저는 산을 올라갈 때 뒤꿈치가 안 닿습니다. 그래서 발 앞쪽으로 올라갑니다. 발목이 굳었다고 말씀드렸지요? 경사를 디디면 왼발은 뒤꿈치가 닿는데 오른발은 안 닿으니까 발끝으로만 올라갑니다. 간혹 산에서 만난 분 중에 저를 보고서 발끝으로만 산을 오르려는 분이 계세요. 그렇게 쫓아오다가 “어후 대장님 너무 힘들어서 안 되겠어요. 이렇게 올라가는 게 잘 가는 겁니까?” 하고 묻습니다. 다리를 다쳐서 뒤꿈치가 닿지 않아 그런 것이라고 설명해 드리면 그제야 “아 그렇군요” 합니다.
하지만 사고 후에도 저는 이 발로 8천 미터 정상을 열 번이나 올라갔어요. 지금도 산을 다니고 있고요.
그렇게 인간의 한계로는 극복하기 힘들다는 8천미터급의 산을 수십 번 올랐습니다. 죽을 각오로, 죽음을 무릅쓰고, 죽음과 더불어……. 그리고 죽을 것만 같았습니다. 그렇게 오래 산을 오르다 보니 어떤 깨달음 같은 것이 오기 시작했습니다.
히말라야 8천 미터 16좌 완등을 이루면서 제가 얻은 인생에 대한 깨달음을 여러분과 나누려고 합니다. 지금 여러분은 인생이라는 산의 어디쯤을 오르고 있습니까? 뚜벅뚜벅 내딛는 한 걸음이 느려 보이겠지만, 힘들더라도 포기하지 않고 두 발로 한 걸음씩 내디딜 때 인생도 산도 여러분에게 정상을 내어 줄 것입니다.
2015년을 내려오며
엄홍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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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도 인생도 내려가는 것이 더 중요하다엄홍길 저 | 샘터
우리 사회는 집에서도, 학교에서도 올라가는 법만 가르친다. 정상에 오르기만 하면 행복해진다고, 네가 꿈꾸는 것이 저기에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인생에는 늘 오르막만 있는 것도 아니고, 정상에 올라갔다고 계속 거기에 머무를 수도 없다. 하지만 많은 이들이 오르는 것만 생각했기에, 내려가는 법을 배우지 못했기에 아차 하는 순간에 굴러 떨어지곤 한다. 엄홍길 대장이 산에서 배운 것은 ‘누구보다 빨리 정상에 서는 법’이 아니라 ‘기다릴 줄 아는 지혜’와 ‘포기할 줄 아는 용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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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제공
출판사에서 제공한 자료로 작성한 기사입니다. <채널예스>에만 보내주시는 자료를 토대로 합니다.
서유당
2016.01.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