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봉석 평론가의 하드보일드 소설 탐험
단순히 범죄 소설의 줄거리와 내용상의 맥락뿐 아니라, 그 이야기가 탄생한 배경과 시대 상황까지 짚어가며 소설에 몰입할 수 있게 도와줍니다. 이미 읽은 책도, 아직 읽지 않은 책도 이 서평집을 통해 새로운 의미를 발견할 수 있는 이유입니다.
글ㆍ사진 이동진
2015.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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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불공정합니다. 날 때부터 정해진 조건을 바꿔보려고 발버둥 치는데 오히려 점점 더 일이 꼬이는 경우도 있고, 가혹한 시련이 나에게만 찾아오기도 합니다. 살다보면 누구나 하루 쯤 그런 날이 옵니다. 마치 벽 같은 사회의 부조리를 마주한 나라는 사람의 보잘 것 없음이 유독 서러운 날, 아무리 열심히 살아도 평생 쳇바퀴처럼 빤한 인생을 벗어날 수 없을 것 같은 생각에 허무한 날. 그런 날을 맞이한 분들께 권하고 싶은 한 권의 책, 『나는 오늘도 하드보일드를 읽는다』

 

안녕하세요. 저는 『나는 오늘도 하드보일드를 읽는다』의 담당 편집자 위윤녕입니다.

 

‘하드보일드’라는 단어, 주변에서 심심치 않게 들어보셨을 것 같은데요. 하드보일드는 본래 노른자가 딱딱해지도록 삶은 단단한 달걀을 의미했습니다. 먹을수록 목이 메는 단단한 달걀노른자가 퍽퍽한 이 세상의 법칙과 닮아서일까요? 이후 하드보일드는 헤밍웨이 식의 간결하고 비정한 문체를 의미하는 문학 용어로 쓰이다가 현재는 철저히 판단을 배제하고 건조한 시선으로 사회를 바라보는 하나의 스타일을 의미하는 단어로 사용됩니다.

 

이 책에는 세계의 추악하고 잔인한 일면을 가감 없이 보여주는 하드보일드 스타일의 범죄소설 서른여덟 권에 대한 서평이 담겨 있습니다. 이 서평을 통해서 올 여름 서점가를 시원하게 강타했던 오쿠다 히데오의 『나오미와 가나코』나 북유럽 미스터리로 유명한 요 네스뵈의 『레오파드』처럼 잘 알려진 소설부터, 이제는 고전이 되어버린 에드 멕베인의 『살의의 쐐기』나 모리무라 세이이치의 『야성의 증명』같은 하드보일드 스타일의 소설은 물론이고 아직 우리나라 독자들에게는 생소하지만 해외에서 그 저력을 인정받은 소네 케이스케나 폴 클리브의 범죄 소설에도 부담 없이 접근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저는 이 책을 편집하는 동안 아직 읽어보지 않은 책이 궁금해 참을 수 없었습니다. 서평집의 매력이란 소개된 책에 담긴 내용을 미리 맛보고 내 취향의 책만을 골라 구매할 수 있다는 게 아닐까요? 저 역시 구미가 당겨 몇 권의 책을 구매하기도 했고, 또 어떤 책은 서평집에 실리지 않은 그 뒷내용이 알고 싶어 주말 동안 추리 소설 카페에 앉아 후루룩 한 권을 전부 읽어버리기도 했습니다.

 

이 책을 읽는 또 하나의 재미는 저자인 김봉석 평론가가 짚어주는 소설의 뒷면을 들여다보는 일입니다. 여러분은 드라마로도 제작되어 큰 성공을 거둔 <스트로베리 나이트>의 주인공 히메카와의 캐릭터가, 이전 작품인 <지우>의 등장인물인 이자키에서 출발했다는 사실을 아시나요? 또 사실과 망상의 경계에 교묘하게 걸쳐진 누마타 마호카루의 작품이 저자의 대인 공포증 덕분에 탄생할 수 있었단 사실은요?

 

『나는 오늘도 하드보일드를 읽는다』는 단순히 범죄 소설의 줄거리와 내용상의 맥락뿐 아니라, 그 이야기가 탄생한 배경과 시대 상황까지 짚어가며 소설에 몰입할 수 있게 도와줍니다. 이미 읽은 책도, 아직 읽지 않은 책도 이 서평집을 통해 새로운 의미를 발견할 수 있는 이유입니다. 저자는 서문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비관적인 세계관을 가지고 있다. 아마도 우리는 이 세상을 바꿀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또한 생각한다. 그렇기에 우리가 해야 할 무엇인가가 있지 않을까’ 라고.

 

누구도 정답을 말해주지 않는 인생. 그리 따뜻하지도, 그리 희망적이지도 않은 이 세상.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하루하루를 견디며 살아가야 하지요. 우리가 바꾸기에는 너무 거대한 이 세상은 여전히 잔인하고 절망적입니다. 그러나 저는 오늘도 하드보일드 소설을 읽으며, 다짐합니다. 내가 세상을 바꿀 수는 없을지 모르지만 적어도 세상 때문에 내가 변하지는 말자고. 하드보일드 소설 속 주인공처럼, 하루하루 내 호흡을 견지하며 살자고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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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세월이 지난 뒤, 총살형 집행 대원들 앞에 선 아우렐리아노 부엔디아 대령은 아버지에 이끌려 얼음 구경을 갔던 먼 옛날 오후를 떠올려야 했다. 그 당시 마꼰도는 선사시대의 알처럼 매끈하고, 하얗고, 거대한 돌들이 깔린 하상으로 투명한 물이 콸콸 흐르던 강가에 진흙과 갈대로 지은 집 스무 채가 들어서 있던 마을이었다. 세상이 생긴지 채 얼마 되지 않아 많은 것들이 아직 이름을 지니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그것들을 지칭하려면 일일이 손가락으로 가리켜야만 했다. 매년 삼월경이면 누더기를 걸친 집시 가족 하나가 그 마을 어귀에 천막을 쳐놓고는 북을 치고 나팔을 불어대면서 아주 소란스럽게 새로운 발명품들을 선전하곤 했다. 처음에 그들은 자석을 가져왔었다. 덥수룩한 턱수염에, 참새 발처럼 생긴 손을 지닌 뚱뚱한 집시 하나가 자신의 이름을 멜키아데스라고 소개했는데, 그는 자신이 <지혜로운 마케도니아 연금술사들이 만든 여덟번째 기적>이라고 이름붙은 그 자석을 가지고 무시무시한 공개 시범을 보여주었다. 그는 금속봉 두 개를 끌면서 이 집 저 집으로 돌아다녔는데, 냄비와 프라이팬과 부젓가락과 스토브들이 놓여 있던 자리에서 굴러 떨어지고, 못과 나사들이 빠져나오려고 몸부림을 하는 바람에 나무들이 삐걱거리고, 심지어 오래전에 잃어버렸던 물건들까지도 예전에 제일 많이 찾아보았던 바로 그 장소로부터 나타나서는 멜키아데스의 그 불가사의한 쇠붙이 뒤에 되는 대로 엉겨붙어 끌려다니는데, 이를 본 사람들은 모두 깜짝 놀라고 말았다.


- 『백년의 고독』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민음사) 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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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책방 #소리나는책 #나는오늘도하드보일드를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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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진

어찌어찌 하다보니 ‘신문사 기자’ 생활을 십 수년간 했고, 또 어찌어찌 하다보니 ‘영화평론가’로 불리게 됐다. 영화를 너무나 좋아했지만 한 번도 꿈꾸진 않았던 ‘영화 전문가’가 됐고, 글쓰기에 대한 절망의 끝에서 ‘글쟁이’가 됐다. 꿈이 없었다기보다는 꿈을 지탱할 만한 의지가 없었다. 그리고 이제, 삶에서 꿈이 그렇게 중요한가라고 되물으며 변명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