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복과 반전의 순간』 출간 기념 북 콘서트
7월 21일 저녁 7시 30분, 대학로에 위치한 ‘벙커1’에서 음악평론가 강헌이 쓴 첫 번째 책 『전복과 반전의 순간』 출간 기념 북 콘서트가 열렸다. 이번 책 『전복과 반전의 순간』에는 미국 역사에서부터 비엔나 궁정을 거쳐 한국 근현대사까지, 강헌이 주목한 음악사의 역사적 장면들이 담겨 있다.
글ㆍ사진 지예원
2015.0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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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헌은 20세기 이후 인간의 일상에 음악이 개입하지 않는 순간은 거의 없다고 말한다. 우리 곁에서 음악은 마치 공기처럼 언제나 존재하고 있고, 그만큼 엄청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음악을 통해 시대를 다시 들여다보고, 역사의 순간들 속에서 보이지 않았던 이면을 새롭게 읽어낼 수 있다.

 

『전복과 반전의 순간』이라는 책의 제목은 이전에 강헌이 ‘벙커1’에서 진행했던 음악 강의의 이름을 그대로 가져온 것이다. 그는 “음악의 가장 극적인 순간들을 통해 우리의 생각과 행동이 조금 더 풍요로워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라며 말문을 열었다.

 

“지금의 20대들은 정말 불행한 세대죠. 자신이 속한 삶에서 전복과 반전의 순간을 경험해보지 못했으니까요. 그들은 이미 정해진 틀 속에서 가혹한 경쟁을 하고 있어요. 무언가 뒤집어질 때, 예상했던 기대가 무산될 때 한 인간의 에너지나 사회의 가능성이 극대화된다고 생각해요. 사실 음악 강의로서 이 제목은 별로 어울리지 않죠. 음악은 굉장히 보수적이에요. 기존 틀에서 벗어나기 어렵습니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바로 그렇기 때문에 음악이야말로 극적인 순간의 집단적 일체감을 고양시키는 데 최고예요. 집단적 일체감이 집중되는 바로 그 순간이 해방의 순간입니다.”

 

이날 북 콘서트의 진행을 맡은 CBS의 정혜윤 피디는 “이 책을 처음 보고 일단 두께에 한 번 놀랐고, 두 번째로는 선생님의 약간은 저렴한(?) 말투가 그대로 담겨 있음에도 책이 굉장히 품위 있어서 놀랐습니다. 그런 것이 선생님의 매력인 것 같아요. 어떻게 보면 산만하지만 하나, 하나가 모여서 입체적이고 종합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하니까요. 그리고 제목을 보고 뭉클했는데 제가 무언가를 전복해본 지도 오래됐고, 반전을 기대하면서 산 지도 오래돼서 그런 것 같아요”라며 책을 읽은 소감을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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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사 속 전복과 반전

 

정혜윤: 가요, 클래식, 재즈를 묶어서 전복과 반전의 순간이라고 한다면, 그것들을 관통하는 지점이 있나요?

 

강헌: 사실 모범생이 이 세상에 도움을 주었던 적은 한 번도 없어요. 모범생들은 주로 권력에 봉사해요. 그들이 사회를 안정화하는 데 기여하는 것 같지만 이전의 지배적 가치를 재생산하고 있을 뿐이죠. 진정 세상을 바꾼 사람들은 비정규직입니다. 그들은 어떻게 보면 기존의 권력적 질서 안에서 소외되고 저주 받은 자들이었어요. 하지만 사실 이런 비정규직에 의해 음악이 비약적인 도전과 성취의 역사를 열 수 있었던 것입니다. 전복과 반전이란 것은 현상유지를 바라는 권력자들이 꿈꾸는 순간은 절대 아니죠. 그들은 전복과 반전의 순간을 두려워합니다. 저는 전복과 반전의 순간을 꿈꾸는 자들에 의해 인류의 모든 역사가 굉장히 폭발적인 에너지를 갖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정혜윤: 결국은 자신이 놓인 불안정한 상황을 어떤 방식으로 끌어안느냐의 차이네요. 인간은 뜻하지 않은 상황에서 생각을 하게 된다고 하잖아요. 사실 우리가 안정적으로 현재에 만족하며 살 때는 생각을 안 하게 되죠. 다음으로 책에 나오는 김민기의 노래 ‘친구’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봤으면 좋겠어요.

 

강헌: 김민기의 노래들 중에서 가장 많이 알려진 노래가 ‘친구’예요. 그 노래의 2절에서 ‘아니라고 말할 사람 누가 있겠소’라는 굉장히 유명한 가사가 나옵니다. 김민기는 그 노래를 고등학교 3학년 때 썼습니다. 죽은 친구에 대한 슬픔을 굉장히 평범한 코드로 쓴 것이에요. 김민기의 또 다른 노래 ‘아침이슬’도 겉으로는 굉장히 의미심장한 내용처럼 보이지만, 알고 보면 그냥 대학생의 내면을 표현한 노래예요. 그런데 사실 이 노래들은 만든 사람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한 세대, 그리고 그 다음 세대까지 굉장히 강력한 변화와 변혁의 에너지를 끓어오르게 만드는 코드로 읽히게 돼요. 놀라운 일이죠. 저는 이것이 바로 예술이 지니고 있는 마법이라고 생각해요. 의도와 결과가 일치하지 않는 모순에서 발생하는 힘. 이런 것들이 김민기의 노래에서 굉장히 강력하게 드러납니다. 그런데 20년이 지나고 90년대에 와서, 김민기의 노래는 연속성을 상실하게 돼요. 제가 볼 때 이런 것들이 예술사 특유의 반전인 것 같아요. 폭력적인 상황이 반복되었던 한국의 우울한 20세기 현대사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끊임없이 밑에서부터 이러한 예술의 에너지가 만들어져 온 것에 주목해야 해요.

 

 

서양음악사의 영원한 챔피언, 베토벤

 

정혜윤: 이제 클래식 이야기로 넘어가 볼게요. 이 책에는 정말 짠한 사람들이 많이 등장해요. 해도 해도 안 되는 사람들, 끝없이 실패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많이 나오는데요. 저는 베토벤과 모차르트가 나오는 마지막 장을 읽으면서 울었어요. 책을 읽으면서 베토벤에 대해 새롭게 알게 된 것들이 많았어요. 베토벤 이야기를 좀 더 해보면 어떨까 싶어요.

 

강헌: 사실 베토벤에게 놀랐던 것은 두 가지가 있어요. 하나는 베토벤이 놀라운 능력을 가졌던 것이 아니라 발상이 놀라웠던 것입니다. 선배 음악가들의 텍스트를 출발점으로 삼았던 모차르트와 같은 작곡가들과 달리, 베토벤은 선배나 스승에 대한 경외가 없었어요. 그렇다면 베토벤은 음악적 소스를 어디서 찾았을까요? 그는 농민을 향해 갔어요. 그 이전의 음악사에서는 존재하지 않았던 일이에요. 그는 빈 근교의 농민들을 쫓아다니면서 그들이 일하며 부르는 노래, 축제 때 부르는 노래, 시위할 때 부르는 노래를 다 악보로 옮겼어요. 민중들의 소박한 힘을 재료로 삼아, 다른 선배들로부터 배운 갖은 음악적 테크닉으로 요리한 거예요. 굉장히 혁신적이죠.

 

정혜윤: 그렇다면 이전의 작곡가들은 할 수 없었던 일을 베토벤이 할 수 있었던 이유가 뭘까요?

 

강헌: 그래서 이념, 철학이 중요한 것입니다. 베토벤은 이전의 작곡과들과 계급은 같았어도 이념이 달랐어요. 바로 공화주의라는 이념이에요. 베토벤은 서양음악사에서 공화주의를 자기 삶의 원천으로 만든 최초의 작곡가예요. 그는 자신의 그 이념을 오로지 오선지 위에서만 펼쳤어요. 어느 누구도 하지 못했던 공화주의를 바탕으로 한 철학의 힘으로, 새롭고 강력하게 음악이 무기가 될 수 있음을 증명한 것이죠.

 

잠깐의 휴식 시간이 끝나고, 성악가 박경종의 노래로 2부의 막이 올랐다. 그는 모차르트의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에 나오는 ‘더 이상 날지 못하리’라는 제목의 아리아와, 뮤지컬 <맨 오브 라만차>에 나오는 아리아 ‘이룰 수 없는 꿈’을 힘 있는 목소리로 불렀다. 강헌은 “백 번 강의를 듣는 것보다 한 번의 노래가 낫다”고 말하며 멋진 노래를 불러준 박경종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했다.

 

정혜윤: 그러면 이어서 아까 못다한 베토벤 이야기를 조금 더 나눠보겠습니다.

 

강헌: 앞서 말했던 베토벤의 첫 번째 놀라운 점에 이어서 두 번째로 베토벤이 갖고 있는 위대한 점은 어떤 사람도 주목하지 않았던 가장 밑바닥 계층의 음악으로부터 자신의 미래를 찾았다는 것입니다. 이전까지 음악을 직업으로 삼았던 작곡가들에게 음악은 밥벌이였기에 잘하면 밥을 벌어먹고 사는 것이고, 못하면 굶어 죽는 것이었죠. 그래서 그들은 계속해서 자신의 능력을 과시하고 증명해야 했어요. 기술적인 요소들로 끊임없이 경쟁해야 했죠. 그런데 베토벤은 그런 기술적 요소들로 자신의 음악을 규정하지 않았어요. 그에게 음악은 사람들에게 관습화된 쾌감을 주려고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하는 새로운 이야기였기 때문입니다. 또한 그는 그 동안 많은 이들이 무시했던 콘트라베이스, 트럼본 같은 악기들, 즉 기술적 차원에서 화려한 표현을 할 수 없었던 악기들을 전면에 내세웁니다. 그들도 당당하게 주연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죠.

 

이를 통해 베토벤은 모든 인간은 동등하고 평등하다는 것을 말했던 것이다. 의미가 담긴 노래 가사를 통해서가 아니라, 그는 악기와 연주를 통해 자신의 이념을 사람들에게 전달했다. 강헌은 “베토벤은 오로지 작품 속에서만 자기 인생의 가장 빛나는 가치들을 실현하는, 그런 전형적인 예술가의 표본이었던 것 같다”고 말하며 서양음악사의 영원한 챔피언으로 남아 있는 베토벤에 대한 이야기를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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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운의 천재, 모차르트

 

정혜윤: 다음으로는 모차르트 이야기를 해볼게요.

 

강헌: 베토벤에게는 있지만 모차르트에게는 없었던 것이 바로 이념입니다. 모차르트에게 음악은 철저히 개인적인 것이었어요. 하지만 베토벤에게 음악은 이념의 투쟁이었죠. 새로운 시대와 낡은 시대의 투쟁이었어요. 그렇기 때문에 베토벤은 분명 두렵고 불안했을 거예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토벤은 자신의 이념이 승리할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어요. 반면, 모차르트는 혁명 이전의 세대였고 그의 투쟁은 불행하게도 개인의 투쟁으로 머무르게 돼요. 그는 열악한 시기에 불운한 조건 속에서 혼자 처절하게 투쟁하다가 패배했습니다. 저는 모차르트의 음악이 진실로 아름다운 이유가 그가 아름다운 선율을 잘 만드는 기술자였기 때문이 아니라, 그 숙명적인 패배가 그의 작품 속에 스며들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는 아무도 자신을 인정하지 않는 상황에서 끊임없이 곡을 써야 했어요. 그가 작품을 쓰지 않는 순간은 비참한 현실과 직면해야 하는 순간이었으니까요. 그래서 그는 자신의 음악 속으로 도피한 거예요.


 

전복의 역사, 재즈

 

정혜윤: 이번에는 재즈 파트로 넘어가볼게요. 재즈 역사의 흐름을 한 번 짚어주셨으면 좋겠어요.

 

강헌: 재즈의 역사는 100년 밖에 되지 않았지만, 다른 클래식 음악이 400~500년 동안 이룩했던 것이 재즈에서는 100년 안에 압축적으로 진행되었어요. 저는 재즈 파트에서 왜 노예 출신의 흑인계급 문화가 세계 최강대국의 주류 문화로 성장했는가에 중점을 두었습니다.

 

청교도들이 영국 땅에서 배를 타고 건너와 신대륙을 건설한 이유는 진정으로 노동의 가치에 헌신하는 기독교인의 사회를 만들고자 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노동을 위해서 강제적으로 사왔던 흑인 노예들은 늘 어떻게 하면 도망갈 수 있을지 궁리하고, 일하는 것보다 노는 것을 좋아했다. 그러다가 링컨에 의해 노예 해방이 실현됐을 때 남부의 대다수 흑인들은 시민이 되는 것을 거부했다. 시민이 되는 순간 자신들이 백인 사회 안에 들어가게 된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강헌: 정작 그들 자신이 해방의 주체가 되는 것을 거부하자 북부에서는 남부의 흑인들이 조롱거리가 돼요. 그런데 놀랍게도 미국 사회의 주류계급이 아닌 하층 계급의 백인들에게는 오히려 흑인들의 그러한 쾌락추구적 삶이 훨씬 더 매력적으로 느껴졌어요. 백인 청교도주의의 억압을 해방시킨 것이 역설적으로 흑인 노예들이었던 것이죠. 그러면서 흑인들의 문화가 백인 사회로 침투하기 시작해요. 초기에 주류 백인들은 그러한 상황에 공포를 느끼고 끊임없이 차단하려고 했지만 결국 실패로 끝나고, 차라리 재즈를 우리의 것으로 만들어버리자라고 생각하게 돼요. 굉장히 이상하게 문화적 승인을 하게 되는 것이죠. 그들은 흑인 문화의 백인적인 요소를 강조하면서 재즈를 미국의 것으로 만들어갔어요.

 

재즈는 가장 가난한 민중의 일상에서 탄생해 주류의 문화가 되었는데, 이는 인류의 예술사에서 아주 보기 드문 사례다. 재즈의 역사는 단순히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흑과 백의 이분법적 문제가 아니라 훨씬 탄력성 있는 흐름과 배경 속에서 오늘날까지 오게 된 것이다. 재즈에 대한 이야기를 마지막으로 이날 강헌과의 만남은 끝이 났다. 우리와 가장 긴밀하게 연결된 예술 장르라고 할 수 있는 음악. 음악사의 역사적 순간들을 통해 그는 지금 우리에게 물음을 던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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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복과 반전의 순간강헌 저 | 돌베개
이 책은 이렇듯 크게 네 개의 장으로 구성되었으나 네 개의 이야기가 나란히 서 있는 데 머물지 않는다. 네 개의 각 장은 각각 다시 두 개의 이야기로 나뉘어지는 듯하더니 그 두 개의 이야기는 다시 하나의 이야기로 소급된다. 그리고 그 각각의 이야기 네 개는 책 전체를 관통하는 하나의 큰 줄기로 합해져 결국 개별적인 정보와 사실 관계의 정리를 넘어, 음악을 통해 문화사 전반을 대하는 시선의 변화를 이끌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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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헌 #전복과 반전의 순간 #음악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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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예원

재미있는 인생을 살고 싶습니다. 책과 함께 있을 때 가장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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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헌

부산에서 태어나 부산사대부고를 졸업할 때까지 부산에서 살았다. 소설가가 되고 싶어서 서울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들어갔지만 자신에겐 그런 재능이 없다는 것만 확인하고 같은 대학의 음악대학원으로 방향을 바꾸었다. 음악을 좋아한 탓이지만 거기서도 좋아하는 것과 밥벌이는 다르다는 것만 확인하고 대학원 졸업 후 아무런 연고도 없는 영화판으로 별 생각 없이 뛰어들었다. ‘장산곶매’라는 독립영화집단에서 [오! 꿈의 나라], [파업전야], [닫힌 교문을 열며] 등을 만들었고, 상업 영화 시나리오 [아담이 눈뜰 때], [정글스토리], TV 드라마 [제3극장] 등을 썼지만, 이 일 역시 오래 하지 못했다. 후배의 부탁으로 김현식에 대한 평론을 썼다가 졸지에 음악 평론가가 되어 꽤 오랫동안 먹고살았고, 그 과정에서 『예감』, 『상상』, 『리뷰』 같은 문화계간지들을 또래 동료들과 만들기도 했으며, 홍익대와 성공회대 그리고 단국대와 성균관대 등에서 대중음악사를 20년 동안 가르쳤다. 평생을 비정규직으로 살며 [자유], [포크 30주년 기념 페스티벌] 같은 콘서트와 [끝나지 않는 노래], [천변살롱], [천변 카바레], [공주는 잠 못 이루고] 같은 음악극도 만들었지만, 그 어느 것도 이렇다 할 만한 결과물을 만들어내지 못했다. 한마디로 명함에 박을 타이틀 하나 변변한 것이 없는, 빈 수레가 요란하기만 한 삶이라고 할 수 있겠다. 다만, 한결같았던 것은 재수생 때부터 엄청 마셔댄 술과 음식 기행. 하지만 마흔세 살 되던 해 대동맥이 찢어지는 중상을 입고 쓰러져서 생사를 헤맨 뒤로 술마저 그를 떠나게 되었다. 그 아쉬움으로 남산 자락에서 와지트라는 이름의 와인 클럽을 열어 지금은 세상을 떠난 유명아 셰프와 24절기 메뉴를 개발하기도 했고, 음식 팟캐스트 [걸신이라 불러다오]를 만들었으며, SBS 라디오 [황교익·강헌의 맛있는 라디오]도 진행했다. 그리고 벙커1에서 음악부터 와인, 축구, 명리학에 이르는 다양한 강좌를 열었으며, 그 결과로 생애 첫 번째 저서 『전복과 반전의 순간』을 발간할 수 있었다. 하지만 쓰러진 이후 11년간 그가 가장 몰두했던 것은 명리학이다. 모든 것을 잃고 황폐해진 상황에서 운명에 대해 처음으로 겸허해진 자기 자신을 발견했고, 그 의문에 대한 해답의 틀로 명리학을 독학했다. 그 결실은 벙커1의 [강헌의 좌파명리학]이라는 제목의 강좌로 이어졌고, 예상 밖의 호응을 얻으며 3년째 3기 과정에 들어서게 되면서 ‘哲공소’라는 이름의 작은 명리학 연구소도 열게 되었다. 그가 꿈꾸는 것은 보다 많은 이들이 온갖 허세와 오욕으로 더럽혀진 명리학의 본질을 소박하게 깨닫고 우주적 존재로서의 인간의 평등한 존엄함과 상생의 조화를 즐겁게 동무하는 것이다. 펴낸 책으로 『전복과 반전의 순간』, 『명리-운명을 읽다』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