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물도 과학이다
조진원 연세대학교 시스템생물학과 교수(언더우드 특훈교수)
고등학교 2학년 때까지 저는 생물학자가 될 것이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않았습니다. 제게 생물학은 그저 암기를 해야 성적을 잘 받을 수 있는 귀찮은 과목이었습니다. 그 당시 생물은 저에겐 결코 과학이 아니었습니다. 고등학교 2학년 여름 방학 때 우연히 읽게 된 제임스 왓슨의 『이중나선』이란 책은 생물도 과학인가라는 생각을 하도록 만들었습니다. 고등학교 3학년이 되어 만나게된 생물 선생님은 생물을 과학답게 가르쳐주셨습니다. 선생님의 첫 번째 말씀을 지금도 잊지 않고 있습니다. “생물도 과학이다.” 그 말씀은 복음이었습니다. 그 말씀 이후에 선생님께서는 생물을 정말 과학답게 가르쳐주셨습니다. 원리를 가르쳐주시니 암기할 것이 많이 줄어들었습니다. 많은 노력을 기울이지 않아도 머리에 차곡차곡 정리가 되었습니다.
이처럼 생물은 암기과목이 아닙니다. 아마 아직도 많은 생물 선생님들은 과학적 원리나 근거를 제시하기보다는 암기과목으로 생물을 가르치는 것 같습니다. 저는 대학교 1학년 학생들에게 일반생물학을 강의하고 있는데, 생명과학을 전공하기 위해 입학한 학생들을 포함해서 대다수의 수강생들이 기대에 찬 마음으로 수강 신청을 한 것이 아니라 필수과목이기 때문에 할 수 없이 수강한다는 표정으로, 마치 도살장에 끌려들어가는 소처럼 슬픈 눈빛을 하고 강의실에 앉아 있는 것을 종종 봅니다. 저 역시 학생들에게 제가 믿는 그 복음의 말, 즉 “생물도 과학이다”란 말을 가장 먼저하고 강의를 시작합니다. 그리고 그 말에 책임지기 위해 우선 생명현상이 일어나는 이유와 원리를 설명해줍니다.
모든 학문이 그렇듯이 최소한의 암기는 필요합니다. 새로 나오는 용어는 우선 암기해야겠지요. 하지만 여러분이 친구를 사귈 때 친구 이름과 특성을 일일이 노트에 적어가며 암기하지 않는 것처럼 생물학에 나오는 어려운 용어들도 사랑하는 마음과 흥미로운 관심으로 받아들인다면 애써 암기하지 않아도 될 것입니다. 설령 쉽게 암기하지 못하면 또 어떻습니까? 관심과 흥미를 갖고 생물을 공부한다면 처음에 어렵게 느꼈던 용어들이 어느 순간 친한 친구처럼 여러분 머릿속에 담겨 있게 될 것입니다.
저는 이 책에서 단백질과 관련된 원리와 과학적 근거를 제시하였습니다. 세포의 여러 소기관에 대해 나름대로 알기 쉽게 설명하였고, 마지막 부분에서는 21세기 생물학의 마지막 프런티어라고 여겨지는 당생물학에 대해 설명하였습니다. 단백질은 대부분 여러 분자가 결합되어 제대로 된 구조로 변신했을 때에야 비로소 제 기능을 수행합니다. 당이나 탄수화물, 인산기가 붙어서 구조가 변하게 되면, 그렇게 변화된 구조에 의해 단백질이 제 기능을 수행하게 되는 것입니다. 단백질의 구조와 기능을 연구하는 것은 왜 중요한 것일까요? 생명현상을 조절하는 중요한 단백질들을 유전공학적 방법으로 만들 수 있더라도 단백질이 생체 내에서 다른 분자들과 어떻게 결합하느냐, 어떤 구조를 가지느냐에 따라 단백질이 제 기능을 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다양한 질병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단백질의 구조와 관련된 원리를 규명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특히 단백질에 붙어 있는 탄수화물의 기능을 연구하는 당생물학과 탄수화물의 구조와 기능을 밝히는 글라이코믹스는 당뇨병과 암 전이를 이해하는 데 필수적인 연구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저에겐 작은 소망이 있습니다. 이 책이 생물공포증에 시달리는 학생들과 생물학을 알고 싶어하는 독자들에게 “생물도 과학이다”란 복음을 믿게 하고, 생명과학에 좀 더 친숙하게 다가가게 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것입니다. 생물학은 달콤합니다. 여러분들도 달콤한 생명과학을 맛보길 바랍니다.
기획의 말
과학하는 삶으로의 초대
정재승 KAIST(카이스트) 바이오및뇌공학과 교수
“이 시리즈의 취지는 학문의 최전선에 선 최고의 석학들을 모시고,
학생들이 알아야 할 과학의 정수를 맛보게 하는 것입니다.”
상상초월 석학강연에 오신 여러분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이 시리즈는 과학의 최전선에 선 석학들이 이제 갓 세상에 관심을 갖게 된 중고등학생들에게 했던 1년간의 뜨거운 과학 강연을 책으로 묶은 야심작입니다.
요즘은 과학 강연이 서서히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게 되었지만, 4년 전 이 책을 기획할 때만 해도 ‘강연을 통한 과학 만나기’는 학생들에게 낯선 경험이었습니다. 특히 학교가 아닌 곳에서 입시와 상관없는 주제로 세계적인 석학들의 강연을 듣는다는 것은 더욱 생경한 경험이었지요. 하지만 그들이 이 강연을 얼마나 즐겼는지 아세요? 그 현장의 감동이 이 시리즈 안에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이 시리즈를 기획하게 된 건 순전히 제 개인적인 경험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저는 고등학교 때 과학자의 강연을 꽤나 많이 찾아다녔습니다. 대학 캠퍼스에서 벌어지는 흥미로운 세미나는 제게 입시에 관한 생각에서 벗어나게 해주는 일종의 탈출구였습니다. 학교에서 배우는 과학은 따분하고 지루했지만, 과학자들이 현재 실험실에서 진행하고 있는 연구, 그리고 그것을 통해 우리가 알게 된 우주와 자연과 생명에 대한 지식은 그 자체로 경이로움이었습니다.
무엇보다, 학교에서 친구들과 함께 들어야 하는 수업이 아니라, 스스로 강연 정보를 알아내 자발적으로 찾아와 듣는 강연의 한복판에 제가 앉아 있다는 사실이 저 스스로를 매우 특별한 사람으로 인식하게 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저를 과학자로, 아니 세상에 대한 호기심이 가득한 어른으로 성장하게 만든 건, 8할이 과학 강연과 과학 책이었습니다.
그래서 최고의 석학들을 모시고 중고등학교 교실이 다 담아내지 못한 과학의 매력과 학문의 본질을 지금의 청소년들과 나눠보고 싶었습니다.
이 시리즈를 기획하면서 저는 학문의 최전선에 선 과학자들에게 직접 물어보고 싶은 게 있었습니다. “사춘기를 관통하며 자신을 둘러싼 세상과 스스로에 대해 호기심을 갖게 된 학생들에게 가르쳐주어야 할 가장 중요한 과학 개념은 무엇입니까?”, 그리고 “물리학, 화학, 생물학, 수학에서 가장 중요한 단 하나의 개념을 꼽으라면 무엇을 선택하겠습니까?” 하고 말입니다.
이 시리즈는 바로 그 질문에 대한 석학들의 뜨겁고 열정적인 답변서입니다. 이 답장에는 그들이 평생을 거쳐 찾아낸 그 해답과 그것을 추적해온 그들의 학문적인 궤적, 그리고 그것들과 함께 해온 그들의 삶이 그대로 녹아 있습니다.
독자들은 이 시리즈에서 그들을 실험실에서 밤늦게까지 씨름하게 했던 하나의 질문, 책상 앞에서 고뇌하게 만들었던, 그 숙제 같은 자연의 신비가 무엇이었는지 알게 될 겁니다. 그리고 그것의 작은 일부를 겨우 알아냈을 때 그들이 맛보았을 희열도 말입니다.
이 책은 분주한 세포 속으로 우리를 인도합니다. 세포 속에서 가장 바쁘게 일하는 물질은 단백질입니다. 이 책은 단백질이 제대로 된 기능을 발휘하려면 단백질의 구조가 변해야 한다는 점을 여러 번 강조하고 있습니다. 구조가 변해야 한다니, 어떤 과정인지 정말 궁금하지 않나요? 저는 여러분이 상상으로나마 단백질이 되어보거나, 단백질에 달라붙는 탄수화물이 되어보거나 해서 세포 주위를 둘러보는 것도 좋다고 생각합니다. 단백질이 어떻게 변신하는지를 상상해보는 것만으로도 여러분에게 남다른 재미를 던져줄 것입니다.
과학은 어렵고 쉽게 이해되지 않지만, 과학자들이 밝혀낸 우주와 자연과 생명과 의식, 그리고 숫자는 그 자체로 경이로움이며 우리 모두가 만끽할 수 있는 즐거움입니다. 사춘기 시절 그 경이로움을 공유하는 것은 ‘평생 자연에 대해 호기심을 갖는 열정적인 어른’, ‘늘 배움에 열려 있는 성숙한 어른’으로 성장하는 데 가장 중요한 경험이 될 것입니다. 여러분의 과학하는 삶이 이 책에서 비로소 출발했으면 합니다.
이 기획에 흔쾌히 참여해 귀중한 시간을 내주신 교수님들과 책이 나오기까지 애쓴 해나무 편집부에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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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콤한 생명과학 조진원 저/ 정재승 편 | 해나무
『달콤한 생명과학』(상상초월 석학강연 시리즈 03)은 생물학 분야의 석학이자 싱어송라이터로도 활동 중인 조진원 연세대학교 특훈교수의 생물학 강연을 풀어쓴 책이다. 저자는 ‘연’(라이너스)이라는 유명한 곡을 작사?작곡한 싱어송라이터이기도 하다. 이 책에서 저자는 단백질, 세포, 당생물학과 글라이코믹스를 주제로 우리 몸속에서 일어나는 흥미로운 생명현상을 소개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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