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스토리텔링 하기에 딱 좋은, 그야말로 인생 자체가 드라마인 삶을 살았습니다. 화가로 활동하던 10년 동안 2천여 점의 작품을 만들었지만, 살아생전에 단 한 점만 팔린, 가난과 고독, 끊임없는 자학에 시달려야 했던 빈센트 반 고흐 말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반 고흐의 그림은 물론 빈센트라는 사람까지 사랑하는 것이겠죠. 감동과 위로가 있으니까요. 빈센트 반 고흐의 삶과 그림으로 무대를 채우는 뮤지컬 <빈센트 반 고흐>가 지난 6월 6일 충무아트홀 중극장 블랙에서 막을 열었습니다. 지난해 초연 때보다 음악과 영상을 더 풍성하게 채웠다는데요. 새로운 배우들의 모습도 눈에 띄네요. 얼마 전까지 <쓰루더도어>에서 레니로 열연했다 이번에 빈센트로 새롭게 무대에 서는 뮤지컬배우 김경수 씨를 만나봤습니다.
“살면서 하게 될 염색과 탈색을 한꺼번에 다 한 것 같아요. 수염 색에 맞춰야 해서 탈색 한 번에 염색을 여섯 번 정도 했어요.”
노란 빛이 감도는 머리카락과 수염. 공연이 시작되기 전이라 분장을 80% 정도 마친 그는 배우 김경수에서 빈센트 반 고흐로 바뀌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한껏 우울할 줄 알았는데, 꽤 쾌활해 보이네요.
“재밌어요. 공연 자체는 진지하게 접근하고 있지만, 오랜만에 재미를 느껴요. 일단 제가 좋아하는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작품이기도 하고, 보강이나 태훈이 형 모두 제가 좋아하는 사람들인데 만나게 돼서 무척 기쁘고. 그래서 연습을 놀면서 했던 것 같아요.”
그래도 배우들은 작품 따라간다고 하잖아요. 전작인 뮤지컬 <쓰루더도어>가 워낙 밝은 작품이라서<빈센트 반 고흐>를 연기하면서 우울하지 않을까 걱정했습니다.
“전작할 때 더 우울했어요(웃음). 농담이고요, 사실 <쓰루더도어>는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던 작품이에요. 저는 코미디가 굉장히 어렵다고 생각하거든요. 일단 관객들을 재밌게 해드린다는 게 부담이에요. 어떻게 보면 <빈센트 반 고흐>는 오히려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작품이죠. 반 고흐를 설명하면 되니까요.”
반 고흐는 세대를 뛰어넘어 세계적으로 사랑받는 화가인데, 어떤 사람으로 접근했나요?
“진부하지만, 순수하다고 생각했어요. 있는 그대로 보이는 대로 판단했고, 계산적이지 않았던 사람. 순진이 아니라 순수하다는 단어에서 출발해서 접근하고 있어요. 그리고 저는 빈센트가 우울하게 살았던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누군가에게 떠밀려서 억지로 살았던 사람이 아니잖아요. 단지 가난했고 세상의 시선 때문에 힘들었을 뿐이지, 자기가 사랑했던 그림을 그렸고, 그래서 행복하게 살았던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지금 보기에는 무척 쾌활해 보이시는데, 실제 성격과는 비슷한가요?
“저는 빈센트와 많이 닮은 것 같아요. 무언가 하나에 잘 빠지는 편이고, 멀티태스킹이 불가능한. 사실 지금의 쾌활함은 이 작품을 소개하는 게 기뻐서 나오는 것 같아요. 말씀하신 대로 아무래도 배우는 작품 성향에 따라 행동이나 표현이 달라지죠. 과거의 저는 내성적이고 사람들과 유대관계를 힘들어 했던 것 같아요. 조용하고 진지한 편이고요. 그런데 배우로 일하다 보니 바뀌더라고요. 그래서 어느 순간 스스로에게 ‘내 원래 성격이 어땠지?’ 물어볼 때도 있어요.”
화가를 표현하기 위한 디테일은 어렵지 않았나요?
“제작사에서 미술시간을 만들어주셨어요. 일주일에 한 번은 선생님을 초빙해서 구도를 잡거나 붓을 쓰는 모습을 지도받았죠. 그런데 형식에 맞추기보다는 자기가 편하게 하는 게 좋대요. 저희가 빈센트의 그림을 베끼기도 했는데, 그걸로 공연장 앞에서 경매를 진행한다고 하시더라고요. 안 팔리면 어쩌려고 그런 실수를(웃음). 저희 나름대로 기본을 좇으려고 노력했어요. 모두 재기발랄한 친구들인데 그림을 그릴 때는 조용하고 진지하더라고요. 진짜 미친 듯이 그렸거든요. 물론 미친 듯이 못 그렸지만(웃음).”
2인극이라 부담도 클 것 같습니다.
“두 명이 전체 극을 한 호흡으로 밀고 가야 하니까. 게다가 이 작품은 한 사람의 인생을 보여주는 거라서 그 호흡이 끊기면 굉장히 힘들어지죠. 상대역인 테오는 더 그럴 테고요. 예전에 <카페인>이라는 2인극을 한 적이 있어요. 사실 그때 자극을 많이 받았죠. 모든 노래 레슨을 그만뒀어요. 노래를 아무리 잘해봤자 연기가 안 되면 소용이 없더라고요. 욕도 많이 듣고, 자책도 많이 하고, 1년 가까이 공연을 안 했어요. 스스로 관객에 대한 모독이라는 생각까지 들더라고요. 그 뒤로 만난 작품에서는 노래보다 연기적으로 접근하려고 노력했던 것 같아요. 예전에는 노래 잘하는 사람들이 정말 부러웠는데, 이제 연기 잘하는 분들이 존경스러워요.”
그도 그럴 것이 원래 가수를 꿈꾸던 분이잖아요. 대학가요제 출신인데, 어떻게 뮤지컬을 하게 됐나요?
“가수를 꿈꿔서 서울에 온 건 맞아요. 실용음악과를 다니다 뮤지컬 수업이 있어서 <지킬 앤 하이드>를 단체로 관람하게 됐어요. 처음에는 이상하더라고요. 말하다 노래를 하니까. 솔직히 웃기기까지 했어요. 그런데 노래 부르는 모습을 계속 보고 있으니까 ‘적어도 이 사람들은 극의 상황을 이해하고 노래하는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저는 그때까지 팝송은 뜻도 모르고 노래할 때도 많았고, 가요도 작곡가의 의도보다는 외적인 기술에 치중했거든요. 그래서 뮤지컬이 궁금해졌고, <우연히 행복해지다>에 참여하면서 뮤지컬을 시작하게 됐어요.”
이번 작품에서는 기존 뮤지컬 작곡가가 아니라 대중음악을 하는 선우정아 씨가 음악 감독을 맡았습니다. 객석에서 들어도 음악적인 색깔이 꽤 다른데, 배우 입장에서는 어떤가요?
“학교 선배예요. 오디션 때 뵙고 깜짝 놀랐는데. 기존 뮤지컬 음악을 탈피했지만, 그렇다고 아주 다른 것도 아닌 묘한 매력이 있어요. 선율이나 리드미컬한 부분이 선우정아 감독의 특징을 잘 보여주지 않나. 음악이 굉장히 좋아서 미치겠어요(웃음).”
당대에는 인정을 받지 못했지만 시간이 한참 흘러 누군가 빈센트 반 고흐의 인생을 연기해주고 있는 거잖아요. 이렇게 거창하게 가지 않더라도 누군가 김경수 씨를 얘기할 때 어떻게 표현되길 바라세요?
“<닥터후>라는 영국 드라마가 있어요. 거기에 ‘빈센트 반 고흐’편이 있거든요. 지금의 사람들이 반 고흐를 오르세 미술관에 데려가요. 얼마나 기쁘겠어요. 저는 천재도, 그렇게 빛나지도 않겠지만, 열정적이었던 사람으로 표현해 주면 좋겠어요. 스스로 무척 순수하다고 생각하거든요(웃음). 덜 가식적으로 사는 것 같고, 그래서 너무 솔직해서 욕도 많이 먹었지만. 어쨌든 순수하고 담백한 사람으로 얘기해 주면 좋겠어요.”
반 고흐는 알까요? 그때는 그렇게도 몰라주던 그가 화폭에 담고 싶었던 진심을 후대 사람들이 넘치도록 공감하고, 그 그림에서 위로를 얻고 있다는 것을요. 할 수만 있다면 뮤지컬 <빈센트 반 고흐>의 객석에도 초대하고 싶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김경수 씨가 그림을 그리며 행복해하는 순수한 빈센트를 잘 표현하고 있는지, 관객들이 그의 삶과 그림에 얼마나 감동을 받고 있는지 직접 보여줄 수 있다면 좋을 텐데요. 배우들의 따뜻한 연기와 선우정아 감독의 개성 있는 음악, 그리고 프로젝션 맵핑 기술로 3차원으로 생생하게 만날 수 있는 반 고흐의 그림들, 뮤지컬 <빈센트 반 고흐>에서 직접 만나 보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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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하정
"공연 보느라 영화 볼 시간이 없다.."는 공연 칼럼니스트, 문화전문기자. 저서로는 <지금 당신의 무대는 어디입니까?>, 공연 소개하는 여자 윤하정의 <공연을 보러 떠나는 유럽> , 공연 소개하는 여자 윤하정의 <축제를 즐기러 떠나는 유럽>, 공연 소개하는 여자 윤하정의 <예술이 좋아 떠나는 유럽> 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