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한 때 시인을 꿈꾸던 문학도였다. 이후에는 신화를 공부하기 위해 중국으로 떠났고, 지금은 작은 공방에서 나무를 매만지며 살아가고 있다. 사람들은 그를 향해 묻는다. 왜 목수가 되었냐고. 돌아오는 대답은 거창하지 않다. 무언가를 이루기 위해, 누군가가 되기 위해 공부했던 건 아니었으니까, 라고 답할 뿐이다. 그리고 덧붙인다. “늘 만들어져 있는 것만을 선택하는 것이 내겐 무기력처럼 느껴졌다”고. “내가 혼자 짓고 무너뜨릴 수 있는 것은 생각뿐이었다”고. 눈으로 보고 손으로 느끼면서 스스로 만들어낼 수 있는 대상을 찾던 그는 나무와 만났다. 따스한 결을 가진 존재와 마주하자, 그동안 활자로 다가왔던 문학과 철학이 살갗의 감촉으로 느껴졌다. 『목수와 인문학』에 담긴 저자 임병희의 성찰에 대한 이야기다.
나무를 통해서 그는 세상과 삶의 이치를 보았다. 빠르게 자라면서도 단단한 나무는 없다는 사실을 배우면서, 자신의 약한 부분을 흔적 없이 덜어내려던 마음이 욕심이었음을 깨달았다. 어디에도 쓰일 수 없을 것 같던 자투리 목재가 작지만 유용한 소품으로 태어나는 걸 지켜보면서, 허투루 버릴 수 없는 조각들은 삶에도 있음을 알게 됐다. 둥근 곡선으로 나무를 뚫는 공구들을 통해 강함을 이기는 부드러움의 힘을 떠올리기도 했다. 묵직한 질문들과 명쾌한 해답들이 공방 곳곳에 숨어있었던 것이다.
그것은 고전이 전해준 이야기와 다르지 않았다. 톱질 하나를 할 때에도 이해와 정성이 필요하다는 깨달음은 『대학』이 가르쳐 준 격물(格物) 치지(致知) 성의(誠意) 정심(正心)의 이치를 떠올리게 했다. 가구의 뼈대를 만들고 사포질을 하기까지 어느 과정 하나 소홀히 할 수 없다는 사실은 “흐르는 물은 구덩이를 채우지 않고는 앞으로 나아가지 않는다”는 『맹자』의 가르침과 닿아 있었다. 그렇게 나무들은 침묵의 언어로 『도덕경』을 들려주었고 『논어』와 『장자』의 말씀을 읊었다. 각종 공구들 역시 한 목소리로 『중용』을 말하고 『주역』을 전했다.
『목수의 인문학』에서 저자가 다다르는 인문학적 통찰은 아주 일상적인 순간들에서 시작된다. 그 속에는 누구나 한 번쯤 가져봤을 의문들과 감정들이 있다. 독자들의 깊은 공감을 이끌어 내면서도 고전의 의미를 쉽게 전달해줄 수 있는 이유다. 나무와 고전이 어우러진 책 속의 이야기들은 우리에게 주어진 삶을 묵묵히 살아내는 지혜를 전한다.
흠이 없는 나무는 없다
문학과 문화인류학을 공부하고 신화를 연구했던 이전의 삶과 목수로 사는 지금의 삶에 공통점이 있을까요?
공부와 목공의 구조는 같다고 생각해요. 어떤 가구를 만들지 생각하는 과정은 어떤 주제에 대해서 공부할지 생각하는 것과 같고요. 가구 디자인을 구상하는 과정은 공부한 결과를 어떤 형식의 글로 쓸지 고민하는 과정과 같아요. 그에 앞서 목차를 정하는 건 도면을 그리는 것과 같다고 할 수 있고요. 가구를 조립해 나가는 과정이 글을 써내려가는 과정이라면, 초고를 다듬는 순간은 가구를 사포질하고 마감재를 바르는 것과 같죠. 공을 들인 만큼 좋은 결과를 얻게 되는 건 목공이나 공부나 마찬가지예요.
“나무에 단단하면서 빨리 자라는 부분은 없다. 그것이 나무의 이치다”라고 하셨습니다. 반면 “사람은 빨리 단단히 자라기를 바란다”고 하셨고요.
반드시 겪어야 하는 상황임에도 피하려고 할 때가 있잖아요. 나라는 사람을 이루고 있는 여러 가지 면모 중에서도 좋은 하나의 모습만을 가지고 싶어 하고요. 주어진 순간에 충실하면 그것 자체로 자신에게 무언가를 줄 수 있는 것 같아요. 그런데 우리는 욕심을 너무 많이 부리는 것 아닐까 싶고요. 그래서 조금은 나무처럼 살아보려고 해야 하지 않나, 생각해요.
『도덕경』 24장의 이야기를 통해 ‘흠’에 대해 말씀하신 부분이 기억납니다. 흠이 없는 나무는 없듯이 사람 역시 흠결이 없을 수는 없잖아요.
흠이 있다는 걸 당연하게 생각하면 문제가 되지 않는데, 흠이 없는 걸 찾으려고만 하는 것 같아요. 나무에는 흠이 있는 게 당연하잖아요? 그게 이치이기도 하고요. 사람도 완벽하게 성인처럼 살 수 없는 거고요. 그러면 나에게도 흠이 있다는 걸 인정해야죠. 그러고 나서 ‘그 흠으로부터 무엇을 얻을 수 있는가, 흠을 남기지 않으려고 노력할 수 있는가’를 생각해야 하고요. 완전무결한 사람을 꿈꾼다면 작은 흠 하나만 있어도 자기 삶이 잘못된 것처럼 느껴질 수 있을 거예요. 백지 위에 작은 점 하나가 있다고 잘못된 건 아닌데 말이에요. 중요한 건 흠을 대하는 자세인 것 같아요. 흠은 어디에나 있는 것 같거든요.
톱을 통해 격물, 치지, 성의, 정심의 이치를 떠올리신 이유는 무엇인가요?
톱질이 잘 안 됐기 때문이죠(웃음). 직선으로 곧게 톱질을 한다는 게 쉽지 않아요. 톱이나 나무에 대해 잘 모르면 그렇게 되죠. 켜야 되는데 자르고 있다거나 나무의 밀도 차이를 헤아리지 못한 거예요. 그걸 알고 나니까 먼저 나무와 톱의 성질을 알아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톱질이 어긋나려고 할 때 짜증내지 말고 참고 계속 하면 반듯하게 나가거든요. 그 과정을 보면서 『대학』의 구절이 떠올랐어요. 우리는 보통 ‘수신제가치국평천하’만 알고 있는데 그러려면 격물, 치지, 성의, 정심해야 하는 거잖아요. 톱질을 하면서 제가 나무를 모르고 톱을 몰랐다는 걸 알게 됐거든요. 그럴 때 마음과 기술을 연마하지 않은 나는 탓하지 않으면서 톱과 나무만 탓했던 거죠.
공구를 다루다가 다쳤던 일화도 들려주셨는데요. 상처가 생기고 나면 두려움이 따라오는데, 그런 점에서 나무를 다루는 일은 계속 두려움을 넘어서는 일일 것 같습니다.
다치고 나면 기계가 무서워지죠. 그런데 그만큼 더 조심하게 되고, 사고를 당할 확률도 줄어들게 돼요. 경미한 사고 덕분에 기계를 무서워하게 돼서 오히려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마음에 상처를 입었을 때는 어떻게 다뤄야 할까요?
가끔씩 지나고 나서 후회하는 일들이 있잖아요. 그런데 어쩔 수 없는 것 같아요. 돌이킬 수 없는 거니까, 그 일을 생각하면서 괴로움을 당하기도 해야죠. 그러면서 조금씩 나아지지 않나 싶어요. 다음에는 그러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또 같은 실수를 하지만, 부끄러워하고 괴로워했던 순간이 있기 때문에 조금 더 조심하게 되는 거죠. 실수 혹은 잘못이라는 걸 모르면 거리낌이 없을 텐데, 알면 저어하는 마음이 생기잖아요.
흐르는 물은 구덩이를 채우지 않고는 앞으로 나아가지 않는다
의자를 만드시면서 “도는 사람에게서 멀지 않다” ‘도끼 자루를 찍어내나니 그 법은 멀지 않다’는 『시경』의 구절을 생각하신 이유가 궁금합니다.
의자를 만들면서 어느 정도 높이로 만들면 좋을지 고민하고 있을 때였어요. 그런데 가만히 보니까 제가 의자에 앉아있더라고요. 그 의자를 기준으로 가늠하면 되는데, 머리로만 고민하고 있으니까 몰랐던 거예요. 『시경』에 나오는 도끼 자루 이야기를 보면, 도끼를 가지고 도끼 자루를 깎으면서 얼마만큼 깎아야 되는지 모르잖아요. 제가 딱 그 꼴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가만히 살펴보면 거의 대부분 주위에 해답이 있는데, 먼 데에서만 찾으려고 하니까 헤매는 거죠. 도가 사람과 멀면 도가 아니라는 말과도 통하는 이야기 같아요. 그런데 때로는 돌고 돌아서 가까운 곳에 이르는 경험도 해 볼 필요가 있죠. 그러면 잘 잊어버리지 않게 되니까요.
결국 인문학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져주는 것 같습니다. 원(圓)에 대한 이야기에서 전하고 싶으셨던 메시지도 다르지 않을 텐데요. 물 흐르듯이, 둥글게 살아가야 한다는 걸까요?
다 꿈이죠(웃음). 그런데 그렇게 되려고 노력을 하면 그나마 조금 더 가까워질 수 있잖아요. 둥글게 살고 물처럼 흐르면 좋은데 그렇게 살수만은 없죠. 이런 얘기는 불가와 도가의 것이라고 할 수 있는데, 사람이 닮아가야 할 길은 불가와 도가에도 있고 유가에도 있는 것 같아요. 자연의 영역이 도가적 불가적이라면 현실의 영역은 유가적이죠. 목공도 그런 것 같아요. 나무와 같은 자연의 재료를 가지고 인공의 재료인 금속으로써 다듬잖아요. 그럼으로 인해서 가구가 하나 만들어지고요. 결국은 자연의 이치와 사람의 기운이 모여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도가적인 자연과 유가적인 인공이라고 할까요. 두 가지 속성을 동시에 가지고 있는 건 사람도 마찬가지죠. 그 사이에서 어떻게 균형을 잡고 살아가느냐가 중요한 것 같아요.
“흐르는 물은 구덩이를 채우지 않고는 앞으로 나아가지 않는다”는 『맹자』의 가르침과 함께 “건너뛰고 이루어지는 일은 없다”고 적으셨습니다. 나무를 다듬는 모든 과정에 해당되는 말이 아닐까 싶은데요. 어떠신가요?
그렇죠. 건너뛰고 싶기도 하죠(웃음). 그런데 건너뛸 수 없으니까 하는 건데요. 물처럼 살라는 말이 꼭 순응하라는 의미는 아니에요. 연어가 강물을 거슬러 올라가는 게 역행은 아니잖아요? 맞바람을 맞으며 새가 날아가는 것도 마찬가지고요. 물처럼 구덩이를 채워야 한다는 건 주어지는 것에 완전히 내 몸을 맡기라는 게 아니에요. 그 순간에도 계속해서 나아가고 있다는 이야기를 하는 거죠. 구덩이를 채우는 과정도 나아가는 과정 중에 하나인 거예요. 구덩이가 채워질 때까지 기다리겠다고 가만히 있으면 결코 채워지지 않는다는 의미죠.
처음 경첩을 달면서 많은 고생을 하셨다고요. 그 결과 깨달으신 것은 문의 중요성이었던 것 같습니다.
처음에는 간격이 일정하도록 경첩을 다는 게 너무 어려웠어요. 그래서 ‘문을 만들지 말까’ 라는 생각도 했죠. 그런데 문을 만들지 않으면 텅 비어있는 공간만 남잖아요. 경첩을 만들 수밖에 없었죠. 그러다가 문득 ‘역시 문이구나’라는 생각을 했어요. 나에게도 굉장히 많은 문이 있고, 그 중에는 오랫동안 닫아놓은 문도 있고, 닫아야 하는데 열어놓은 문도 있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사람을 만날 때에도 문을 닫아야 할 때 열고, 문을 열어야 할 때 닫아놨던 때가 있는 것 같아요. 그리고 경첩을 달아 보니까 결국 움직이는 건 문이 아니라 경첩이라는 걸 알게 됐어요. 경첩의 중요성을 깨달은 거죠. ‘도의 지도리’가 의미하는 게 그거거든요. 지도리라는 건 경첩 가운데에 있는 쇠막대를 의미해요. 지도리가 무궁하다는 이야기는 지도리가 있음으로 인해서 열고 닫음을 계속 반복할 수 있다는 거죠.
나무가 가르쳐 준 ‘인생미정’
전동 드릴의 회전력을 조절하는 ‘토르크’라는 부분을 보면서 『중용』을 말씀하셨어요. 그 이유가 궁금합니다.
전동 드릴의 속도와 힘은 토르크의 숫자에 따라서 달라지는데요. 그래서 나무의 재질이 무른지 단단한지를 보고 숫자를 바꿔줘야 해요. 그런 것처럼 사람을 만날 때도 정도를 조정해야 되지 않나 싶어요. 공자가 성격이 강한 사람은 눌러주고 소심한 사람에게는 기를 북돋아줬던 것처럼요. 어떤 일을 하거나 어떤 사람을 만날 때에는 토르크를 조정하는 것과 같은 마음을 가져야 된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중용』의 이야기를 하게 된 거죠.
『목수의 인문학』에서 ‘인생미정’을 이야기하셨는데, 나무가 알려준 삶의 순리들을 한 마디로 요약하신 건가요?
인생은 미정에서 기정으로 가는 것 같아요. 지금의 상태는 과거의 것들이 쌓여서 만들어진 거잖아요. 마치 단층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수많은 단층들이 있어서 지금의 절벽이나 나를 만들었지만, 만들어진 이 상태는 정해진 것이죠. 그런데 계속 미정은 이어질 거예요.
목공 전문 잡지를 출간하실 계획이라고 들었습니다.
출간 중인 목공 잡지가 없더라고요. 전동 드릴 하나를 고르려고 해도 살펴봐야 할 것들이 정말 많은데 자세히 알려주는 곳이 없는 거죠. 선택을 쉽게 하도록 도와주는 이야기도 없고요. 인터넷에 정보들이 있기는 하지만 정리되어 있지 않잖아요. 그래서 목공 잡지를 만들어 보면 재미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9월 창간호를 목표로 준비 중이고요. 나무의 결에 따라 작업하는 방법이라든지, 자체적으로 실험을 해서 얻은 데이터를 제공할 예정이에요. 목공과 관련된 문화 이야기도 싣게 될 거고요.
『목수의 인문학』을 읽은 독자들이 어떤 이야기를 기억해 주길 바라세요?
대부분의 경우 기다리던 그 순간이 바로 앞에 있다는 걸 말씀드리고 싶죠. 거의 다 왔다는 걸 기억하셨으면 좋겠어요. 스스로를 이끌고 갈 수 있는 한 마디가 되지 않을까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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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수의 인문학 임병희 저 | 비아북
이 책은 저자가 목수로서의 삶을 살아가는 도중에 겪은 일들과 그보다 과거의 경험들을 사서(四書)와 노장(老莊) 등의 동양고전 속 문장들로 풀이한다.얼핏 보면 관계가 없어 보이는 목공과 인문학 사이에서 공통점을 발견하고, 더 나아가 그 안의 이야기들을 삶의 다른 영역으로까지 확대해가는 일은 인문학의 외연을 넓혀가는 작업이다. 또한 책상에 앉아 머리로만 생각하지 않고, 삶의 현장과 직접 부딪치며 만들어가는 ‘현장의 인문학’이라 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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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나리
그저 우리 사는 이야기면 족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