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전(反轉) 소설
기꺼이 내 뒤통수를 내주고픈 순간들이 있다. 큼지막한 손바닥으로 불시에 퍽, 하고 내리쳐도 전혀 기분 나쁘지 않는 순간, 바로 기막힌 반전(反轉) 소설을 읽을 때가 그렇다.
대중소설, 그 중에서도 미스터리 장르의 소설은 결말이 무척 중요하다. 처음의 전개가 완전히 뒤바뀌거나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사건의 전모가 드러날 때 독자들은 열광한다. 한때는 아예 반전 소설이라는 장르가 따로 존재하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독자의 뒤통수를 치는 작품들이 속속 소개됐다.
내가 읽은 최초의 반전 소설이라 할 만 한 작품은 다름 아닌 『링』이다. 저주를 풀고 모든 게 다 끝났다고 생각한 순간, 이 호러 소설 시리즈를 관통하는, 그리고 후대의 수많은 호러 작품들에 영향을 준 최후의 반전이 드러난다. 그때의 오싹함과 짜릿함은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그 후 『살인자들의 섬』, 『용의자 X의 헌신』, 『살육에 이르는 병』, 『벚꽃 지는 계절에 그대를 그리워하네』, 『가위남』, 『코핀댄서』, 『고백』 등 소위 반전이 기가 막힌다는 소설을 잔뜩 읽었다. 물론 요즘에도 반전을 앞세운 소설들이 속속 출간되지만 이제는 반전 자체에 무뎌져서 그런지 예전만큼의 충격은 덜하다. 그럼에도 반전 소설은 언제나 매력적이다. 특히 마지막 몇 장을 남겨놓고 내가 짐작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는 이야기를 봤을 때의 그 짜릿함이란!
최근에 읽은 미스터리 소설 중에서 가장 반전이 돋보였던 작품은 히가시노 게이고의 『가면 산장 살인사건』이다. 일본에서는 꽤 오래 전에 출간됐던 작품인데(무려 1990년!) 우리나라에는 이제야 소개가 됐다. 그럼에도 어색한 구석이나 낡은 느낌이 전혀 없다. 한참 푹 빠져서 읽다가 ‘그런데 왜 아무도 휴대전화를 사용하지 않지?’라고 생각하게 되는데, 그 생각마저 깊게 할 수가 없다. 이야기 자체가 워낙 재미있어 딴 생각 할 틈이 없기 때문이다.
가시마 다카유키는 비운의 사고로 약혼자 모리사키 도모미를 잃었다. 그 후 몇 달이 지나 다카유키는 도모미의 아버지인 노부히코의 초대로 별장에 가게 된다. 별장에서 그를 기다리던 사람은 모두 일곱 명. 그 자리에서 한 명이 도모미의 죽음에 의문점이 있다고 말하는데……. 본격적으로 도모미의 죽음을 파헤치는 가 싶던 이야기는 돌연 전개를 확 비틀어 버린다. 2인조 은행 강도가 별장으로 침입한 것. 인질이 된 여덟 명의 남녀, 그리고 이어지는 의문의 살인 사건.
『가면 산장 살인사건』은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답게 휙휙 잘도 읽힌다. 제법 두껍네 하면서 책을 들었는데 정신을 차리고 보니 금세 마지막 장에 와 있었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최대 장점인 간단명료하면서도 자극적인 설정, 빠른 전개, 단순하고 효율적인 문장이 이 작품에서도 유감없이 발휘된다.
그리고 마지막 반전. 솔직히 나는 전혀 예상을 못했고 그랬기에 짜릿함이 더 컸다. 물론 한 번도 생각해 보지 못한 반전이었느냐 하면 그건 아니다. 나름 미스터리 쪽의 소설을 쓰는 작가로서 나 역시 수많은 반전에 대해 고민하고 연구했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반전 또한 언젠가 한 번 생각해 본 것이다. 그래도 이런 식으로 풀어낼 줄은 몰랐고 그 때문에 제법 만족스러운 독서가 되었다.
『가면 산장 살인사건』을 읽으면서 흥미로웠던 것은 본문의 내용만이 아니다. 나는 띠지에도 눈길이 갔는데 특히 ‘스포일러 금지!’라는 마지막 문구가 상당히 재미있었다.
스포일러가 넘쳐나는 세상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스포일러가 문제가 되었던 건 내가 알기로는 영화 <유주얼 서스펙트>가 개봉할 때부터였다. 워낙 결말의 반전이 뛰어났던 이 작품은 극장 매표소 앞에 줄을 선 사람들을 향해 누군가가 “절름발이가 범인이다!”라고 외친 사건 덕분에 더 유명해졌다. 몇 년 후 <식스센스>가 극장에 걸렸을 때도 비슷한 소동이 있었다. 같은 시기에 개봉한 우리나라 영화 <텔미 썸딩>도 스포일러와의 전쟁을 치러야 했다. 그때쯤부터였을 것이다. 우리나라에 ‘스포일러’라는 단어가 자주 사용되기 시작한 건.
영화보다는 그 파급력이 덜했지만 소설에도 스포일러 논쟁은 종종 벌어졌다. 특히 위에서 열거한 반전 소설들의 경우 선의에 의해서건 악의에 의해서건 한 번씩은 다 스포일러 홍역을 치렀다. 서평 중에 스포일러가 포함된 경우도 있었고 기자가 책 소개를 하면서 결말을 말해 버린 경우도 있었다. 경쟁 출판사가 일부러 스포일러를 흘리고 다닌다는, 흉흉한 소문이 돌기도 했다. 어떤 책은 아예 결말 부분이 봉인된 채 출판되기도 했다.
지금은 스포일러에 대한 인식이 많이 바뀌어서 블로그에 포스팅을 할 때에도 ‘스포일러 주의’라는 문구를 꼭 집어넣는다. 기사도 마찬가지다. 웬만해서는 스포일러에 당할 일이 없어진 것이다.
그런데 가만히 보면 지금 우리 사회는 훨씬 더 거대한 스포일러에 노출된 형국이다. 금수저, 은수저 이야기가 나온다. 최소 동수저라도 물고 태어나지 않았다면 행복하게 살아갈 기대는 하지 말아야 한다는 이야기가 공공연히 떠돈다. 성별에 따라서, 출신 지역에 따라서, 졸업한 학교에 따라서, 입사한 기업에 따라서, 그 외에도 여러 변수들에 따라서 인생의 결말이 이미 결정된다.
요즘 우리 아들은 한글 공부에 열심이다. 내년이면 초등학생이 되는데 아직도 한글을 모르냐며 주위 사람들은 난리다. 한글은 기본이고 수학도 구구단까지 다 외워야 하며 한자도 익혀야 한다는 게 요즘 엄마들의 주장이다.
“어릴 때부터 열심히 준비해야 그나마 수도권 대학에 간다니까. 요즘은 코스가 뻔해. 알잖아?”
우리 집에 놀러온 지인이 해 준 말이다.
안다. 너무도 잘 알아서 슬프다. 고작 일곱 살에 인생의 전반이 이미 정해진다는 것은 얼마나 슬픈 일인가. 나는 아들에게 네가 원하는 일을 하라고 말할 테지만, 진짜 원하는 걸 찾으면 대학에 안 가도 좋다고 이야기 할 테지만 현실적으로 그런 일은 불가능에 가깝다는 사실 또한 안다. 나는 아들에게 아무런 수저도 물려주지 못했다. 지금의 흐름대로라면 아들은 자수성가를 해야 하는데 그런 식의 ‘코스’마저 이미 다 정해져 있다. 그리고 그 코스에서 이탈하면 패배자가 되는 것이다.
우리네 인생은 누구도 예측할 수 없다. 나는 그렇게 믿는다. 『가면 산장 살인사건』의 반전이 아무리 뛰어난다 한들 인생의 매 순간마다 도사리고 있는 반전에 비할 바가 못 된다. 아주 희박한 확률 속에서 난자와 정자가 만나 ‘나’라는 인간이 태어났는데 어찌 보면 이것부터가 커다란 반전이다. 결말이 정해진 인생이란 없다. ‘지잡대’를 나왔다고 해서 대기업에 입사하지 못하리라는 법은 없다. 애초에 대기업이 인생의 행복을 좌지우지한다는 법 또한 없다. 인생은 아주 잘 짜여진 미스터리 소설과 같다. 매 장을 넘길 때마다 새로운 이야기가 펼쳐지고 흥미로운 전개에 눈을 뗄 수가 없는 것이다.
세상에는 스포일러가 넘쳐나지만 그런 예측과 짐작과 억측에 반하는 결말을 만드는 것, 그건 바로 각자의 몫이다. 태어난 그 순간부터 인생이 이미 정해졌다는, 심심하기 짝이 없는 식상한 결말에 실망하지 말자. 자꾸 실망하고 패배감에 젖다 보면 더 이상 인생의 책장을 넘길 수가 없게 된다.
그러니 앞으로 당당하게 ‘스포일러 금지!’라고 외칠 것.
이것은 이 땅에서 가난한 대중소설가로 살아가는 내게 제일 먼저 해당되는 이야기다. 나는 그 누구도 예측하지 못했던 결말을 맞이하고 싶다. 물론, 해피엔딩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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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면산장 살인사건 히가시노 게이고 저/김난주 역
이런 반전은 없었다. 누구도 결말을 예측할 수 없는 이중 삼중의 트릭, 스릴 만점의 심리전. 작품을 먼저 접한 일본 독자들이 아마존 저팬 사이트에 남긴 서평은 한결같이 ‘충격’과 ‘경악’, 그리고 ‘속았다’는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마치 잘 짜인 무대에서 벌어지는 한 편의 연극과도 같은 이 소설의 전개를 그저 흥미진진한 시선으로 바라보던 독자들이 작품의 클라이맥스에 가서 그 누구도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엄청난 반전과 맞닥뜨리며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것과 같은 충격에 휩싸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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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 아빠, 백수, 소설가, 전업작가로 살아간다. 운동만 시작하면 뱃살이 빠지리라는 헛된 믿음을 품고 있다. 요즘 들어 세상은 살 만하다고 느끼고 있다. 소설을 써서 벼락부자가 되리라는 황당한 꿈을 꾼다. 『한국 추리 스릴러 단편선 3』, 『한국 추리 스릴러 단편선 4』에 단편을 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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