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계인과 함께 춤을 2
정상인이든 정신병자이든 “당신은 미쳤소. 그러니 당신 이야기도 다 미친 거요”라고 하면 대화할 여지가 없어진다. 나는 미술 치료 공부를 하면서 그들이 말하는 것을 듣지 말고, 그들이 정말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들으라고 배웠다.
글ㆍ사진 정은혜
2015.0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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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렌스처럼 이상하게 말하는 것은 이곳에서 흔하게 볼 수 있다. 이런 이상한 말은 정신분열증의 한 형태로 와해된 언어disorganized spceech라고 한다. 말을 와다다다 따발총처럼 하는 경우도 있고, 문법에 따라 문장을 구성하지 않고 어떤 연상 작용에 의해서 단어들을 줄줄이 내뱉는 ‘단어 샐러드word salad’라 일컫는 증상도 있다. 치료사의 기본이 다른 사람의 말을 잘 들어주는 것인데, 그들의 이야기를 이해하려 열심히 귀 기울이다 보면 메모리 초과가 돼서 머리에 쥐가 날 것만 같다. 그런데 그걸 그냥 “못 알아듣겠소” 하고 넘어가기 어렵게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바로 로렌스의 경우가 그렇고 또 하워드도 그렇다. 하워드는 알아듣지도 못하는 말을 너무나 열심히 한다. 그는 무척이나 소통을 하고 싶어 한다.

 

“파란색 하늘에 새 파리 검정색 깊어서 파란데 물이 호흡을 바닥에 끌다가 날아가 뒤로 사람이……”
 
하워드는 오십대 말의 아저씨인데 겉보기에는 칠십대 노인 같다. 대충 입은 병원 가운이 자꾸만 내려와서 그를 바라보기가 민망하다. 또 그의 지저분한 머리와 깎지 않은 수염과 다 상한 이빨이 그를 멋진 아저씨로 보이게 한다고는 말하기 어렵다. 게다가 지나가는 사람마다 붙잡고 따발총 이야기를 해서 그들의 정신을 쏙 빼놓는다. 위에 언급한 로렌스는 드문드문 이야기의 맥이라도 통하는데 하워드는 전혀 문맥이 없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그런데 그렇게 열심히 말하는 그의 눈이 애처롭다. ‘제발 제 얘기 좀 들어주세요’ 또는 ‘제발 제 말을 좀 알아들어 주세요’ 하는 눈이다. 그래서 한번 들어보기로 했다. 귀로 안 들리면 눈으로, 눈으로 안 되면 마음으로 듣는 게 내 직업 아닌가.

 

지나가는 간호사를 붙잡고 뭐라고 뭐라고 하는 하워드 할아버지를 불러다가 미술 도구가 있는 테이블에 앉힌다. 스쳐가는 단어들을 잡으려 하지 않고, 어떤 문맥을 찾으려고 하지도 않고, 논리로 이해하려 하지도 않고 그저 둥둥 떠다니는 단어들을 받아 적었다. 단어들의 연결에 언어적 체계가 없어서 머리로는 이해하지 못하지만, 반복되는 단어들과 거기에서 나오는 느낌들은 있다. 물, 바다 밑, 걷기, 스쿠버 다이빙 같은 단어는 수백 개의 퍼즐 조각 중에서 나에게 이미지를 주고 상상력을 발휘하게 하는 것들이다. 그 조각들을 바탕으로 대충 그림을 그린다. 바다 밑을 걷고 있는 스쿠버 다이버의 모습이다.

 

“무슨 말씀이신지 잘은 모르겠는데요, 혹시 이런 거 말씀이세요?”

 

하워드는 내 말을 들었는지 못 들었는지 “그래, 그래”라고 대답하는 것 같더니 또 어쩌고저쩌고 이야기가 길어진다. 아까는 느낌으로 이해를 할 듯 말 듯했는데 새로운 단어들이 나오니 이젠 전혀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무슨 말인지 몰라 얼굴을 잔뜩 찌푸리게 되자 그런 내가 답답한지, 말로 이해시키기를 포기했는지,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자기를 따라오라고 손짓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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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파리>(2014), 캔버스에 유화 65*53

 

간 곳은 복도. 하워드는 긴치마처럼 발목까지 치렁거리는 병원 가운을 올린 뒤 무릎을 굽히고 발꿈치를 들었다. 그리고 한 발 한 발 슬라이딩하듯 뒤로 걷기 시작한다. 아니 이것은! 마이클 잭슨의 문워크가 아닌가! 나도 따라해 본다. 어렸을 적 연습했을 때도 성공하지 못한 것이 이제 와서 될 리 없지. 하워드 할아버지가 씩 웃더니 이번에는 조금 더 천천히 발 바꾸는 모습을 보여준다. 한쪽 발꿈치를 들어 뒤로 밀면서 몸을 뒤로 밀고, 그 발꿈치를 내림과 동시에 다른 발꿈치를 들어 슬라이딩. 우리 둘이서 이러고 있자 건너편 방에 누워 있던 망상 환자가 구경을 나온다. 그러자 침대에서 늘 멍하게 앉아 있던 옆방의 우울증 환자도 나온다. 지나가던 정신보건간호사도 멈춰서 구경을 한다. 환자들도 간호사들도 내가 뒤뚱뒤뚱거리는 걸 재미있어하는 것 같아서 아예 망가진 모습을 보여주니 사람들이 하하하 소리 내어 웃는다. 누군가 마이클 잭슨의 노래 한 대목을 불렀다. “Beat it~ Beat it~” 험상궂게 생겼다고 느꼈던 한 젊은 흑인 환자가 브레이크 댄스의 기본인 완벽한 웨이브를 보여준다. 그러다 보니 나는 환자에게 손을 대면 절대 안 된다는 규율을 어긴 채 옆에 서 있던 환자의 팔을 때리면서 웃고 있다. 하워드 할아버지도 웃고 있다.

 

이날 우리가 만들고 창조한 것은 무엇인가? 무엇이 치료이고, 어디까지가 치료적 개입인지, 또 어떤 이야기가 오고갔는지 잘 모르겠다. 하지만 문맥, 언어, 임상, 치료, 이야기, 효과…… 그렇게 내 머릿속에서 둥둥 떠다니는 단어들을 다 제치고 오늘 병원 복도에서 치료사와 환자와 간호사 들이 어울려 춤을 추었고, 이 감옥 같은 곳에서 웃음이 울려 퍼졌다.

 

정상인이든 정신병자이든 “당신은 미쳤소. 그러니 당신 이야기도 다 미친 거요”라고 하면 대화할 여지가 없어진다. 나는 미술 치료 공부를 하면서 그들이 말하는 것을 듣지 말고, 그들이 정말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들으라고 배웠다. 즉 로렌스가 하는 말이 비논리적이라는 객관적 사실을 부인하는 게 아니라, 로렌스가 왜 여기 있는지, 또 어떻게 해야 이전의 삶으로 돌아갈 수 있는지 모르는 답답함과 혼란함은 적어도 그에게 주관적 사실임을 인정해 주는 것이다. 그의 우주선을 통해서 이러한 주관적인 경험과 그 경험의 은유적 표현을 읽어내는 것이 우리 치료사가 할 일 가운데 하나이다. 그리고 그렇게 할 때 대화가 이뤄질 수 있다. 하워드의 경우, 나는 처음부터 끝까지 그의 말을 알아듣지 못했다. 하지만 우리는 같이 춤을 추었고, 내 생각에 춤은 대화 이상의 소통이다.

 

치료사 일을 계속하는 한 이런 일들은 반복된다. 사람들은 자기를 이해해 주고 진심으로 자기 말을 들어주는 사람이 없어서 치료실을 찾는다. 또는 말을 들어주기가 힘들어서, 믿어주기가 힘들어서 치료실을 찾는 경우도 종종 있다. 자녀가 하는 말이 다 거짓말로 들려서 믿지 못하겠다는 부모님이 치료실을 찾은 적이 있다. “그의 말을 믿어주세요”라고 하면, 학교 가겠다고 약속하고는 안 가고, 아프다고 거짓말하고 PC방에 가 있고, 학교 갔다고 거짓말한 것이 계속 들통이 나는데도 또 속아주라는 말인지 반문한다.

 

내가 믿어주라고 하는 것은 객관적인 사실을 믿어주라는 것이 아니라 주관적인 사실을 믿어주라는 것이다. 객관적으로 우주선을 타고 온 것을 믿기는 힘들지만, 그가 자신의 갈 길을 잃었으며, 집으로 갈 수가 없고, 이곳에 혼자 떨어져 막막하다는 그 사실을 믿어주라는 것이다. 모든 거짓말에는 진실의 씨앗이 들어 있으며, 우리가 접속하고자 하는 진리는 속에 있는 그 씨앗이다. 다 싸잡아 거짓말이라고 한다면 절대 들을 수 없는 것이므로 씨앗이 떨어지지 않게 조심히 열어볼 일이다.

 

 

* 이 글은 『행복하기를 두려워 말아요』의 일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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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하기를 두려워 말아요정은혜 저 | 샨티
《행복하기를 두려워 말아요》는 미술 치료를 공부한 정은혜 씨가 미술 치료사로 살아가기 시작하면서 만난 정신병동의 환자들, 쉼터의 청소년들과 소통해 가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더불어 8년이 넘는 치료 경험 속에서 배우고 익힌 창조적인 미술 치료의 기법들, 나아가 미술 치료에 대한 통념을 깨는 경험과 통찰 등 미술 치료사로서 사람들과 나누고 싶은 이야기를, 직접 그린 치료적인 그림들과 함께 속 깊게 풀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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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계인과 함께 춤을 #정은혜
3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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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유당

2015.02.27

미술치료가 실제 심리적 안정을 주는 데 좋은 효과가 있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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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ㅋ

2015.02.25

그들이 말하는 것을 듣지 말고, 그들이 정말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듣기위해 그림치료를 시작하셨다는말에 감동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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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kem

2015.02.25

그들이 정말로 하고자하는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 너무나 마음에 와닿는 글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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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은혜

미술 치료사이며 화가다. 캐나다에서 회화와 미술사를 공부하고 한국에서 뉴미디어 전문 미술관인 아트센터 나비의 기획자로 일하다, 자신이 바라던 삶이 최첨단 기술을 이용한 소통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이의 공감을 바탕으로 한다는 걸 깨달았다. 그리고 어린 시절부터 누군가를 도울 때 기뻐하던 자신의 모습을 기억하며 미국으로 건너가 미술 치료 공부를 시작했다. 미국의 The School of the Art Institute of Chicago에서 미술 치료 석사 학위를 받고 시카고의 정신 병원과 청소년치료센터에서 미술 치료사로 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