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가 현관에서 반겨주며 물었다.
“어땠어? 오랜만에 동창들 만나니까 재미있었어?”
그는 어물쩍 넘어가려 했다.
“응? 아…… 좋았어.”
그러자 아내가 자기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아이 유치원에서 일어난 일이며, 마트에서 만난 다른 아이 엄마 소식, 처형과 전화로 수다를 떤 이야기가 줄줄 이어졌다. 그는 대꾸를 해주면서 세수를 하고 이를 닦고 잠옷으로 갈아입었다.
불을 끄고 침대에 누웠지만 잠이 오지 않았다. 아내가 읽었다는 책 이야기를 한 귀로 흘려들으며 뒤척거렸다.
“자기, 오늘 무슨 일 있었지?”
모로 누운 그의 뒤통수에 아내의 한마디가 날아와 꽂혔다. 그는 자기도 모르게 흠칫 놀랐다. 부정해 보았지만 아내는 놓치지 않았다. 거듭되는 부정에도 평소에 늘 그렇듯이 아내는 흔들림 없이 집요하게 추궁했다. 그 또한 항상 그랬듯이 백기를 들고 투항하고 말았다. 이실직고하는 수밖에 없었다. 15년 만에 참석한 동창회에서 그는 많이 놀랐다. 의외의 얼굴들이 예상치 못한 명함을 들고 나타난 것이다. 벤처 기업을 창업해 대박을 낸 녀석부터 처가 덕에 웨딩홀 가맹점의 임원이 된 녀석, 일찌감치 유학을 선택해 외국계 금융사의 한국 현지 법인으로 파견 나왔다는 녀석 등. 모임에서는 그런 이야기를 듣느라 바빠 이런저런 생각을 할 틈이 없었다. 그런데 집으로 돌아오면서 기분이 가라앉기 시작했다. 모두 잘나가는데 혼자만 제자리걸음을 하는 것 같았다. 집에 도착할 즈음에는 서글퍼졌다. 다람쥐 쳇바퀴처럼 돌아가는 삶에 과연 희망이라는 게 있기나 한 것인지. 아내가 잠자코 듣다가 물었다.
“성공했다는 그 사람들, 혹시 자기가 고등학교 때 깔보던 친구들 아니야? 날라리였다던가 뭐 하나 잘하는 게 없었다던가.”
“그건, 아……”
미처 대답하지 못했다. ‘아니다’라고는 단언할 수 없었다. 그는 변명을 했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가 특별하다고 생각하잖아. 그 시절에는 좀 더 그랬고. 성적으로는 도무지 끝에서 어디쯤에 있는지도 모르는 녀석들이었으니까.”
그때는 그랬다. 공부 잘해서 좋은 학교 나와 좋은 회사에 들어가면 그걸로 인생이 완성되는 줄 알았다. 어둠 속에서 아내가 웃었다. 하얀 이가 드러났다.
“깔봐서 더 아팠던 거 아닐까. 자기가 보기에는 밑바닥에 있어야 할 친구들인데 성공해서 나타났으니까. 그런 친구들에 비하면 열심히 성실하게 살았지만 이뤄놓은 게 별로 없고. 그래서 서글프고 억울한 생각이 든 거 아니야?”
깔봤기 때문에 더 아팠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뭔가 부조리하고 억울하다는 생각이 든 것은 사실이었다. 아내가 독특한 주장을 폈다. ‘열등감 쩌는 문화’의 영향이라는 것이다. 누군가가 블로그에 쓴 서평에서 읽었다나. 가족 문화나 사회 분위기가 열등감에 지나치게 민감하다 보니 사람들이 자기 기준을 갖기 어렵다는 얘기였다. 어린 시절부터 부모의 턱없이 높은 기대를 받으며 자라서 모든 면에서 남과 비교하는 습관이 깊이 배어 있는 어른이 된다. 자기만 못한 사람을 보며 우월감에 안도하고, 자기보다 성공한 사람을 보면 열등감에 힘겨워하거나 애써 흠집 낼 거리를 찾는다.
부모가 된 뒤로는 그러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아이를 다른 집 아이와 비교하고야 만다. ‘우리 아이가 최고’라며 괜히 아이를 치켜세우거나 다른 아이보다 못하면 수치심으로 아이를 달달 볶는다. 모든 게 비교 대상이 되다 보니 ‘열등감 쩌는 문화’로 이어진다.
아내는 그런 어리석은 문화가 가정은 물론 사회 전반에 물질적인 고통보다 더한 불행을 안겨준다고 열변을 토한다. 결국 이야기의 주제가 아내의 단골 소재인 ‘아이 교육이 어떻게 달라져야 하는가’로 이어지자 그는 자장가 삼아 코를 골기 시작했다. 다음 날, 아침을 먹는데 아내가 태블릿 컴퓨터를 가져와 마주앉았다.
“자기한테 위로가 될 만한 시가 있네. 잘 들어봐.”
많은 사람들이 실제의 자신과 다른,
뭔가 중요한 사람이 되고 싶어한다.
그런 사람이 되지 말아라.
당신은 이미 중요한 사람이다.
(…)
자부심이란 다른 누구도 아닌
오직 당신만이 당신 자신에게 줄 수 있는 것.
(…)
다른 사람들이 당신에 대해서 뭐라고 하든
어떻게 생각하든 개의치 말고
심지어 어머니가 당신을 사랑하는 것보다도
더 자기 자신을 사랑해야 한다.
- 어니 J. 젤린스키, 「나를 사랑하라」 中
오늘 약말 - 자부심
상대적인 열등감으로부터 둔감해지는 방법이 하나 있다.
‘다 아는 사람’이 되기보다 ‘뭐든 배우는 사람’이 된다. 그러면 하루하루 늘 새롭게 배우는 호기심으로 가득 찬다. 누구에게든 날마다 신선한 배움을 얻을 수 있으며, 남과 비교해 우월감이나 열등감을 찾아낼 이유 또한 없다.
“아! 그렇군요.”
이렇게 대답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자부심이 있는 사람만이 격의 없이 타인을 받아들이고 인정할 수 있으며 따라서 어디를 가든 중요한 사람으로 존중받을 가능성이 높다.
* 이 글은 『오늘 나에게 약이 되는 말』의 일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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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나에게 약이 되는 말한설 저 | 위즈덤하우스
『오늘, 나에게 약이 되는 말』은 스테디셀러 『배려』의 저자 한설이 지칠 때마다 힘이 된 이야기를 모은 책이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머뭇거릴 때, 괜한 분노에 마음이 괴로울 때 스스로 일어설 수 있는 힘이 되었듯, 이 책이 당신에게도 순한 처방전이 되기를 바라며 약이 되는 이야기와 낱말들을 엮어 담았다. 일상에 치여 중요한 것을 놓치는 현대인에게, 인생의 의미를 고민하는 이들에게 다시금 따뜻한 마음을 일깨워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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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설
우리 삶을 어디론가 데려가는 것은, 우리가 자주 쓰는 언어의 영혼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 생각하는 대로, 말하는 대로, 행동하는 대로 살아가게 되니까. 신문기자를 하다가 전업작가로 돌아섰으며, 사람들이 스스로와 주변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하며 살아가는지에 늘 관심을 기울인다. 『지금 외롭다면 잘되고 있는 것이다』 『배려』 『스물아홉, 늦었다고 하기엔 미안한』 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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