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리막 세상을 사는 우리들의 이야기
평생직장의 의미가 사라진 시대, ‘열심히’가 ‘충분히’를 담보해 주지 않는 시대, 우리의 일과 삶은 어떻게 변화해야 할까. 『내리막 세상에서 일하는 노마드를 위한 안내서』 『서울은 어떻게 작동하는가』의 두 저자와 함께 모색해 본다.
글ㆍ사진 임나리
2015.0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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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리막 세상을 살아간다는 것


『서울은 어떻게 작동하는가』는 서울이라는 공간 안에 스며들어 있는 시간의 기억을 되살린다. 저자인 류동민 충남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는 그 안에서 우리 사회가 겪어온 변화를 발견해낸다. 현실을 이해하는 단초인 동시에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묻는 이야기다. 『내리막 세상에서 일하는 노마드를 위한 안내서』가 전하는 내용 역시 다르지 않다. 협동조합 ‘롤링다이스’의 대표이기도 한 저자 제현주는 ‘일’의 의미가 변화되어 온 과정을 살펴본다. 지금의 청년 세대에게 일이 가지는 의미가 부모 세대의 그것과는 다름을 지적하면서, 새로운 시각으로 일을 재정의 하자고 제안한다.

 

예스24와 한겨레는 이들 저자들로부터 ‘달라진 세상, 달라질 삶’에 대한 생각들을 발견할 수 있으리라 기대했다. “안녕, 낯선 시대”라는 이름으로 류동민, 제현주 저자의 북 콘서트를 마련한 이유다. 지난 29일 저녁, 한겨레신문사에서 이루어진 만남은 ‘고성장이 끝나버린 시대, 우리의 노동과 삶은 어떻게 바뀌어야 하는가’에 대한 이야기들로 채워졌다. 진행을 맡은 안은별 전 프레시안 기자는 두 권의 책에서 ‘내리막 세상이라는 공통된 인식’을 발견했다며 대화를 이끌어 갔다.

 

안은별 : 내리막 세상이라는 정의에는 ‘한 때는 오르막 사회였다’는 전제가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지금 우리의 삶과 일은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 그렇게 변화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류동민 : 지표상 경제가 성장했던 시기를 두고 오르막 세상이었다고 표현할 수 있을 텐데요. 지금은 성장이 낮아지면서 그런 가능성이 닫혀 있는 사회죠. 성장률 2%를 기록한다고 해서 완전히 내리막길로 접어들었다고 보는 것에는 무리가 있다고 생각되고요. 그렇지만 사회가 굉장히 복잡해지고 경쟁이 가속화 되면서 소수의 상위 계층만 파이를 독식하게 되었죠. 1등과 2등의 격차 역시 심화되었고요. 이런 현상들이 우리나라에서만 목격되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한국은 굉장히 빠른 성장을 이뤄냈고, 그 때의 추억을 가진 사람들이 있어요. 게다가 좁은 나라에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기 때문에 더 드라마틱한 변화가 나타난 것 같습니다. 특히 IMF 이후에 두드러졌죠. 현실이 힘들게 느껴지는 물질적인 근거들이라면 바로 그런 부분들이고요.

 

제현주 : 통계 수치만으로 봤을 때에도 과거에 비해 상대적으로 내리막길을 걷는 것으로 보이기는 하죠. 그렇지만 제가 책에서 이야기하고 싶었던 건, 그것보다는 전조에 대한 것이었어요. 빨라지다가 느려지는 것과 처음부터 느린 것이 주는 감각은 굉장히 다르잖아요. 주변의 친구들이나 어린 또래들을 만나서 얘기해 보면 알 수 없는 불안감을 느끼고 있는 것 같았어요. 더 위로 올라가기 위해서 뛰는 게 아니라 버티기 위해서, 아래로 내려가지 않기 위해서 뛰고 있다는 느낌이 있는 거죠. 그런 느낌과 마음의 분위기들을 표현하고 싶었어요. 고성장의 사회상이 만들어낸 욕망들을 주입 받으면서 성장해 왔는데, 일자리에 진입하는 순간 눈앞에 펼쳐진 세상은 더 이상 고성장의 문법이 작동하지 않는 곳이잖아요. 그 간극을 어떻게 메워나가면서 남은 삶을 살아갈 수 있을까, 라는 것이 제가 최근까지 가지고 있었던 가장 큰 고민이었어요.

 

노동과 일의 경계


안은별 : 두 권의 책에서 공통적으로 다룬 테마가 ‘일’인데요. 각각 어떤 일을 이야기하고 싶으셨던 건지 듣고 싶습니다.

 

류동민 : 『서울은 어떻게 작동하는가』에서 주로 이야기했던 것은 서울을 움직이는 일들에 대한 것이에요. 사람들이 모여 있으면 육체적 노동이 불가피한 상황들 순간들이 있는데, 우리 사회에서는 점점 육체적인 노동에 대한 경제적인 대가가 나빠지고 있잖아요. 경쟁은 심해졌고요. 그런 안타까운 상황들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제현주 : 제가 집중했던 것은 ‘내가 무엇을 할 때 일을 하고 있다고 느끼며 무엇을 할 때 일을 하고 있지 않다고 느끼는가’ 라는 것이었어요. 『내리막 세상에서 일하는 노마드를 위한 안내서』에는 그 질문에 명확하게 답을 내려 보려고 노력했던 과정들이 담겨 있는 것 같아요. 삶을 이루는 하나의 활동으로써 일을 통해서 얻고자 하는 것이 단순히 보수뿐만이 아니라, 그 외의 많은 욕구들을 해결하려고 하는 것 자체가 의미 있는 보수이고 생산성이라고 말하고 싶었어요.

 

안은별 전 프레시안 기자는 『내리막 세상에서 일하는 노마드를 위한 안내서』에서 이야기하는 일의 경계가 새롭게 와 닿았다고 했다. 노동과 구분되는 여러 활동까지 아우르면서, 어떤 부분에서는 놀이와 구분이 되지 않기도 한다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일과 노동은 어떻게 구분 지을 수 있는 것일까. 류동민 교수의 설명이 곁들여졌다.

 

류동민 : 자신이 하는 일이 노동이냐 아니냐를 구분하는 기준이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겠죠. 어떤 일을 하면서 모멸감이나 굴욕감을 느낀다거나 ‘돈벌이와 관련 있는 일이 아니라면 이렇게까지는 안할 텐데’라는 생각 때문에 무리를 한다면 노동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하나의 분류 기준이 되는 것이죠.

 

류동민 교수의 말대로라면, 노동을 필요로 하는 사람은 있어도 노동에 잠식당하고 싶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스스로가 원해서 선택한 일이 보수로 이어지는, 일과 노동의 경계가 흐려지는 삶은 불가능한 것일까.

 

제현주 : 두 가지의 층위를 동시에 생각하면서 살아가는 게 필요한 것 같아요. 사회의 구조와 현실에 대한 인식, 그것의 변화를 위해서 느리지만 시민으로서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생각하는 것이 하나의 층위이고요. 그렇다면 개인적인 삶에서 무엇을 하면서 당장 내일을 살 것인지를 생각하는 것이 또 다른 층위죠. 이 두 가지 층위를 동시에 생각하면서 사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어떻게 보면 그것이 숙명이 아닌가 싶기도 하고요.

 

덧붙여 제현주 저자는 내리막 세상을 사는 이들을 위한 조언을 들려주기도 했다.

 

제현주 : 내리막 사회에서 그나마 행복하게 일할 수 있는 솔루션이 있다면, ‘어떻게 해야 성공이다, 무엇을 갖춰야 행복한 것이다’라는 극단적 인식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요. 다른 방식으로 일을 하려고 한다면 기준에서 벗어나서 반드시 그렇게 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는 걸 되뇌어야 할 것 같아요. 동시에 그렇게 믿는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다른 방식으로 행복하게 사는 사례들을 직접 만나면서 일상을 보내는 것이 필요할 것 같아요. 그것이 수치적으로는 내리막인 사회라 하더라도 나름의 행복을 찾아나갈 수 있는 방법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류동민과 제현주, 두 명의 저자에게서 독자들이 발견한 것은 정답이 아닌 질문이었다. 『서울은 어떻게 작동하는가』 『내리막 세상에서 일하는 노마드를 위한 안내서』는 공통적으로 지금의 현실을 진단하면서, 그렇다면 우리에게 남은 선택은 무엇인지 묻고 있다. “사람은 공간을 만들고 공간은 사람을 만든다”는 류동민 교수의 이야기와 보여주듯 『서울은 어떻게 작동하는가』에서는 서울이라는 공간에 반영된 우리들의 욕망을 읽을 수 있다. 그리고 『내리막 세상에서 일하는 노마드를 위한 안내서』는 “아버지 세대와 다를 수밖에 없는 우리 시대 일에 관한 이야기”를 통해 “일에 투사하는 우리의 다양한 욕망”을 짚어주고 있다. 달라진 세상에 맞춰 욕망을 재단하는 방법을 찾는 것은 독자들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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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은 어떻게 작동하는가류동민 저 | 코난북스
이 책에서는 크게 물신과 배제, 추격과 모방, 능력주의의 신화라는 틀로 서울을 이야기한다. 이 추상적인 개념들을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이 개념들이 누구나의 소비, 주거, 여가, 노동, 종교, 대학, 사교육, 명품 같은 우리 삶의 부분들을 이해하는 도구로 쓰인다. 케인즈, 마르크스, 피케티의 이론들과 역사적 사건들 역시 임대료, 자영업, 재개발 같은 한국사회의 현실을 들추어내 볼 수 있는 주요한 장치가 된다. 이러한 도구와 장치로 저자가 말하는 바는 명확하다. ‘알아서 살아남기’가 생존의 법칙이 된 사회, 능력주의라는 신화가 무너진 시대가 지금 여기 서울이자 한국사회라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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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리막 세상에서 일하는 노마드를 위한 안내서제현주 저 | 어크로스
우리 시대 일의 의미를 화두로 협동조합 롤링다이스 활동을 비롯한 다채로운 실험을 계속해온 저자는 이 책에서 새로운 일의 윤리와 행복한 일하기의 새로운 조건을 구성하고자 시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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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동민 #제현주 #북콘서트
3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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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나는보석

2015.02.16

대부분의 사람들이 '일'이 아니라 '노동'을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도 행복해져야 겠으니 사람들이 만들어놓은 행복의 기준에서 벗어난다면 내리막인 사회라 하더라도 나름의 행복을 찾아나갈 수 있을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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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ㅋ

2015.02.12

소비, 주거, 여가, 노동, 종교,대학, 사교육, 명품등등이 능력 지향적인 사회의 큰척도 어떤 책을 읽는지 어떤 전시회에 관심이 있는지 어떤 자원봉사를 하는지 ...는 없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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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kem

2015.02.10

일과 노동의 경계가 흐려지는 삶은 극소수가 아닐까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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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나리

그저 우리 사는 이야기면 족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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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현주

임팩트 투자사 인비저닝 파트너스의 대표. 기존의 시스템과 비즈니스가 해결하지 못하는 사회적 문제에 혁신적인 방법으로 새롭게 접근하는 스타트업에 투자한다. 임팩트 투자사 옐로우독의 대표로 재직한 바 있으며, 인비저닝 파트너스는 옐로우독의 투자 자산을 이관받아 2021년 8월 새롭게 설립되었다. 카이스트(KAIST) 산업디자인학과를 졸업하고 글로벌 컨설팅기업 맥킨지에서 커리어를 시작했다. 이후 투자은행 크레딧스위스를 거쳐 사모펀드운용사 칼라일에서 기업 재무 및 투자 전문가로 10여 년간 일했다. 2010년, 투자업계를 떠나 이후 6년여 동안 업계 바깥에서 스스로 몸담고 있던 자본 시장과 ‘투자하는 일’에 관한 공부와 모색의 시간을 보냈다. 열 권에 달하는 관련 서적을 번역했고, 협동조합을 창업해 투입한 자본과 관계없이 모두가 1표를 행사하는 소유 구조와 새로운 일의 방식을 경험하기도 했다. 그 모색의 과정에서 임팩트 투자라는 새로운 키워드를 만났고, 2017년 옐로우독에 합류하며 투자업계로 복귀했다. 현재 국내 임팩트 투자의 최일선에서 재무적 수익률과 사회적·환경적 영향을 동시에 고려하는 투자 기회를 발굴하고 있다. 수익률 뒤에는 숨어 있는 ‘의미’가 있으며, 그 ‘의미’까지 고려할 때 자본의 힘을 제대로 사용할 수 있다고 믿는다. 지은 책으로 『일하는 마음』, 『내리막 세상에서 일하는 노마드를 위한 안내서』 등이 있고, 『21세기 시민경제학의 탄생』, 『주식회사 이데올로기』, 『경제학의 배신』 등 열 권의 책을 우리말로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