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순례 감독은 영화 <제보자>의 기자간담회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 바 있다. “내가 초점을 둔 것은 언론의 자유, 우리 사회의 진실을 파헤치려는 한 언론인의 집요한 투쟁이었다”고. ‘줄기세포는 없다’는 진실이 밝혀진 지금, 줄기세포의 존재 여부에 대해 재론하는 것은 불필요한 논란을 만들 뿐이라는 전제가 깔려있는 것이다. 대신 임 감독이 주목한 것은 진실을 추적하는 언론의 외로운 싸움이다. 무엇이 진실을 가리고 있는지, 그것을 밝혀내려는 이들을 가로막는 것인 무엇인지. 그 이야기 안에서 우리는 스스로에게 묻는다. 진실보다 우선하는 가치는 존재하는가, 그것을 어떻게 가려낼 수 있을 것인가.
무거운 추와 같은 질문을 가슴에 매단 채 극장을 나설 때, 다른 한편에서는 강한 호기심이 우리의 생각을 잡아끈다. 영화 속 이야기는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어디부터가 허구인 것일까. 『진실, 그것을 믿었다』 안에는 그 실체가 소상히 기록되어 있다. 2005년 당시
한학수 PD와
세계적 권위를 자랑하는 과학 저널 <사이언스>에 실린 논문이 조작되었다는 제보자의 이야기는 믿기 어려웠다. 국민적인 영웅으로 추앙받는 과학자가 허무맹랑한 거짓말을 지어낸 사기꾼이라니, 의심은 황우석 박사가 아닌 제보자를 향했다. 이 사람 머리가 어떻게 된 거 아닌가. 그러나 그가 내민 복사된 노트-실험에 사용된 난자에 대한 기록을 단초로 진실은 서서히 그 모습을 드러냈다. 난자는 매매된 것이거나 실험에 참여한 연구원들로부터 채취된 것이었다. 그보다 앞서, 줄기세포 연구 이전에 황우석 박사가 쌓았던 명성부터가 모두 거짓이었다.
그가 한국 최초로 탄생시켰다는 복제소 ‘영롱이’는 관련 논문 하나 찾아볼 수 없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학기술부는 관련 보도자료를 만들어 배포했다. 언론은 검증도 거치지 않은 채 내용 그대로를 실어 날랐다. 국민들은 그 ‘말’을 믿었고 황우석 박사는 신화의 주인공이 되었다. 그러는 사이 ‘진짜’ 복제 기술을 개발한 과학자는 어디에서도 주목받지 못했고, 연구에 대한 지원도 받지 못했다. 의심 없는 믿음은 점점 맹목적으로 변질되어 갔다. 급기야 황우석 박사는 존재하지도 않는 줄기세포를, 설사 그가 만들어냈다 하더라도 동물 실험도 시작하지 않은 줄기세포를, 척추손상 환자에게 임상 실험할 계획까지 세워둔 상태였다. 환자의 나이 겨우 열 살이었다. 황우석 박사가 자신을 다시 걷게 해 줄 유일한 희망이라고 믿는 아이였다.
‘황우석 사건’ 취재하면 가장 분노했던 순간은…
임순례 감독의 영화 <제보자>가 진실을 추적해 나가는 언론의 고된 여정을 보여준다면 『진실, 그것을 믿었다』는 그 길 위에서 만난 ‘황우석 스캔들’의 조각들을 보여준다. 윤리를 저버린 한 인간의 욕망, 그 욕망에 편승한 정권과 언론과 과학계, 과정보다는 결과가 진실보다는 국익이 우선한다는 공공의 합의, 이 모두가 ‘황우석 스캔들’이라는 거대한 그림을 완성시킨 퍼즐 조각들이었다. 퍼즐을 맞춰가는 과정은 언제나 흥미로운 까닭에 『진실, 그것을 믿었다』 속을 거니는 시간은 조금도 지루하지 않다. 오히려 추리 소설을 읽듯 손에 땀을 쥐면서 빠르게 책장을 넘기게 된다. 그러나 이 모든 이야기가 ‘진실의 편에 섰다는 이유로 비난 받아야 했던’ 이들의 시간 위에 쌓인 것이라는 사실을 떠올려 보면, 아이러니한 현실에 쓴 웃음을 짓게 된다. 그와 선명한 대비를 이루는 반대편의 이야기-추악한 욕망과 어두운 이해가 얽혀있는 거대한 존재의 이야기-의 위로는 짙은 한숨이 겹쳐지기도 한다.
그렇게 『진실, 그것을 믿었다』는 독자들을 씁쓸한 재미 속으로 밀어 넣는다. 이 씁쓸함, 이 재미는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려는 걸까. 저자인 한학수 PD에게 가장 묻고 싶은 질문이었다. 지금 이 이야기를 우리에게 하는 까닭은 무엇입니까. 우리가 발견해야 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한학수 PD는 부드럽지만 흔들림 없는 음성으로, 완곡하지만 물러섬 없는 태도로 대답했다. 그 이야기를 전하기에 앞서 한 가지 분명하게 밝혀둘 것이 있다. 『진실, 그것을 믿었다』는 실제 ‘황우석 교수의 줄기세포 논문 조작 사건’을 기록하고 있지만 영화 <제보자>는 실화에서 모티프를 얻었을 뿐 새롭게 창작해낸 이야기라는 사실이다. 이는 임순례 감독과 영화 <제보자>에 대한 오해가 생기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한학수 PD가 거듭 강조한 말이었다.
‘진실, 그것만을 믿고 취재해 왔다’고 말하기에는 견디기 힘든 일들이 많으셨을 텐데요.
『진실, 그것을 믿었다』는 사건에 직접 관계되었던 제가 겪었던 바, 느낌, 실제 상황이 어떻게 전개되어 나갔는가를 가감 없이 쓴 책이에요. 과장하거나 더하거나 빼지 말고,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 제일 나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에 대한 해석은 책을 읽으면서 학계와 국민들이 해줬으면 좋겠다고 바랐고요. 만약 저 혼자 했다면 가능하지 않았겠죠. 영화 <제보자>를 예로 들면 캐릭터를 강화시키기 위해서 저와 최초의 제보자가 부각되어 있지만, 실제로는 수면 아래에서 도움을 줬던 많은 사람들의 역할이 생략되어 있죠.
영화 <제보자>에서 실제와는 다르게 그려졌거나 등장하지 않는 인물들에 대해 이야기해 주세요.
영화에서는 김이슬 조연출이 (논문) 사진 조작과 관련한 글을 인터넷에 게시한 걸로 나오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죠. 최초로 의혹을 제기하셨던 분은 익명의 농사꾼이었어요. 유전자 검사 전체가 잘못 되었다는 글을 올린 ‘아릉’이라는 분도 계셨고요. BRIC(생물학 연구정보센터)의 생명 과학도들도 같은 이야기를 했었죠. 우리와 같이 끝까지 실험을 하면서 취재를 물밑에서 도와준 과학자들도 빼놓을 수 없어요. 김병수 박사, 황상익 교수 같은 분들이죠. 기자들 중에서는 프레시안의 강양구 기자가 있고요. 그 분들의 얘기들이 책에는 담겨있지만 영화는 두 시간 내에 압축적으로, 그리고 허구적으로 구성해야 하니까 담기지 못했죠. 사실은 그런 도움이 있었기 때문에 제가 덜 고독하게, 힘을 내서 취재를 계속할 수 있었던 거죠.
용기 있게 나서준 제보자를 생각해서라도 포기할 수 없으셨을 것 같습니다.
그렇죠. 처음 류영준 박사를 만났을 때는 완전히 미친 사람인 줄 알았어요(웃음). 논문 자체가 없다고 하니까요. 첫 만남에서 저한테 가장 신빙성 있게 다가온 건 복제소 영롱이의 논문이 없다는 얘기였어요. 황우석 박사를 스타 반열에 올려놓은 가장 중요한 토대가 영롱이인데 만약 그것 자체가 가짜라면, 이 모든 것을 한 번 돌아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PD님에게 있어서 류영준 박사와의 만남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저는 대단히 좋은 제보자를 만난 거예요. 류영준 박사는 정말 순수한 동기만으로 찾아왔었어요. 2005년 <사이언스>에 발표된 논문 속 2번 줄기세포의 주인공인 환자에게 임상실험이 시작될 조짐이 보이고 있는데, 어떻게든 그것을 막지 못하면 너무 큰 죄악이 될 것 같다는 생각 때문에 자신의 모든 걸 걸었던 거예요. 보통의 제보자들은 사안이 벌어지고 자신에게 압박이 들어오면 피하거나 도망치거나 심지어는 진술을 바꾸기까지 하는데, 이 분은 처음부터 끝까지 진술을 바꾸지 않았어요. 그런 면에서 보자면 저는 대단히 강직한 제보자, 무결점 제보자를 만난 거죠.
‘내가 아닌 다른 PD가 취재를 맡았더라면’하고 생각해본 적은 없으셨나요?
물론 해봤죠(웃음). 제가 류영준 박사를 만나기 전에 황우석 박사와 관련해서 윤리 논쟁을 해보자는 취지로 (방송) 아이템을 준비했다가 접었었어요. 그래서 제보가 들어왔을 때 최승호 팀장이 저한테 취재를 맡겼던 거죠. 취재하면서 힘들 때마다 ‘어쩌면 운명 같은 이야기에 내가 빠져들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미 돌이킬 수 없었고 돌이키고 싶지도 않았지만 ‘누가 내 대신 나서서 진실을 밝혀줬으면’하는 느낌이었죠. 결국은 당시 공동 연출을 했던 김현기 PD와 윤희영 작가를 비롯한 동료들이 함께 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생각해요. 김현기 PD와 윤희영 작가는 저랑 같이 고통을 겪었지만 사안이 끝난 후에는 최승호 PD와 제가 가장 많이 조명된 측면이 있어요. 가장 정치적인 탄압을 많이 받았기 때문인데, 지금에 와서 말하지만 두 사람에게 말할 수 없는 고마움이 있죠.
사건을 취재하면서 가장 분노했던 순간은 언제였는지 궁금합니다.
2번 줄기세포 환자에게 임상실험을 하겠다는 계획을 환자 아버지한테 들었을 때, 그때가 제일 분노했던 순간이었어요. ‘제보자가 이런 심정이었겠구나, 이래서 제보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었죠. 두 번째 순간은 황우석 박사가 연구원들을 병풍처럼 세워놓고 기자회견을 했을 때였어요. 사안이 다 밝혀지고 줄기세포는 없다는 것이 드러난 상황에서, 앞날이 창창한 20대 초반의 연구원들 수십 명을 뒤에 배석해 놓고 기자회견을 했을 때요. ‘자신의 앞날을 위해서 저 젊은 후학들의 진로를 완전히 깔아뭉개는구나’ 라는 느낌을 들었죠.
이 사건은 단순히 논문 조작, 줄기세포의 유무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지만 여러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사건을 낳은 모체임에도 불구하고 대중이 간과하는 부분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이 『진실, 그것을 믿었다』를 쓰게 된 의도인지도 몰라요. 줄기세포가 있느냐 없느냐, 그것도 물론 중요하죠. 개인에게도 국가에게도 중요한 문제예요. 그런데 저는 진실을 찾아 나가는 과정 자체가 한국 사회의 당시 모습, 당시에 우리가 처한 가장 커다란 문제를 보여준다고 생각해요. 어쩌면 우리에게는 진실 자체보다도 그것을 찾아나가는 과정이 더 중요할 수도 있다는 거죠. 지금 세월호 사건으로 인해서 관피아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고 있는데, 당시 10년 전에도 똑같은 문제였어요. 언론, 정부, 학계가 동맹을 맺어서 서로 눈감아 주던 것이 곪을 대로 곪아서 터진 것이 황우석 사건이라고 할 수 있어요. 지금 일어나는 사건들도 그런 구조적인 틀이 그대로 유지되면서 발생한 거죠. 우리가 진실을 찾아나가는 과정에서 발견한 것은, 줄기세포 자체의 진위보다도, 각자가 이 세상에서 어떤 관계를 맺으면서 공동체를 유지하고 있는지 민낯을 본 거예요. 그런 의미에서 ‘황우석 사건’이 한 시대의 시상화석이라고 적었던 거고요.
영화 <제보자>의 촬영 현장을 직접 방문하셔서 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아내가 영화 촬영 현장이 어떤 곳인지 보고 싶다고 해서 잠깐 들러서 10분 정도 보고 나왔어요. 방송 쪽에 종사하는 사람이 아니다보니까 마냥 신기해하더라고요(웃음).
그 전에도 임순례 감독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셨을 텐데요. 특별히 당부한 부분은 없으셨나요?
임순례 감독은 저 뿐만 아니고 사건에 관련된 많은 사람들을 만났어요. 저한테는 한두 차례 연락이 와서 책과 관련된 내용을 듣고 싶다고 하길래 만났었죠. 책에 기록된 상황들에 대해서 추가적으로 이야기해줬을 뿐이지, 특별히 영화에 대해서 깊숙이 논의한 건 아니에요(웃음). 영화는 임순례 감독의 작품이잖아요.
8년 만에 개정판 『진실, 그것을 믿었다』를 출간하셨는데, 영화 <제보자>의 개봉과 시기를 맞추신 건가요?
이전부터 아쉬움이 있었어요. 사건 이후 1년이 지난 2006년에 『여러분! 이 뉴스를 어떻게 전해 드려야 할까요?』을 썼는데, 여전히 황우석 신드롬이 가라앉지 않은 상황이었어요. 작고 지엽적인 문제들까지 세세하게 해명해줘야 할 때였고요. 그런데 지금 돌이켜 보면 작은 해프닝이었거나 사건의 본질과는 크게 관계없는 것들도 많이 들어가 있더라고요. 그런 것들을 정리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있었어요. 그리고 당시에는 저도 다소 격앙되어 있었기 때문에 그런 감정적인 표현들은 절제하는 방향으로 수정했죠. 무엇보다 상황이 바뀌었잖아요. 최초의 제보자인 류영준 씨가 실명으로 세상에 나왔고 황 교수 재판도 마무리가 되었고요. 그래서 제 입장에서는 언론사와 과학사를 위해서 완결판으로 정리를 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마침 영화가 개봉하니까 때를 맞춰서 출간하면 사람들이 조금 더 관심을 가질 것 같았고요.
8년 동안 사건의 추이를 지켜보시면서 아쉬운 점은 없으셨나요?
저도 취재를 시작하기 전에는 황우석 박사를 지지했던 사람인데요. 사건의 진실이 밝혀진 이후에 황우석 박사를 지지했던 분들이 충격을 받으셨잖아요. 충격 이후에 깊은 혼돈을 경험하셨고요. 그 부분이 제일 아쉽죠. 황우석 박사를 지지하셨던 분 중에는 사건이 다 끝나고 채 몇 달이 되지 않아서 분신자살 하신 분도 있어요. 그 어떤 옳고 그름을 떠나서 사람 생명이 중요한 것인데, 그런 면에서 참 마음이 안타깝죠.
아직까지도 속 시원하게 해명되지 않은 부분들이 있다고 생각하세요?
밝혀지지 않은 사실들은 많이 있죠. 검찰이 법적인 측면에서는 수사를 했어요. 예를 들면 횡령, 생명윤리법과 관련된 난자매매 문제, 논문의 사기죄 성사여부에 대해서는 밝혔는데요. 논문의 진위 여부 자체에 대해서는 학계에 넘긴다고 했었죠. 논문은 다 철회되었지만요. 검찰의 발표대로라면 김선종 연구원과 황우석 교수의 진술이 엇갈리는 부분들이 있어요. 2번 3번 줄기세포의 섞어 심기에 대해서 황 교수가 얼마나 알고 있었는지 혹은 전혀 몰랐는지, 그런 것들은 사건이라는 측면에서는 아직 규명되지 않은 부분이죠.
이미
가장 우선에 뒀던 생각은 역사를 위해서 기록을 남기자는 거였어요. 방송을 통해서 남긴 영상은 핵심 중의 핵심만 추려서 60분 안에 담아낸 것이라서, 수면 아래에 어떤 일들이 있었는가에 대해서 충분히 기록되지 않았어요. 그래서 핵심은 있지만 그 핵심까지 가는 과정을 역사를 위해서 기록으로 남겨야 된다는 생각을 했었죠. 그리고 무엇보다도 『여러분! 이 뉴스를 어떻게 전해 드려야 할까요?』를 썼던 2006년에는 전문가들이 이 책을 보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언론 쪽에 있는 분이든, 과학계에 계시는 분이든, 정부에 계시는 분이든, 바이오 주식에 관심이 있는 분이든, 어쨌든 전문가들이 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었죠.
개정판 『진실, 그것을 믿었다』를 출간하신 지금은 생각이 달라지셨나요?
이번 책은 대중들이 봐줬으면 좋겠어요. 황우석 사건은 지나간 과거가 아니기에 잊으면 안 되고, 지금 발생하는 사건들의 뼈대가 그곳에 시상화석처럼 있는 거거든요. 이제는 국민들이 『진실, 그것을 믿었다』를 보고 자녀와 대화도 나눴으면 좋겠어요. 직업윤리라는 게 무엇인지 이야기할 수도 있을 거고요. 영화 <제보자>도 12세 관람가니까 자녀와 같이 보고 나서 진실과 삶의 자세에 대해서 얘기할 수 있잖아요. 그래서 가족들이 함께 보고 토론해 봤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어요. 이제는 그렇게 할 수 있는 마음의 태세도 되어있는 것 같고요. 사건이 발생한 후 처음 1~2년 동안에는 아쉬움과 미련이 있었기 때문에 거들떠보고 싶지 않은 이야기였거든요. 지금은 국민들이 『진실, 그것을 믿었다』를 통해서 한 걸음 떨어진 곳에서 객관적으로 들여다 볼 수 있다고 생각해요. 사실은 우리에 대한 얘기거든요.
영화 <제보자>의 관객들이 사실과 허구를 혼동할까봐 염려되지는 않으세요?
일단 영화는 영화죠. 영화는 있는 그대로, 영화의 논리대로 봤으면 좋겠어요. 영화 시작 전에도 나오잖아요. 이 영화는 현실에서 모티프를 얻었으나 영화상으로 재구성했다고요. 예를 들어 영화가 황우석 사건과 비슷하게 비교해서, 만약이라는 가정 하에, 이 사건의 주인공과 실제의 다른 점을 말할 수는 있을 거예요. 첫째는 진중권 교수가 얘기했듯이 제보자 부부의 딸은 병을 앓고 있지 않다는 거죠. ‘난치병 자녀를 키우는 제보자 부부’라는 설정은 난치병의 아픔이 있는 분들을 대리하기 위함이라고 생각해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사실과 허구 사이에 또 다른 점이 있을까요?
영화에서 가장 결정적으로 문제가 되는 차이는 제가 87학번이라는 거예요(웃음). 영화에서는 박해일 씨가 90학번으로 나오잖아요. 아마 87학번이라고 하면 너무 멀게 느껴지고, 또 박해일 씨가 87학번이라고 하기에는 연배가 어리니까 설정을 90학번으로 하신 것 같아요(웃음).
<제보자>, 제보자 보호 제도 마련의 계기가 되었으면
영화 <제보자>는 어떻게 보셨나요?
모티프가 된 실제의 사건, 즉 황우석 사건의 근간을 훼손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높게 봐요. 영화적인 재미를 위해서 허구적인 요소들이 들어가기는 했지만, 큰 뼈대 자체는 변동되지 않았잖아요. 이장환 박사라는 인물의 고뇌라는 측면도 담아줬고요. 저는 임순례 감독이 참 우직하고 담백하게 만들어줬다고 생각해요. 훨씬 더 허구적인 요소를 많이 넣을 수도 있었을 테니까요. 이동진 영화 평론가가 얘기했듯이, 영화적으로 보자면 주인공이 그렇게 열심히 싸워야 될 동기가 있어야 되는 거잖아요. 그런데 영화에서 윤민철은 그냥 진실을 밝히려고 해요. 싸우다 보니까 이건 자기의 소명이라고 생각하게 된 거예요. 그렇게 아주 담백한 인물이죠. 그런 면에서 대단히 절제해서 표현했다는 이동진 평론가의 말이 맞아요.
극적인 재미를 위해 사실을 왜곡하는 부분은 없었다는 말씀이시군요.
예를 들면, 당시에 얼마나 많은 음모론들이 있었어요? 한학수가 CIA의 첩자라는 이야기도 있었어요(웃음). 원천기술을 훔쳐가기 위해서 MBC에 오랫동안 숨어있었던 첩자라고요. 그런 음모론을 가지고 영화를 만들면 얼마나 더 재밌었겠어요. 더 극적이었을 거예요. 그런데 임순례 감독은 근간을 흩트리지 않았어요. 저는 그런 우직함이 영화로써 돋보였다고 생각해요. 영화와 현실 사이의 차이는 영화가 극장에서 막을 내린 후에 학자 분들이 더 논의를 해주시겠죠. 그리고 내년이 (황우석 사건이 발생한지) 10주년이니까 많은 현실의 진행에 대해서는 학계에서 정리를 하실 거라고 봅니다.
영화 <제보자> 관람 후에 『진실, 그것을 믿었다』와 만나게 될 독자들도 많을 것 같습니다.
영화 관람 후에 책을 보신다면 틀림없이 ‘영화보다 10배나 재미있다’는 것을 깨닫게 될 거예요(웃음). 『다빈치 코드』보다 재미있다고 자신할 수 있어요. 일단 한 번 책을 손에 들면 밤새 놓지 못하실 거예요(웃음). 그리고 어떤 부분에서 영화적으로 허구가 개입되었을까를 살펴보시는 재미도 있을 거예요. 영화 속의 작은 대사 하나에도 그 말이 나오게 된 맥락이 있거든요. 예를 들면 ‘민철아, 구속 되라’라고 하는 팀장의 대사가 있잖아요. 실제 있었던 말이거든요. 어떤 맥락 어느 상황에서 그런 말을 하게 됐는지를 알게 되면, 영화에서 볼 수 없는 풍성함을 얻을 수 있다고 봐요. 저는 영화와 책을 비교해 보는 것도 재미있지 않을까 싶어요.
독자들에게 미리 귀띔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으세요?
영화를 보기 전에 이 책을 본다면 선행 학습이 될 것이고(웃음), 영화를 보고 나서 책을 읽는다면 더 풍성한 현실의 디테일을 느끼겠죠.
심화학습이네요(웃음).
네, 심화학습이죠(웃음). 선행학습을 할 건지 심화학습을 할 건지, 그건 취향대로 고르셔도 될 거예요. 저는 심화학습을 권해요. 왜냐하면 (영화 속) 두 시간은 짧기 때문에 책만큼 풍성할 수는 없죠. 그 중에서 또 핵심만을 뽑은 거니까요. 그렇지만 선행학습도 과히 나쁘지는 않다고 말씀드릴 수 있을 것 같아요(웃음).
영화 <제보자> 개봉과 『진실, 그것을 믿었다』의 출간으로 황우석 사건이 재조명 되고 있습니다. 이 현상이 어떤 움직임으로 이어지길 기대하시나요?
두 가지로 작동했으면 좋겠어요. 첫 번째로는 현재의 언론 현실에 대해서 국민들이 한 번 돌아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고요. 두 번째로는 공익 제보자에 대한 보호 법률이 확고하게 자리 잡았으면 좋겠어요. 이미 국회의원들이 개정안을 발의하고 다듬어 가고 있는데, 도가니 법이 나오는 것처럼 제도적으로 개선됐으면 하는 바람이에요. 영화 <제보자>와 다가오는 황우석 사건 10주년이 그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고요. 사실은 어느 조직, 어느 공동체든지 제보자에 대해서 불편해 할 수 있거든요. 조금 불편한 얘기를 하면 진실이라 하더라도 괴롭죠. 그렇지만 장기적으로 봤을 때 그렇게 해야 결국 그 조직이 더 건강해지는 거잖아요. 그런 점에서 저의 현실적인 목표는 제보자 법이 만들어 졌으면 좋겠다는 거예요. 언론 현실에 대해서 돌아본다면 예를 들어 아주 작은 것이지만 '최승호 PD는 지금 어디에 가 있는가' 라는 질문을 국민들이 해줬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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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 그것을 믿었다한학수 저 | 사회평론
『진실, 그것을 믿었다』는 황우석 사태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 한 명의 용감한 제보자와 취재 진실을 보도한다는 원칙을 지키며 소임을 다한 언론인들의 이야기이다. 2005년 6월 한학수 PD가 속해있던 《PD수첩》에 익명의 제보가 도착한다. 제보자를 만나러 간 한PD에게 제보자는 이렇게 묻는다. ‘진실과 국익 중에 어느 것이 우선인가요?’ 황우석 논문 조작의 진실은 그만큼 거대했다. 이렇듯 놀라운 제보를 받고 그것을 진실로 밝혀내기까지 반전의 반전을 거듭하는 소설보다 흥미진진한 취재 과정의 풀스토리를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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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나리
그저 우리 사는 이야기면 족합니다.
앙ㅋ
2015.02.27
슈퍼작살
2014.10.18
iswear4
2014.10.17
대중서가 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드려본 말씀입니다. 당시에 읽은 수많은 기사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기사 제목이 '거짓말의 스펙타클'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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