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집단, 과연 합리적일까?
현대인들은 자신을 이성적이고 합리적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지만 심리학자들은 여러 실험을 통해 이 자만심에 대해 경고를 날립니다.
글ㆍ사진 강현식
2014.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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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종종 뉴스에서 끔찍한 사건을 보고 경악합니다. 점점 더 늘어나고 있는 교내 왕따 학생 폭행 사건, 군대에서의 구타 사건 등이 바로 그것입니다. 힘이나 권력 구도에서 우위에 있는 다수의 사람들이 자신들보다 약한 한 사람을 폭력적으로 무너뜨리는 이 사건들을 보면, 사람이 어떻게 저렇게 잔인해질 수 있는지 사람이 무서워지기까지 합니다.

 

그런데 간혹 가해자를 아는 어떤 사람의 증언이 나와서 사람들을 혼란에 빠트립니다. “저 사람은 정말 순하고 착한데, 그럴 사람이 아닌데”하는 말을 했다가 대중의 뭇매를 맞기도 합니다. 단순한 옹호처럼 보이니까요. 하지만 과연 이런 말들은 모두 가해자의 변명으로 치부되어야 할까요? 만약 평범한 누구라도 어떤 권위적인 집단에 속한다면, 이성을 유지할 수 있을까요? 심리학에서는 이런 정황에 대해 생각해볼 만한 몇 가지 실험을 실시했습니다.

 

심리학자 밀그램은 인간의 이성과 합리성에 대해 의문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제2차 세계대전 중 유대인 대학살(홀로코스트)에 관여했던 나치군 장교 아이히만이 전범재판에 회부된 사건을 계기로 이 의문을 밝히게 되었습니다. 아이히만은 전쟁이 끝나자 남미로 도주했다가 15년 만에 잡혔습니다. 그리고 1961년 전범재판에 회부되어 4개월 만에 사형선고를 받았습니다. 그는 재판 중에 자신은 그저 시키는 대로 했을 뿐이라며 무죄라고 항변했습니다. 이 장면은 언론을 통해 대대적으로 보도되었습니다. 밀그램은 아이히만의 항변을 지켜보고, 과연 누군가에게 큰 해가 되더라도 과연 다른 사람의 의견을 따를 수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 실험을 고안했습니다.


    저는심리학이처음인데요
   밀그램 실험


그는 학습과 기억에 대한 연구라고 알고 찾아온 참가자에게 교사 역할을 주면서, 다른 방에 자리 잡은 또 다른 참가자(학생 역할)가 암기할 수 있도록 단어를 불러주라고 했습니다. 만약 학생이 틀린다면 15V부터 450V까지 순차적으로 전기 충격을 가하라고 지시했습니다. 초반에 잘하던 학생은 시간이 지날수록 답을 틀렸습니다. 교사는 지시받은 대로 전기 충격을 가하기 시작했습니다. 자신과 같은 참가자에게 충격을 가해야 하다니! 끔찍한 일이었습니다.

 

게다가 학생 역할의 참가자들은 120V가 가해졌을 때 고통스러운 소리를 질렀고, 150V에서는 실험을 멈춰달라고 요구했으며, 180V에서는 울부짖었습니다. 교사 역할을 맡은 이들은 죄책감을 느끼면서 연구자에게 실험을 그만두겠다고 말했습니다. 이때마다 연구자는 실험은 계속 진행되어야 하며, 모든 책임은 자신이 질 것이니 계속하라고 명령했습니다. 결국 300V에서 비명이 들렸고, 330V를 가하자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습니다. 기절했거나 심장마비로 쓰러졌을지도 모르는 상황. 만약 여러분이 이런 상황에 처했다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상대 참가자는 고통을 호소하고, 연구자는 옆에서 실험을 계속하라고 명령합니다.

 

결과는 충격적이었습니다. 실험에 참가한 40명 중에서 그 누구도 300V 이전에는 실험을 그만두지 않았습니다. 300V 이후에서야 연구자의 명령에 거부하는 참가자들이 나오기 시작했고, 무려 26명은 가장 높은 450V까지 전기 충격을 가했다고 합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을까요? 물론 실제로는 학생 역할을 맡은 참가자들은 협조자들이었고 어떤 전기 충격도 가해지지 않았지만, 교사 역할을 맡은 참가자들은 실험이 끝날 때까지 실제 상황으로 알고 있었습니다. 혹시 이들이 범죄 경력이 있는 사람이라거나 혈기왕성한 젊은이들이었다면, 여러 이유로 사회에 불만이 많은 사람들이었다면 개인의 성격 문제로 돌릴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들은 재산과 학력, 지능과 정신병력 등 다양한 측면에서 평균적이고 정상적인 사람들이었습니다. 이후 미국에서도, 그리고 다른 여러 나라에서도 이 실험은 반복되었지만 결과는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이 말은 우리들 누구라도 저 상황으로 들어간다면 연구자의 명령을 어기거나 연구실을 박차고 뛰어나오기는 어렵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저는심리학이처음인데요

밀그램 실험

 

이 실험은 심리학계를 비롯해 미국 사회, 더 나아가 인류 사회 전체를 혼란에 빠뜨렸습니다. 아이히만의 항변이 단지 변명이 아니라 진실일 수도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죠. 물론 이 실험이 아이히만의 무죄를 입증한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분명 홀로코스트는 엄연한 범죄이며, 책임 있는 사람들은 마땅한 처벌을 받아야 합니다. 하지만 여기에서 끝나면 안 됩니다. 우리도 어느 순간 정신을 차리고 살지 않으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아이히만이나 밀그램 실험의 참가자들처럼 끔찍한 일을 저지를지도 모릅니다.

 

현대인들은 자신을 이성적이고 합리적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지만 심리학자들은 여러 실험을 통해 이 자만심에 대해 경고를 날립니다.

 

또한 심리학자들은 여러 실험과 사건을 통해 집단의 의사결정에 상당한 문제점이 있을 수 있다고 말합니다. ‘집단사고’와 ‘집단 극화’가 그것입니다. 우리는 강한 응집력을 가진 집단에 대한 애착, 지시적인 지도자, 성과에 대한 압박 속에서는 반대 의견을 내지 못합니다. 이 때문에 비합리적인 결정을 내리는 집단사고가 생깁니다. 보수 집단에서는 집단사고가 더욱 보수적인 경향으로, 진보 집단에서는 더욱 진보적인 경향으로 치닫는다는 것이 집단극화입니다. 집단사고와 집단 극화를 막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보지 않고 자신의 의견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합니다. 다른 사람들의 평가를 걱정하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그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죠. 여러분이 속한 집단은 안녕하십니까? 합리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건강한 집단인지 되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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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심리학이 처음인데요 강현식 저 | 한빛비즈
저자는 그간 심리학에 대한 대중의 기대에 어느 정도 부응하면서도 가능한 학문으로서의 심리학의 입장을 많이 담아내려고 노력했다. 심리학 핵심개념들을 간결하면서도 통찰력 있게 풀어주고, 독자의 쉬운 이해를 위해 가능한 한 많은 예시를 들고자 노력했다. 이를 위해 영화나 대중가요, 다큐멘터리 등 대중에게 친숙한 소재들을 이용해 심리학을 알려왔다. 흥미와 재미 위주가 아닌 보다 객관적이고 다양한 정보로 심리학에 대해 처음부터 제대로 알기를 원하는 사람들을 위해, 이 책은 두고두고 읽을 좋은 동반자가 되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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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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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2014.09.19

문득 나치에 지시에 따라 잔혹한 행위를 해온 전범에 대한 이야기가 생각나네요. 사유하지 않은 죄라고 하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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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ㅋ

2014.09.12

이성적이고 합리적이지 못하는건 인간은 시각에 무척 민감해서 현란한 문구 광고에 현혹되기 쉬워요. 쇼인도 앞을 지나갈때 조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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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롱

2014.09.03

사람들의 권위나 그 후광에 자신을 맡기기보다, 스스로 생각하고 옳지못한 일에 노를 당당히 외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겠지요. 가장 현실적이면서도 현실에서는 일어나기 힘든일들. 좀 더 밝은 세상이 되길 바래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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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현식

‘누다심’이라는 필명으로 활동 중인 심리학 칼럼니스트로, 〈누다심의 심리학 아카데미〉를 운영하고 있다. 사람들에게 제대로 된 심리학을 쉽고 재미있게 알리겠다는 일념하에 다양한 주제로 글쓰기와 강연을 하고 있으며, 다양한 주제로 각종 모임과 집단 상담도 진행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