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레나 산맥을 굽이 돌아
카탈루냐 문화가 보존되어 있는 프랑스의 페르피냥에서 스페인의 작은 포구 포르부까지는 한 시간이 채 걸리지도 않았다. 일행 중 누군가 제대로된 파에야를 먹어보자는 말을 꺼내었고, 결국 점심식사를 위해 국경을 넘게 되었다. 나는 영화나 책에서 이름만 들어보았을 뿐 한번도 먹어보지 못한 스페인의 가정식 요리 파에야를 상상하며 솟구치는 침을 삼켜댔다. 뿐만 아니라, 차를 타고 국경을 넘는다는 것은 대한민국 국민으로선 잘 와닿지 않는 일이었기에 할수만 있다면 얼마든지 경험해보고 싶었다.
피레네 산간을 굽이 돌아 스페인으로 들어섰다. 지중해의 바람과 강렬한 햇살을 받은 포도나무들이 가파른 언덕 비탈에 단단하게 심어져 있었다. 가까운 곳에 와이너리가 있는지, 거대한 와인병이 길가에 전시되어 있기도 했다. 국경을 지났다는 것을 알려준 것은 놀랍게도 휴대폰의 문자였다. 지구의 어디를 가나, 전파가 나를 따라다닐 거라는 사실은 공포스러우면서도 또한 안도감을 주었다. 여권을 검사하거나 차의 트렁크를 검문하는 절차는 없었다. 그저 국경을 넘어선다는 표지판만이 이곳과 저곳을 분리시켰다.
가파른 절벽 사이로 요새처럼 숨어있는 포구마을이 보였다. 포르부(PortBou)라 들었을 때는 그저 지역이름이겠거니 싶었는데, 한국에 돌아와서 철자를 살피니 예사롭지 않았다. 포트(port)야 포구나 항구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식후에 마시는 포르투갈산 적포도주라는 뜻도 있다는 것은 사전을 뒤져보고야 알게 된 것이었다. 거대한 와인병과 단단한 포도나무들이 포구 이름의 기원이라니, 더군다나 바다와 와인의 절묘한 조화라니. 포트 뒤에 붙은 Bou는 저인망 트롤 어업선을 의미했다. 그러니 포르부는 이름 그대로 저인망 트롤 어업선을 운용하는 포구, 애써 찾아가기에도 힘든 스페인의 전통 포구마을인 셈이었다. 혹은 트롤 어업선이 오고가는 와인의 마을이었다.
카탈루냐 파에야
포구에는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 국경을 넘을 때까지도 우리를 앞지르던 올리브색의 낡은 왜건 한 대를 보았을 뿐이었다. 한적하다기 보다는 쓸쓸한 적막이 가득 차, 알 수 없이 외로워지는 그런 마을이었다. 구름은 낮았고, 한차례 비를 쏟아낼 것처럼 어두웠다. 바다는 제법 성이 나 있었다. 바람이 거세진 않았지만 오래도록 바다를 보며 서 있기에는 불편했다. 그건 고독의 감정인지도 모르겠다. 하긴 바다가 꼭 밝고 아름다워야 할 이유만은 없다. 실제로도 바다는 우리에게 두렵고, 낯선 공간이지 않은가. 하물며 무수한 생명을 앗아가기도 하고, 마을 전체를 휩쓸어가는 공포의 대상이기도 하다. 포르부의 바다가 그토록 적막했던 건, 그때의 기분일까, 지금의 기분일까. 나는 한나절을 보냈을 뿐이니, 속단할 수 없다. 그저 국경에 위치한 불안을 마을이 감지하고 있는 것일까. 바다는 금이 그어지지 않았는데, 파도는 주인이 없는데.
포구 중앙에 자리한 레스토랑은 30개가 넘는 테이블을 가졌을 정도로 컸다. 메뉴와 테이블보의 색상으로 미뤄짐작컨대 세월의 풍파를 버텨낸 가게 같았다. 식당 역시 손님이 없었다. 노부부가 구석 테이블에서 음식을 먹고 있는 게 다였다. 올리브색 왜건의 주인일까. 아무래도 바다를 가진 마을이니, 휴가철이 되어야 사람이 북적이는 것일테다. 그것도 아니면 한때 영광스러웠던 포구 마을을 기억하는 노신사들의 나들이 장소이거나. 어쨌든 우리는 점심을 먹어야 했고, 선택할 수 있는 식당은 이곳이 유일한 듯 했다.
파에야를 먹기 전에 보케로네스 프리토스와 와인을 주문했다. 멸치튀김인 이 전통 요리는 레몬 한 조각, 채썬 당근, 양배추 몇 잎과 함께 접시에 담겨 나왔다. 일본식 튀김처럼 바삭하지는 않았지만 고소하고 담백한 맛이 일품이었다. 비린 향은 전혀 나지 않았다. 양도 적당하여 파에야가 나올 때까지의 시간을 벌어주었다. 더군다나 와인의 맛을 깊게 만들어 주었다. 에피타이저가 이정도이니, 메인 요리가 기대될 수밖에 없었다.
파에야는 원래 바닥이 얕고 둥근 프라이팬을 가리키는데, 전통요리인 만큼 집집마다 만드는 방식이 다를 터였다. 하지만 이름마저 싱싱한 포르부이지 않은가. 조개 홍합 오징어 새우를 뜨거운 프라이팬 위에서 밥과 볶아낸 파에야는 한국인의 식감에도 제격이었다. 스페인은 세계 올리브 수확량의 44%를 차지한다고 하니, 올리브 오일이 들어가지 않은 요리가 없을 정도라고 한다. 그래서일까, 기름진 파에야가 거북하지 않고 오히려 진한 감칠맛으로 입맛을 사로잡았다. 팬의 바닥이 보일 때까지 긁어먹었고, 남은 소스는 빵에 발라 먹었다. 주방장이 깔끔히 비운 냄비를 봤다면 흡족해 했을 것이 분명하리라. 우리는 완벽한 점심식사를 마치고 서둘러 스페인을 빠져나왔다.
다른 나라에서
광양의 망덕 포구에는 윤동주의 시비가 있다.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의 육필원고가 이 마을에 숨겨져 있었기 때문이다. 시인은 생전에 육필원고 세 권 중 한 권을 하숙집 후배인 정병욱에게 남겼다. 정병욱은 학병에 끌려가기 전, 어머니께 원고를 지켜달라 당부했고 마루 밑에 숨겨두었던 시는 광복 후 1948년에야 비로소 시집으로 묶어질 수 있었다. 강진 마량의 한 횟집에 들어가서는 이청준 소설가의 흔적을 발견하기도 했다. 고인이 생전에 친구들과 마량을 찾을 때마다 방명록을 기록해 둔 것이다. 횟집 주인은 방명록을 팔라고 하는 손님들을 거절해가며 액자로 걸어두었다. 나는 액자를 이리저리 살피며 한 소설가를 추모하기도 했다.
낯선 여행지에서 친숙한 이름을 발견하면 절로 눈길이 가고 궁금해지기 마련이다. 어떤 연유로 이리 흘러들었는지. 포르부는 국경에 위치한 만큼 교통의 요충지이며, 경계인 만큼 상처를 가진 마을이었다. 그곳을 찾았을 때까지는 별다른 의식이 없었는데, 다녀와서야 발터 벤야민이라는 이름과 포르부를 연결지을 수 있었다. 부유한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난 그는 1920년에 베를린에 정착하여 문학비평가와 번역가로 활동하였다. 뛰어나지만 관습에 위배된 그의 논문(<독일비극의 기원>(1928)이 프랑크프루트 대학에서 거절당하자 그는 공부를 그만두게 된다. 1933년에는 나치를 피해 파리에 정착을 하지만 1940년 프랑스가 나치에 점령담하자 스페인에서 포르투갈을 거쳐 미국으로 이주할 작정으로 피레네 산맥을 넘게 된다. 하지만 자신이 곧 게슈타포에게 넘겨질 거라는 이야기를 포르부의 경찰서장에게 듣게 된 그는 음독 자살을 하고야 만다. 1940년 9월 26일, 독일의 미학자이자 문필가인 벤야민은 뛰어난 논문들의 가치를 인정받지도 못한 채로 역사의 비극 속으로 으스러지고 만 것이다.
벤야민의 논문과 저서는 20세기의 사유에서 빼놓을 수 없는 중추라고 할 수 있다. 그의 책을 들추곤 전율한 적이 여러번이었다. 그런 그가 포르부라는 작은 포구마을에서 생을 마감했다는 사실은 놀라웠지만 이내 슬픔이 밀려왔다. 마을 인근에 발터 벤야민의 묘지 기념관이 있다고 한다. 많은 이들이 이곳을 지나며, 벤야민의 업적과 불행한 삶을 위로했을 것이다. 비단 그만을 살피기 위한 것이겠는가. 도려내고 싶은 역사의 과오를 반성하는 뼈아픈 자리가 바다 가까이 있다는 것이. 윤동주의 시가 많은 이들을 울렸고, 이청준의 소설이 한국 문학을 보다 깊게 만들어주었다. 문학의 종언이 거론되는 시대에 그들의 족적이 한 횟집에 작은 액자로나마 보관되고 있다는 것은 깊은 인상을 남기기에 충분했다.
포르부에서 보낸 시간은 비록 한나절이 채 되지 않지만 나에게는 오래도록 기억될 것 같다. 바다의 색과 파도의 향과 정지한 듯 흘러가는 구름과 흘러가듯 멈춰버린 오래된 식당의 오래된 맛. 다시 찾을 기회를 얻는다면,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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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 소년의 포구이야기 오성은 저 | 봄아필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있는 우리나라의 축복받은 자연환경은 셀 수 없을 만큼 다양하고 아름다운 포구를 간직하고 있다. 마도로스의 아들로 부산에서 태어나 아직 청춘의 바다를 건너고 있는 젊은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여행은 그곳에 서서 잠시 읽어보는 것, 그려보는 것, 그리고 다시 되돌아오는 것이라고, 누구나 지금 당장 푸른 바다를 품은 포구를 향해 떠날 수 있다. 이들 포구로 향하는 길은 분명, 언제나 청춘 같은 삶의 힘찬 생명력을 발견하는 기쁨이며, 다시 삶의 소중함으로 되돌아오게 하는, 바다를 통해 더 넓고 깊은 마음을 품게 된 자신을 발견하는 만남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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