움베르토 에코에게 보내는 체코식 답변 『일곱 성당 이야기』
‘체코가 낳은 움베르토 에코’라 평가받는 작가 밀로시 우르반이 한국을 찾았다. 국내에 처음 소개되는 그의 소설 『일곱 성당 이야기』의 출간을 기념하며 이루어진 방한이었다. 밀로시 우르반 작가의 두 번째 소설인 이번 작품은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의 출간으로 큰 반향을 일으킨 출판사 ‘열린책들’을 통해 지난 6월 한국 독자들과 처음 만났다. 출판사 측은 우르반 작가의 방한을 기념해 열린 『일곱 성당 이야기』의 출판 기념회에서 “이번 밀로시 우르반의 첫 방한으로 우리나라 독자들이 군소 언어권의 저명한 작가들을 알게 되는 소중한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하며 “영미권에 편중되어 있는 문학세계가 다채롭고 풍부해지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했다.
『일곱 성당 이야기』는 14세기 중세 시대를 재건하려는 음모를 중심으로 전개되는 지적 추리 소설이라는 점에서 중세 수도원에 얽힌 음모를 배경으로 한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을 떠올린다는 평가를 받았다. 한편으로는 배경이 현대라는 점에서, 중세 이래 번성해온 유럽의 비교(秘敎)에 관한 자세한 묘사가 특징인 에코의 두 번째 추리소설 『푸코의 진자』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실제로 현지 언론들은 『일곱 성당 이야기』에 대해 “움베르토 에코에게 보내는 체코식 답변!”이라는 찬사를 아끼지 않았고, 작가 우르반에 대해 “글로써 미학적 공간, 개성 넘치는 등장인물, 그리고 강력한 모티브를 기가 막히게 버무려 내는 체코 제일의 스토리텔러”라고 평가했다. 이렇듯 『일곱 성당 이야기』가 우르반 작가의 대표작이자 체코 고딕 문학의 역작으로 꼽히는 이유는, 1990년대 당시의 복잡한 사회적, 역사적 격변을 겪었던 체코 사람들의 정서와 심리를 정확하게 포착해냈기 때문이다. 바로 이 ‘체코다움’이 작가 밀로시 우르반을 ‘체코 현대문학을 대표하는 최고의 작가’의 반열에 올려놓았다.
『일곱 성당 이야기』는 제목에 나타난 대로 성당이라는 건축물을 중심 소재로 하여 체코와 프라하의 역사, 문화유산, 과거와 현재의 아름다움과 추함, 풍부하고 찬란한 측면과 끔찍하고 기괴한 측면들을 가감 없이 드러낸다. 이야기의 주인공 K는 옛 건물에 손을 대면 과거의 사건들을 볼 수 있는 기이한 능력을 가진 비범한 인물로, 그는 우연히 프라하의 어느 고딕 성당 종루에 살아 있는 사람의 발목이 밧줄에 꿰여 소름끼치는 종소리를 내고 있던 엽기적인 사건을 목격하게 된다. 이후 프라하 곳곳에서 벌어지는 엽기적인 살인 사건에 휘말리기 시작한 주인공은 사건의 배후에 프라하의 찬란했던 과거 ‘황금시대’를 재건하려는 어두운 세력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아울러 그 모든 중심에 중세 체코의 황금시대를 대표하는 일곱 개의 성당이 있음을 알게 되면서, K는 존재를 알 수 없는 일곱 번째 성당의 비밀을 찾아 나선다.
프라하의 아름답고 신비한 장소들을 배경으로 엽기적이며 잔혹하기 짝이 없는 사건들이 펼쳐지지만, 작가 우르반은 주인공의 입을 빌어 매우 점잖은 문체와 세련된 문장으로 건조하고도 자세하게 묘사한다. 그리고 주인공을 포함한 모든 등장인물들의 격렬한 감정 표현조차 정제된 언어로 다듬어 표현한다. 작가가 전하고자 하는 것은 ‘안일하게 과거 회귀를 바라는 비현실적인 향수’가 아니라, 자신이 태어나 자란 나라와 도시와 함께 살아가는 체코인들에 대한 애정이다. 그 안에서 우르반은 비틀려 버린 과거와 더 아름다울 수도 있었을 현재에 대한 안타까움을 적나라하게 표현한다.
프라하의 미스터리한 아름다움을 말하다
지난 6월 19일, 주한체코문화원에서 이루어진 우르반 작가와 한국 독자들의 첫 만남에는 체코에서 『일곱 성당 이야기』를 출간한 ‘아르고’ 출판사의 대표를 비롯해, 이번 작품을 국내에 소개한 출판사 ‘열린책들’의 주역들이 함께했다. ‘열린책들’을 대표해 인사말을 전한 홍예빈 문학팀장은 『일곱 성당 이야기』에 대한 애정을 담아 독자들에게 작가 우르반과 그의 작품 세계에 대해 소개했다.
홍예빈 : 『일곱 성당 이야기』는 체코에서 출판 당시, 복잡한 사회적 역사적 격변을 겪었던 체코 사람들의 정서와 심리를 정확하게 포착하면서 대중들로부터 큰 주목을 받아 베스트셀러가 되었습니다. 이 작품은 체코뿐만 아니라 스페인어, 독일어, 러시아어, 네덜란드어, 헝가리어 등 10개국 이상의 언어로 번역되었고, 특히 스페인과 남미, 독일에서 큰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일곱 성당 이야기』는 제목처럼 성당이라는 건축물을 중심 소재로 하여 프라하의 역사와 문화유산, 과거의 아름다움과 신비함, 그리고 현재의 끔찍하고 기괴한 측면들을 그대로 드러낸 작품입니다. 독자 여러분들도 동유럽의 보석이라고 불리는 아름답고 신비한 프라하에서 벌어지는 충격적인 사건들에 빠져드시길 바랍니다. 『일곱 성당 이야기』가 체코인들에게 그랬던 것처럼, 한국인들의 마음에도 깊게 와 닿는 작품이 되기를 바랍니다.
한국의 독자들에게 건네는 환영의 인사는 체코 ‘아르고’ 출판사의 대표에게로, 그리고 다시 밀로시 우르반 작가에게로 이어졌다.
밀로시 우르반 : 『일곱 성당 이야기』의 출판 기념회에 참석해 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저 역시 이 자리에 함께하게 되어 굉장히 기쁩니다. 마침내 한국의 출판사와 함께 작업을 하게 된 것이 무척 흥미롭고 ‘열린책들’ 역시 현명한 선택을 하셨다고 생각됩니다(웃음). 이번에 한국에서 출간된 『일곱 성당 이야기』는 15년 전에 체코에서 출간된 원본과 유사한 부분이 많아서 개인적으로 만족스럽습니다. 한국의 독자 분들이 『일곱 성당 이야기』를 감명 깊게 읽으셨다면, 체코에 오셔서 이야기에 등장하는 성당들을 직접 보시길 추천 드리고 싶습니다. 체코에 오시면 그림처럼 아름다운 풍경뿐만 아니라 소소하고 미스터리한 부분들을 보시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 모습들 속에서 아름다움을 느끼실 수 있을 것이고, 작품 속 일곱 성당들 중 하나의 성당은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도 아실 수 있을 겁니다.
우르반 작가의 뒤를 이어 독자들 앞에 모습을 드러낸 이는 정보라 번역가였다. 현재 연세대학교 노어노문학과에서 강의를 하고 있는 그녀는 『일곱 성당 이야기』 이전에도 『구덩이』(안드레이 플라토노프 저) 『거장과 마르가리타』(미하일 불가코프 저) 『우리는 아우슈비츠에 있었다』(타데우슈 보롭스키 저) 등 슬라브어권의 책들을 한국 독자들에게 소개해왔다.
정보라 : 『일곱 성당 이야기』를 번역하면서 책의 내용이 지나치게 이국적인 것이 아닌가, 하는 걱정을 많이 했습니다. 중세 유럽의 종교 전쟁과 그 결과로 일어난 종교 개혁, 그리고 성당 건축과 같은 이야기가 평범한 한국인이 자세하게 알만한 내용은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일곱 성당 이야기』에 담긴 ‘고향에 대한 사랑’은 국적이나 문화권에 관계없이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자신이 태어나서 자란 땅이나 도시, 고향보다 는 집이라고 생각하는 곳에 있는 문화적?역사적 유산에 대해서 애착과 자긍심을 가지는 건 모두가 이해할 수 있는 마음이기 때문입니다. 제가 번역한 『일곱 성당 이야기』 안에서 그런 감정이 잘 전달되었기를 바라고, 이국적인 프라하의 묘사가 독자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기를 기대합니다.
밀로시 우르반 작가와 정보라 번역가는 한국과 체코, 양국에서 출간된 『일곱 성당 이야기』를 낭독하는 것으로 작별의 인사를 대신했다. 두 사람은 각각의 모국어로 책의 첫 페이지를 차례로 읽어 내려갔다. 짧은 인사가 끝난 뒤 두 사람은 『일곱 성당 이야기』와 우르반 작가의 방문을 환영하는 독자들과 다과를 나누었다. 즉석에서 사인회와 기념 촬영이 이루어졌고, 문학을 매개로 국가와 언어를 초월한 대화들이 오고갔다.
밀로시 우르반 작가의 방한 일정은 『일곱 성당 이야기』 출간 기념회로 끝나지 않았다. 지난 21일에는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진행되는 <2014 체코 영화제: 역사적 순간들>에 참석해, 자신의 동명 작품을 원작으로 한 영화 <산티니의 말>을 한국의 관객들과 함께 관람하기도 했다. 그리고 이튿날에는 서울국제도서전에서 단독 팬 사인회를 진행했다. 그는 이번 서울국제도서전에 참가한 유일한 체코 작가로, 많은 독자들의 관심과 사랑을 한 몸에 받았다. ‘체코 문학의 흑기사’라는 찬사를 받는 작가 밀로시 우르반. 한국의 독자들이 그에게 보낼 찬사가 기대된다.
- 일곱 성당 이야기 밀로시 우르반 저/정보라 역 | 열린책들
『일곱 성당 이야기』는 지금까지도 중세와 현재가 공존하는 매력적인 유럽의 도시 프라하에 실존하는 여섯 개의 대표적인 성당을 배경으로 한 고딕 스릴러 작품이다. 이 작품은 14세기 중세 시대를 재건하려는 음모를 중심으로 전개되는 지적 추리 소설이라는 점에서 중세 수도원에 얽힌 음모를 배경으로 한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을 떠올린다는 평가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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