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천 김유정문학촌에서 동백, 봄봄을 만나다
한국의 대표적인 단편문학작가 김유정(1908~1937). 짧은 생을 살다 갔지만, 그의 작품은 수많은 독자에게 읽혔고 춘천 신동면에는 김유정의 이름을 딴 기차역 ‘김유정역’이 있다. 춘천을 문학의 도시로 기억되게 만든 김유정의 숨결을 찾아 보았다.
글ㆍ사진 엄지혜
2014.0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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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에 다녀온 ‘책 속 그곳’ 세 번째 장소는 강원도 춘천. 5월 16일~17일에 ‘김유정 문학제’가 열린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겸사겸사 취재를 준비했으나, 세월호 침몰 사고의 아픔에 동참하기 위해 문학제는 잠정 연기됐다. 서울에서도 가깝게 다녀올 수 있는 춘천. 지난 2009년 춘천 고속도로가 개통되고, 지하철까지 연결되면서 여행객들이 부쩍 늘었다. 춘천을 떠올리면, 닭갈비와 막국수가 필수 코스이지만 ‘김유정 문학촌’을 기억하는 방문객들도 꽤 많다. 2002년 8월 개관한 김유정문학촌은 경춘선 강촌역과 남춘천역 사이에 있는 ‘김유정역’에서 5분 거리로, 걸어갈 수 있다.

 

춘천김유정역

한국 철도 최초로 역명에 사람 이름을 사용한 ‘김유정역’

 

김유정역은 한국 철도 최초로 역명에 사람 이름을 사용한 역이다. ‘신남역’이었던 역명을 2004년 12월에 ‘김유정’ 역으로 개명했다. 역명이 바뀐 것은 춘천시와 문화예술단체가 김유정의 생가를 복원하고 기념전시관을 건립하면서 요구한 것에 따른 결실이다. 또한 신남우체국도 2013년, 김유정우체국으로 개명했다. 우체국 명칭에 사람 이름이 붙은 것도 ‘김유정우체국’이 전국 최초다. 요절한 작가이지만, 김유정은 얼마나 사랑을 많이 받고 있는가를 생각해보면, 퍽 부러울 문인이다. 김유정우체국은 ‘김유정우체국 탄생 기념우표’를 발행해 지역 주민들과 독자들에게 큰 사랑을 받기도 했다.

 

30세 짧은 생을 살고 간 소설가 김유정


춘천시 신동면 실레길에 자리한 ‘김유정문학촌’은 주말이면 남녀노소 방문객들의 발길이 끊임없이 이어진다. 김유정의 고향이자, 다수의 작품 배경이 된 실레마을. 김유정은 실레마을에서 목격한 일을 「산골나그네」(1933)의 소재로 삼았고, 마을의 실존 인물들을 작품에 등장시켰다.

 

김유정은 1908년 2월 12일, 2남 6녀 중 중 일곱째로 태어났다. 어릴 적부터 몸이 허약하고 말을 더듬어 늘 소극적이고 과묵했다. 어머니, 아버지를 일찍 여의고 형과 누나의 보살핌으로 서울 종로구 운니동에서 새롭게 터를 잡으며 재동공립보통학교 졸업, 휘문고등보통학교를 검정(檢定)으로 입학, 소설가 안회남과 각별하게 지냈다. 휘문고보를 거쳐 연희전문학교에 입학했으나 결석 때문에 제적처분을 받았다. 그러던 중 김유정은 1928년, 인간문화재 박녹주의 공연을 처음 보고 열렬히 구애를 했다. 그러나 박녹주에게 거절 당하고 고향으로 귀향해 실레마을에서 야학운동을 펼친다.

 

춘천-김유정-생가

 김유정 생가를 복원해 놓았다

 

형의 방탕한 생활로 집안이 몰락한 후, 1933년 서울로 다시 올라간 김유정은 고향의 이야기를 소설화하기 시작한다. 잡지 <제일선>에 「산골나그네」를, <신여성>에 「총각과 맹꽁이」를 발표하고, 1935년 소설 「소낙비」가 조선일보 신춘문예 현상모집에 1등으로 당선되면서 작가로서 주목을 받기 시작한다. 이후 구인회 후기 동인으로 가입하면서 활발하게 작품을 발표했지만, 폐결핵과 치질이 악화되면서 병마에 시달린다. 김유정은 생의 마지막 해인 1937년 다섯째 누이 유흥의 집으로 거처를 옮겨 죽는 날까지 펜을 놓지 못한다. 오랜 벗인 안회남에게 편지 쓰기(필승前. 3.18)를 끝으로 짧았던 삶을 마감한다. 김유정이 세상을 떠난 이듬해인 1938년, 삼문사에서 김유정 단편집 『동백꽃』이 처음으로 출간됐다. (참고_ 김유정기념사업회 작가 연보)

 

김유정을 사랑에 빠지게 한 두 여인


서울에서 학교를 다니던 김유정이 고향 실레마을로 다시 내려온 것은 첫사랑이었던 인간문화재 박녹주와의 사랑이 이루어지지 못했기 때문이다. 구인회 동인지 <시와 소설>에 실렸던 소설 「두꺼비」를 통해 김유정과 박녹주의 관계를 알 수 있다.

 

“어디 사람이 동이 낫다구 거리에서 한번 흘낏 스쳐본, 그나마 잘 낫으면 이어니와, 쭈그렁 밤송이같은 기생에게 정신이 팔린 나도 나렷다. 그럿두 서루 눈이 맞아서 달떳다면야 누가 뭐래랴 마는 저쪽에선 나의 존재를 그리 대단히 너겨주지 않으려는데 나만 몸이 달아서 답장 못받는 엽서를 매일같이 석달동안 썼다.” (소설 「두꺼비」)

 

김유정은 박녹주에게 거절 당하고 집안이 몰락하자, 1933년 다시 서울로 올라가 작품 활동에 전념한다. 김유정은 스물 다섯의 젊은 나이에 양대 일간지, 조선일보와 조선중앙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면서 주목을 받는다. 당시 문학계는 김유정의 등장을 두고 ‘천재적인 작가’ ‘언어의 마술사’ 라는 칭호를 붙였다. 김유정의 처녀작은 「산골나그네」로 알려졌지만, 김유정이 가장 먼저 쓴 소설은 「심청」이다. 1932년에 탈고만 하고 작품은 4년 뒤인 1936년에 발표했다.

 

김유정은 당시 폐결핵을 앓고 있었지만, 수많은 원고 청탁으로 밤을 새워 글을 썼다. 28세가 되던 해에는 잡지 <조광>에 ‘사랑의 편지’라는 제목으로 ‘어떤 여인을 아내로 맞이할 것인가’에 대해 글을 썼다. 김유정은 이 잡지를 통해 두 번째 사랑의 상대, 시인 박봉자를 알게 된다. 박봉자는 인텔리여성으로 김유정과 함께 같은 제목으로 ‘어떤 남성을 남편으로 맞이할 것인가’를 기고했는데, “예전에는 전문직을 가진 남자를 남편으로 삼고 싶었지만, 글을 쓰는 사람이면 좋겠다. 세상 이치를 잘 알아서 나를 잘 이해해주지 않겠는가”라고 썼다. 이 글을 본 김유정은 마치 자신이 그 상대가 된 마냥, 박봉자에게 30여 통의 편지를 쓰며 구애를 했다. 하지만 박봉자의 답장은 일절 없었다. 후문으로는 박봉자의 오빠인 시인 박용철이 편지를 숨겼고, 박봉자는 1936년 구인회에서 활동했던 소설가 박태원과 결혼했다. 김유정이 세상을 뜬 해는 1937년. 김유정의 측근들은 “김유정이 일찍 생애를 마감한 것에는 박봉자의 결혼이 영향을 미쳤다”고 말하기도 했다.

 

김유정의 두 여인, 박녹주와 박봉자의 이야기는 김유정문학촌의 문학 전시관에도 자세히 나와 있다. 김유정문학촌에서는 현지의 문화해설사에게 김유정의 생과 작품 세계에 대해 자세히 들을 수 있다. 방문 일주일 전에 김유정기념사업회 홈페이지를 통해 예약이 가능한데, 귀로 듣는 이야기가 훨씬 인상에 남는다.

 

실레마을을 배경으로 한 12편의 소설


김유정의 작품 창작 기간은 고작 5~6년에 불과하다. 하지만 소설 31편, 동화 2편, 수필 17~18편, 번역 2편 등을 남겼다. 그 중 고향인 실레마을을 배경으로 쓴 작품은 「봄.봄」, 「총각과 맹꽁이」, 「소낙비」, 「산골나그네」, 「산골」, 「동백꽃」, 「만무방」, 「金따는 콩밧」, 「안해」, 「가을」, 「두포전」, 「솟」 등 12편이다.

 

춘천-키재기,닭

「봄.봄」, 「동백꽃」에 나오는 두 장면을 모형물로 만들어 놓았다

 

김유정문학촌을 거닐다 보면, 두 개의 모형물을 만날 수 있다. 김유정의 대표작 「봄.봄」과 「동백꽃」에 나오는 두 장면을 모형물로 만들어놓은 것. 김유정이 1935년에 발표한 「봄.봄」은 순진한 주인공이 마름의 딸 ‘점순’이와 혼인하기 위해 데릴사위로서 약정된 머슴 노릇을 하면서 겪게 되는 일을 그린 작품. 토착적인 정감과 인간의 순진성에 대한 연민이 해학미를 높였다는 평가를 받았다. 「동백꽃」은 1936년 <조광>에 발표된 단편 소설로 ‘농촌소설’이라는 표제로 농촌의 순박한 처녀 총각이 사랑에 눈떠가는 과정을 해학적으로 그렸다. 주인공이 동갑내기 처녀 점순이한테 닭싸움으로 괴롭힘을 당하는 유명한 장면을 묘사한 조형물은 김유정문학촌 입구에서 방문객들을 반긴다.

 

 “글쎄 이 자식아! 내가 크질 말라구 그랬니, 왜 날 보구 떼냐?”
“빙모님은 참새만 한 것이 그럼 어떻게 앨 낳지유?”
(사실 장모님은 점순이보다도 귓배기 하나가 작다)
- 「봄.봄」에서

 

사람들이 없으면 틈틈이 즈 집 수닭을 몰고와서 우리 수닭과 쌈을 붙여놓는다. 나는 약이 오를때로 올라서 (중략) 나뭇지게도 벗어놀 새 없이 그대로 내동댕이치고는 지게막대기를 뻗치고 허둥지둥 달겨들었다.
- 「동백꽃」에서

 

 

춘천-문학관

김유정문학촌 전경(맨 위)과 문학관을 둘러 보고 있는 관람객

 
김유정문학촌 문학 전시관에는 김유정의 작품전시를 비롯해 1930년대 농촌 모습, 닥종이 인형으로 표현한 「봄.봄」의 명장면, 작품 배경지도, 구인회 소개, 김유정 추모활동 등이 소개되어 있다. 눈 여겨 볼만한 것은 김유정의 작품이 수록된 수많은 출간물. 특히 1940년 출간된 소설집 『동백꽃』의 표지에는 빨간 동백꽃이 선명하게 그려져 있는데, 김유정이 「동백꽃」에서 묘사한 동백꽃은 빨간 동백꽃이 아니라 강원도에서는 ‘동백꽃’이라 불렸던 노란 ‘생강나무꽃’다. 1990년대까지는 대부분의 출판사들이 이 점을 모르고 빨간색 동백꽃을 표지 그림으로 사용했다.

 

금병산을 뒤로한 실레이야기길


한적한 김유정문학촌을 둘러본 후에는 작품에 나오는 지명을 둘러볼 수 있는 문학산책로 ‘실레이야기길’을 거닐어도 좋다. ‘실레(증리)’는 금병산에 둘러싸인 모습이 마치 옴폭한 떡시루 같다 하여 이름 붙여진 마을명. 「산골나그네」, 「총각과 맹꽁이」 등에 나오는 들병이들 넘어오던 눈웃음길, 「두포전」에 등장하는 금병산 아기장수 전설길, 「동백꽃」, 「산길」에서 볼 수 있는 점순이가 ‘나’를 꼬시던 동백숲길 등을 만날 수 있다. 실레이야기길에 숨겨진 이야기 16마당을 찾다 보면, 김유정 문학 속으로 흠뻑 빠져들게 된다.

 

 

춘천-이야기

작품에 나오는 지명을 둘러볼 수 있는 문학산책로 ‘실레이야기길’

 

나의 고향은 저 강원도 산골이다. 춘천읍에서 한 이십리 가량 산을 끼고 꼬불꼬불 돌아 들어가면 내닫는 조그마한 마을이다. 앞뒤 좌우에 굵직굵직한 산들이 빽 둘러섰고 그 속에 묻힌 아늑한 마을이다. 그 산에 묻힌 모양이 마치 옴팍한 떡시루같다 하여 동명을 실레라 부른다. 집이라야 대개 쓰러질 듯한 헌 초가요, 그나마도 오십호밖에 못되는, 말하자면 아주 빈약한 촌락이다. (중략) 주위가 이렇게 시적이니만치 그들의 생활도 어디인가 시적이다. 어수룩하고 꾸물꾸물 일만하는 그들을 대하면 딴 세상을 보는 듯하다. (중략)그리고 산골에는 잔디도 좋다. 산비알에 포근히 깔린 잔디는 제물로 침대가 된다. 그 위에 바둑이와 같이 벌릉 자빠져서 묵상하는 재미도 좋다. 여길 보아도 저길 보아도 우뚝우뚝 섰는 모조리 푸른 산이매, 잡음 하나 들리지 않는다. - 『김유정 전집』(1987) 中

 

 

금병산은 춘천 중앙고속도로가 지나가는 원창고개 마루턱에서 남서쪽으로 뻗어 올라, 춘천 시내 및 신동면 일대를 병풍처럼 두르고 있는 산이다. 가을이면 그 산기슭이 비단병풍을 둘러친 듯 아름답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수종이 다양하고 흙이 많은 육산이라 걷기에 매우 편해 사계절 내내 등산객들의 방문이 이어지고 있다. 금병산 전체 산행은 3시간 가량 소요된다. 금병의숙에서 소와리골 개천을 끼고 올라가노라면 저수지 밑에서 두 길로 갈린다. 계곡을 끼고 오르는 길과 바른쪽 능선을 타고 오르는 길인데, 두 길 모두가 『만무방』 길이다. 능선길은 '첫고개'와 '두고개' '새고개'로 넘어가는 길목이며 『봄.봄』『만무방』의 작품 무대이기도 하다.

 

김유정문학상, 어떤 작가가 받았나


한편, 김유정기념사업회는 김유정추모제, 김유정문학제, 학술발표회, 청소년문학축제, 김유정문학상 시상, 김유정문학캠프, 김유정백일장 및 소설문학상 시상, 소설의 고향을 찾아가는 문학기행, 김유정 소설과 만나는 삶의 체험, 순회문학강연 등 각종 문학축제와 세미나를 개최하고 있다. 1993년에 시작된 ‘김유정백일장’은 올해로 22회가 되었다. 소설가 김미월은 춘천여고 2학년 때 ‘제1회 김유정백일장 대회’ 장원으로 뽑힌 뒤, 활발한 작품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김유정문학상은 2007년에 제정된 문학상으로, 현재 문단에서 활동 중인 작가의 전년도 발표 중,단편소설을 대상으로 선정한다. 그동안 별도의 수상작품집을 펴내지 않았으나, 최근 출판사 은행나무가 김유정기념사업회와 제휴를 맺으면서 수상작품집 처음으로 출간됐다.

 

『김유정문학상 수상작 작품집』은 2007년 1회 수상작부터 지난해 7회 수상작까지 수록했다. 1회 수상작인 윤대녕의 「제비를 기르다」를 비롯해, 2회 수상작 김중혁의 「엇박자D」, 3회는 최수철의 「피노키오들」, 4회 김애란의 「너의 여름은 어떠니」 등이 수록되어 있다.

 

 

[등산 코스] 김유정역에서 금병산까지 

 

1코스 김유정역 ⇒ (김유정 문학촌) ⇒ 금병의숙 ⇒ 소와리골 ⇒ 만무방길 ⇒ 능선 4거리 ⇒ 산골나그네길 ⇒ 금병산 정산 ⇒ 봄?봄길 ⇒ 원창고개 (3시간 소요)

 

2코스 김유정역 ⇒ 김유정 문학촌 ⇒ 산국농장 ⇒ 금따는 콩밭길 ⇒ 능선 4거리 ⇒ 산골나그네길 ⇒ 금병산 정상 ⇒ 동백꽃길 ⇒ 산국농장 ⇒ 김유정문학촌 (2시간 50분 소요)

 

3코스 김유정역 ⇒ 김유정 문학촌 ⇒ 금병의숙 ⇒소와리골 끝집 ⇒ 만무방길 ⇒ 능선 5거리 ⇒ 금따는 콩밭 ⇒ 제 2광장 ⇒ 동백꽃길 ⇒ 산국농장 ⇒ 김유정문학촌 (3시간 소요)

 

 

 

*2편 ‘춘천 여행, 닭갈비 막국수 빠지면 서운하죠’로 이어집니다.

-http://ch.yes24.com/Article/View/252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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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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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JohnDoe

2023.06.18

박봉자는... 박태원이 아니라 김환태와 결혼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좌우지간, 좋은 글이네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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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ke8867

2014.05.22

김유정 작가님 많이 알게 되었어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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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지혜


eumji0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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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정

데뷔작인 『소낙비』를 비롯하여 대부분 농촌을 무대로 한 작품을 많이 남긴 한국의 대표적인 문학가이다. 노다지를 찾으려고 콩밭을 파헤치는 인간의 어리석은 욕망을 그린『금 따는 콩밭』, 머슴인 데릴사위와 장인 사이의 희극적인 갈등을 소박하면서 유머러스하게 풀어낸『봄봄』등 한국의 옛 농촌 정서를 사실적이면서도 아름답게 풀어내 그만의 문학세계를 그려나갔다. 그 밖에 『동백꽃』, 『따라지』 등 다수의 단편이 있다. 1908년 1월 11일, 우리나라 최초의 인명(人名) 기차역인 ‘김유정역’이 있는 강원도 춘천 실레마을에서 2남 6녀 중 일곱째이자 그로서는 안타깝게 차남으로 태어난다. 1914년, 유정 일가는 서울 진골(현 종로구 운니동)의 1백여 칸짜리 저택으로 이사하는데, 셋째 누이 김유경은 이곳을 유정의 출생지로 증언한다. 1915년 어머니가, 2년 뒤인 1917년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 고아가 된다. 9살, 유정은 아직 따뜻한 보살핌이 필요했지만, 가장이 된 형 유근은 동생을 돌보는 대신 주색잡기에 빠져 산다. 유정은 책상 위에 놓인 어머니 사진을 들여다보곤 하며, 친구들에게 어머니가 미인임을 자랑하기도 하며, 어려서부터 몸이 허약하고 횟배를 자주 앓으며 소년기를 보낸다. 또한 말더듬이어서 휘문고보 2학년 때 눌언교정소에서 고치긴 했으나 늘 그 일로 과묵했다. 1929년, 한 번의 휴학을 거쳐 휘문보고를 졸업한다. 그동안 형의 금광 사업 실패와 방탕한 생활로 가세는 몰락한다. 1930년, 연희전문학교 문과에 입학하지만 결석으로 인해 곧 제적당한다. 스스로는 더 배울 것이 없어 자퇴했다고 했지만. 이후 얼마간의 방랑 생활을 거친 후 귀향, 야학당을 여는 한편 농우회, 노인회, 부인회를 조직 농촌계몽 활동을 벌인다. 그 와중 늑막염이 폐결핵으로 악화한다. 1933년, 서울로 돌아온 유정은 누나들 집을 전전하며 폐결핵을 견뎌야 하는 삶을 산다. 그런 유정을 안타까워하던 친구 안회남이 소설 쓰기를 권유, 「산골 나그네」와 「총각과 맹꽁이」를 연이어 발표한다. 그리고 1935년「소낙비」가 『조선일보』신춘문예 현상모집에 당선되고, 「노다지」가 『조선중앙일보』 신춘문예 현상모집에 가작 입선하여 문단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으며 정식으로 등단한다. 1935년에는 〈구인회〉의 일원으로 참가하였다. 이후 1937년, 스물아홉의 나이로 죽을 때까지 소설 30편, 수필 12편, 그리고 번역 소설 2편을 남긴다. 죽기 한 해 전인 1936년 가을, 이상으로부터 “유정! 유정만 싫지 않다면 나는 오늘 밤으로 치러버릴 작정입니다. 일개 요물에 부상당해 죽는 것이 아니라 27세를 일기로 불우한 천재가 되기 위해 죽는 것입니다!”라는 동반자살 제의를 받지만, “명일의 희망이 이글이글 끓습니다”라는 말로 거절한다. 하지만 이듬해 3월 29일, 세상을 떠나고 만다. 자살을 먼저 제의한 이상보다 19일 먼저. 사인은 둘 모두 폐결핵. 같은 해 5월 15일, 요절한 두 천재의 죽음을 기리는 합동 추도식이 치러진다. 발기인은 이광수, 주요한, 최재서, 정지용, 이태준, 박태원, 그리고 안회남 등 25명. 1938년, 김유정의 첫 책, 제목은 『동백꽃』이 삼문사에서 출간된다. 대표작으로는『금따는 콩밭』,『봄봄』,『따라지』,『두꺼비』,『동백꽃』,『땡볕』등이 있다. 일제 강점의 혹독한 현실 가운데에서 주로 회화적인 해학의 오목거울을 통해 어둡고 삭막한 농촌 현실과 그 속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농민들의 곤궁한 삶을 제시하였다. 김유정의 소설은 인간에 대한 훈훈한 사랑을 예술적으로 재미있게 다루고 있는데 묘미가 있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으며 그의 작품들은 많은 사람을 한 끈에 꿸 수 있는 사랑, 그들의 마음과 마음을 서로 따뜻하게 이어주는 사랑을 우리의 전통적인 민중예술의 솜씨로 흥미롭게 그리고 있다. 작가의 작품에서 등장하는 어리석고 무지한 인물들은 웃음을 자아내는 동시에 주인공의 가난하고 비참한 실제 삶과 이어져 진한 슬픔을 배어나게 하는 등, 해학과 비애를 동반하는 것을 특징으로 하고 있다. 또한 사건의 의외적인 전개와 엉뚱한 반전, 매우 육담적(肉談的)인 속어, 비어의 구사 등 탁월한 언어감각으로 1930년대 한국소설의 독특한 영역을 개척하였으며 약 2년 동안 30여 편에 가까운 작품을 남길 정도로 작품활동을 활발히 하여 한국문학의 대표 작가가 되었다. 그 후 폐결핵에 시달리다가 1937년 29세의 나이로 요절하였으며 그의 이름을 따 경춘선 철도에는 김유정 역이 있기도 하다. 그의 사후 1938년 처음으로 삼문사에서 김유정의 단편집『동백꽃』이 출간되었으며 그의 작품은 여전히 우리 가슴 속에 깊은 감동적으로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