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르고 맛보고 즐기는 타파스
레익삼플레 지구에 있는 모던한 분위기의 타파스24
요리사 앤서니 보뎅이 자신의 저서 『쿡스 투어』에서 ‘이대로 죽고 싶은 맛’이라고 극찬한 타파스. ‘덮개’라는 뜻의 스페인어 타파(tapa)에서 따온 타파스는 술잔 위에 얹어 내는 간단한 술안주에서 그 기원을 찾을 수 있다. 스페인에서는 소금에 절여 반건조한 햄 하몽(jamon), 올리브 꼬챙이, 바게트 샌드위치 등 한입에 먹기 좋은 모든 요리를 타파스라고 일컫는다. 지중해와 맞닿은 바르셀로나는 싱싱한 해산물 요리를 내세운 타파스 바가 골목마다 즐비하다.
몬주익(Montjuic) 언덕으로 향하는 케이블카를 탈 수 있는 파랄렐(Parallel) 지하철역. 이 인근 골목에 유독 시끌벅적한 바가 하나 있다. 가슴 높이의 테이블 4~5개가 전부인 아담한 타파스 바 키메트 이 키메트(Quimet I Quimet). 이곳에선 조금이라도 서 있을 공간이 보이면 잽싸게 자리를 잡고 주문하는 게 상책이다. 납작하게 썬 바게트 빵 위에 각종 신선한 재료를 얹어 올리브 오일로 마무리한 로스 몬타디토스(Los Montaditos)가 대표 메뉴. 바칼라오(Bacalao, 대구), 살몬(Salmon, 연어), 안초아스(Anchoas, 멸치)를 얹은 로스 몬타디토스를 주문한다.
바 안의 벽면에는 코냑, 위스키, 와인 등 온갖 종류의 술을 가득 진열해놓았다. 그중 가게 이름과 동일한 ‘키메트 이 키메트’ 맥주는 코르크 마개로 병의 입구를 막고 있어 눈길을 끈다. “벨기에에서 직접 공수한 신선한 크라프트맥주입니다.” 4대째 이곳을 운영하고 있는 호아킨 페레스(Joaquin Perez)가 자신 있게 맥주를 권한다. 이어 재빠른 손놀림으로 만든 로스 몬타디토스를 하나씩 접시에 담아 건넨다. 바삭한 바게트 빵 위에 얹은 새하얀 대구 살, 올리브 오일에 흠뻑 적신 연어, 졸인 멸치는 보는 것만으로도 침이 꼴깍 넘어간다. 첫 맛이 짭조름한 키메트 이 키메트 맥주와 만나 환상의 궁합을 이룬다. 로스 몬타디토스를 2개 집어 먹고 나니 일단 허기는 사라진다.
타파스 순례는 바르셀로나 최대의 전통시장으로 이어진다. 라 람블라(La Rambla) 거리 중턱에 있는 보케리아 시장(Mercat de Boqueria)은 부활절을 맞아 달걀 모양으로 멋을 낸 초콜릿부터 해산물, 엠부티도(embutido, 돼지고기로 채운 스페인식 소시지), 채소, 과일 등 스페인의 다양한 식자재를 한꺼번에 만날 수 있는 곳. 시장 바깥은 간이식당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데, 지붕 위에 피노키오 인형이 걸터앉은 피노초 바(Pinotxo Bar)는 현지인의 사랑을 받는 곳이다. 바에 자리를 잡자 피노키오처럼 코가 길쭉한 주인 후아니토 바옌(Juanito Bayen)이 “카르네(Carne, 고기)? 마리스코(Marisco, 해산 물)?”라고 물은 뒤 메뉴를 몇 가지 추천해준다. 잘 모를 때는 다른 이들의 접시를 참고하는 게 요령. 하나같이 올리브유를 듬뿍 얹은 새우구이 감바스(Gambas)를 먹고 있다. 통통한 새우구이에 카탈루냐(Cataluna) 지방에서 생산하는 스파클링 와인 카바(Cava) 1잔을 곁들이니 이곳의 인기 비결을 금세 알겠다.
바리 고틱(Barri Gotic)의 좁다란 골목을 걷다가 보른(Born) 지구에 들어서면 노천 테이블을 갖춘 핀초스 바 사가르디 바르셀로나 고틱(Sagardi BCN Gotic)이 기다린다. 핀초스는 빵 위에 여러 재료를 올려 이쑤시개(pincho)로 고정한 음식이다. 스페인 북부의 바스코(Vasco) 지방에서 즐겨 먹는 타파스의 일종. 바 내부에는 알록달록한 수십 가지의 핀초스를 진열해놓았는데, 토마토 안에 빵과 갖은 재료를 섞어 만든 판 콘 토마테(pan con tomate) 같은 것도 있다. 오래된 중세 골목 곳곳에 세련된 숍이 들어선 보른 지구의 분위기를 만끽하려면 노천 테이블을 택하자. 핀초스를 한입에 쏙 넣으며 지나가는 행인을 약올리는 재미도 남다르다.
+키메트 이 키메트 로스 몬타디토스 2.5유로부터, Carrer del Poeta Cabanyes 25.
+피노초 바 카바 3.5유로, La Rambla 89.
+사가르디 바르셀로나 고틱 핀초스 1.5유로부터, Carrer de l’Argenteria 62.
메이드 인 바르셀로나 디자인
키메트 이 키메트의 바 안쪽은 타파스를 만드는 손길로 늘 분주하다
가우디가 바르셀로나에 끼친 영향은 라 사그라다 파밀리아(La Sagrada Familia)가 거둬들이는 관광 수입이 전부는 아닌 듯하다. 20세기 초 바르셀로나의 모더니즘 양식과 가우디를 비롯한 수많은 예술가가 남긴 기상천외한 상상력은 바르셀로나를 혁신적인 예술의 도시로 떠오르게 했다. 바르셀로나 특유의 독창성과 감각은 도시 곳곳에 숨어 있는 디자인 숍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명품 매장이 즐비해 파리의 샹젤리제를 연상시키는 파세이그 데 그라시아(Passeig de Gracia). 럭셔리 브랜드 틈바구니에서 당당히 한자리를 차지한 디자인 숍 빈손(Vincon)은 ‘스페인 디자인’이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공간이다. 조명, 가방, 문구류, 주방 용품 등 모든 분야의 디자인 제품을 카테고리별로 나누어 마치 디자인 뮤지엄 같다. 기발한 아이디어가 돋보이는 제품은 디자인에 무관심한 이의 마음까지 사로잡는다.
파세이그 데 그라시아와 교차하는 어빙구다 디아고날(Avinguada Diagonal)의 필마(Pilma)도 그냥 지나칠 수 없다. 필마는 1930년대 사무용 캐비닛을 생산하는 가구 회사로 시작한 바르셀로나 브랜드. 5층 규모의 편집숍에서는 직접 제작한 디자인 가구를 포함해 아기자기한 주방 소품 등 세계 각국에서 들여온 디자인 제품을 만날 수 있다. 이외에도 빈티지 가구를 전문으로 취급하는 나투라 카사(Natura Casa), 고양이를 테마로 한 소품 매장 아 로하 두가토 프레토(A Loja do Gato Preto) 등 개성 넘치는 디자인 숍이 이웃해 있다.
(오른쪽)지중해를 모티프로 설계한 가우디의 카사 바트요(Casa Batll).
파이세그 데 그라시아에 있다.
(왼쪽)카사 캄페르 바르셀로나의 라운지 룸.
호텔에 하룻밤 머물며 디자인을 경험하는 것도 가능하다. 라발(Raval) 지구에 있는 카사 캄페르 바르셀로나(Casa Camper Barcelona)는 오래된 석조 가옥으로 둘러싸인 골목에서 나홀로 세련된 감각을 내뿜는 디자인 호텔. 스페인 특유의 다채로운 색감을 살린 신발 브랜드 캠퍼와 빈손이 합작한 곳으로, 레스토랑을 겸한 개방형 로비부터 눈길을 끈다. 투숙객에게 무료로 제공하는 스낵 코너는 이곳의 자랑거리. 빈손에서 눈여겨봤던 세련된 유리 그릇 안에 샌드위치, 샐러드, 요거트 등이 깔끔하게 포장되어 있다. 천장에 매달아둔 대여용 자전거는 마치 하나의 작품 같다. 캠퍼 특유의 붉은 톤으로 꾸민 객실에서도 재치 넘치는 디자인 요소를 발견할 수 있다. 공간 활용도를 높이기 위해 벽면에 일렬로 배열한 옷걸
이, 세라믹 바닥 틈 사이로 물이 빠지는 샤워 부스 등 실용적이면서 멋스러운 설계가 돋보인다. 창밖으로 정갈하게 꾸민 정원이 내다보이는데, 커튼이 없는 것을 의아해하자 호텔 직원이 설명해준다. “정원은 마음의 안식을 위해 오로지 감상하는 것만 가능해요. 누구든 바깥에서 실내를 볼 수 없는 구조로 설계했지요.” 객실과 복도를 사이에 두고 테이블과 소파, 심지어 해먹까지 갖춘 라운지 룸도 카사 캄페르의 특징. 디자인 애호가뿐 아니라 도심 속 휴양을 원하는 이 또한 기꺼이 만족시켜줄 유쾌한 호텔이다.
+빈손 Passeig de Gracia 96, vincon.com
+필마 Avinguda Diagonal 403, pilma.com
+카사 캄페르 바르셀로나 233.10유로부터, casacamper.com/Barcelona
카탈루냐의 자부심을 품은 축구 클럽
관중석을 가파르게 설계해 최적의 경기 관람 조건을 만든 캄프 노우.
바르셀로나 거리에서는 노란 바탕에 4개의 빨간색 줄무늬를 새긴 깃발을 종종 발견하게 된다. 카탈루냐(Cataluna) 주 정부 깃발로, 스페인 안에서 독자적인 지역색을 드러내는 징표다. 카탈루냐 주는 20세기 초 스페인으로부터 독립을 선언하지만 군부 정권의 강한 탄압으로 수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었다. 이런 저항의 역사는 축구에도 고스란히 반영되어 있다. 레알 마드리드가 스페인 중앙 정부를 상징한다면, FC 바르셀로나는 카탈루냐의 자존심인 셈. 그러니 FC 바르셀로나의 팬 여부를 떠나 바르셀로나에서 축구 경기를 관람하는 것은 특별한 경험이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선 운도 좀 필요하다. 일단 방문 일정에 스페인 프로축구 프리메라리가(Primera Liga) 경기가 열리는 주말이 끼어 있어야 하고, FC 바르셀로나의 홈경기 일정과도 맞물려야 한다. 게다가 레알 마드리드처럼 강팀을 상대로 한 ‘빅 매치’라면 전쟁을 방불케 하는 인터넷 예매에 성공해야 간신히 캄프 노우(Camp Nou, FC 바르셀로나의 홈 경기장)에 입성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 모든 운이 빗나간 이에게도 한줄기 가능성은 남아 있다. 주 중에 열리는 유럽컵대회(UEFA Cup)와 유럽 클럽 대항전 챔피언스리그(UEFA Champions League)다. 나 역시 자포자기 상태로 경기장 투어나 참여할 생각에 인포메이션 센터를 찾았다가 행운을 만났다. 바르셀로나를 떠나기 전날 밤 아틀렌티코 마드리드와의 챔피언스리그 8강전 경기가 열린다는 것.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그 자리에서 티켓을 구입했다.
티켓을 확보한 다음에는 경기장에 입고 갈 유니폼을 구할 차례. 라 람블라 거리 기념품 상점에서 FC 바르셀로나의 유니폼을 구하기란 그리 어렵지 않다. 그런데 대부분 ‘짝퉁’ 제품이다. 정품을 구입하려면 간판에 ‘오피셜(Official)’ 문구를 새긴 공인 기념품점이나 나이키 매장을 찾아야 한다. FC 바르셀로나의 홈 경기 유니폼은 빨강색과 파랑색 줄무늬지만, 이곳에서 인기 있는 것은 카탈루냐를 상징하는 노랑색과 빨강색 원정 유니폼. 자신이 원하는 선수의 이름과 등번호도 새길 수 있다. 고민 끝에 이번 시즌에 새로 합류한 브라질의 신성 네이마르(Neymar)의 등번호를 새긴 원정 유니폼을 선택한다.
경기 시작을 앞두고 레스 쿠르트스(Les Courts) 지하철역에서 캄프 노우까지 10분 남짓 걸어가는 길은 음악 페스티벌을 방불케 한다. 총 9만8,772명을 수용할 수 있는 캄프 노우를 향해 같은 유니폼을 입은 인파가 줄을 잇는다. 경기장 앞에는 각종 응원 도구를 파는 간이 상점이 진을 치고 있다. 마침내 관중석 입구로 들어서는 순간, 푸른 그라운드를 둘러싼 어마어마한 규모의 캄프 노우 경기장이 시원스레 펼쳐진다. FC 바르셀로나의 응원가 칸트 델 바르샤(Cant del Barca)가 울려 퍼지고, 주심의 휘슬 소리와 함께 경기가 시작된다. 관중석에서는 상대팀 선수가 실수를 할 때마다 득달같이 야유를 퍼부어 대고, 반대로 훌륭한 플레이가 나오면 뜨거운 박수로 환호를 보낸다. 경기는 1:1 무승부로 끝났지만, 묘한 흥분과 감동이 아쉬움을 덮는다. 관중석에 새겨진 ‘Mes que un club(클럽 그 이상의 클럽)’이라는 팀 슬로건처럼 카탈루냐의 진한 자부심을 생생하게 체험했기 때문이다.
+캄프 노우 경기 65유로부터, 투어 23유로, Carrer d’Aristides Maillol 12, fcbarcelona.com
MAKE IT HAPPEN
+인천국제공항에서 바르셀로나국제공항까지 KLM네덜란드항공(69만3,500원부터, klm.com/travel/kr_ko)이 암스테르담 경유 항공편을, 카타르항공(108만4,400원부터, qatarairways.com/kr)이 도하 경유 항공편을 운항한다. 두 항공편 모두 야간에 출발하는 스케줄을 제공해 일정을 여유있게 짤 수 있는 것이 장점이다.
+바르셀로나는 지하철, 버스 등 대중교통의 환승 시스템을 잘 갖춘 편이다. 지하철과 버스를 모두 이용할 수 있는 교통패스(2일권 14유로부터) 혹은 T-10(10회 이용권, 10.30유로부터)을 구입하는 것이 효율적이다.
PHOTOGRAPHS : KO HYUN
고현은 〈론리플래닛 매거진 코리아〉의 에디터다.
기나긴 짝사랑의 종지부를 찍기 위해 생애 처음이자
마지막(임에 틀림없는) 신혼여행지로 기꺼이 바르셀로나를 택했다.
- lonely planet 론리플래닛 매거진 코리아 : 5월 안그라픽스 편집부 | 안그라픽스
외국에서 지내다 보면, 일정이나 비행기 탑승 시간 등 때문에 본의 아니게 나 혼자만 현지에 남는 경우가 생긴다. 이미 오랜 외유로 한국에 대한 그리움이 깊어진 터라 귀국한다는 마음으로 들뜬 사람을 혼자 배웅하는 기분은 썩 좋을 리 없다. 혹시 현지인에게 박대라도 받는다면, 너덜너덜해진 마음이 다 찢어질 때까지 목에 핏대를 세우고 싸울 마음이 가득한, 그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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