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정적이 감돌았다. 새들은 도대체 어디로 가버린 것일까? 이런 상황에 놀란 마을 사람들을 자취를 감춘 새에 관하여 이야기를 했다. 새들이 모이를 쪼아 먹던 뒷마당은 버림받은 듯 쓸쓸했다. 주변에서 볼 수 있는 단 몇 마리의 새조차 다 죽어가는 듯 격하게 몸을 떨었고 날지도 못했다. 죽은 듯 고요한 봄이 온 것이다. 전에는 아침이면 울새, 검정지빠귀, 산비둘기, 어치, 굴뚝새를 비롯한 여러 가지 새들의 합창이 울려 퍼지곤 했는데 이제는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들판과 숲과 습지에 오직 침묵만이 감돌았다.” (『침묵의 봄』34쪽)
지난 4월 14일은 환경운동의 대모라 불리는 레이첼 카슨의 50주기였다. 1964년 그녀는 우리에게 환경의 중요성을 남기고 떠났다. 그녀의 마지막 책 『침묵의 봄』을 통해서였다.
그 해 봄, 새들은 울지 않았다
어느 해 봄이 왔건만, 새들의 울음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새들은 과연 어디로 사라졌을까? 오랜 기간 레이켈 카슨은 그 이유를 찾기 위해 자료를 모으고 전문가를 만난다. 그 결과 DDT를 비롯한 살충제 때문에 새들이 사라졌음을 알아낸다.
카슨은 방대한 양의 자료를 모아, 몇 년에 걸쳐 이를 정리해 책으로 낸다. 『침묵의 봄』이 발간되기 전, 주간지인 <뉴요커>에 발췌글을 3회에 걸쳐 연재한다. 사람들은 카슨의 경고에 귀를 기울였다. 그러나 DDT나 살충제를 생산하는 화학회사는 살충제를 사용함으로 인해 얻을 수 있는 경제적, 건강상의 이득을 도외시한다면서 카슨을 비판했다. 그들은 카슨의 글이 비과학적이라고 비난하기까지 했다. 그들은 살충제를 통해 엄청난 돈을 벌어들이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침묵의 봄』으로 인해 그들의 사업이 방해받는 것을 원치 않았다.
(왼쪽)펜실베이니아 여자 대학 졸업시기 앳된 모습의
레이첼 카슨(Rachel Carson, 1907~1964), 1928년(21세)
(오른쪽)1944년(37세)의 모습
살충제 제조사는 그녀에 대해 인신공격까지도 서슴지 않았다. 책의 내용을 ‘머리가 빈 얼빠진 사람의 잠꼬대’에 불과하다고 비아냥거렸으며, 박사학위도 없는 사람이 쓴 비과학적인 내용이라고 폄하했으며, 결혼을 하지 않은 그녀를 ‘노처녀’라고 부르기까지 했다. 여하튼 살충제 제조사의 반응은 ‘시끄러운 가을(unquite autunm)'이었다. 『침묵의 봄(silent spring)』이라는 책 제목과는 반대였다.
그러나 진실은 살아있었다. 대통령은 책의 내용이 사실인지를 밝혀내기 위해 위원회를 구성하라고 명령한다. 이때 미국의 대통령은 바로 J.F. 캐네디였다.
DDT, 인류를 기아에서 해방시킬 구세주?
DDT는 1874년 독일의 화학자가 처음 합성했지만, 살충제로서의 효능이 밝혀진 것은 1939년이었다. 개발자인 파울 뮬러(Paul M?ller, 1899~1965)는 이 공로로 1948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았다. DDT는 식량을 축내는 해충을 죽여 식량 생산을 늘릴 수 있었으며, 모기나 이와 같은 해충을 박멸해 인간의 건강을 지켜줄 수 있었기에 그 공로를 인정받은 것이었다.
실제로 2차 대전기간 이탈리아에서 발발한 발진티푸스를 성공적으로 퇴치하기도 했고, 2차 대전 후에는 모기를 없애기도 했다. 식량 증산을 위해 미국은 비행기로 DDT를 뿌려댔다, 그것도 엄청난 양으로 말이다. 카슨은 이를 ‘죽음의 비’라고 말했다.
(위)비행기로 DDT를 살포하는 장면
(아래)DDT는 들판에만 살포된 것은 아니었다.
주거지에도 살포되었다. 모기를 없애기 위해
DDT를 처음 사용할 시기에는 별 해가 없는 물질로 여겼다. 다른 염화탄화수소 계열을 물질과 달리 DDT는 피부 속으로 스며들지 않는 분말 형태이기에 사람들은 잘못 생각한 것이다. 그렇지만 DDT는 지방 성분에 녹으면 상당한 독성이 생긴다. 일단 몸속으로 들어오면 배출되지 않고, 체내에 쌓이게 된다.
DDT가 가진 큰 문제는 먹이 사슬을 통해 다른 생물체로 계속 연결되는 현상이다. DDT가 들판에 뿌려지면 먼저 곤충이 죽게 된다. DDT는 해충이든 익충이든 구분하지 않는다. 그리고 이 곤충을 먹은 새들의 몸에 DDT는 축적된다. 말라리아 유충을 죽이기 위해 물에 뿌려진 DDT는 물 속 생태계를 교란시켰다. 송어와 같은 물고기가 죽은 것이다. 들판에 뿌려진 DDT가 뭍은 풀을 먹은 닭이나 소의 몸에는 당연히 DDT가 흡수된다. 달걀에도 소의 우유나 고기에도 DDT 성분이 있다. 이를 인간이 먹으면 문제가 발생한다. 먹은 당사자에게도 큰 문제지만 모체에서 자식 세대로 물려주기까지 하니 무서운 일이다.
카슨은 이런 사실을 대중에게 알려준 것이었다. 정의는 살아있었다. 업체의 이익과 대중의 이익이 맞붙으면 이런 일이 일어나는가 보다. 영화 <인사이더>의 내용과 아주 닮아있다.
1963년 미국 상원 청문회에서 살충제의 위해성을 증언하고 있는 카슨의 모습.
이때 그녀는 암 투병 중이었다.
돈과 진실이 싸우면 승자는? 영화 <인사이더>
제프리 크로(러셀 크로 분)는 담배회사 ‘브라운 앤 윌리엄슨’에서 중역 자리에서 해고당한다. 회사는 그에게 각서를 써야만 퇴직금과 의료보험 자격을 준다고 말한다. 각서는 ‘업무상 취득한 회사 비밀’을 지킨다는 내용이었다. 딸이 천식을 앓고 있었고, 집을 사는 과정에서 대출을 받았기에 그에게는 돈과 의료보험이 반드시 필요한 상황이었다. 회사는 제프리가 혹시라도 회사의 비밀을 털어 놓을지 불안해 그를 미행하기도 하고 집 우편함에 총알까지 넣어둠으로써 그를 협박한다. 신변 위협을 느낀 그는 FBI에게 신변보호 신청을 한다. 그런데 경찰은 제프리를 보호하기는커녕 문제를 일으킬 사람으로 판단한다. 아마 담배회사는 경찰까지 매수했기 때문이리라. 그는 이런 상태에서 로웰 버그먼(알 파치노 분, CBS 프로듀서)과의 인터뷰에 응한다.
인터뷰 중 제프리 와이건은 충격적인 사실을 털어 놓는다. 담배에 암모니아를 합성해 뇌와 중추신경계에 직접 작용하는 화학물질을 집어넣는다는 것이었다. 이로 인해 흡연자들은 중독에 빠지게 되고, 나아가 폐암을 유발시키게 된다는 사실이었다.
영화 <인사이더>포스터
CBS 방송국 PD인 알 파치노, 담배회사 중역이었던 러셀 크로
방송사에서 이런 프로그램을 만들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린 담배회사는 방송사에 압력을 넣는다. 소송을 하겠다는 것이었다. 담배회사는 담배 속의 니코틴이 중독성이 없다고 주장한다. 그러니 방송을 한다면 회사의 명예를 해친 것이 되기에 소송을 하겠다는 것이었다. 게다가 은밀하게 제프리의 뒷조사까지 한다. 제프리를 부도덕한 사람으로 만들어 그의 증언에 신뢰성을 떨어뜨리려는 짓이었다. 담배회사는 돈을 위해 파렴치한 일까지도 저지른다. 이런 담배회사의 비리를 밝혀내기 위해서 인터뷰 내용이 방송되어야만 했다. 그것이 정의로운 일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담배회사는 방송사의 경영진에게까지 압력을 행사해 방송을 아예 못하도록 막는다. 과연 방송이 가능했을까. 과연 정의는 돈 앞에 무릎을 꿇어야한 걸까.
그녀가 우리에게 남긴 것
『침묵의 봄』집필과정에서 그녀는 자신이 암에 걸린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출간 후 그녀의 책에 반대하는 사람들과의 투쟁과정은 그녀를 더욱 힘들게 했다. 가슴에서 시작된 암세포는 전신으로 퍼져나갔다. 57살이라는 젊은 나이에 그녀는 세상을 떠났다.
미국 정부는 『침묵의 봄』으로 인하여, 대기오염방지법(1963년), 수질오염방지법(1972년), 멸종위기동물보호법(1973년)을 제정하기에 이른다. 1970년 4월22일 위스콘신 주 상원의원 게이로드 넬슨을 비롯한 환경운동가들은 ‘지구의 날’ 행사를 개최한다. 게이로드 넬슨 상원의원은 『침묵의 봄』의 열렬한 팬이었다. 그해 미국 정부는 DDT를 비롯한 알드린, 디엘드린, 헵타클로르 등 여러 가지 살충제의 사용을 공식적으로 금지하게 된다.
그녀는 미국뿐만 아니라 전세계인에게 환경의 중요성을 알려주고 떠났다. 『침묵의 봄』은 세상을 변화시켰다. 그래서 우리는 그녀를 ‘환경운동의 대모’라 부른다.
‘이동환의 과학, 영화와 만나다’ 칼럼은 이번 10회를 끝으로 막을 내립니다. 그동안 많은 관심을 보여주신 <채널예스> 독자 분들께 감사 드립니다.
* 참고도서
레이첼 카슨 지음. 김은령 옮김 『침묵의 봄』 에코리브르. 2002년
윌리엄 사우더 지음. 김홍옥 옮김 『레이첼 카슨』 에코리브르. 2014년
- 친절한 과학책 이동환 저 | 꿈결
왜 성공적인 결과물은 노력보다는 운에 좌우되기도 하는 걸까? 나쁜 일은 왜 한꺼번에 닥치는 걸까? 이 책은 우리가 의도하지 않은 뜻밖의 일들이 왜 일어나는지 그 이유를 과학으로 풀어낸다. 그리고 지극히 사소한 일상 속에 영겁의 시간 동안 온 우주와 자연이 마련해 놓은 어마어마한 비밀이 숨겨져 있음을 보여 준다. 『친절한 과학책』은 전형적인 문과형 인간이었던 저자가 매년 100권이 넘는 과학책을 10년 넘게 파고들어서 찾아낸 일상과 과학의 연결 고리를 재미있고 친절하게 풀어내고 있다. 과학 전공자로서는 절대로 쓸 수 없는 과학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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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환 <친절한 과학책> 저자
북칼럼니스트. 1년에 100권 이상, 10년 넘게 읽었다. 새로운 사실을 알아나가는 것이 너무 즐거워서 멈출 수가 없었다. 과학을 알면서 인문학과 문학을 바라보는 눈이 더욱 깊어졌다. 어느새 사람들은 그를 ‘과학 전문 북 칼럼니스트’라고 부르고 있었다. 2010년부터는 직장을 그만두고 아예 책을 소개하는 일을 업으로 삼았다. EBS, KBS, YTN 등의 책 관련 프로그램과 코너에 고정 출연하기 시작했다. 북 콘서트의 진행자로 무대에도 여러 번 섰다. 대학교와 도서관에서 강연 요청이 쇄도했다. 그로서는 전혀 계획해 본 적 없는 새로운 삶이었다.
allez321
2014.05.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