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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있는 화석’ 실러캔스를 발견하다

화석에 숨결을 불어넣은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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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까지 내가 본 가장 아름다운 물고기였는데, 몸길이는 1.5미터이고 반짝거리는 은빛 반점이 있는 연한 남색이었다."

1938년 남아프리카공화국 이스트런던박물관에서 학예사로 일하고 있던 32살의 마조리 코트니-래티머는 7년차임에도 여전히 열정을 잃지 않고 있었다. 수도 케이프타운의 북동쪽에 있는 항구소도시인 이스트런던East London에 있는 작은 박물관을 많은 사람들이 찾을 리는 없음에도 전시할만한 특이한 해양생물을 찾는데 열심이어서 어부들이 잡은 물고기를 조사하는 게 일상이었다.

 

크리스마스를 이틀 앞둔 12월 23일, 코트니-래티머는 어느새 친구가 된 저인망 어선 네리네호의 선장 헨드릭 구센에게 크리스마스 인사를 하러 배가 들어오는 항구로 나섰다. 반갑게 덕담을 나눈 뒤 돌아서는데 문득 가오리와 상어가 가득 담긴 통 안에서 푸르스름한 지느러미가 눈에 들어왔다. 순간 호기심이 발동한 코트니-래티머는 가오리와 상어 밑에 있던 물고기의 몸통이 드러나자 눈을 의심했다. 훗날 코트니-래티머는 이때의 인상을 이렇게 쓰고 있다.

 

 "그때까지 내가 본 가장 아름다운 물고기였는데, 몸길이는 1.5미터이고 반짝거리는 은빛 반점이 있는 연한 남색이었다."

 

네이처-표지

 <네이처>표지

 

코트니-래티머는 이 물고기에 대해 아는 바가 없었지만 박물관에 소장할 가치가 있다고 판단하고 택시를 불렀다. 박물관에 도착해 참고문헌을 뒤적인 결과 이 물고기가 화석으로만 남아있는 오래 전 멸종한 물고기와 비슷하게 생겼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흥분한 코트니-래티머는 어류에 대해 전문가 수준의 지식을 갖고 있는 화학자인 인근 로즈대학교의 제임스 스미스 교수에게 스케치를 곁들인 편지를 보내 이 사실을 알렸다. 한편 이 물고기가 농어류의 일종이라고 생각한 박물관장은 호들갑을 떠는 학예사를 한심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14년 만에 온전한 견본 확보

 

 ‘MOST IMPORTANT PRESERVE SKELETON AND GILLS = FISH DESCRIBED’ (언급한 물고기의 골격과 아가미를 보존하는 게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크리스마스휴가를 떠났던 스미스 교수는 해가 바뀐 1939년 1월 3일에야 코트니-래티머에게 전보를 보냈다. 하지만 물고기 표본을 만드는 과정에서 뼈와 내장은 이미 버린 상태였다. 당황한 코트니-래티머는 박물관은 물론 읍내의 쓰레기장까지 뒤졌지만 결국 찾지 못했다. 2월 16일 이스트런던박물관에 온 스미스 교수는 즉시 이 물고기가 실러캔스coelacanth임을 알아차렸다. 실러캔스는 1839년 첫 화석이 발견된 물고기로, 데본기에서 백악기에 걸쳐 살다가 6500만 년 전에 공룡과 함께 멸종했다고 알려져 있었다. 그런데 공룡 시대 물고기가 여전히 살아있다는 증거를 바로 눈앞에서 보게 된 것이다. 이 사실이 공표되자 언론들은 즉시 세기의 발견이라며 대서특필했고 코트니-래티머와 스미스는 하루아침에 유명인사가 됐다.

 

래티머

코트니 래티머

 

스미스 교수는 과학저널 <네이처>에 실러캔스의 발견을 보고하면서 이 물고기의 학명을 ‘래티머리아 챌룸니Latimeria chalumnae’라고 붙여줬다. 첫 발견자인 코트니-래티머를 기린 이름이다. 이후 스미스의 삶은 온전한 실러캔스 견본을 찾는데 바쳐졌다. 그는 남아공에서 케냐, 마다가스카르에 이르는 아프리카 동쪽 해안 일대를 돌아다니며 전단을 뿌리고 강의를 하며 어부들에게 실러캔스를 잡을 경우 꼭 연락을 해달라고 당부했다. 이렇게 14년이 지난 1952년 12월21일, 코모로스 군도의 교사 아판 모하메드는 한 어부가 들고 가는 커다란 물고기가 실러캔스임을 직감하고 이 사실을 알렸다. 코모로스로 날아간 스미스 교수는 사례비로 100파운드를 지불하고 귀중한 견본을 갖고 돌아온다.

 

오늘날 ‘살아있는 화석’의 대표적인 예로 꼽히는 실러캔스는 이렇게 세상의 빛을 본 것이다. 그 뒤 1997년에는 인도네시아의 연안에서 또 다른 실러캔스가 발견됐고 ‘래티머리아 메나도엔시스Latimeria menadoensis’라고 명명됐다. 이후 이 종은 인도네시아 실러캔스라고 부르고 앞의 종은 서인도양 실러캔스라고 부른다. 2013년 현재 보고된 실러캔스는 309마리에 불과하다. 지금까지 실러캔스목目에 속하는 물고기는 80여종이 발견됐는데, 이 두 종을 제외한 모두가 최소한 6500만 년 전에 멸종한 종들이다.

 

어류와 육상동물 잇는 다리 


실러캔스는 상당히 특이하게 생겨 비전문가가 봐도 심상치 않은 생명체라는 느낌을 준다. 실러캔스는 지느러미가 8개인데 특이한 형태의 꼬리지느러미와 살집이 통통한 가슴지느러미 한 쌍, 배지느러미 한 쌍이 특히 눈길을 끈다. 나머지는 등지느러미 2개와 뒷지느러미 1개다. 참고로 물고기는 ‘계문강목과속종’으로 나누는 분류학상으로 상어 같은 연골어강綱와 고등어 같은 경골어강로 나뉘는데, 경골어강은 또 고등어처럼 우리가 익숙한 형태의 지느러미를 지닌 조기아강亞綱과 통통한 지느러미를 지닌 육기아강으로 나눈다. 경골어류는 거의 다 조기아강에 속하고, 현존하는 경골어류로는 실러캔스와 폐어lungfish만이 육기아강에 속한다. 

 

제임스-스미스

제임스 스미스 박사

 

폐어는 말 그대로 아가미 대신 육상동물의 폐(허파)와 비슷한 구조의 호흡기관을 갖는 민물고기로, 고생대와 중생대에는 번성했으나 현재는 불과 6종만이 남아있다. 폐어는 등지느러미와 뒷지느러미가 꼬리지느러미와 합쳐져 뱀장어가 연상되는 형태이나 실러캔스처럼 가슴지느러미 한 쌍과 배지느러미 한 쌍은 살집이 있다. 실러캔스나 폐어가 주목받는 이유는 이들의 몸 구조가 바로 물고기와 사지四肢 육상동물의 중간형태를 띠기 때문이다. 즉 부챗살 같은 가슴지느러미와 배지느러미가 살집이 있는 형태로 바뀌어있다. 이들의 조상 가운데 일부가 뭍으로 올라오면서 이 지느러미로 이동하다가 결국 다리로 진화했고 발가락도 생겨나게 됐다는 시나리오다. 고생물학자들은 화석을 토대로 대략 3억 9000만 년 전에 실러캔스의 조상과 폐어의 조상이 육상동물의 조상과 갈라졌다고 추정해왔다. 하지만 실러캔스와 폐어 가운데 누가 육상동물과 더 가까운지는 불분명했다.

 

과학저널 <네이처> 2013년 4월 18일자에는 서인도양 실러캔스의 게놈을 해독한 연구결과가 실렸다. 실러캔스의 게놈은 약 29억 염기쌍으로 30억 염기쌍인 사람의 게놈보다 약간 작고 유전자 개수도 19000여개로 역시 21000여개인 사람보다 약간 적다. 참고로 폐어의 게놈은 크기가 무려 1300억 염기쌍으로 추정돼 현실적으로 당분간 해독되기는 어렵다. 연구자들은 실러캔스와 폐어를 비롯한 척추동물 22종의 251가지 유전자의 염기서열을 비교해 이들의 분류학상의 관계를 살펴봤다. 염기서열의 차이가 적을수록 서로 가까운, 즉 좀 더 최근에 공통조상에서 갈라진 종들이라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 결과 실러캔스보다는 폐어가 육상동물에 좀 더 가까운 것으로 나타났다. 즉 이 세 그룹의 공통조상에서 먼저 실러캔스와 폐어/육상동물 공통조상이 갈라졌고, 그 뒤 후자에서 폐어와 육상동물이 갈라졌다는 말이다.

 

쥐라기실러캔스

 쥐라기 실러캔스

 

그럼에도 실러캔스의 게놈을 분석하자 물고기와 육상동물의 과도기적인 특징을 띠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즉 경골어류에서 육상동물로 진화하면서 사라진 유전자 가운데 50여 개가, 여전히 경골어류에 속하는 실러캔스의 게놈에서도 발견되지 않았다. 이 유전자들 가운데 13개는 지느러미가 만들어질 때 관여한다. 결국 경골어류 대다수가 속하는 조기아강 어류의 지느러미 형성 유전자 가운데 13개는 실러캔스 같은 육기아강 어류에서 이미 작동을 멈췄고 그 대신 다른 유전자들이 관여해 이렇게 다른 형태의 지느러미가 나온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육상동물의 다리로 진화하는 데는 또 다른 유전자들이 개입했을 것이다.

 

한편 게놈 분석 결과 실러캔스의 유전자는 돌연변이 속도가 다른 동물들보다 절반 수준으로 느리다는 사실도 밝혀졌다. 옆의 계통수를 보면 가로 선이 길수록 돌연변이가 많았다는 뜻으로 실러캔스는 선이 가장 짧음을 알 수 있다. 현생 실러캔스가 수천만 년 전 화석의 실러캔스와 겉모습이 큰 차이가 없어 보이는 현상도 이런 느린 돌연변이 속도로 어느 정도 설명할 수 있다. 그렇다면 왜 실러캔스의 유전자는 이처럼 돌연변이 속도가 느릴까.

 

 

 

실러캔스계통수pg

실러캔스 계통수

 

연구자들은 실러캔스의 생태에서 실마리를 찾고 있다. 즉 실러캔스는 야행성 물고기로 낮에는 수심 100~500미터인 바다 밑 굴에서 은신하고 있다가 어둠이 찾아오면 외출해 다른 물고기를 잡아먹고 산다. 가끔 천적인 상어를 만나 잡아먹히기도 하지만 비늘이 두껍고 덩치도 꽤 크기 때문에 공격당하는 일이 흔하지는 않다. 그럼에도 실러캔스의 개체수는 많지 않아서 서인도양 실러캔스의 경우 1000??만 마리 정도로 추정되고 있다. 수천만 년 전이나 지금이나 큰 차이가 없는 연안 바다 밑 환경에서만 살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한편 예전에는 실러캔스가 잡히면 어부들이 다시 놔줬는데(기름기가 너무 많고 고약한 냄새가 나서 식용으로는 부적합하다), 유명한 물고기라는 걸 알고 난 뒤부터는 가져와 팔면서 개체수가 줄어들고 있다고 추정하기도 한다. 


앞으로 실러캔스 게놈을 좀 더 면밀히 분석하면 어류에서 육상동물이 진화한 과정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실러캔스가 앞으로도 ‘살아있는 화석’으로 불릴 수 있도록 이들의 서식처 일대를 보존하는 노력을 게을리 하지 말아야겠다.  코트니-래티머는 20대 때 사귄 애인이 죽자 그를 잊지 못해 평생 독신으로 살다 2004년 97세에 타계했다. 평소 아내에게 70 넘게 살고 싶지는 않다고 말하던 제임스 스미스는 1968년 71세로 세상을 떠났다. 스미스는 1956년 『The Search Beneath the Sea? The Story of the Coelacanth 바다밑을 찾아서? 실러캔스 이야기』라는 책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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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을 취하다 과학에 취하다 강석기 저 | MID 엠아이디
첫 책 『과학 한잔 하실래요?』로 출간하자마자 2012년 교육과학기술부 우수과학도서, 두 번째 책 『사이언스 소믈리에』로 2013년 미래창조과학부 우수과학도서로 유래 없이 2년 연속 선정된 저자의 세 번째 과학에세이. 더 깊어진 과학적 전문성과 더 넓어진 학문적 지평으로 2013-2014년 과학계의 첨단 이슈를 샅샅이 파헤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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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강석기

서울대학교 화학과 및 동대학원(이학석사)을 졸업했다. LG생활건강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근무했으며 동아사이언스 《과학동아》와 《더사이언스》에서 과학전문기자로 일했다. 현재 과학칼럼니스트와 과학책 저술가로 활동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과학 한잔 하실래요?』(MID, 2012)가 있고 옮긴 책으로 『현대 과학의 이정표』(Gbrain, 2010, 공역)가 있다. 2012년 출간한 저서 『과학 한잔 하실래요?』는 출간 즉시 교육과학 기술부 우수과학도서, 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 권장도서로 선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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