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렘
누굴까, 누가 보낸 걸까?
내내 자리를 지키다가 잠시 비운 그 찰나에 책상 위에 한 통의 손편지가 놓여 있었습니다. 서류들이 이곳저곳 어질러져 있는 너무나도 익숙한 방인데도 이 순간만큼은 그 ‘낯선 손님’이 방안을 온통 지배하고 있었습니다. 손편지가 주는 느낌이 이토록 강하고 설렐 줄은 미처 몰랐습니다. 편지봉투는 도톰했습니다. 봉투와 편지지 사이에 빈틈이라곤 없었습니다. 그래도 날카로운 커트칼로 단번에 자르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칼날에 보낸 이의 정성이 베일까봐 함부로 날을 들이밀 수가 없었습니다. 나는 봉투를 요리조리 살펴본 뒤 약간의 틈새를 찾아 손으로 조심조심 뜯었습니다. 마침내 애벌레가 나뭇잎을 갉아 먹은 듯한 모양이 만들어지면서 편지가 속살을 드러냈습니다. ‘잘 지내시는지요.’ 첫사랑의 인사가 이렇게 설렐까요? 편지를 읽는 동안 고요하고 아름다운 숲속을 걷는 기분이었습니다. 세상의 모든 소음을 뚫고 제게만 들려오는 그 속삭임은 참으로 행복했습니다.
이 책은 손편지로 소중한 사람들과 소통한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하나는 자신의 처지를 알리기 위해 발버둥 칠 수밖에 없는 아이들의 이야기입니다. ‘살을 빼려고 매일 6~7km를 걸었어요’, ‘반찬을 보관할 냉장고가 없어요’, ‘입술이 파랗게 되도록 공부했습니다’. 이렇게 현실과 사투를 벌이는 아이들은 차마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그들의 일상을 편지로 간절히 호소합니다. 편지로 소원을 말하고, 그 소원이 이루어지길 기도합니다. 아이들의 편지에는 절박한 현실과 꿈, 희망이 모두 담겨있습니다. 아이들의 편지 한 통 한 통마다 마치 ‘인간극장’을 보는 듯합니다. 아이들은 그렇게 편지로 자신의 상황을 알리고 스스로 다짐을 합니다. 그리고 도움을 받은 만큼 도움이 되겠다는 감사함도 잊지 않습니다.
아이들의 편지를 읽을 때마다 제 가슴이 왜 그렇게 뛰었는지. 저는 그 아이들의 별이 되고 싶었습니다. 언제나 밤하늘을 지키며 아이들이 찾을 때마다 따스한 온기나마 전해줄 수 있는 그런 작은 별…. 아이들이 가슴으로 적은 이야기는 제 가슴에 똑같은 울림으로 그대로 새겨졌습니다. 그 울림을 여러 사람들과 나누고 싶었습니다.
또 하나는 수많은 사람들과 편지로 소통한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업무나 일상 속에서 만나는 수많은 사람들의 마음에 저를 머물게 하고, 그들 또한 제 마음에 고이게 하기 위해 감사의 편지를 보냈습니다. 후원자, 기업의 관계자, 행정기관 사람들, 자원봉사자, 직장동료, 일터에서 만난 사람들, 오래 전 도움이 되어준 분들, 설렘을 준 사람, 가족과 형제 등에게 보낸 편지가 300통이 넘습니다.
편지를 받은 사람들의 반응은 상상 이상이었습니다. 편지로 전하는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라는 메시지가 일상에서 어떤 기적을 만드는지 직접 경험했습니다. 지난 세월과 비교하면 편지를 주고받은 모든 사람들과 더욱 친밀해졌고, 우리만의 비밀을 간직한 듯 서로 만나면 미소부터 나누는 사이가 됐습니다. 마치 오랜 세월을 함께 했던 사람처럼. 편지는 그렇게 마법을 부렸습니다.
이제 독자들과 편지가 주는 소통의 가치를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이 책을 읽고 누군가에게 편지를 쓰고 싶다는 간절함이 생긴다면 필자로서 더할 나위 없는 영광입니다. 손으로 꼭꼭 눌러쓴 편지는 당신이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큰 기쁨과 설레는 기다림을 가져다줄 것입니다. 오늘 밤 편지의 마법을 경험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이 책은 어려운 상황에서도 꿋꿋하게 꿈을 키워가는 아이들과 그들에게 희망이 되어준 수많은 분들 덕분에 세상의 빛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 모든 분들이 바로 이 책의 주인공입니다.
2014년 봄
벽에서도 바람이 들어오는 주택의 2층 작은 방에서
권혁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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