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 도둑>, 아이들은 아버지의 뒷모습을 품고 자란다
세상의 모든 아버지가 늘 주인공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집으로 가는 길이 때로는 가시밭길이며 험난한 여정이 되는 것은 책임져야 할 식구들이 그의 어깨에 매달려 있기 때문이겠지요. 다음 날부터 리치는 어린 아들과 함께 자전거를 찾으러 다니기 시작합니다. 자전거 가게들을 뒤지고 소나기를 피해 서 있는 동안에도, 길가에 놓인 숱한 자전거를 보는 내내 한순간도 그들은 긴장을 놓치지 않고 로마 시내를 헤매고 다닙니다. 그들은 자전거를 무사히 찾을 수 있을까요?
2014.0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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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운 겨울 골목길에 키 작은 아버지의 그림자가 나타나면 가슴이 두근거리곤 했습니다. 아버지는 키가 다소 작았지만 우리에게는 큰 언덕이었거든요. 아버지는 건축업자였습니다. 학창 시절에 어떤 선생님은 아버지의 직업이 ‘건축업’인지 ‘노가다’인지를 가정환경조사서에 정확하게 기재하라고 했는데, 지금 생각해도 건축업과 노가다가 어떻게 다른지 그 선생님께 여쭤보고 싶기도 합니다. 하여간 노가다와 건축업 사이에 낀 아버지가 어느 날 데리고 있던 한 일꾼에게 봉변을 당하셨습니다. 술 취한 일꾼이 평소 불만이 있었던지 그 큰 손으로 작은 아버지를 달랑 집어서 메다꽂았고, 아버지는 ‘사장’이었지만 길바닥에 볼품없이 나뒹굴었습니다. 그 장면을 본 순간 나는 맹렬하게 달려들어 그 아저씨의 가슴을 향해 종주먹을 날렸지만 정작 내 주먹은 그 아저씨 가슴 근처에도 가지 못했지요.
어린 날의 그 장면은 내 기억 속에 오래도록 남아 아버지를 몹시 불안한 존재로 만들어버렸습니다. 자식들 앞에서 당당해야 할 아버지가 가장 좋아하는 딸이 보는 앞에서 형편없이 나가떨어졌으니 아버지 체면도 말이 아니었고 나 또한 아버지에 대한 환상이 깨지면서 남자에 대한 기준이 달라졌습니다. 덩치 큰 남자를 무조건 좋아하는 건 어쩌면 어릴 때의 그 일로 인한 트라우마가 아닐까, 내심 그런 생각도 해봤습니다. 영화 <자전거 도둑>은 그런 면에서 깊은 인상을 남겼습니다. 영화에서 아들 부르노처럼 아버지의 뒷모습을 일찌감치 본 탓인지, 나는 이 영화를 볼 때마다 그 아버지의 처진 어깨와 눈물에 젖은 아들의 눈 때문에 매번 가슴이 시큰해지고는 합니다.
아버지의 진짜 이름?
전후 이탈리아를 배경으로 한 영화는 흑백사진 속 추억으로 우리를 안내합니다. 전쟁은 많은 것을 폐허로 만들었고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안토니오 리치는 어떻게든 직장을 구해야 했습니다. 밥벌이는 가장의 숙명이자 아버지로서의 존재 이유이기도 했지요. 요행히 영화 포스터를 붙이는 일거리를 구했을 때 리치의 표정은 마치 전쟁터에서 승리한 자의 표정과 닮아 있었습니다. 그 일을 하기 위해서는 자전거가 필요했지요. 아내 마리아는 기꺼운 마음으로 혼수품을 전당포에 맡겨 리치에게 자전거를 구해줍니다.
누구라도 그렇겠지만 첫 출근의 설렘을 어떻게 말로 다할까요? 게다가 얼마나 어렵게 구한 일자리인가요. 아들 부르노는 그런 아빠를 존경스러운 눈으로 바라봅니다. 그러나 리치가 기쁨에 들떠 벽보를 붙이는 동안 누군가가 그만 리치의 자전거를 훔쳐서 달아납니다. 절망에 빠진 리치가 어깻죽지를 늘어뜨리고 집으로 돌아가는 모습은 언젠가 본 듯한 흑백 명암 속의 아버지를 닮았습니다. 물론 요즘 아이들은 이런 아빠의 모습을 상상하지 못하지요. 세상이 좋아져서가 아니라 아버지가 ‘아빠’로 불리는 지금도 세상의 아버지들은 아이들 앞에서 뒷모습을 보이고 싶어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모든 아버지가 늘 주인공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집으로 가는 길이 때로는 가시밭길이며 험난한 여정이 되는 것은 책임져야 할 식구들이 그의 어깨에 매달려 있기 때문이겠지요. 다음 날부터 리치는 어린 아들과 함께 자전거를 찾으러 다니기 시작합니다. 자전거 가게들을 뒤지고 소나기를 피해 서 있는 동안에도, 길가에 놓인 숱한 자전거를 보는 내내 한순간도 그들은 긴장을 놓치지 않고 로마 시내를 헤매고 다닙니다. 그들은 자전거를 무사히 찾을 수 있을까요?
무엇이 희망을 앗아가나
이 작품과 같은 제목을 가진 국내 소설로 김소진의 『자전거 도둑』 과 박완서의 『자전거 도둑』 이 있습니다. 물론 각각의 주제는 다릅니다만 자전거가 소재라는 점과 제목이 같지요. 김소진의 『자전거 도둑』 은 유년의 상처를 말하고 있는데 바로 브루노와 같이 작중 인물이 유사한 상황을 마주하게 됩니다. 어린 시절 동네 점포에서 주인 몰래 소주를 훔치던 아버지는 그 상황을 들키자 아들인 주인공의 뺨을 때립니다. 즉, 아버지의 도둑질을 아들에게 덮어씌운 것이지요. 아들은 그때의 기억이 성인이 된 이후에도 내내 트라우마로 따라다닙니다. 부르노 역시 소설 속 인물과 유사한 상처를 안게 됩니다.
리치의 눈에 보이는 길거리의 숱한 자전거는 그의 실직과 맞물려 아픔으로 다가옵니다. 자전거가 없으면 직장도 월급도 아무것도 가질 수가 없습니다. 절박한 상황이 왔을 때 손가락 끝까지 전기가 통하듯 아찔한 아픔을 느낀 적이 있는데 리치의 표정이 마치 그렇습니다. 어린 아들과 함께 폐허가 된 거리를 다 찾아다니지만 어디에도 그의 자전거는 없고 세상에 놓인 수많은 자전거를 바라보는 리치의 심정은 절박함 그 이상입니다. 결국 아내 마리아가 갔던 점쟁이 집을 찾아가 미신에라도 의지해보려던 리치는 점쟁이 노파로부터 찾을 수도 있고 찾지 못할 수도 있다는 둥 들으나 마나 한 소리만 듣습니다. 리치는 나약해졌고 암담한 절망 속에서 구원을 찾았지만 그것은 그야말로 미신일 뿐이었지요. 리치에게 희망이란 없는 것일까요?
희망하는 만큼의 절망스러운 마음으로 리치와 부르노는 휘청거리며 거리를 헤매다 자전거 도둑 용의자를 만납니다. 확신은 있지만 물증이 없는 도둑을 앞에 두고 오히려 그 도둑을 감싸는 마을사람들로부터 집단 린치를 당할 입장에 놓였던 리치는 아들 부르노가 재빨리 신고한 덕분에 경관의 도움으로 위기에서 벗어납니다. 이제 어디에도 희망은 보이지 않고 암울함만이 화면을 가득 메웁니다. 도둑을 찾고서도 불한당으로 몰리고 모두들 타인의 불행을 외면하는 시대, 이탈리아뿐만 아니라 두 번의 세계대전은 사람들의 마음으로부터 정의나 희망 같은 것들을 모두 앗아가버린 모양입니다. 무질서와 혼돈 속에서 아빠에게 자전거라는 매개체는 실존의 까닭이었고 존재 그 자체였습니다. 그것은 그가 바로 부르노의 아빠이고 마리아의 남편이기 때문입니다. 리치는 아들 부르노를 전차에 태워 먼저 집으로 보내기로 합니다.
아버지의 술은 짜다
아버지의 눈물, 세상에서 가장 진한 소금물이라고 생각합니다. 부르노를 보내고 리치가 선택한 것은 자전거를 훔치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리치가 현재 가장으로서 할 수 있는 최후의 선택이었는지도 모르지만 결국 그 계획은 실패로 돌아가고 아들 부르노가 보는 앞에서 멱살을 잡히고 뺨을 맞는 리치의 표정은 절망적이었습니다. 부르노가 눈물을 흘리며 “아빠”라고 부르자 자전거 주인은 조건 없이 리치를 용서해줍니다. 아들 부르노의 눈물을 보고 내린 결정이었습니다. 그리고 모자를 털어서 머리에 쓴 리치와 부르노가 손을 잡고 해 지는 로마의 길을 터벅터벅 걸어갑니다. 그들 부자의 눈에서는 짠 눈물이 한 방울 흘러내립니다.
아이들은 아버지의 눈물을 볼 기회가 별로 없습니다. 친구 같은 신세대 아빠들의 눈물겨운 노력 덕분에 요즘 아이들은 아버지에게서 벽이나 권위 의식을 느끼지는 못합니다. 하지만 우리 아빠가 최고라는 것만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변치 않는 사실인가 봅니다. 두 눈 가득 눈물을 머금은 리치는 모든 아버지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이 영화를 보면서 (나의 독서방) 아이들은 비로소 아빠의 눈물과 뒷모습에 대해 생각해보는 듯했습니다. 아들 앞에서 뺨을 얻어맞는 아버지의 심정을 그 아들이 어른이 되면 혹여 알 수 있을까요?
전문 배우가 아닌 실제 금속 노동자와 신문팔이 소년이 주연 배우로 출연한 이 영화는 바로 우리의 얘기였고 아버지의 자리가 무엇인지를 알려주는 작품이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전후 이탈리아 영화가 추구한 네오리얼리즘(neorealism)은 파시스트 정권의 예술에 대한 억압 정책에 대항하면서 형성된 영화 운동이었고 세계대전 이후에는 이탈리아 사회 상황에 대한 영화적 대응이기도 했습니다. 한편으로 아버지와 아들이라는 관계를 통한 실존에 대한 모색이, 시대를 넘어서는 공감을 불러일으켰지요. 과연 아버지라는 자리는 우리에게 어떤 의미인지 진지하게 되돌아볼 수 있는 영화로 청소년기의 아이들과 함께 보기에 참 좋은 작품입니다.
어린 날, 아버지가 데리고 있던 노동자에게 폭행 당하는 모습을 지켜본 이후 나는 오래도록,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아버지에게 어떤 연민을 품고 있습니다. 절대 강자에서 상대 강자로 변할 수 있고 그것이 인생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서는 더더욱 그러합니다. 그런 까닭인지 이 영화를 열 번도 넘게 보았지만 볼 때마다 여전히 마음이 아릿한 것은 누구나 세월이 지나면 영화 속의 리치가 되어야 하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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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날의 그 장면은 내 기억 속에 오래도록 남아 아버지를 몹시 불안한 존재로 만들어버렸습니다. 자식들 앞에서 당당해야 할 아버지가 가장 좋아하는 딸이 보는 앞에서 형편없이 나가떨어졌으니 아버지 체면도 말이 아니었고 나 또한 아버지에 대한 환상이 깨지면서 남자에 대한 기준이 달라졌습니다. 덩치 큰 남자를 무조건 좋아하는 건 어쩌면 어릴 때의 그 일로 인한 트라우마가 아닐까, 내심 그런 생각도 해봤습니다. 영화 <자전거 도둑>은 그런 면에서 깊은 인상을 남겼습니다. 영화에서 아들 부르노처럼 아버지의 뒷모습을 일찌감치 본 탓인지, 나는 이 영화를 볼 때마다 그 아버지의 처진 어깨와 눈물에 젖은 아들의 눈 때문에 매번 가슴이 시큰해지고는 합니다.
아버지의 진짜 이름?
전후 이탈리아를 배경으로 한 영화는 흑백사진 속 추억으로 우리를 안내합니다. 전쟁은 많은 것을 폐허로 만들었고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안토니오 리치는 어떻게든 직장을 구해야 했습니다. 밥벌이는 가장의 숙명이자 아버지로서의 존재 이유이기도 했지요. 요행히 영화 포스터를 붙이는 일거리를 구했을 때 리치의 표정은 마치 전쟁터에서 승리한 자의 표정과 닮아 있었습니다. 그 일을 하기 위해서는 자전거가 필요했지요. 아내 마리아는 기꺼운 마음으로 혼수품을 전당포에 맡겨 리치에게 자전거를 구해줍니다.
누구라도 그렇겠지만 첫 출근의 설렘을 어떻게 말로 다할까요? 게다가 얼마나 어렵게 구한 일자리인가요. 아들 부르노는 그런 아빠를 존경스러운 눈으로 바라봅니다. 그러나 리치가 기쁨에 들떠 벽보를 붙이는 동안 누군가가 그만 리치의 자전거를 훔쳐서 달아납니다. 절망에 빠진 리치가 어깻죽지를 늘어뜨리고 집으로 돌아가는 모습은 언젠가 본 듯한 흑백 명암 속의 아버지를 닮았습니다. 물론 요즘 아이들은 이런 아빠의 모습을 상상하지 못하지요. 세상이 좋아져서가 아니라 아버지가 ‘아빠’로 불리는 지금도 세상의 아버지들은 아이들 앞에서 뒷모습을 보이고 싶어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모든 아버지가 늘 주인공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집으로 가는 길이 때로는 가시밭길이며 험난한 여정이 되는 것은 책임져야 할 식구들이 그의 어깨에 매달려 있기 때문이겠지요. 다음 날부터 리치는 어린 아들과 함께 자전거를 찾으러 다니기 시작합니다. 자전거 가게들을 뒤지고 소나기를 피해 서 있는 동안에도, 길가에 놓인 숱한 자전거를 보는 내내 한순간도 그들은 긴장을 놓치지 않고 로마 시내를 헤매고 다닙니다. 그들은 자전거를 무사히 찾을 수 있을까요?
무엇이 희망을 앗아가나
이 작품과 같은 제목을 가진 국내 소설로 김소진의 『자전거 도둑』 과 박완서의 『자전거 도둑』 이 있습니다. 물론 각각의 주제는 다릅니다만 자전거가 소재라는 점과 제목이 같지요. 김소진의 『자전거 도둑』 은 유년의 상처를 말하고 있는데 바로 브루노와 같이 작중 인물이 유사한 상황을 마주하게 됩니다. 어린 시절 동네 점포에서 주인 몰래 소주를 훔치던 아버지는 그 상황을 들키자 아들인 주인공의 뺨을 때립니다. 즉, 아버지의 도둑질을 아들에게 덮어씌운 것이지요. 아들은 그때의 기억이 성인이 된 이후에도 내내 트라우마로 따라다닙니다. 부르노 역시 소설 속 인물과 유사한 상처를 안게 됩니다.
리치의 눈에 보이는 길거리의 숱한 자전거는 그의 실직과 맞물려 아픔으로 다가옵니다. 자전거가 없으면 직장도 월급도 아무것도 가질 수가 없습니다. 절박한 상황이 왔을 때 손가락 끝까지 전기가 통하듯 아찔한 아픔을 느낀 적이 있는데 리치의 표정이 마치 그렇습니다. 어린 아들과 함께 폐허가 된 거리를 다 찾아다니지만 어디에도 그의 자전거는 없고 세상에 놓인 수많은 자전거를 바라보는 리치의 심정은 절박함 그 이상입니다. 결국 아내 마리아가 갔던 점쟁이 집을 찾아가 미신에라도 의지해보려던 리치는 점쟁이 노파로부터 찾을 수도 있고 찾지 못할 수도 있다는 둥 들으나 마나 한 소리만 듣습니다. 리치는 나약해졌고 암담한 절망 속에서 구원을 찾았지만 그것은 그야말로 미신일 뿐이었지요. 리치에게 희망이란 없는 것일까요?
희망하는 만큼의 절망스러운 마음으로 리치와 부르노는 휘청거리며 거리를 헤매다 자전거 도둑 용의자를 만납니다. 확신은 있지만 물증이 없는 도둑을 앞에 두고 오히려 그 도둑을 감싸는 마을사람들로부터 집단 린치를 당할 입장에 놓였던 리치는 아들 부르노가 재빨리 신고한 덕분에 경관의 도움으로 위기에서 벗어납니다. 이제 어디에도 희망은 보이지 않고 암울함만이 화면을 가득 메웁니다. 도둑을 찾고서도 불한당으로 몰리고 모두들 타인의 불행을 외면하는 시대, 이탈리아뿐만 아니라 두 번의 세계대전은 사람들의 마음으로부터 정의나 희망 같은 것들을 모두 앗아가버린 모양입니다. 무질서와 혼돈 속에서 아빠에게 자전거라는 매개체는 실존의 까닭이었고 존재 그 자체였습니다. 그것은 그가 바로 부르노의 아빠이고 마리아의 남편이기 때문입니다. 리치는 아들 부르노를 전차에 태워 먼저 집으로 보내기로 합니다.
아버지의 술은 짜다
아버지의 눈물, 세상에서 가장 진한 소금물이라고 생각합니다. 부르노를 보내고 리치가 선택한 것은 자전거를 훔치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리치가 현재 가장으로서 할 수 있는 최후의 선택이었는지도 모르지만 결국 그 계획은 실패로 돌아가고 아들 부르노가 보는 앞에서 멱살을 잡히고 뺨을 맞는 리치의 표정은 절망적이었습니다. 부르노가 눈물을 흘리며 “아빠”라고 부르자 자전거 주인은 조건 없이 리치를 용서해줍니다. 아들 부르노의 눈물을 보고 내린 결정이었습니다. 그리고 모자를 털어서 머리에 쓴 리치와 부르노가 손을 잡고 해 지는 로마의 길을 터벅터벅 걸어갑니다. 그들 부자의 눈에서는 짠 눈물이 한 방울 흘러내립니다.
아이들은 아버지의 눈물을 볼 기회가 별로 없습니다. 친구 같은 신세대 아빠들의 눈물겨운 노력 덕분에 요즘 아이들은 아버지에게서 벽이나 권위 의식을 느끼지는 못합니다. 하지만 우리 아빠가 최고라는 것만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변치 않는 사실인가 봅니다. 두 눈 가득 눈물을 머금은 리치는 모든 아버지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이 영화를 보면서 (나의 독서방) 아이들은 비로소 아빠의 눈물과 뒷모습에 대해 생각해보는 듯했습니다. 아들 앞에서 뺨을 얻어맞는 아버지의 심정을 그 아들이 어른이 되면 혹여 알 수 있을까요?
전문 배우가 아닌 실제 금속 노동자와 신문팔이 소년이 주연 배우로 출연한 이 영화는 바로 우리의 얘기였고 아버지의 자리가 무엇인지를 알려주는 작품이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전후 이탈리아 영화가 추구한 네오리얼리즘(neorealism)은 파시스트 정권의 예술에 대한 억압 정책에 대항하면서 형성된 영화 운동이었고 세계대전 이후에는 이탈리아 사회 상황에 대한 영화적 대응이기도 했습니다. 한편으로 아버지와 아들이라는 관계를 통한 실존에 대한 모색이, 시대를 넘어서는 공감을 불러일으켰지요. 과연 아버지라는 자리는 우리에게 어떤 의미인지 진지하게 되돌아볼 수 있는 영화로 청소년기의 아이들과 함께 보기에 참 좋은 작품입니다.
어린 날, 아버지가 데리고 있던 노동자에게 폭행 당하는 모습을 지켜본 이후 나는 오래도록,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아버지에게 어떤 연민을 품고 있습니다. 절대 강자에서 상대 강자로 변할 수 있고 그것이 인생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서는 더더욱 그러합니다. 그런 까닭인지 이 영화를 열 번도 넘게 보았지만 볼 때마다 여전히 마음이 아릿한 것은 누구나 세월이 지나면 영화 속의 리치가 되어야 하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함께 읽을 책과 영화 김소진 저 | 문학동네 김소진 전집은 그가 5년전 세상을 뜨기 바로 직전까지 그가 해왔던 작품들을 한데 모은 것이다. 김소진의 소설은 고난의 시대를 살아온 서민들의 애환을 절실하고도 아름다운 문체로 그려냈다는 평가를 받았으며, 그러므로 우리 문학사의 귀중한 자산이기도 하다. 따라서 이 전집은 김소진 문학의 전체적 면모를 조망하는 지도가 될 것이다. 작가가 다양한 축도와 시선으로 작성한 삶의 지형도를 통해 이 책의 독자들은 인생과 사회를 보다 넓고 깊게 응시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될 것이다. 제시 넬슨 감독 | 숀 펜, 다코타 패닝, 미셸 파이퍼 일곱 살 아이의 지능을 가진 샘 도슨은 버스정류장 옆 커피 전문점에서 일하며, 아내가 버리고 간 딸 루시를 키우며 힘들지만 즐거운 나날을 보내고 있다. 수요일에는 레스토랑에, 목요일에는 비디오 나이트에, 금요일에는 노래방에 함께 다니는 것이 이들 부녀의 작은 행복. 남들이 보기에는 정상적이지 못하지만 그들은 즐거운 시간을 함께 하며 행복한 가정을 이루고 있다. 그러나 루시가 일곱 살이 되면서 사회 복지 기관 전문가가 이들 사이에 끼어들게 된다. 샘의 지능은 일곱 살 수준이기 때문에 루시가 일곱 살이 넘게 되면 샘이 루시를 정상적으로 부양할 수 있는지에 대한 검증이 필요하다는 것. 만일 샘이 그의 양육 능력을 입증하지 못하면 루시는 다른 가정으로 입양되어야 하는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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