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네상스 시대의 이탈리아 조각가인 니콜로 델라르카(Niccolo dell’Arca, 1435-1494)의 <죽은 그리스도를 애도함 Compianto sul Cristo morto>은 ‘입이 인간의 감정에 가장 먼저 반응한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어요. 성모 마리아와 제자, 친척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을 슬퍼하고 있군요.
여러 점의 조각상으로 구성된 이 작품은 장례 미술의 최고 걸작 중의 하나라는 찬사를 받고 있어요. 애도의 감정을 이토록 처절하게 표현한 작품은 미술사에서 찾아보기 어렵거든요. 각각의 조각상들은 다양한 표정과 손동작으로 그리스도의 죽음이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얼마나 고통스러운 일인지를 말하고 있네요. 인물들은 절망적이거나 침통한 표정을 짓고, 두 손바닥을 쫙 벌리거나, 두 손을 모으거나, 손으로 턱을 괴는 등의 손동작으로 비통한 심정을 보여 주고 있지요.
그러나 슬픔을 가장 강렬하게 표현하는 곳은 입이에요. 네 여자의 벌어진 입을 보세요. 가슴이 터져 버릴 듯 통곡하고 비명을 지르고 절규하고 있네요. 델라르카는 유연한 테라코타의 재료적 특성을 이용해 통곡하는 입 모양을 실감 나게 표현했어요. 그래서 그는 테라코타 인물상의 대가라는 찬사를 받고 있어요. 여자들의 입은 세상에서 가장 큰 슬픔이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이라고 말하고 있지요.
인간의 격렬한 감정을 입을 빌려 표현한 또 다른 미술작품을 소개할게요. 노르웨이 출신의 화가 에드바르 뭉크(Edvard Munch, 1863-1944)의 <절규 Skrik>입니다. 해골처럼 생긴 사람이 다리에 서서 두 손을 귀에 대고 “아아악” 비명을 지르고 있네요. 공포의 정도가 너무도 강렬할 때, 사람이 본능적으로 내지르는 비명이지요.
뭉크는 색채를 강조하거나 형태를 왜곡하는 기법으로 공포심을 강조하고 있어요. 급격하게 기울어진 다리의 사선은 긴장감을 불러일으키고, 배경의 소용돌이치는 곡선과 하늘의 붉은색은 불길한 느낌을 전하고 있거든요.
그림에서 날카로운 비명이 들려오는 것만 같지요? 어떻게 비명을 눈으로 볼 수 있게 했을까요? 비결은 겁에 질린 눈과 크게 벌어진 입인데 그중에서도 입이 결정적이지요.
이 그림은 전시되는 순간부터 커다란 파문을 일으켰어요. 인간의 내면에 깃든 두려움과 공포를 너무도 생생하게 표현했기 때문에 사람들이 큰 충격을 받았던 것이지요. 비평가 프란츠 제르베스(Franz Servaes)의 다음 글에서 충격의 강도를 느낄 수 있어요.
“핏빛 하늘과 저주받은 노란색을 배경으로 색채가 미친 듯이 비명을 지른다. (중략) 흉측한 벌레를 닮은 괴기한 형체만이 내게 남겨졌을 뿐이다. 나는 오직 휘둥그레진 눈과 비명을 지르는 입만을 느낄 수 있었다. 놀란 눈과 비명, 속이 뒤틀리는 느낌이었다.” | ||
그러나 지금은 세계적인 명화가 되었어요. 그림 속의 절규하는 인물은 불안과 두려움에 떠는 현대인들을 상징하게 되었거든요.
뭉크가 창조한 절규하는 인간상은 예술계뿐 아니라 영화계에도 많은 영향을 끼쳤어요. 영화 <전함 포템킨>, <스크림>, <싸이코>, <샤이닝>에 나오는 장면들을 담은 이미지를 보세요. 어떤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을까요? 바로 크게 벌어진 입을 통해서 소름 끼치는 공포를 표현하고 있다는 것이지요.
[관련 기사]
-그림의 이름표, 서명
-자신을 껴안은 남자의 목덜미를 문 여인 - 에드바르 뭉크 <흡혈귀>
-미술치료 받는 중년 여성, 남편의 관심 받기 위해…
-네 손을 다오. 아름답고 사랑스런 소녀여! - 슈베르트, 현악4중주 ‘죽음과 소녀’
-삶의 진경을 채우는 ‘느낌의 기술’을 알려드립니다!
- 학교에서 배웠지만 잘 몰랐던 미술 이명옥 저 | 시공아트
미술 교과서에 실려 있지만 그 가치가 제대로 전달되지 못했던 명작들을 ‘키워드(key word)’로 감상할 수 있도로곡 안내한 새로운 미술 교과서이다. 『조선일보』에 연재되고 있는 인기 칼럼 ‘이명옥의 명작 따라잡기’ 중 일부를 모아 새롭게 엮은 것으로, 서명, 손가락, 발, 입, 그림자 등 미술을 대할 때 눈에 보이는 요소들부터 소리, 음악, 움직임, 속도, 리듬, 크기, 생각 등 눈에 안 보이는 요소들, 그리고 미술과 세상에 대한 고정관념에서 벗어난 새로운 관점까지 다양한 키워드를 제시하며 명화를 감상하도록 안내한다.
이명옥
한국 문화·예술계의 뛰어난 기획자이자 베스트셀러 작가로, 현재 사비나 미술관장, 국민대학교 미술학부 교수, 한국사립미술관협회장, 과학문화융합포럼 공동대표를 겸하고 있다. 성신여대를 졸업한 후 불가리아로 유학을 떠나 소피아 국립미술아카데미에서 회화 석사 학위를 받았고, 홍익대학교 미술 대학원에서 예술기획 석사 학위를 받았다. 목포 MBC 교양국 PD를 거쳐 1996년 서울 인사동에 '갤러리사비나'를 개관했다. '갤러리 사비나'는 매번 참신하고 새로운 기획을 통해 남녀노소 누구나 쉽게 드나들 수 있는 대중 미술관'을 지향하고 있다.
대표 저서로는 『명화 속 신기한 수학 이야기』(2005년 문화관광부 우수교양도서), 『명화 속 흥미로운 과학 이야기』(2006년 대한민국 과학문화상, 2006년 과학기술부 인증 우수과학도서), 『명화 경제 토크』(2007년 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 청소년 권장 도서), 『천재성을 깨워주는 명화 이야기』(2005년 청소년 권장 도서), 『팜므 파탈』(한국문화번역원 선정 ‘2005년 한국의 책 96’, 일본 사쿠힌 사에서 『妖婦』로 번역 출간), 『아침 미술관 1, 2』, 『그림 읽는 CEO』(네이버 선정 ‘오늘의 책’), TGIF(Twitter, Google, Internet, Facebook) 시대의 주역인 융합형 인재를 8가지 유형으로 분류한 신新 인재 패러다임을 소개한 『이명옥의 크로싱』, 『나는 오늘 고흐의 구두를 신는다』(한국출판문화진흥재단 선정 ‘2009 올해의 청소년도서’) 등이 있다. 그 밖에도 『센세이션展』,『머리가 좋아지는 그림 이야기』, 『날씨로 보는 명화』,『에로틱 갤러리』,『화가들은 감정을 어떻게 표현할까』, 등의 책을 집필했다.
주요 전시로는 '교과서 미술전', '미술 속의 동물전', '밤의 풍경전', '키스전', '이발소 명화전', '24절기전', '일기예보전', '머리가 좋아지는 그림전', '그림 속 그림 찾기전'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