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인의 손금, 발자국, 입김 - 윌리엄 포크너(William Faulkner)
포크너는 읽기 쉽지 않은 작가임에 분명하다. 이 책을 공들여 번역한 옮긴이의 말처럼 ‘불친절하고 냉혹하고 깊고 끈질긴 사색을 요구하는 작가’이다. 우뚝 솟은 험하고 높은 산은 오르기는 어렵지만 일단 오르고 난 뒤에는 거기까지 올라온 사람에게 그 산만이 줄 수 있는 전망을 제공한다. 그 전망이 어떠할 것인지를 흠향하는 것은 도전한 자들에게 주어지는 선물이다.
글ㆍ사진 채널예스
2013.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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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엄 포크너(William Faulkner) [출처: 위키피디아]

미국의 베스트셀러 작가 존 그리샴은 “하루아침에 내가 진지한 작가로 변신할 수는 없다. 사과와 오렌지를 비교할 수는 없지 않는가. 윌리엄 포크너는 위대한 천재 작가다. 나는 아니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출간하는 책마다 베스트셀러가 되고 그 대부분이 영화로 만들어졌던 작가가 스스로를 위대한 작가의 반열에서 탈락시키며 포크너를 떠받든 것이다. 이 말에 과연 그리샴의 독자들은 몇 명이나 동의할까? 장담할 수는 없지만, 그리샴의 독자들 중 윌리엄 포크너를 읽은 사람은 그리 많지않을 것이며, 또한 그리샴의 발언에 자극받아 포크너를 집어 들었다 해도 그것을 끝까지 읽어 낸 숫자는 극히 적을 것 같은 생각이 드는 건 왜일까? 아마도, 재밌고 화려한 스토리텔링과 읽는 데 별다른 고민을 요하지 않는 문장에 익숙한 독자들에게 포크너는 그만큼 불친절하고 냉혹한, 루소의 ‘철학적 산책자’를 연상시키는 깊고 끈질긴 사색을 요구하는 작가이기 때문이리라. 하지만 동시에 이 사실은 그런 독자들에게, 그러니까 우리에게, 절체절명의 희망을 던져 주는 일이기도 하다. 즉, 포크너를 넘어설 수만 있다면, 아니 기꺼이 넘으려는 결심만이라도 견지한다면, 우리는 이제껏 경험해 보지 못한 넓고 깊은 문학의 바다와 마주하게 될 것이고, 그곳에서 헤엄치는 일의 짜릿함을 만끽할 수 있을 것이며, 그 바다에서 돌아왔을 때 우리들 정신의 피부가 얼마나 건강한 구릿빛으로 변해 있는지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모두 열두 편이 수록된 이번 작품집에서 여느 중단편 길이의 두세 배에 해당되는 「곰」 을 비롯한 대부분의 작품들이 포크너 소설의 주요 무대인 가상의 공간 ‘요크나파토파Yoknapatawpha’에서 펼쳐진다. 포크너에게 노벨문학상을 안겨 준 『음향과 분노』, 『압살롬, 압살롬!』, 『내가 누워 죽을 때』, 『8월의 빛』 같은 장편소설들과도 공유하는 이 공간은 미국 남부를 상징하는 것은 물론, 욕망과 절망과 분노와 죽음과 투쟁, 온유와 고귀함과 절제와 용기와 희망이 공존하는 공간, 즉 우리가 살았고 살고 살아갈 바로 이 ‘땅’을 상징한다. 태초로부터 쌓여 온 시간의 단층과도 같은 이 공간을 배경으로 한 포크너의 소설들이 세계 도처 문학 애호가들의 정신을 자극하고 그들로부터 전폭적인 신뢰와 사랑을 이끌어낸 것은 “가장 지역적인 것이 가장 범세계적”이라는 은유가 ‘요크나파토파’에도 고스란히 적용된다는 증거다. 이것은 우리들 세계의 영원성을 담보하며, 생로병사의 철칙을 넘어서는 인간 정신의 광대무변을 각성시킨다.

「곰」 은 이런 각성에 가장 근사近似한 작품이다. ‘곰’은 단순한 물리적 존재로서의 ‘동물’을 넘어선, 원시적 생태가 그대로 살아 있는 ‘광야’ 그 자체이며, 거기에 무방비로 노출된 주인공 소년이 자신의 정신과 영혼을 어떻게 무한과 영원으로 이끌고 가는지를 지켜보는 일은 그 자체로 우리들 유한한 삶의 경이로운 전환에 대한 더할 수 없는 응원이다.

윌리엄 포크너라는 문학적 거인의 풍모는 그의 수많은 장편들로부터 확인된다. 그의 장편들이 보여 주는 것이 거인의 전면적 풍모라면, 그의 단편들이 우리에게 보여 주는 것은 그 거인의 운명이 섬세하게 그려진 손금과, 그의 생애 어느 한 지점에 깊이 눌려 찍힌 발자국과, 그가 토해낸 숱한 숨들의 한 줄기 또렷한 백색 입김이다. 그의 손금을 통해 그의 운명을 가늠하고, 그의 발자국으로 그의 전 행로를 추적하며, 창백한 허공에 어렸다 사라진 입김으로 그의 생기를 흠향하는 것-이것이 포크너의 단편들을 읽는 일의 의미이며 기쁨이다.

열두 편에 이르는 크고 작은 단편들이 우리에게 보여 주는 거인의 손금, 발자국, 입김을 모두 그러모았을 때 우리 앞에 또 다른 하나의 거인이 버티고 선다는 것은 당연하면서도 경이로운 신비다. 그때의 거인은 인간이 보여 줄 수 있는 모든 감각ㆍB감정ㆍ정서의 총화에 버금한다. 「에밀리에게 바치는 한 송이 장미」 의 에밀리 양이 보여 주는 완고함과 처연함, 「헛간 타오르다」 의 소년이 보여 주는 굴욕과 인내, 「메마른 9월」의 이발사가 보여 주는 용기, 「그날의 저녁놀」 의 흑인 세탁부가 보여 주는 불안과 황폐, 「와시」 의 백인 가난뱅이가 보여 주는 환각과 광기, 「반전」 의 해군 사관생이 보여 주는 순수와 유희, 「여왕이 있었네」 의 노부인이 보여 주는 절제, 「브로치」 의 젊은 남편이 보여 주는 몰두와 파멸, 「마르티노 박사」 의 젊은 여자가 보여 주는 믿을 수 없는 사랑에의 열정-이들이 그려모아져 만들어 낸 거인의 풍모는 포크너의 장편이 보여 주는 우람한 거인의 그것에 맞서는 새로운 거인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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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문학단편선-02 윌리엄 포크너 윌리엄 포크너 저/하창수 역 | 현대문학
포크너는 헤밍웨이, 존 스타인벡과 더불어 미국문학의 마지막 거인으로 일컬어지는 작가이다. 『음향과 분노』 『압살롬, 압살롬』은 전 세계 작가들이 선정한 인류의 명저 100권에 선정되었으며 『8월의 빛』 『내가 누워 죽을 때』는 『음향과 분노』와 더불어 《모던 라이브러리》에서 선정한 20세기 영미문학 100선에 선정되었다. 1949년의 노벨문학상 수상과 퓰리처상, 전미도서상 등으로 포크너의 문학적 명성은 부동의 것이 되었다. 그의 엄숙하고도 비타협적인 문장은 독자들의 접근을 쉽게 허락하지 않았다. 포크너를 좋아하는 독자들한테도 그의 작품을 읽는 것은 하나의 도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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