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하일기』 연암 박지원의 ‘글 잘 쓰는 법’
조선 최고의 문장가로 연암 박지원을 꼽는 데 이의가 있는 이는 아마도 거의 없을 것이다. 문장가로서 연암의 탁월함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택당 이식, 계곡 장유, 상촌 신흠, 고산 윤선도 등 최고라 꼽을 만한 문장가는 많지만, 현재도 꾸준히 독자에게 사랑을 받는 문장가는 단연 연암 박지원이다. 그렇다면, 연암 박지원의 글은 어떤 이유로 가장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을 수 있는 것일까?
2013.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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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강(滄江) 김택영(1850~1927)이 연암의 글쓰기를 평가한 말이다. 혹자는 연암을 ‘영국의 셰익스피어에 비견될 만한 문장가’라고 일컫는다. 『연암 박지원의 글 짓는 법』 을 펴낸 박수밀 교수가 연암의 문장에 대한 찬사로 강연을 시작했다. 그는 20여 년 전, ‘연암 박지원의 문예 미학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고, 현재는 한양대 동아시아문화연구소 연구교수로 재직 중이다. 두 시간 가까이 진행된 강연에서, 그는 연암에 관한 해박한 정보와 깊이 있는 발견을 독자와 나누었다.
글을 잘 쓰고 싶어 하는 이들이 많다. 박수밀 교수의 강연을 듣기 위해 서대문구에 위치한 이진아도서관에 모인 독자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이들을 위해 박수밀 교수는 글을 잘 쓰기 위한 요령을 일러주었다.
1) 서술어에 유의하라. ‘-이다. -하다’ 로 끝을 낸다. 흔히 ‘-인 것이다.’, ‘-라고 할 수 있다.’, ‘-인 것 같다.’를 많이 쓰는데 이런 문장들은 안 쓰는 편이 좋다. 2)같은 표현은 반복 하지 마라. ‘노래를 하고 티비를 시청하고 식사를 한다’라는 표현보다는 ‘노래를 부르고, 티비를 보고, 밥을 먹는다’가 좋은 표현이다. 한자어나 관념적, 추상적인 사어보다는 감각적인 동사를 사용하라. 3) 말을 아껴라. 실용적인 글을 쓸수록 형용사, 부사를 삭제하라. ‘굉장히’, ‘많이’, ‘아주’보다는 ‘퍽’, ‘참’을 쓰면 좋다. 중언부언하거나 늘어지는 느낌이 줄어든다. | ||
연암의 글을 논하기 전에, 그가 살았던 시대의 보편적인 글쓰기를 알아두면 좋다. 압도적으로 우세했던 고문(古文)과 소수의 학자가 주장했던 금문(今文)이 있다. 고문(古文)스타일의 글쓰기는 과거 경전에 쓰인 글을 모범으로 한 글쓰기다. 반면 금문(今文) 스타일은 내면의 자유로운 생각과 형식이나 수사를 중시한다. 연암 박지원의 글쓰기는 ‘법고창신’이라는 말로 설명이 가능하다. 옛것을 본받되, 변화의 정신을 갖는 것이다. 나아가 저자는 이것을 상생의 의미로 확대했다.
아! 옛것을 전범으로 삼는 사람은 낡은 자취에 빠지는 것이 병통이고 새롭게 만드는 사람은 상도(常道)에 어긋나는 게 걱정이다. 진실로 옛것을 본받되 변화를 알고 새롭게 만들되 법도에 맞는다면 지금 글이 옛글과 같을 것이다.-박지원, <초정집서> | ||
연암은 그의 저서 『종북소선자서』 를 통해 ‘벌레의 더듬이와 꽃술에 관심이 없는 자는 도무지 문장의 정신이 없는 것이고, 사물의 형상을 음미하지 못하는 자는 한 글자도 모른다고 말해도 상관없을 것’이라 했다. 자연을 자세히 관찰하고 교감하는 등 하찮은 것에서부터 관심을 갖고 출발해야 제대로 된 문장을 이룰 수 있다는 것이 연암의 글쓰기의 본질이다.
이제 본격적으로 작가 박수밀이 말하는 연암의 글쓰기 비법을 엿볼 시간이다.
1. 기록하고 메모하라.
열하일기의 한 대목 중에 그의 봇짐 안에는 필담했던 초고와 여행 중에 쓴 일기가 두툼하게 들어있었다는 기록이 나온다. 『성호사설』 , 『열하일기』 , 『지공유설』 등의 책이 모두 그의 기록하는 습관의 산물들이다.
2. 사물의 생태를 꼼꼼히 관찰하라
아! 저 까마귀를 보라. 그 날개보다 더 검은색이 없긴 하나 얼핏 옅은 황금색이 돌고, 다시 연한 녹색으로 반짝인다. 햇볕이 비추면 자주색으로 솟구치다, 눈이 어른어른하면 비취색으로도 변한다. 그러므로 내가 비록 푸른 까마귀라고 말해도 괜찮은 것이고 다시 붉은 까마귀라고 말해도 상관없는 것이다. 저 삼루은 본디 정해진 색이 없는데도 내가 눈으로 먼저 정해 버리는 것이다. | ||
3. 사물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라.
사물과 대화적 관계를 만드는 것이 글쓰기의 본질이다. 여기서 말하는 사물은 자연사물을 말한다.
연암의 대표작 『호질』 은 형식적, 정신적인 면에서 뛰어난 작품이다. 학교에서는 이 작품을 위선적인 유학자에 대한 풍자로 가르친다. 하지만 박수밀은 인간과 문명의 관계를 짚어낸 차원 높은 문제의식이라고 본다. 자연사물을 대표하는 호랑이의 관점에서 작품을 쓴 것이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원령공주’나 제임스 캐머런의 ‘아바타’와 비슷한 맥락이다.
4. 상식을 의심하고 관습에서 벗어나라
마을의 어린애에게 천자문을 가르치다가 읽기 싫어하기에 꾸짖었더니, 그 애가 말합디다. “하늘은 푸르고 푸른데 하늘 천(天) 자는 푸르지가 않아요. 그래서 읽기 싫어요.” 이 아이의 총명함이 창힐을 굶어 죽이겠소. <답창애지삼> 中에서 | ||
가장 쉽게 떠오르는 상식 중에 콜럼버스의 달걀이 있다. 콜럼버스의 달걀이 창의적인 발상이라고 강의를 하던 중, 한 학생이 지적을 했다. 물리적으로 달걀을 억지로 깨뜨린 것을 제국주의적 발상이 아닌지 묻는다. 그런데 사실 그렇다.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한 것이 아니라 원주민들의 터전을 침략한 것이다. 당연하다고 생각하던 것을 뒤집어 보면 다르게 다가온다. 관점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진실은 달라진다.
연암이 우리나라의 명동, 인사동 격의 북경의 유리창이라는 번화가를 간 기록을 보면, 그 곳에서 군중 속의 고독을 느낀 장면이 나온다. 어느 곳에 가든, 관습적인 생각보다는 독특한 감수성, 길들여지지 않는 시선을 갖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특정장면을 구체적으로 묘사하는 그의 서술방식은 세밀한 관찰을 통해 앎을 얻고 다작(多作)을 이룰 수 있었던 비법이다.
5. 경계에서 생각하라
당시는 ‘소중화사상’으로 ‘청은 오랑캐’라는 인식이 팽배했다. 그러나 연암이 바라본 북경의 문명은 유럽의 도시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었다. 물론 척결의 대상을 인정한다는 것은 위험한 사상으로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진리는 경계에 있음을 박지원은 믿었다. 어느 한쪽편이 아닌 객관적이고 공정한 시각을 취하겠다는 입장이 그의 저서 『도강록』 에 드러난다.
내가 말했다. “그걸 말하는 게 아닐세. 이 강은 이쪽과 저쪽이 만나는 경계로써, 언덕이 아니면 곧 물이지. 무릇 천하에 존재하는 백성의 도리와 사물의 이치는 물이 언덕에 경계한 것과 같다네. 도는 다른데서 구할 게 아니라 곧 이 경계에 있다네” | ||
“이외수 작가는 ‘우리가 무언가를 볼 때, 육안으로, 머리로(지식으로), 심안, 영안으로 본 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 대상을 알기 위해서 관찰하는 것이 영안을 보는 것이다. 모든 대상에는 양면성이 있다. 아무리 나쁘다고 하는 사람도 좋은 면이 있고, 그 반대도 마찬가지다. 양면을 보아야 객관성을 획득할 수 있다. 무엇이 나의 본질인지는 모르지만 하나하나는 다 진실이다.”
연암처럼 글을 쓰기를 위해서 ‘관찰’하고 ‘교감’하고 ‘대화적 관계’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 저자가 이 책을 통해 최종적으로 전하고 싶은 이야기다. 먼저 그는 일상의 평범한 것들에 의미를 발견해보길 당부했다.
“의미는 주어져 있지 않다. 그 자체가 의미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발견해냈기에 의미 있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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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암 박지원의 글 짓는 법 박수밀 저 | 돌베개
연암 박지원의 글은 어떤 이유로 가장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을 수 있는 것일까? 탁월한 문장과 번득이는 재치 등 여러 가지 수식어가 붙을 수 있겠지만, 그의 문장 자체에 대한 분석은 내놓기 힘들다. 이 책은 연암의 글쓰기에 대한 책으로, 글쓰기 정신과 전략을 탐구함으로써 연암 사상과 문학의 근원을 헤아리고 있다. 연암의 글쓰기는 지금의 현실에서도 충분히 의미 있으며, 글쓰기 교육에 실제로 적용할 수 있다. 연암의 글 짓는 법은 오늘날 도구적이고 폭력적으로 변해가는 글쓰기를 극복할 수 있는 대안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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