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집필실을 훔쳐본 꼬마들의 이야기
2013년, 대한민국 초등학생의 여름방학은 어떤 모습일까. 학교 종에 맞춰 움직이고, 학교 마치면 학원 돌고, 학원 끝나면 숙제 하기 바쁘던 아이들에게, 방학 때만큼은 새로운 경험을 할 시간과 기회가 있을까? 학기 중보다 더 바쁘게 학원 학원 학원을 오가고 있지는 않을지. 문학동네가 ‘작가와 함께 하는 1일 독서캠프’를 마련했다. 책 속의 작가를 직접 만난다는 설렘을 안은 아이들 못지않게, 내 책의 독자를 만날 준비를 하는 작가들의 마음도 콩닥콩닥 기분 좋게 뛰고 있었다.
글ㆍ사진 엄희정
2013.0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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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밖의 만남, 깃발을 올려라

여름방학이 막바지를 향해 달리는 8월 15일 아침, 맹렬하던 햇발이 잠시 주춤하다. 방학과의 이별이 못내 아쉬운 열네 명의 아이들이 파주 문학동네 사옥으로 향하는 탐험선에 올랐다. 서울 경기 곳곳에서 모인 2학년부터 6학년까지의 아이들 얼굴은 난생 처음 배를 타고 칠금도로 떠나던 『방학 탐구 생활』의 주인공 석이와 호, 경성이처럼 상기된 표정이다.

파주에 도착해 번듯한 탐험 대원 이름표를 받자마자 아이들은 같은 모둠의 대원들과 빛의 속도로 친해진다. 자기 삶의 주인이 되고 싶다는 1모둠의 이름은 ‘꼬마 작가’, 그야말로 독서는 탐험이라고 생각한다는 정직한 2모둠은 ‘독서탐험대’, 유난히 활기가 넘치는 3모둠 이름은 ‘이박’으로 정해졌다. (이 씨와 박 씨만 모였기 때문이란다) 모둠 이름을 정하고 깃발을 올리는데, 책 속 일러스트를 패러디 하는 솜씨가 정말 대단하다. 얼마나 단단한 재주들이 이 아이들 안에 숨어 있을지.




작가네 집 『책과 노니는 집』 이영서

탐험대의 첫 번째 목적지는 『책과 노니는 집』의 이영서 작가의 집필실. 2009년 출간되어 이미 많은 독자들의 사랑을 받은 『책과 노니는 집』을 어떻게 쓰게 되었는지, 선생님은 장이를 비롯해 조선시대 책을 둘러싼 수많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자신을 찾아온 사연을 생생히 들려 주었다.

“나는 어릴 때 공부를 잘 못했지만 정말 정말 재미있어서 눈이 반짝 뜨이는 시간이 있었어요. 그게 언제냐 하면 역사 시간이었지요. 그래서 동화를 쓰게 되었을 때, 아, 나는 역사 동화를 써야겠다 했어요. 내가 이렇게 즐거운데, 잘 못 써도 상관 없다. 잘 안 되어도 손해 볼 것 없다 생각했거든요. 내가 재미있는 만큼 독자들에게도 이 재미를 그대로 전해 주고 싶었어요.”

이 시간은 ‘2023년을 빛낸 올해의 책’ 표지를 그려 보는 것으로 마무리되었다. 선생님의 바람은 이루어진 듯하다. 귀를 쫑긋 모으고 이야기에 빠진 아이들의 얼굴이 말해 주고 있다.




보물을 찾아라, 책으로 놀아 보기

배부르게 점심을 먹은 대원들은 보물찾기를 시작했다. 제14회 문학동네어린이문학상 대상 수상작 『방학 탐구 생활』의 김선정 작가가 길잡이로 나섰다. ‘액션 어드벤처 판타지 영화를 뛰어넘는 현실 밀착형 모험담’을 써낸 김선정 작가는 방학이 더 바쁜 도시 아이들을 위로하고 싶어서 이 이야기를 구상했다고 말했다. 어른들은 “요즘 애들 놀 줄을 몰라.”라고 말하지만 시간이 있고 친구가 있다면 언제든지 얼마든지 신나게 놀 수 있는 아이들의 마음을 선생님은 안다.

작은 그림 보고 큰 그림 찾기, 흩어진 문장 맞추기, 30조각 그림 맞추기를 순식간에 풀어내는 아이들의 실력이 놀랍다. 다 맞추고 앞으로 뛰어나오는 속도는 더욱 놀라웠다. 대원들이 가장 열정적인 모습을 보여 준 시간이었다. 김선정 선생님은 “내 책이 만든 이 과열 경쟁 양상이 좀 슬픈데, 재미있어 죽겠다는 너희들 모습을 보니 정말 행복해.” 하며 웃었다. 책 안에 숨겨진 보물 중에 가장 빛나는 것은 있는 그대로 서로를 긍정하는 되는 환한 웃음일 것이다.




시 쓰는 개미와 베짱이, 동시가 어려워?

보물찾기 다음은 곤충채집? 이 아니고, 동시집 『어이 없는 놈』을 펴낸 김개미 시인과 함께하는 시간이다. 선생님의 첫 마디는 “친절한 선생님을 원해? 건방진 선생님을 원해?”였고, 놀랍게도 아이들은 건방진 선생님을 선택했다. 역시 남달리 용감한 탐험대원들 답다. 선생님이 칠판에 붙여 둔 시어 카드 사이를 요리조리 누비며 아이들은 동시와 놀았다. 자유롭고 싶다고 느껴 본 순간이 언제였냐고 선생님이 묻자 대원 1은 명절 때 엄마가 음식을 나르라고 시켜서 가뜩이나 힘들었는데, 나르다가 넘어져서 음식을 쏟는 바람에 벌로 방에 갇혔을 때라고 답했다. 대원2는 숙제 하기 싫을 때, 대원 3은 합창부에서 노래 연습을 너무 오래 시켰을 때, 대원4는 강당에서 혼자 오카리나를 불었는데 들판을 뛰어다니는 느낌이 들었을 때라고 말했다. 이렇게 생생할 수가. 아이들이 쓴 동시들은 놀라웠다. 허무와 반전의 매력이 돋보이는 「거꾸로 엄마」, 슬픔과 자조의 미학을 담은 「쓸데없이」, 발랄한 각운에 당찬 메시지를 담은 「잔소리」 세 편을 소개한다.
거꾸로 엄마_최연준

거꾸로 엄마가 있으면 어떨까
공부할 때 딴생각 해라
냄새 나게 놀고 와라
청개구리처럼 대답해라
맙소사, 차라리 잔소리가 낫겠다


쓸데없이_정하은

쓸데없이 학원 다닌다
점수도 오르지 않는데

더 놀고 싶은데
더 자고 싶은데
금 같은 시간이 흘러간다

진짜 쓸데없이 학원 다닌다
쓸데없다


잔소리_박서연

엄마는 잔소리쟁이야
일어나면 양치하라고 왱왱
세수하라고 왱왱
밥 먹으라고 왱왱

나도 알아요
어린애가 아니라고요

엄마는 여왕이야

나한테 숙제 해라 왱왱
문제집 해라 왱왱
책 읽어라 왱왱

엄마는 간섭의 여왕이야

나도 알아요
제가 할 일 알아요
나 좀 가만히 두세요



시간극장, 나만의 이야기를 쓰는 법

탐험대가 들른 마지막 장소는 멋진 극장이다. 『시간 가게』를 쓴 이나영 작가와 함께 책 속으로 깊숙이 들어가 주인공이 되어 보았다. 오로지 일등이 되기 위해 시간을 사기로 결정했던 윤아의 마음을 헤아려 보고, 바라던 대로 전교 1등을 했지만 윤아는 왜 행복하지 않았을까 함께 고민해 보았다. 대원들은 스스로 작가가 되어 이야기를 바꾸어 써 보기도 했다. 내가 이야기 속 할아버지라면, 십 분의 시간을 사는 대신 무엇을 요구할까 하는 물음에는 머리카락, 살(!), 목소리, 미래의 시간 십 분 등 다양한 것들이 등장했다.




뜻밖의 소식 ‘엄마의 편지’

일정이 모두 마무리되어 갈 무렵, 뜻밖의 소식이 도착했다. 대원들이 책 속 세계를 탐험하는 동안 함께 온 부모님은 따로 강의를 듣고, 아이들에게 편지를 썼다. 귀엽고 선한 웃음이 꼭 닮은 삼남매의 어머니가 쑥스럽지만 따뜻한 목소리로 편지를 읽는다. “늘 동생들 잘 챙겨 주는 의젓한 큰아들 래곤이, 장난기 많지만 동생에게 맛있는 음식 만들어 주는 우리 집 요리사 래원이, 착하고 예쁜 막내 래인이, 언제나 서로 친구처럼 기대어 살아가길 바란다. 더불어 책이라는 과묵한 친구와도 깊이 사귀어 보길.”

책에 눌리지도 말고, 책에 치이지도 말고, 책을 깔보지도 말고, 책과 진실한 우정을 나누는 대원들이 되길. 오늘의 탐험을 준비한 문학동네의 바람이다. 우리 대원들의 다음 여름방학은 이번 방학보다 조금 더 신 났으면 좋겠다. 문학동네가 뱃고동을 울리며 힘껏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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